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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의 마을 세오
[순례자] - 7장. 길 잃은 배
654 2025.04.25. 00:46

순례자, 그림자의 언약. 08


7장. 길 잃은 배




















푸른빛 촛불이 어둠 속에서 흔들렸다.

한 곳에 머물지 못하고 이리저리 흩어지다가,
때로는 한 방향을 향해 달려가려는 듯 길게 늘어졌다가,
불현듯 제자리로 돌아와 스스로를 삼키려는 듯 꼬였다.

방향을 잃은 영혼.
자기 자신을 찾아 헤매는 불꽃.

커넬 주교는 그 푸른 혼(魂)의 춤을 응시했다.

창 너머로 폭풍이 몰아쳤다.
수백 년의 세월을 견뎌온 성당의 돌벽 틈으로 폭풍의 비명이 스며들었다.
잊힌 바다의 목소리.

"길 잃은 불꽃," 커넬 주교가 말했다. 주름진 손이 촛불 주위를 맴돌았지만, 결코 닿지는 않았다.
"모든 방향이 존재하지만 어느 곳도 향하지 못하는 영혼의 이야기지."

리나는 성당의 색색의 스테인드글라스를 때리는 빗줄기를 바라보다 스승을 향해 몸을 돌렸다.
푸른 불꽃이 노인의 얼굴에 드리웠다. 그 빛 아래서 주교의 주름은 옅어지고, 푸른 눈은 젊음을 되찾은 듯했다.

"주교님, 베일라드 저택에서... 공감의 상처를 안고 떠나셨다고 하셨죠?"

커넬은 왼쪽 가슴에 손을 얹었다.
손가락이 미세하게 떨렸다.

"그래... 지금도 이따금 슬픔이 얼음처럼 가슴을 파고들 때가 있어.
다이애나의 슬픔이... 그녀는 이제 해방됐지만, 그 슬픔의 한 조각은 내 안에 살아 있단다."

커넬의 푸른 눈동자가 촛불 속에 잠겼다.
그 눈에는 끝없는 바다가 일렁이는 듯했다.

"그 이후 내가 찾아간 곳은 시간이 잠든 바다였어. 뤼케시온의 서쪽 해안.
그곳에서 나는... 시간 속에 길 잃은 영혼들을 만났지."



-



공감의 상처를 안고 베일라드 저택에서 돌아온 날,
커넬은 스승 세바스티안에게 그간의 일을 보고했다.

무슬처럼 쌓인 눈 속에 파묻힌 저택, 다이애나의 슬픔에 갇힌 영혼들,
그녀와 함께 추었던 마지막 춤... 그리고 자신의 가슴에 남겨진 얼음 같은 상처까지.

세바스티안은 평소와 달리 오랫동안 침묵했다. 단정한 얼굴에 주름이 더 깊어진 듯했다.
마침내 입을 열었을 때, 목소리에는 무거운 확신이 담겨 있었다.

"너는 이제 진정한 구마사로구나."

그는 잠깐 웃었다. 웃음 뒤에 감춰진 슬픔.

"다이애나의 슬픔을 나눠 가진 것은...
단순한 희생이 아니야. 그건 해방의 본질을 이해한 거지."

그날 밤, 아벨 교단의 대사제관에서 정식 임명 의식이 치러졌다.

커넬은 이제 아벨 교단의 정식 구마사였다. 견습 벨트를 풀고 정식 구마사의 등색 띠를 두르는 순간,
다이애나의 슬픔이 그의 가슴속에서 일렁였다. 얼음처럼 차가우면서도, 이상하게 따뜻한 울림.

의식이 끝난 후,
세바스티안은 커넬에게 새로운 임무를 내렸다.

"뤼케시온 항구 근처에서 이상한 일이 벌어지고 있네."

오래된 양피지 지도를 펼쳤다.
세바스티안의 손가락이 마이소시아 대륙의 서쪽 해안을 따라 움직였다.

"때로 나타났다 사라지는 배, 아르고스호. 시간이 멈춘 유령선이라는 소문이야.
이미 세 명의 선원이 희미한 경계 너머로 사라졌어. 시간의 흐름을 거스르는 힘이 작용하고 있는 것 같아."

커넬의 가슴속 얼음 결정이 따끔거렸다.
다이애나가 겪었던 것과 비슷한 '시간의 왜곡'이 또다시?

