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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의 마을 세오
[순례자] - 6장. 과거의 춤
642 2025.04.19. 23:44

순례자, 그림자의 언약. 07


6장. 과거의 춤

















균형의 저울은 기울어질 때마다 새로운 무게를 받아들인다. 쉬이 깨닫지 못하는 이치. 남의 슬픔을 껴안는 일은, 그 슬픔을 소멸시키는 것이 아니라 내 살에 새기는 것이다.


ㅡ구마사 커넬의 일지 중 훼손된 페이지



-



검은 드레스자락이 바닥을 쓸었다.
가면 뒤의 눈동자. 춤을 추자. 손이 내밀어졌다.

손톱이 달빛을 문 조각처럼 반사했다. 먼 곳에서 분노에 찬 신음이 들렸다.
어둠 속, 두 개의 불타는 눈. 손을 잡으려 했으나 손가락이 안개처럼 흩어졌다.

"왜 왔지요?" 목소리만 남았다.

"이해하고 싶어서."

검은 눈동자가 희미하게 웃었다. "당신은 아무것도 모르면서."

발걸음. 리듬. 어깨에 스치는 서리 같은 숨결. 무도회장이 끝없이 길어졌다.
펜던트가 목에서 뜨겁게 맥동했다.

"충분한 용기가 없군요."

춤이 빨라졌다. 귓가에는 음악이 들리지 않는데 발걸음만 규칙적으로 움직였다.
드레스자락이 안개처럼 퍼지더니 몸을 감쌌다. 검은 안개가 입술을 파고들었다.
안으로, 더 안으로, 심장을 향해.

"저와 영원히 춤추고 싶으신가요?"

말해선 안 됐다. "원합니다."

심장이 서리로 뒤덮였다. 웃음소리가 혈관을 타고 흘렀다.
고통이 꽃처럼 피어났다.

"이게 제 춤이에요."

펜던트가 부서지며 자줏빛이 사방으로 터져 나왔다.


-


커넬은 헐떡이며 눈을 떴다.
등줄기를 타고 식은땀이 흘렀다.

꿈인지 아닌지, 경계는 흐릿했다. 가슴을 더듬었다.
심장 위로 단단한 무언가가 박혀 있었다. 어제는 없었던 것.

손가락으로는 만져지지 않았으나 존재는 명확했다.
소금기둥처럼 얼어붙은 감정의 결정.

창문 너머는 아직 새벽이었다.
언덕 위로 베일라드 저택이 달빛을 삼키고 서 있었다.

어제의 기억들이 그물처럼 그를 옭아맸다.
살아 움직이는 초상화, 저절로 연주하는 피아노, 유령처럼 나타났다 사라지는 여인.
다이애나 베일라드.

"돌아와요."

그녀의 목소리가 귓가에 맴돌았다. 커넬은 책상 위 자수정 펜던트를 집어 들었다.
거래의 물건. 자줏빛이 손가락 사이로 새어 나왔다. 물을 옮기는 두레박처럼 빛을 담았다 쏟았다.

정신보다 몸이 먼저 움직였다. 그는 이미 옷을 입고 있었다.
언제 일어나 옷을 갈아입었는지, 기억은 없었다.

그저 몸이 명령받은 대로 움직이는 느낌. 저택이 그를 부르고 있었다.
다이애나가 기다리고 있었다.


-


밖은 차가웠다. 날숨이 입 앞에서 희미한 구름을 만들었다.
그것도 방금 전 자수정 펜던트에서 흘러나온 빛과 같은 색이었다.

자주색 숨결. 커넬은 오래된 도서관을 향해 걸었다.
알아야 할 것이 있었다. 공감의 춤에 대해.

먼지가 책등을 덮고 있었다. 베일라드 저택의 유령들처럼,
시간의 무게가 도서관 깊숙한 곳에 쌓여 있었다. 헤르만은 좁은 눈으로 커넬을 바라봤다.

"베일라드 저택의 유령이라." 그가 말했다.
"젊은이가 그런 곳에 발을 들인 이유가 있겠지."

앞일을 아는 듯한 물음이었다. 커넬은 자신이 걸어온 길을 찾으려 애썼으나,
기억은 부서진 거울처럼 조각조각 흩어져 있었다. 세바스티안의 임무. 구마 의식. 잃어버린 조각들.

"다이애나를 도와야 합니다."

다이애나. 그 이름을 소리 내어 말하자 가슴의 얼음이 미세하게 진동했다.
그는 그녀에 대해 아는 것이 거의 없었지만, 동시에 너무 많이 알고 있었다.

헤르만은 사다리를 타고 올라가 먼지 쌓인 책 한 권을 꺼냈다. 가죽 표지에는 제목이 없었다.
오직 문장만이 희미하게 새겨져 있었다. 균형의 저울.

