순례자, 그림자의 언약. 01
프롤로그. 불꽃의 서약
신앙의 심장부,
아벨 대성당의 스테인드글라스를 통해 황혼이 스며들었다.
은빛 먼지가 빛줄기 사이를 떠돌다 내려앉았다.
대성당 자체가 거대한 생명체처럼 호흡하는 듯했다.
저 멀리 피에트 산맥 너머로 붉게 물든 구름이
전 세계 신도들의 숭배를 받는 성스러운 첨탑의 그림자를 길게 드리웠다.
세계의 모든 신앙이 이곳으로 향하는 시간이었다.
낮도 밤도 아닌 경계에서, 빛과 어둠이 서로의 영역을 조용히 인정하는 순간,
어둠의 세계에서도 가장 신성한 이 땅에만 존재하는 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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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풍스러운 성당 안으로 종소리가 깊게 울려 퍼졌다.
일곱 번의 종소리는 멘탈로니아의 일곱 정신을 의미했다.
소리는 성당 내부의 공기를 진동시키며 돌기둥 사이를 맴돌다 사라졌다.
그 울림이 멎자 무거운 정적이 내려앉았다.
그러나 이것은 비어있는 고요함이 아니라, 온갖 가능성으로 가득 찬 기다림의 순간이었다.
어둠이 깊어갈수록 촛불은 제 존재를 강하게 주장했다.
그 불빛 속에서 노인의 무릎 꿇은 형체가 떠올랐다.
세월의 무게를 견뎌온 대리석 바닥에는 수많은 무릎자국이 얕게 패어 있었다.
이 홈들은 수천, 수만 번의 기도가 남긴 침묵의 증거였다.
어떤 자국은 깊이 파였고, 다른 것들은 간신히 눈에 띄었다.
기도하는 이들의 절실함이 바닥에 새겨진 듯했다.
커넬 성현은 내리뜬 눈으로 제단 위의 촛불을 바라보았다.
자신의 그림자가 벽면에 길게 드리워져 있었다.
그림자.
그것이 이제 그에게 남은 전부이자 모든 것이었다.
반세기를 넘긴 시간 동안 그가 발견한 진리는 단 하나.
빛이 있는 곳에 그림자가 있으며, 그림자가 있는 곳에 빛이 있다는 것.
둘은 결코 분리될 수 없는 하나의 실체였다.
"성화는 영원히 타오른다."
대지를 울리는 바윗소리처럼,
성현의 말씀이 성당 구석구석으로 스며들었다.
절대자의 숨결을 담은 이 외침은 세간의 소식이 아닌,
반세기 신앙의 핵심을 꿰뚫는 진리였다.
수천 번 의심의 폭풍이 그를 덮쳤으되 신앙의 뿌리는 더욱 깊이 대지를 파고들었다.
의심의 회오리 속에서만 그의 깨달음이 비로소 보석처럼 빛났다.
주름진 손가락으로 성수를 찍어 이마에 그었다.
성수의 냉기가 이마에서 얼굴 전체로 번져 내렸다.
그 차가움이 오래된 기억들을 다시 일깨웠다.
카르토 마을의 얼어붙은 시체들, 포보스 신전의 한기,
베일라드 저택의 싸늘한 무도회장, 미드가르 고원의 푸른얼음 동굴.
그가 평생 걸어온 길은 모두 차가움과 어둠으로 시작되었지만,
그 끝에는 언제나 따스한 불꽃이 있었다.
때로는 꺼질 듯 흔들리는 작은 불씨였지만,
끝내 사그라들지 않았다.
커넬은 어깨에 둘렀던 푸른 견포를 바닥에 내려놓고 두 손으로 얼굴을 가렸다.
겹겹이 쌓인 주름 사이로 눈물이 맺혔다.
슬픔의 눈물이 아니었다. 긴 여정을 마친 자의 해방감이었다.
그런데 왜 가슴 한 구석이 여전히 무거운 것인가?
자문했다. 누구에게도 들리지 않을 기도문을 속삭이며.