"멘트 문명의 또 다른 금기일지도 몰라," 세바스티안이 중얼거렸다.
그의 눈에 어두운 그림자가 깃들었다.

짐을 꾸리던 커넬에게 세바스티안이 작은 주머니를 건넸다.
안에는 얇은 은반지가 들어 있었다.

"이건...?"

"시간의 인식을 도와주는 물건이다. 네가 앞으로 무엇을 마주하게 될지는 알 수 없지만,
안갯속에서 방향을 잃지 않게 해줄 거야."

커넬은 반지를 살폈다.
반지 안쪽에는 나침반처럼 미세하게 움직이는 푸른 선이 새겨져 있었다.

"시간의 방향을... 느끼게 해준다고?"

세바스티안은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표정에 걱정이 스쳐 지나갔다.

"조심해라, 커넬. 시간은 가장 위험한 강이다.
그 속에 빠지면... 다시는 돌아오지 못할 수도 있어."



-



신록이 우거진 산비탈을 내려와 커넬이 뤼케시온 항구에 도착했을 때,
소금기를 품은 바람이 그를 맞이했다. 그리고 바람 속에 숨겨진, 말로 표현할 수 없는 불안.

뤼케시온은 옛 멘트 문명의 흔적 위에 세워진 계단식 항구 도시였다.

바다에서 가장 가까운 아래쪽으로는 선원들의 숙소와 창고들이,
그 위로는 상인들과 주민들의 거처가, 그리고 언덕 꼭대기에는 귀족들과 행정관들의 흰 저택이 자리했다.
오랜 세월 수많은 폭풍을 견뎌온 석조 방파제가 항구를 감싸고 있었다.

커넬은 곧 이 도시에 스며든 불안을 감지했다.
어부들은 평소보다 일찍 항구로 돌아오고 있었고, 상인들은 낮부터 가게 문을 닫기 시작했다.

갈매기조차 해안가를 맴돌지 않고 내륙 쪽으로 날아가고 있었다.
서쪽 수평선을 바라보는 선원들의 눈빛에는 두려움이 서려 있었다.

서쪽 바다의 장막. 버림받은 시간의 바다.

왼쪽 가슴이 갑자기 찌르르해졌다. 커넬은 무의식적으로 가슴을 문질렀다.
다이애나의 슬픔이 그곳에 얼음 결정처럼 맺혀 있었다.

가끔 그 상처는 따끔거렸고,
특히 무언가 불길한 예감이 들 때면 더욱 그러했다. 지금처럼.

바다를 향해 난 방파제 끝에 선 커넬은 변화하는 바다를 바라보았다.
오후의 햇살이 수면에 부서지며 수천 개의 파편으로 흩어졌다.

빛의 파편들은 살아있는 생명체처럼 꿈틀거리며 서쪽을 향해 흘러가고 있었다.
쇠처럼 회색빛 바다가 방파제 벽을 때리며 부서졌다. 바닷물이 그의 얼굴에 흩뿌려졌지만, 닦지 않았다.
바다의 입김이 그를 시험하는 듯했다.

"내륙에서 오셨군요."

낯선 목소리에 커넬은 고개를 돌렸다. 그의 앞에 선 사내는 서른번의 별을 넘긴 듯했다.
짙은 갈색 머리카락과 햇볕에 그을린 얼굴, 거친 손. 단단한 외양과 달리, 눈빛은 흔들리고 있었다.
그 눈에 담긴 불안이 어쩐지 익숙했다. 커넬이 에일린의 눈에서 봤던 것과 비슷한.

"맞아," 커넬이 대답했다.

사내는 잠시 커넬의 복장을 살폈다. 시선이 등색 띠에 머물렀다.
그리고 한 걸음 뒤로 물러났다.

"죄송합니다. 구마사님이셨군요."

"괜찮아. 내가 이방인인 건 분명하니까,"
커넬이 미소 지었다. "내 이름은 커넬이야."

사내의 눈이 커졌다. 놀라움, 기대, 그리고 경계가 그 눈빛에 스쳐 지나갔다.

"구마사라면... 혹시 그 소문 때문에 오신 건가요?"

"어떤 소문?"

"희미한 경계 너머의 유령선... 아르고스호죠."

커넬은 고개를 끄덕였다.
사내는 주변을 둘러보더니 목소리를 낮추었다.

"제 이름은 마르코입니다. 혹시... 얘기 좀 나눌 수 있을까요?
여기보다 조용한 곳에서."