"공감의 의식은 위험한 일이지." 그가 책을 펼치며 중얼거렸다.
"영혼의 가장 깊은 곳을 들여다본다는 건... 특히 망자의 영혼이라면 더욱."

책이 펼쳐졌다. 문자들이 빛나는 벌레처럼 꿈틀거렸다.
커넬은 이것이 멘트 문명의 고대 문자임을 알아봤다. 검은 잉크는 피처럼 보였다.

"공감의 춤." 헤르만이 낡은 페이지를 가리켰다.
"망자의 기억과 감정을 나누는 의식. 대가는 크다."

"어떻게 하는 겁니까?"

"다섯 단계가 있네. 초대, 연결, 진입, 공유, 변형." 헤르만의 손가락이 페이지를 넘겼다.
"마법이 아니라, 영혼의 교환이지. 네가 가져가는 것은 영원히 네 것이 된다."

"제가 해야 합니다."

"확신하나?" 헤르만의 눈에 걱정이 스쳤다. "한번 시작하면 돌이킬 수 없네."

커넬은 가슴을 더듬었다. 이미 얼음 결정은 심장을 감싸고 있었다.
이미 시작된 일이었다.

"확신합니다."

헤르만은 한숨을 내쉬었다. "그럼 이걸 가져가게."

그는 커넬에게 작은 병과 두 개의 자주색 초를 건넸다.
병 속에는 검은 액체가 담겨 있었다.

"춤을 추는 동안 마법진 안에서 이것을 쏟아라. 그리고 명심하게.
너무 많이 주면 안 돼. 균형이 깨지면 두 영혼 모두 위험해진다."

균형. 베일라드 가문의 문장. 저울. 모든 것이 연결되어 있었다.


-


정오의 햇살 아래 베일라드 저택은 생각보다 작고 초라했다.

마법도, 유령도 없는 듯했다. 그저 오래된 건물. 그러나 커넬은 알았다.
저택은 가면을 쓰고 있었다. 밤이 되면 진짜 모습을 드러낼 것이다.

문이 열렸다. 아무도 열지 않았는데. 그를 맞이하는 것처럼.
복도를 따라 걸으며 커넬은 벽에 걸린 초상화들을 살폈다.

낮에는 그림일 뿐이었다.
하지만 그들의 눈이 커넬을 따라 움직이는 것 같았다. 착각일까?

무도회장이 그를 기다리고 있었다. 성한 샹들리에들이 천장에서 웅장하게 내려와 있었다.
바닥에는 베일라드 가문의 문장이 새겨져 있었다. 날개 달린 독수리가 들고 있는 균형의 저울.

문득 저택 깊은 곳에서 남자의 웃음소리가 들려왔다. 차갑고 오만한 웃음.
벽에 걸린 군인 초상화의 눈동자가 순간 커넬을 향해 움직인 것 같았다.
초상화 아래에는 '조나단 백작'이라는 명패가 있었다.

"오실 줄 알았어요."

목소리가 등 뒤에서 들려왔다. 커넬은 돌아봤다.
다이애나였다. 어젯밤보다 더 선명한 형체로, 검은 드레스를 입고 그 앞에 서 있었다.

창백한 얼굴에는 가면이 없었다.
눈에는 말로 형용할 수 없는 슬픔이 담겨 있었다.

"도움이 필요하신 것 같았습니다."

다이애나의 입술이 미묘하게 움직였다.
웃음도, 울음도 아닌 표정이었다.

"구마사들은 모두 그렇지요. 쫓아내거나, 불태우거나."

갑자기 저택이 진동했다. 천장에서 먼지가 떨어졌다.

"조나단이 화가 났군요, " 다이애나가 속삭였다.
"외부인을 허락하지 않아요, 특히 구마사는."

"당신의 이야기를 듣고 싶습니다. 그리고... 함께 춤추고 싶습니다."

다이애나의 눈이 커졌다. "공감의 춤을 아시는군요."

"알게 되었습니다."

그녀는 한동안 말없이 그를 바라봤다. 서늘한 바람이 무도회장을 가로질렀다.
어디서 불어온 바람인지 알 수 없었다.

"따라오세요."

그녀는 돌아서서 걸었다. 커넬은 그녀를 따라 무도회장을 지나 저택 깊은 곳으로 향했다.


-


복도가 길어졌다. 그리고 또 길어졌다.

커넬은 자신들이 저택의 실제 크기보다 더 멀리 걸어가고 있다는 것을 알았다.
현실이 아니었다. 기억과 현실 사이의 공간이었다.

"이곳은 제 기억의 조각들이에요. 저택에 스며든 제 삶의 편린들."

복도 끝에 문이 나타났다. 다이애나가 손을 대자 문이 열렸다.
안은 정원이었다. 실내임에도 하늘이 보였다. 영원한 오후의 햇살이 비추는 정원. 시간이 멈춘 것 같았다.