-
그 속삭임에 성당 안의 먼지가 미세하게 흔들렸다.
오랜 시간 침묵하던 공간이 응답하듯, 희미한 바람이 그의 주변을 감쌌다.
나무로 만든 오래된 성상들이 희미하게 삐걱거렸다.
킨 가문의 세 천사상, 피에트의 수호자상, 이아와 칸의 이중상...
성당의 구석진 곳에서 숨어 있던 기억들이 깨어나기 시작했다.
첫 구마 의식을 행했던 그날로부터 어느덧 반세기가 흘렀다.
신규 서품을 받은 어린 수련사제는 이제 칠십을 바라보는 아벨 교회의 최고위 주교가 되었다.
양피지에 썼던 서툰 주문은 이제 그의 호흡처럼 자연스러운 일부가 되었다.
고대 멘트어로 된 복잡한 주문들이 이제는 그의 혀에 익숙했다.
손바닥에 패인 주름마다 저마다의 구마 의식의 흔적과 상처를 담고 있었다.
교단에서는 그를 '그림자의 사도'라 불렀다.
그가 어둠의 영역을 드나들며 악마들의 본질을 이해하고,
때로는 그들과 대화하며, 단순히 파괴가 아닌 변화와 구원의 길을 모색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커넬 자신은 그 호칭이 과장되었다고 생각했다.
어쩌면 불충분하다고 여겼을지도 모른다.
그가 한 일이라곤 그저 그늘진 곳을 더듬어 빛의 흔적을 찾아낸 것뿐이었다.
때로는 실패했고, 때로는 잘못된 길을 택했다. 그럼에도 그는 멈추지 않았다.
"어둠은 빛의 부재가 아니라, 빛이 가야 할 곳을 알려주는 이정표였을 뿐."
그의 입에서 새어 나온 말은 제자들에게 자주 들려주던 가르침이었다.
글자 그대로의 의미를 넘어, 그것은 그가 평생을 통해 깨달은 존재의 본질이었다.
그리고 이제, 그 가르침을 전할 마지막 제자가 곧 도착할 것이다.
첫 번째 촛불을 켰다.
그가 무릎을 꿇고 앉아 있던 공간에서 겨우 세 발자국 떨어진 촛대였다.
향기로운 밀랍의 냄새가 퍼지며 성당 안의 공기에 따스함이 돌았다.
거기에는 아벨 구릉지대에서만 자라는 은빛 꿀풀의 향이 희미하게 섞여 있었다.
화염이 타오르자 세월의 주름이 더 깊게 파인 얼굴이 빛에 드러났다.
깊은 눈매, 굳게 다문 입술, 그리고 오른쪽 눈썹 위를 가로지르는 흉터.
카르토 마을에서 남은 기억이었다.
죽음의 서판을 정화하는 순간,
에일린이 그를 지키기 위해 자신을 던졌을 때 생긴 상처였다.
눈을 감으면 지금도 그곳의 풍경이 선명하게 떠올랐다.
걸을 수도, 죽을 수도 없는 주민들. 푸르게 썩어가는 나무들. 검게 얼룩진 하늘.
그리고 그 모든 광기 속에서 유일하게 이성을 지킨 듯했던 에일린.
하지만 그녀에게도 비밀이 있었다.
"에일린."
이름을 부르자 촛불이 격렬하게 흔들렸다. 우연이라기엔 너무 선명한 응답이었다.
에일린의 영혼이 아직도 어딘가에 존재하는 것일까?
수십 년이 지났는데도 이름을 부를 때마다 가슴이 아파왔다.
그 희생이 헛되지 않았음을,
죽음이 자연의 순리에 맞게 모든 이에게 안식을 가져왔음을 커넬은 절실히 믿고 싶었다.
두 번째 촛불을 켰다.
세월에 굳은 손가락이 촛대 위에 머물렀다.
시작의 촛불과 정확히 일곱 걸음 떨어진 자리였다.