해변 절벽 위에 자리 잡은 '바다의 종소리'라는 선원 주점.

오후의 햇살이 두꺼운 유리창을 통해 희미하게 스며들었다.
벽에는 바다 괴물과 난파선에 관한 그림들이 걸려 있었다.

구석진 자리에 앉은 마르코는 천천히 자신의 이야기를 풀어놓았다.

그의 아버지는 뤼케시온의 바다를 누비던 노련한 선원이었다.
석 달 전, 그는 평소와 다름없이 고깃배를 타고 나갔다가 짙은 안갯속에서 이상한 배를 목격했다고 했다.

"아버지는 은빛 장막 너머로 고대 범선이 보였다고 했어요.
돛이 바람 없이 펄럭이고, 갑판에서는 사람들이 움직이는데..."

마르코가 맥주잔을 비웠다. 파도가 그의 목소리를 침식한 듯했다.

"그 배에 올라가 보려 했지만, 희미한 경계 속에서 배가 사라졌고...
그날 밤 아버지는 돌아오지 않았습니다."

잠시 말을 멈추고 손가락으로 테이블을 손톱으로 긁었다.
그의 눈은 어딘가 먼바다를 보고 있었다.

"일주일 후, 아버지의 고깃배가 해안에 떠밀려왔어요.
하지만 아버지는 없었죠. 다들 폭풍에 휩쓸렸다고 했지만..."

목구멍 깊은 곳에서 웃음을 끌어올렸다. 쓰디쓴 웃음.

"그날 바다는 거울처럼 잔잔했어요. 물 한 방울도 배에 들어오지 않았죠."

마르코의 슬픔이 커넬의 가슴으로 스며들었다. 공감의 상처 때문이었을까.
다이애나의 슬픔과 마르코의 상실이 가슴속에서 서로를 알아보는 듯한 느낌.
그 말없는 고통이 커넬의 왼쪽 가슴을 찌르듯 시렸다.

"그 이후로도 많은 사람들이 그 배를 봤다고 들었어. 아르고스호라고 불린다지.
30년 전에 서쪽 미지의 대륙을 향해 떠났다가 사라진 탐험선.
한 달에 두어 번, 회색 장막 너머로 모습을 드러냈다 사라진다는."

마르코는 커넬의 말투 변화를 눈치챘는지 살짝 긴장이 풀린 얼굴로 말을 이었다.

"그 장막은... 보통 안개와 달라요. 계절이나 날씨와 상관없이 항상 그 자리에 있어요.
시간 자체가 그곳에 갇힌 것 같다고 해야 할까요? 그 경계 너머로 들어간 사람들... 시간이 이상하게 흐른대요.
몇 시간 있었다고 생각했는데 사흘이 지났더라는 사람도 있고,
하루 종일 안갯속을 헤매다 나왔는데 단 한 시간도 지나지 않았다는 사람도 있고요."

커넬은 생각에 잠겼다. 시간의 왜곡. 베일라드 저택에서의 경험이 떠올랐다.
다이애나의 '기억의 감옥'이 시간을 가두었던 것처럼. 하지만 이번에는 더 크고, 더 강력한 힘이 작용하고 있는 것 같았다.

"넌 그 배를 직접 본 적 있어?"

마르코의 눈빛이 흔들렸다. "세 번이나 봤어요.
아버지가 사라진 뒤로 매일 그 경계를 찾아 배를 몰고 나갔거든요. 하지만..."

목소리가 갈라졌다.

"가까이 가면 항상 사라져 버려요. 실체가 없는 환영 같아요."

커넬은 그의 목소리에 담긴 절박함을 놓치지 않았다.

"네가 배에 가고 싶어 하는 것 같은데. 왜지?"

마르코의 눈에 물기가 감돌았다.
그가 손으로 얼굴을 가렸다.

"아버지를... 아버지를 찾아야 해요."

손을 내리자, 눈가에 붉은 선이 그어져 있었다.
손톱이 살을 파고든 흔적.

"그가 거기 있다는 걸 알아요. 느껴져요. 매일 밤 꿈에서 아버지가 부르는 소리를 들어요.
'마르코, 나를 찾아라. 내가 여기 있다...'"

확신에 찬 목소리가 술집의 소음 속에서도 선명하게 들렸다.
떨리는 손으로 맥주잔을 쥐었다.

"배에 탄 선원들이 모두 시간 속에 갇혔다는 이야기가 있어요.
영원히 같은 순간을 살아가면서... 아버지도 그런 상태라면..."