"이곳에서 조나단 백작을 처음 만났지요."

다이애나가 분수대 가장자리에 앉았다.
그녀의 손길이 물에 닿자, 물이 잠시 색을 띠었다. 기억의 색. 행복했던 시절의 잔상.

"베일라드 가문은 오랫동안 이 지역의 수호자였어요.
균형의 지킴이. 멘트 문명에서 비롯된 의무였죠."

시간이 부서졌다가 다시 모였다. 다른 사람이 정원에 나타났다.
젊은 다이애나와 한 남자. 조나단 백작이었다. 그들의 대화가 메아리처럼 들려왔다.

"당신은 놀라운 여성입니다, 다이애나 양."

"과찬이세요, 백작님."

"아닙니다. 당신의 아버님께서 멘트 문명의 유물들을 연구하신다고 들었는데,
당신도 그 연구에 참여하고 있나요?"

현재의 다이애나가 말했다. "그는 처**터 베일라드 가문의 비밀을 원했어요.
우리가 가진 지식, 유물들. 하지만 나는 알지 못했죠."

그녀의 눈에 잠시 그림자가 스쳤다.

"사랑은 눈을 멀게 만들어요."

과거의 모습들이 희미하게 사라졌다. 다이애나는 다시 걸었다.
이번에는 음악실로 향했다. 피아노가 창가에 놓여있었다. 악보대에는 미완성 악보가 펼쳐져 있었다.

"그에게 바치려던 곡이에요. 완성하지 못했죠."

다이애나의 손가락이 건반 위를 스쳤다. 소리는 나지 않았으나, 공기 중에 선율이 떠올랐다.
기억 속의 음악. 처음에는 희망과 사랑의 멜로디였다가, 후반부로 갈수록 불협화음이 섞여 들었다.

피아노 위에는 작은 보석함이 놓여 있었다. 다이애나가 그것을 열자,
루비로 만든 열쇠가 빛났다.

"베일라드 가문의 수호물이었어요. 멘트 문명의 비밀 도서관으로 통하는 열쇠."

커넬의 시선이 열쇠에 고정됐다. 고대의 힘이 느껴졌다.

"아버지는 죽기 전, 열쇠를 제게 맡기셨어요. 그리고 조나단과의 약혼식이 코앞이었죠."

시간이 다시 부서졌다.
이제 그들은 무도회장에 있었다. 과거의 모습이 환영처럼 펼쳐졌다.

젊은 다이애나가 아름다운 드레스를 입고 계단을 내려오는 모습.
귀족들로 가득 찬 무도회장. 조나단을 찾는 다이애나의 눈빛.

그리고 발견했다. 조나단은 붉은 드레스를 입은 여인과 함께 있었다.
그들의 거리가 너무 가까웠다. 입맞춤. 웃음소리.

현재의 다이애나의 목소리가 떨렸다. "그는 약혼식장에서 나를 배신했어요. 모든 귀족들 앞에서...
다른 영주의 딸과 맺은 새로운 약혼을 발표했어요."

과거의 장면이 이어졌다. 조나단이 다이애나를 향해 걸어왔다.

"이해해 주길 바라오, 다이애나. 정치적 결합이 필요한 시점이오.
바렌 후작가 딸과의 결혼은 내게 더 큰 영향력을 가져다줄 것이오.
물론 베일라드 가문과의 학문적 교류는 계속되길 바라오. 특히 멘트 문명의 비밀에 관해서."

다이애나의 얼굴이 창백해졌다.
귀족들의 시선, 수군거림, 숨기지 않는 조롱.

"나는 달아났어요. 그리고..."

다이애나의 목소리가 끊겼다.
무도회장의 환영이 사라졌다. 이제 그들은 지하실로 향하고 있었다.

차가운 돌계단을 내려가자 벽에 새겨진 고대 문양들이 푸른빛을 내뿜었다.
바닥 중앙에는 의식을 위한 원이 그려져 있었다.

"여기서 마법을 행했어요. 배신에 미쳐버린 채로."

벽의 문양들이 심장 박동처럼 빛났다.
멘트 문명의 금지된 마법. 기억의 감옥.

"무슨 일이 일어났습니까?" 커넬이 물었다.

다이애나의 눈에서 투명한 물방울이 흘러내렸다.
"그를 저주하려 했어요. 내 고통을 영원히 느끼게 하려고. 하지만..."

그녀의 목소리가 흔들렸다.

"마법은 내 의도대로 움직이지 않았어요.
내가 만든 것은 복수가 아니라 감옥이었죠. 나 자신과 이 저택을 가두는 감옥."

커넬은 문양들을 살폈다. 정교한 마법이었다.
감정과 기억을 물질로 변환하는 고대의 기술.

"그날 밤 내 심장은 멈췄어요." 다이애나가 속삭였다.
"슬픔과 배신감이... 나를 죽였죠. 하지만 내 영혼은 이 저택에 묶였어요.
그리고 이곳에 발을 들인 모든 사람도."