일곱이라는 숫자-멘탈로니아의 일곱 정신을 상징하는 수.
불빛이 손가락 주변을 감쌌다. 불이 생명의 온기처럼 손에 번져갔다.
마법이 아니었다. 가장 자연스러운 감각이었다. 밀랍에서 풍기는 꿀 향이 코끝을 찔렀다.
그의 눈앞에 또 다른 기억이 떠올랐다.
포보스의 신전. 두려움의 신이 잠든 그곳. 공포와의 첫 대면.
그곳에서 마주한 거울 속 자신의 모습. 두려움에 질려 있던 젊은 사제의 눈.
두려움이란 것은 피하는 것이 아니라 맞서는 것임을, 그는 그곳에서 배웠다.
때로는 가장 두려운 것 속에 가장 큰 진실이 숨어 있음을.
"두려워했던 것은 진실이 아니라 나 자신이었지."
그는 가끔 의문을 품었다. 그때 거울 속에서 본 자신의 모습은 진짜였을까?
아니면 포보스가 보여준 환상일 뿐이었을까?
어쩌면 그 두 가지가 모두 진실이었을지도 모른다.
진실이란 것은 한 가지 모습만 갖지 않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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셋째 촛불이 타오르며 연기 줄기가 천천히 위로 피어올랐다.
이번 촛불은 시작점에서 일곱 걸음,
두 번째 촛불에서 다시 일곱 걸음 떨어진 자리에 있었다.
마르코가 쥐어준 성화유의 향이 섞인 밀랍초였다.
서쪽 대륙 탐험가 마르코는 그에게 평범한 물건이라 하며 건넸지만,
커넬은 그 안에 담긴 진정한 가치를 알아보았다.
그의 기억 속에서 아르고스 호의 모습이 떠올랐다.
안갯속에서 유령처럼 나타났던 그 배. 시간이 멈춘 갑판.
존재하지 않는 선장에게 복종하던 선원들.
영원히 서쪽으로 향하고 싶었던 타르시우스의 집착.
네 번째 촛불의 불꽃이 흔들리며 커넬의 눈동자에 춤추는 그림자들이 비쳤다.
베일라드 백작의 저택. 미쳐버린 기억이 깃든 그곳.
영원한 무도회. 살아 움직이는 물건들.
그는 그곳에서 타인의 고통에 공감하는 법을 배웠다.
때로는 가장 큰 구원이 파괴가 아닌 이해에서 온다는 것을.
이사벨라 백작부인의 눈에서 본 광기와 슬픔이 지금도 생생했다.
그녀의 슬픔을 받아들이는 순간, 커넬 자신도 변했다.
그 이후로 그는 타인의 고통에 더 민감해졌다.
축복인 동시에 저주였다.
다섯 번째 촛불이 타오르자 성당 안의 그림자가 더욱 짙어졌다.
그러나 동시에 빛의 영역도 확장되었다.
불의 가장자리가 수백, 수천 개의 작은 불꽃으로 춤추는 것처럼 보였다.
커넬의 얼굴에 미소가 번졌다. 자날의 도서관. 사막 아래 잠든 지식의 보고.
신과 악마는 하나였다는 충격적인 진실을 발견한 곳.
모든 것은 결국 하나로 연결된 거대한 순환의 일부였다.
자날의 도서관에서 아이샤와 함께 보낸 시간은 그의 삶을 완전히 바꾸어 놓았다.
아이샤... 인간이었을까, 영혼이었을까,
아니면 자날의 일부였을까? 수수께끼는 여전히 풀리지 않았다.
그가 최초로 구마사가 되기로 결심했을 때,
그는 악마를 파괴하는 자가 되고자 했다.
멸마(滅魔)를 꿈꾸었다.
그러나 평생의 여정을 통해 그가 발견한 것은 파괴가 아닌 균형이었다.
구마(驅魔)의 본질. 세상의 모든 문제는 균형의 파괴에서 비롯되었고,
진정한 해결은 무조건적인 소멸이 아닌 조화의 회복에 있었다.