"어떻게 도울 수 있을까요?"

다이애나는 그를 응시했다.
그녀의 눈에는 깊은 슬픔 아래 희미한 희망이 깃들어 있었다.

"정말로 저와 춤을 추시겠어요? 대가는 알고 계실 테죠.
제 슬픔 일부는 영원히 당신의 것이 될 거예요."

커넬은 목에 걸린 자수정 펜던트가 따뜻하게 맥동하는 것을 느꼈다.
세바스티안의 말이 생각났다. "저울은 균형을 재는 도구다."
이 펜던트가 다이애나의 슬픔과 그의 공감 사이의 균형을 맞춰줄 것이다.

"그럼... 오늘 밤 무도회장에서 만나요."


-


해가 지고 달이 떠올랐다.
베일라드 저택은 변하기 시작했다.

벽이 숨을 쉬고, 그림들이 살아났다. 무도회의 유령들이 복도를 채웠다.
보이지 않는 현악기들이 연주를 시작했다.

커넬은 무도회장으로 향했다. 그곳은 이미 유령들로 가득했다.
춤추는 죽은 자들. 그들은 커넬을 알아채지 못했다. 과거의 반복 속에 갇힌 영혼들.

그는 바닥 중앙에 공감의 의식을 위한 마법진을 그렸다.
헤르만이 알려준 대로. 균형의 저울 모양. 양쪽에 자주색 초를 놓고, 중앙에 펜던트를 배치했다.

"준비되셨나요?"

다이애나가 무도회장의 대리석 계단을 내려왔다.
검은 드레스, 창백한 얼굴, 가면은 없었다.

"네."

그녀는 마법진 반대편에 섰다. 그들 사이로 유령들이 춤을 추며 지나갔다.

음악이 더 선명해졌다. 갑자기 차가운 바람이 무도회장을 가로질렀다.
촛불들이 일제히 흔들렸다. 복도에서 무거운 발걸음 소리가 들려왔다.

"조나단이 오고 있어요, " 다이애나가 긴장된 목소리로 말했다.
"그는 우리를 방해할 거예요. 서둘러야 해요."

커넬은 흔들리지 않았다. "시작하겠습니다."


-


첫 번째 단계, '초대'가 시작됐다.

커넬이 손을 내밀었고, 다이애나는 받아들였다.
그녀의 손은 차가웠지만 만질 수 있었다. 그들의 손이 닿자 펜던트가 밝게 빛났다.

"저를 당신의 기억 속으로 초대해 주십시오."

"들어오세요."

다이애나의 눈에서 빛나는 눈물이 흘렀다.

두 번째 단계, '연결'이 시작됐다. 그들은 춤을 추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어색하게, 점차 리듬을 찾아갔다. 유령들 사이를 지나며, 그들은 서로에게 집중했다.
펜던트의 빛이 두 사람 사이에 자주색 실을 만들어냈다. 그 빛이 그들의 가슴을 관통했다.

세 번째 단계, '진입'이 시작됐다. 커넬은 헤르만이 준 검은 액체를 마법진 위에 부었다.
액체가 바닥에 닿자마자 증발하여 짙은 자주색 안개가 피어올랐다.

그 순간 무도회장의 문이 격렬하게 열렸다. 조나단 백작의 형체가 거기 서 있었다.
살아있는 사람도, 완전한 유령도 아닌 존재. 그의 군복은 여전히 위엄이 있었지만,
그 아래로 부패의 징후가 비쳐 보였다. 그의 얼굴은 분노로 일그러져 있었다.

"멈춰!" 그가 포효했다. "그녀는 내 것이다! 영원히!"

다이애나의 손이 커넬의 손을 더 단단히 붙잡았다. "들어가세요, 지금."

"들어가겠습니다."

조나단이 그들을 향해 달려들었지만, 마법진의 자주색 빛이 방어벽처럼 그를 막아섰다.
그가 분노의 비명을 지르는 동안, 커넬의 의식이 현실에서 벗어나기 시작했다.


-


아버지의 서재. 죽어가는 베일라드 백작이 침대에 누워 있었다.
다이애나가 그의 손을 잡고 있었다.

"비밀은 대대로 전해져야 한다, 내 딸아." 베일라드 백작의 목소리는 바스러지는 낙엽 같았다.

"아버지..."

"열쇠를 받아라. 그리고 조심하거라. 조나단은..."

말이 끊겼다. 바람이 서재의 창문을 때렸다. 커넬은 이상한 감각을 느꼈다.
마치 누군가가 이 기억을 지켜보고 있는 듯한. 그는 방구석에 어른거리는 그림자를 보았다.

조나단의 형체가 희미하게 비쳤다가 사라졌다.
현재의 조나단이 이 기억 속까지 그들을 따라온 것일까?

"조나단은 뭐라고요, 아버지?"

"균형. 우리 가문은 균형을 지켜야 한다..."

베일라드 백작의 눈이 감겼다.
다이애나의 눈에서 뜨거운 눈물이 흘렀다.


-


장면이 흩어졌다가 다시 맺혔다.
다이애나의 방. 그녀는 검은 옷을 입고 있었다. 조나단이 문을 두드렸다.

"들어가도 되겠소?"

그가 들어왔다. 눈에는 걱정이 담겨 있었지만,
그 아래 다른 무언가가 숨어 있었다. 탐욕.

"아버지의 유지를 존중하오. 당신이 새로운 베일라드 가의 당주가 되었소.
우리의 결혼은 이 지역에 큰 힘이 될 거요."

다이애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아버지가 남기신 열쇠가 있어요.
멘트 문명의 비밀 도서관으로 가는 열쇠."

조나단의 눈이 빛났다. 그 순간, 그의 가면이 잠시 벗겨진 것 같았다.

장면이 다시 변했다. 무도회장. 약혼식 날이었다.
다이애나는 아름다운 흰 드레스를 입고 있었다. 조나단은 보이지 않았다.

"백작님을 보셨나요?" 그녀가 하인에게 물었다.

하인은 고개를 숙였다. "서쪽 테라스에 계십니다."

갑자기 커넬의 시야가 흔들렸다. 그는 순간적으로 현실의 무도회장을 보았다.
조나단이 마법진 밖에서 분노에 차 으르렁거리며 서 있었다.

그의 형체가 점점 더 불안정해지고 있었다.
환영과 현실 사이에서 커넬은 다시 기억 속으로 돌아왔다.

다이애나는 테라스로 향했다. 그곳에서 조나단은 붉은 드레스를 입은 젊은 여인과 함께 있었다.
바렌 후작의 딸이었다. 그들은 서로 가까이 붙어 있었다. 너무 가까이. 입맞춤.

다이애나의 심장이 얼어붙었다.

탁자 위에 놓인 와인잔이 그녀의 떨림에 의해 넘어졌다.
소리에 놀란 조나단과 여인이 돌아봤다.

"다이애나!" 조나단의 목소리에 동요는 없었다. 오히려 담담했다.

"무슨 의미예요?"

그가 다가왔다. "이해해 주길 바라오. 정치적 동맹이 필요한 시점이오.
바렌 후작가 딸과의 결혼은 더 큰 힘을 가져다줄 거요."

"우리는 약혼했어요!"

"물론 베일라드 가문과의 관계는 유지하고 싶소.
특히 당신 아버지의 연구, 멘트 문명의 비밀에 관해서."

바렌 백작의 딸이 승리의 미소를 지었다. 그 순간 다이애나는 모든 것을 이해했다.
조나단은 처**터 베일라드 가문의 비밀만을 원했다. 그녀에 대한 사랑은 없었다.

그녀는 달아났다. 무도회장으로 돌아와 계단을 뛰어올랐다.

귀족들의 시선이 그녀를 향했다. 놀라움, 동정, 조롱이 뒤섞인 눈빛들.
귓가에 속삭임이 파도처럼 밀려왔다.

"버림받았대..."

"불쌍한 아이..."

"어리석은 여자야..."

"베일라드 가의 몰락이 시작되는군..."

다이애나는 귀를 틀어막았다. 눈물이 뺨을 타고 흘렀다.
그녀는 저택 깊숙한 곳으로 도망쳤다. 아버지의 비밀 서재,
그리고 아래로, 더 아래로. 지하실을 향해.

시간이 조각나 흩어졌다가 다시 모였다.

이제 그녀는 지하실에 있었다. 벽에 걸린 촛대들이 푸른 불꽃을 뿜었다.
다이애나의 손에는 아버지의 비밀 서고에서 가져온 고대의 서적이 들려 있었다.

"그가 내 심장을 갈가리 찢었다..." 그녀의 목소리는 자신의 것이 아닌 듯했다.
"모두가 나를 비웃었어... 내가 만들어 줄 테다... 영원한 고통을."

그녀는 바닥에 마법진을 그렸다. 손가락이 베여 피가 흘렀으나 느끼지 못했다.
아버지가 경고했던 금지된 의식. 기억의 감옥을 만드는 마법. 다이애나는 자신의 피와 눈물을 재료로 사용했다.

마법진의 중앙에 루비 열쇠를 놓았다. 고대의 단어들이 그녀의 입에서 흘러나왔다.
그 발음은 인간의 혀가 만들어낼 수 없는 소리였다.

"내 슬픔으로 이 저택을 채우리라... 조나단과 그 여자,
그리고 모두가 내 고통을 영원히 느끼게..."