그 깨달음은 달콤하면서도 쓰라렸다.
"모든 불빛은 어둠을 밝히지만, 그 어둠 또한 빛의 무게를 지탱한다."
그가 자신의 눈을 반쯤 감았다.
쉰여 년이 흘렀어도 그날 세바스티안 신부가 불길 속에서
그에게 건넸던 두 번째 스크롤의 내용이 선명했다.
양피지의 색은 훼손되었지만,
그 위에 쓰인 글자는 어제 쓰인 것처럼 그의 기억 속에 또렷했다.
때로는 너무 또렷해 고통스러울 정도로.
'악마란, 인간이 버려둔 신의 이름이다.'
진실의 무게는 감당하기 어려웠다.
어떤 이들에게는 불경스러운 신성모독이었고,
또 어떤 이들에게는 질서를 위협하는 이단이었다.
조화 자체의 부정이었다.
세바스티안의 화형 이후, 교회는 그를 이단으로 규정했다.
모든 문서는 불태워졌고, 그의 이름을 말하는 것조차 금지되었다.
그러나 진실은 불태울 수 없었다. 진실은 재 속에서도 작은 불씨로 남아 타오를 뿐이었다.
커넬은 자신도 같은 운명을 맞을 것이라 예상했다.
그러나 의외로 교회는 그를 박해하지 않았다.
어쩌면 그의 구마 능력이 너무 필요했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혹은 그 진실을 마주할 용기가 없었기 때문일 수도 있다.
그는 이내 자신의 가르침을 직접적으로 전파하지 않는 대신,
가장 신뢰할 수 있는 제자들에게만 진실을 전하기로 결심했다.
결국 빛은 스스로 길을 찾아야 한다.
그는 단지 그 가능성을 보여줄 뿐이었다.
-
그가 여섯 번째 촛불을 켜려 할 때, 문이 열리는 소리가 들렸다.
묵직한 참나무 문이 오래된 경첩 소리를 내며 천천히 열렸다.
차가운 밤공기가 성당 안으로 스며들었다.
미카엘 분지에서 불어오는 특유의 서늘한 바람이었다.
"주교님."
문이 열리며 젊은 여성이 들어섰다.
검은 머리카락을 단정하게 묶은 리나였다.
마지막 제자이자 그가 키워낸 가장 뛰어난 구마사.
한때는 고집스럽고 반항적이었지만, 이제는 자신의 길을 찾은 여성.
그녀의 옷자락에서는 여행의 흔적인 먼지와 사막의 향이 희미하게 풍겼다.
그리고 어딘가 낯설면서도 익숙한 다른 무언가가.
"어서 오너라, 리나."
커넬은 천천히 몸을 일으켰다.
허리가 굽어 있었지만, 그의 등에선 여전히 권위가 느껴졌다.
그가 움직일 때 청동 구슬들이 달린 묵주가 부딪히며,
미세한 금속음이 울렸다. 7개의 구슬, 7개의 성스러운 소리.
"그간 어떻게 지냈느냐?"
"서쪽 대륙에 다녀왔습니다.
주교님께서 말씀하신 그 도서관을... 자날을 찾아갔습니다."
커넬은 작은 놀라움과 함께 미소를 지었다.
그의 눈빛이 잠시 젊은 날의 열정으로 빛났다가 이내 깊은 상념으로 가라앉았다.
이제 리나도 '그것'을 발견했다.
세상의 모든 현상 뒤에 숨겨진 원초적 진실을.
그것은 책이나 가르침으로 전해질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직접 마주하고, 경험하고, 받아들여야만 했다.
그래서 그는 제자들을 자유롭게 두었다.
때로는 자신의 가르침에 반하는 길을 걷더라도.
리나가 망설이다 입을 열었다.
그녀의 목소리에는 미세한 떨림이 있었다. 확신과 의심 사이의 경계에 선 자의 목소리.
"주교님, 서쪽 대륙에서 이상한 소문이 들립니다.