의식이 시작됐다. 마법진이 푸른빛으로 빛났다. 바닥 전체가 살아 움직이는 듯했다.
다이애나의 슬픔과 분노, 배신감이 실체화되어 저택의 벽과 바닥으로 스며들었다.

갑자기 마법진의 불빛이 변했다. 푸른색에서 검은색으로. 다이애나의 눈이 공포로 커졌다.

"아니..."

마법이 그녀의 의도와 달리 움직이기 시작했다.
복수의 마법이 아니라 감금의 마법으로 변했다. 다이애나의 영혼이 저택에 묶이기 시작했다.

"안돼!"

그녀의 비명이 지하실에 울렸다. 하지만 이미 늦었다.
그녀의 영혼이 벽과 바닥, 천장에 스며들었다. 의식이 완성되는 순간,
다이애나의 심장은 멈췄다. 죽음의 원인은 마법이 아닌, 견딜 수 없는 슬픔과 배신감이었다.

그러나 그녀의 영혼은 저택에 남았다.
자신이 만든 영원한 기억의 감옥 속에.

커넬의 의식이 떨렸다. 다이애나의 절망이 그를 압도했다.
슬픔이 아니었다. 존재 자체를 뒤흔드는 배신과 고통이었다. 숨이 멎을 것 같았다.

현실로 돌아오자, 그들은 여전히 무도회장에서 춤을 추고 있었다.

네 번째 단계인 '공유'가 시작됐다.
자주색 빛이 두 사람 사이에서 소용돌이쳤다. 펜던트가 점점 더 강렬하게 빛났다.

현실의 무도회장에서, 조나단은 여전히 마법진 경계에 갇혀 울부짖고 있었다.
그의 형체가 점점 불안정해지기 시작했다. 과거와 현재가 뒤섞이는 듯했다.

"이제 마지막입니다."

"마법이 왜 변했습니까?" 커넬이 물었다.

다이애나의 목소리가 흔들렸다. "마법에는 대가가 있어요. 특히 감정을 재료로 사용하는 마법은...
내 슬픔과 분노가 너무 컸어요. 감당할 수 없었죠."

"조나단은 어떻게 됐습니까?"

다이애나의 눈에 차가운 빛이 스쳤다. "그도 이 저택에 갇혔어요. 제 마법이 의도치 않게 변했을 때,
약혼식에 참석했던 모든 사람들이 영향을 받았죠. 조나단은 가장 강력한 영향을 받았어요.
그의 영혼은 분노와 공포로 뒤틀렸고, 이제 이 저택의 수호자가 되었죠...
그는 저를 이곳에 가두려 하고, 침입자들을 쫓아내죠."

커넬이 주변을 살폈다. 벽의 그림자가 움직이는 것 같았다.

"그가 저주받은 것이 기뻤나요?"

다이애나는 고개를 천천히 저었다. "처음에는 그랬어요. 하지만 세월이 흐르면서...
복수는 공허하다는 걸 알게 됐죠. 우리 모두 같은 감옥에 갇힌 죄수일 뿐이었으니까요."

"당신 부모님의 비밀은요?"

"영원히 묻혔을 거예요. 열쇠는 마법진 중앙에 있었으니까. 그 마법으로 봉인되었을 테고."
다이애나의 눈에 후회가 스쳤다. "아버지가 맡긴 의무를 저버렸어요."

"마지막 단계를 시작하겠습니다."

커넬은 의식적으로 다이애나의 슬픔 일부를 자신에게로 끌어당겼다.
얼음처럼 차가운 감정이 가슴속으로 들어왔다. 숨이 멎을 듯한 고통이 전신을 관통했다.

"다이애나..."

무릎이 꺾였다. 그러나 춤은 계속되었다. 다이애나가 그를 지탱했다.
두 사람은 하나가 되어 움직였다. 자주색 빛이 점점 더 강해졌다.

공기가 진동했다. 유령들이 흔들리기 시작했다.
벽과 바닥의 문양이 빛났다가 희미해졌다. 마법이 풀리고 있었다.

커넬의 심장에 얼음 결정이 단단해졌다. 다이애나의 슬픔 일부가 그의 것이 되었다.
영원히 함께할 상처. 완전한 소멸이 아닌 변형이었다. 슬픔이 이해로, 고통이 공감으로 변하는 과정.

다이애나의 얼굴이 변했다. 수십 년간 그녀를 짓눌렀던 어둠이 걷히기 시작했다.
슬픔이 완전히 사라진 것은 아니었다. 그저 그것을 감당할 수 있게 된 것뿐.

"베일라드 가문의 마지막 의무를 알려드릴게요, " 다이애나의 목소리가 또렷해졌다.
"지하실 서쪽 벽에, 모든 것이 기록되어 있어요. 멘트 문명의 비밀,
균형의 수호자의 의무. 누군가는 그것을 이어가야 해요."

커넬은 고개를 끄덕였다. "살펴보겠습니다."

"그리고... 당신이 가져간 제 슬픔을 주의하세요. 생각보다 무거울 거예요.
가구들이 움직이고, 악기가 연주되던 이 저택처럼, 당신 안에서도 그 슬픔이 때로 스스로 움직일 테니까요."

다이애나의 형체가 점점 투명해졌다. 저택에서 벗어날 자유를 얻은 것이다.
그러나 완전한 해방은 아니었다. 그녀의 슬픔 일부는 커넬에게, 일부는 여전히 저택에 남아있었다.

"조나단은 중요하지 않아요, " 그녀의 목소리가 희미해졌다. "진정으로 중요한 건..."

자주색 빛이 무도회장 전체를 덮었다가 서서히 물러갔다.

"자유와 균형."

그녀의 마지막 말이었다. 다이애나의 형체가 빛의 입자로 흩어졌다.

그 순간, 무도회장 문 앞에 서 있던 조나단의 모습이 변하기 시작했다.
그의 분노와 증오가 서서히 녹아내렸다. 그는 마지막으로 다이애나를 바라보았다.

그의 눈에 백 년의 후회와 슬픔이 담겨 있었다.

"용서..." 그의 입에서 마지막 말이 새어 나왔다.

다이애나의 빛 입자 중 하나가 그를 향해 날아가 그의 볼에 닿았다. 눈물 같았다.
조나단의 형체가 천천히 분해되기 시작했다. 꽉 쥔 주먹이 펴지고, 굳어있던 얼굴이 평화를 찾았다.
그는 연기처럼 사라졌다.

그녀와 함께, 저택에 갇혀 있던 다른 영혼들도 해방되었다.
유령 무도회가 끝났다. 기억의 감옥이 열렸다.

커넬은 바닥에 무릎을 꿇었다. 가슴이 얼어붙은 듯했다. 다이애나의 슬픔이 이제 그의 일부가 되었다.
서리가 자리 잡은 심장. 그러나 그는 후회하지 않았다.

그는 펜던트를 집어 들었다. 자주색 빛은 이제 희미하게 맥동했다.
저택 창문으로 새벽빛이 스며들었다. 밤이 끝나고 있었다.

커넬은 다이애나의 말대로 지하실로 향했다. 서쪽 벽에는 비밀 문이 있었다.
이제 그에게 보였다. 다이애나의 슬픔을 공유했기에. 문 안에는 작은 방이 있었고,
그곳에 베일라드 가문의 비밀이 보관되어 있었다. 멘트 문명의 유산. 균형의 수호자의 의무.

그는 책들을 살폈다. 베일라드 가문은 세대를 거쳐 멘트 문명의 위험한 지식들을 관리해 왔다.
다이애나의 아버지는 그 중요성을 알았다. 그리고 이제 그 책임이 커넬에게 왔다.

"균형을 지키리라, " 그는 속삭였다. 다이애나에게 한 약속이자 자신에게 한 맹세였다.

저택을 나서며, 커넬은 자신이 변했음을 느꼈다. 어깨는 무거웠으나 걸음은 흔들리지 않았다.
그는 타인의 슬픔을 자신의 것으로 받아들일 수 있는 사람이 되었다. 공감의 구마사.


-


"주교님은 그 슬픔을 지금도 간직하고 계신 건가요?"

리나의 질문에 노년의 커넬은 침묵했다. 그의 눈에 오래된 기억의 그림자가 스쳤다.
방 안의 자주색 촛불이 흔들렸다. 네 번째 촛불. 공감의 불꽃.

"내 안에 있다, " 그가 마침내 입을 열었다. "가슴 깊은 곳에 얼음 결정처럼."

커넬은 오른손을 심장에 올렸다. 수십 년이 지났지만,
그곳에는 여전히 차가움이 남아있었다. 다이애나의 슬픔. 그의 일부가 된 타인의 고통.

"단순한 아픔이 아니란다. 이해의 증표지. 내가 다른 이의 슬픔을 진정으로 공유했다는 증거야."

그는 천천히 일어나 자주색 촛불 앞으로 걸어갔다. 촛불이 그의 얼굴을 비췄다.
세월의 주름 사이로 흐르는 미세한 슬픔의 강.

"매 순간 그 무게를 느끼지는 않아. 하지만 때때로,
특히 이렇게 기억을 더듬을 때면... 그녀의 춤이 다시 시작돼."

커넬은 촛불을 향해 숨을 깊게 들이마셨다. 불꽃이 흔들리더니 거의 꺼질 듯했으나,
완전히 소멸되지는 않았다. 자주색 불꽃은 작아졌지만 여전히 타오르고 있었다. 마치 그의 가슴속 얼음 결정처럼.

"완전한 소멸이 아닌 변형이다. 공감의 본질은 그것이지."