새로운 형태의 악마가 나타났다고...
인간의 모습을 한 채 피가 아닌 신앙을 먹는 존재라 합니다.
교회의 형상을 하고 신도들을 모으고 있답니다."
커넬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의 무표정 뒤에는 깊은 생각이 흘렀다.
얼핏 보면 초연해 보이지만 눈가의 미세한 주름이 그의 내적 동요를 드러내고 있었다.
그가 장막을 걷어낸 진실의 또 다른 측면.
빛과 어둠이 서로를 모방하며 끊임없이 역할을 바꾸는 영원한 춤.
그 춤의 한복판에 인간이 있다.
양쪽의 불완전한 형상을 모두 가진 존재.
잠시 침묵이 흐른 후 그는 제단 아래의 낡은 서랍을 열었다.
그 안에는 오래된 여행 가방이 있었다.
낡은 가죽 가방.
반평생을 함께한 동반자였다.
가방 표면의 가죽에는 생명체처럼 무수한 주름과 흠집,
꿰맨 자국들이 그의 역사를 말해주고 있었다.
어둠에 묻혀 흐려진 흔적들,
햇살에 드러나 여전히 뚜렷한 상처들.
이 흠집들은 커넬이 걸어온 길의 증거였다.
살갗에 새겨진 기억. 영혼에 각인된 여정.
"이게 무엇입니까?"
리나의 목소리에 경외감이 묻어났다.
눈앞에 펼쳐진 건 가방이라 부르기엔 너무나 위대한 유산이었다.
아벨 교회의 전설적 구마사가 피와 땀으로 모은 지식의 보고였다.
한 인간의 삶이 고스란히 담긴 증언.
"내가 평생을 기록한 구마록이다.
내 삶과 깨달음이 담겨있지. 그리고... 때로는 혼란스러움도."
그는 가방 속에서 가죽 표지의 책을 꺼냈다.
표지에는 '그림자의 사도'라는 글씨가 자주색 잉크로 새겨져 있었다.
세월에 바랜 글자 위로 그의 손가락이 지나갔다.
그 책에서는 지식과 시간의 중후한 향기가 묻어났다.
책의 한 구석은 불에 그슬린 듯 검게 변해 있었다.
"진정한 구마사는 빛만을 보는 자가 아니라,
어둠 속에서도 길을 찾을 수 있는 자다. 더 중요한 것은...
그 길이 언제나 명확하지 않다는 사실을 받아들이는 것이지."
커넬의 음성은 낮되 흔들림 없었다.
평생의 여정을 통해 얻은 진리의 선언이었다.
리나는 조심스레 책을 받아 들었다.
책을 들자 표지의 가죽이 부드럽게 반응하며 손가락에 감겼다.
오랫동안 기다려온 주인을 맞이하는 환대.
새로운 시작을 알리는 계약의 서명.
커넬의 눈빛이 깊어졌다.
구겨진 눈가에 가득한 주름이 더욱 깊게 파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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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의 마지막 장은 비어 있다. 네가 채워나가기를 바란다."
"제가... 어떻게... 저는 아직..."
리나의 목소리가 흔들렸다.
그녀의 눈에 불안과 의구심이 어렸다.
커넬은 그 모습에서 자신의 젊은 시절을 보았다.
한때 그도 그랬다. 카르토 마을로 향하던 날, 그의 마음은 두려움과 불확실성으로 가득했다.
아니, 어쩌면 지금도 그 불확실성은 그를 떠난 적 없었다.
단지 그것과 함께 살아가는 법을 배웠을 뿐.
"두려워하지 마라. 나도 처음엔 두려웠다. 카르토 마을에서, 포보스의 신전에서...
모든 시작은 미약하고 암흑으로 덮여 있었지. 어쩌면 지금도 그래.
그러나 그 어둠 속에서 나는 가장 밝은 빛을 발견했다.
네가 찾을 빛은 내가 찾은 것과 다를 수도 있다. 그래도 상관없어."