리나의 눈에 이해가 깃들었다. 그녀는 커넬의 말에 담긴 깊은 의미를 느꼈다.

"진정한 구마는 악을 몰아내는 것이 아니란다. 이해하고, 공유하고, 때로는 짊어지는 것이지.
어둠을 없애는 것이 아니라, 그것과 함께 걷는 법을 배우는 것이다."

창밖으로 달빛이 스며들었다. 젊은 커넬의 눈동자.
언젠가 베일라드 저택이 서 있던 언덕 위로, 이제는 폐허만이 남아있었다.

"베일라드 저택 이후로 나는 달라졌다. 다른 구마사가 되었지.
그리고 그것이 다음 여정으로 나를 이끌었단다."

커넬은 창가로 걸어갔다. 기억의 눈에서 먼바다가 달빛에 반짝였다.

"다음은 항구였어. 그곳에서 나는 길 잃은 배를 만났지.
그리고 서쪽으로의 항해가 시작되었다..."

노인의 목소리가 방 안에 흘렀다. 다음 이야기는 아직 오지 않았다.
다음 촛불, 다섯 번째 촛불이 타오를 시간을 기다려야 했다. 길 잃은 불꽃.


-


커넬은 마을로 돌아왔다. 새벽의 빛이 지붕들을 어루만졌다.
그의 걸음은 무거웠다. 가슴속의 얼음 결정이 호흡을 차갑게 만들었다.

그는 자신의 숙소를 향해 걸었다. 작은 마을 광장을 지나는데, 일찍 깨어난 아이들이 있었다.
세 명의 아이들이 둥글게 모여 춤을 추고 있었다. 그들의 웃음소리가 새벽공기를 가르며 울렸다.

커넬은 걸음을 멈췄다. 그들의 춤은 다이애나와의 춤과 완전히 달랐다.
슬픔 없는 춤. 기쁨만으로 이루어진 원무.

한 소녀가 커넬을 발견하고 다가왔다.
그녀의 눈에는 순수한 호기심이 담겨 있었다.

"아저씨, 왜 슬퍼 보여요?"

커넬은 잠시 말을 잊었다. 아이들의 눈은 때로 어른들이 ** 못하는 것을 본다.

"슬퍼 보이니?"

소녀가 고개를 끄덕였다. "눈 속에 얼음이 있어요.
누구 눈에서도 본 적 없는 얼음."

소녀의 순수한 관찰력이 커넬을 놀라게 했다.

"친구의 슬픔을 일부 가져왔단다."

"슬픔도 나눌 수 있어요?" 소녀가 머리를 갸웃거렸다.

"그럼. 슬픔도, 기쁨도, 모든 것은 나눌 수 있지."

소녀가 커넬의 손을 잡아끌었다.
"그럼 우리와 춤춰요. 우리 기쁨도 나눠줄게요."

커넬은 망설였다. 그러나 소녀의 순수한 제안을 거절할 수 없었다.
그는 아이들의 원 속으로 들어갔다. 그들과 함께 단순한 리듬으로 춤을 추기 시작했다.

그는 춤을 추며 깨달았다. 슬픔과 기쁨은 별개의 것이 아니었다.
사실은 같은 동전의 양면. 다이애나의 슬픔이 있었기에, 이 아이들의 기쁨을 더 깊이 느낄 수 있었다.

이것이 균형의 의미였다.

춤이 끝나고, 커넬은 소녀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고마워, 기쁨을 나눠줘서."

소녀는 환하게 웃었다. "언제든 더 필요하면 와요.
우리는 매일 아침 여기서 춤춰요."

커넬은 숙소로 돌아와 잠시 쉬었다. 지난밤의 일을 기록하고, 세바스티안에게 보낼 편지를 썼다.
베일라드 저택에서의 경험, 새로운 깨달음, 그리고 그가 발견한 멘트 문명의 비밀에 대해.

펜을 내려놓으며, 그는 가슴의 얼음 결정을 느꼈다. 이제 그의 일부였다.
억누르려 하지 않았다. 다이애나의 슬픔은 그를 더 깊은 구마사로 만들었다.
타인의 고통을 진정으로 이해할 수 있는 능력을 준 선물이었다.

그날 오후, 커넬은 언덕 위로 올라가 먼바다를 바라봤다.

그의 여정이 저택에서 끝나지 않음을 알았다. 다이애나의 슬픔은 때때로 그를 짓눌렀지만,
동시에 그에게 새로운 시각을 주었다. 어둠과 빛, 슬픔과 기쁨, 모든 것의 균형을 보는 눈.

멀리 바다 위로 이상한 배 한 척이 보였다.
그 배는 방향을 잃은 듯 원을 그리며 움직이고 있었다. 배의 돛대에는 검은 깃발이 나부꼈다.

새로운 임무가 그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리고 이제 커넬은 준비되어 있었다.
균형의 수호자로서, 구마사로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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