그의 이마에 새겨진 주름들이 장년의 지혜를 말해주고 있었다.
그것은 주름이 아니라, 수천 번의 고뇌와 깨달음의 기록이었다.
영광과 좌절, 인내와 희망의 지형도였다.
"결국 모든 존재는 자신의 내면에 빛과 어둠을 모두 품고 있다.
어느 한쪽만 존재할 수 없으며, 그 균형이 깨질 때 비로소 혼돈이 찾아온다.
구마란 어둠을 멸하는 것이 아니라, 어둠과 빛의 균형을 회복하는 것이다.
이것이 진정한 조화다."
커넬은 이내 창밖을 바라보았다.
황혼이 깊어져 이제 대성당 안은 촛불의 불빛만이 남아있었다.
창문 너머로 보이는 밤하늘에는 첫 별들이 하나둘 빛나기 시작했다.
북쪽 하늘의 전사자리와 서쪽의 수호자별이 특히 밝게 빛났다.
고대 사제들은 그 별자리들을 '멘탈로니아의 눈'이라 불렀다.
세상을 내려다보는 일곱 정신의 시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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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삶은 이 책에 담겨 있다. 그러나 이 책이 전부는 아니다.
진실은 글자 사이에 있지, 글자 속에 있지 않으니."
리나는 고개를 숙였다. 그녀의 눈가에 눈물이 맺혔다.
그것은 감사의 눈물이자, 책임에 대한 무게였다. 그녀는 책을 품에 안았다.
"제가 이 책을 읽고 나면... 주교님께서 겪으신 여정을...
조금이나마 이해할 수 있을까요?"
커넬은 잠시 침묵했다.
그의 눈빛에 깊은 사유의 그림자가 드리웠다가 사라졌다.
"읽는 것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그것은 시작에 불과하지.
진정한 이해는 경험에서 온다. 너도 나처럼 어둠의 심연을 직접 들여다봐야 할 것이다.
그러나 두려워 마라. 어둠을 마주하는 것이 어둠에 삼켜지는 것은 아니니까."
그는 한숨을 내쉬며 이어 말했다.
"이제 내 이야기를 들어보겠느냐?
내가 어떻게 이 길을 걷게 되었는지, 카르토 마을에서 무슨 일이 있었는지..."
리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눈에는 호기심을 뛰어넘은 사명감이 깃들어 있었다.
커넬은 다시 무릎을 꿇고 마지막 촛불을 켰다.
일곱 번째 촛불. 불이 타오르자 기억이 촛불처럼 살아 움직였다.
"나의 이야기는 기다림으로 시작된다.
아벨 교회의 어린 수련사제였던 나는 그때 스승의 부름을 기다리고 있었다..."
커넬의 목소리가 성당을 채웠다. 리나는 말의 물결에 몸을 맡겼다.
단어들이 모여 빛과 어둠을, 믿음과 의심을, 상실과 발견을 이룬 여정을 그려냈다.
말속에서 한 젊은 사제의 모습이 아른거렸다-
구마의 길에 첫발을 디딘 순간부터, 깨달음의 순간까지.
긴 이야기를 마치자 성당 창틀 너머로 여명이 스며들었다.
밤의 끝자락과 새벽의 시작이 맞닿은 경계.
촛불은 점차 힘을 잃어갔으나, 그들이 담아낸 기억의 무게는 그대로였다.
커넬의 입가에 평온함이 번졌다. 여명이 주름진 얼굴을 비추었다.
-
그의 뒤로,
그림자가 드리워진 제단에서 그가 평생 마주했던 존재들의
실루엣이 잠시 나타났다가 사라졌다.
에일린, 포보스, 이사벨라, 타르시우스, 자날, 세바스티안...
그들은 모두 그의 기억 속에 영원히 살아 있었다. 영혼의 일부가 되어.
어둠과 빛이 하나가 되는 순간이었다.
과거와 현재가, 시작과 끝이,
의문과 확신이 만나는 지점에서 이야기는 시작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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