말을 끝맺지 못했다. 잔을 쥔 손마디가 하얗게 변했다.

커넬은 마르코의 손을 잡았다. 아버지를 잃은 아들의 고통이 그를 통해 흘러들어왔다.
다이애나의 슬픔과 다른, 하지만 똑같이 강렬한 상실의 고통.

"함께 찾아보자."

마르코의 얼굴에 놀라움이 스쳤다. "정말요? 다들 내가 미쳤다고 했는데..."

"난 구마사니까," 커넬이 웃어 보였다. "미친 것들을 다루는 게 내 일이야."

"언제 떠날 수 있죠?"

커넬은 창밖을 바라보았다. 태양이 서서히 기울고 있었다.

"내일 새벽이 좋겠어. 그 경계는 언제 가장 짙지?"

"새벽녘이요. 하지만..." 마르코가 망설였다.
"정말 위험할 수도 있어요. 거기로 들어간 사람 중 돌아오지 못한 사람들도 있거든요."

그때 커넬의 가슴속 얼음 결정이 진동했다. 다이애나의 슬픔이 그에게 속삭이고 있었다.
조심하라고. 또 다른 감옥이 기다리고 있다고.

"난 이런 일을 위해 훈련받았어," 커넬이 말했다. 가슴은 차가웠지만, 목소리는 따뜻했다.
"게다가 이젠 약간의 경험도 있고."

두 사람은 새벽에 만나기로 약속했다. 마르코는 선원 숙소로, 커넬은 항구 근처의 작은 여관으로 향했다.
여관방에 홀로 남은 커넬은 세바스티안이 준 반지를 다시 살폈다. 반지의 푸른 선이 서쪽을 가리키고 있었다.

창가에 서서 바다를 바라보았다.

저 멀리 어둠 속에서 희미한 장막이 피어오르는 것이 보였다.
바닷가의 불빛들이 그 장막을 향해 길게 늘어져 있었다. 시간의 심연으로 빨려 들어가는 빛.

그날 밤, 커넬은 베일라드 저택 이후 처음으로 끔찍한 악몽을 꾸었다.

시간의 바다에 익사하는 꿈. 물속에서 점점 깊이 가라앉으면서도,
수면을 향해 손을 뻗는데 도달할 수 없었다.

물속에서 그를 올려다보는 눈들... 수십 개의 눈동자들.
그중에는 다이애나의 눈도 있었다.



-



두 사람은 새벽 첫 빛이 하늘을 물들이기 시작할 때 뤼케시온 항구의 작은 부두에서 만났다.

마르코는 열다섯 자 정도 길이의 작은 어선을 준비해 놓았다. 배는 오래되었지만 정성껏 관리된 흔적이 역력했다.
짙은 청록색 페인트가 곳곳에서 벗겨져 있었지만, 목재는 윤이 났고, 돛은 튼튼해 보였다.

"이건..."

"아버지의 배예요. 이제는 제 배가 됐지만." 마르코가 쓸쓸히 웃었다.

커넬은 가방을 배에 싣고 올라탔다. 사제 의복 위에 바다에 적합한 두꺼운 외투만 걸쳤다.
마르코는 자신감 있는 손놀림으로 돛을 펼치고 키를 잡았다.
세바스티안에게서 받은 반지를 끼고 있는 커넬의 손가락이 미약하게 따끔거렸다.

"서쪽으로 두 시간 정도 가면 그 경계를 만날 거예요. 보통은 그런데..."

마르코가 망설였다. 눈에 불안이 깃들었다.

"가끔은 그 경계가 우리를 먼저 찾아오기도 해요. 의지가 있는 것처럼."

커넬은 고개를 끄덕였다. "공간의 질서를 거스르는 힘이야. 시간이 휘어지면 공간도 함께 휘어지지."

"당신은... 이런 일을 많이 겪어봤나요?"

커넬은 자신의 가슴을 무의식적으로 만졌다. "아니. 하지만 비슷한 일을... 얼마 전에."

마르코는 더 묻지 않았다.
배를 서쪽으로 몰았다.

배는 서서히 항구를 벗어나 깊은 바다로 향했다.
해안선이 점점 작아지고, 다른 어선들도 시야에서 사라졌다.

어느새 그들은 바다와 하늘 사이의 경계선 위에 홀로 떠 있었다.
두 사람 외에는 아무도 이 방향으로 오지 않았다.

"다들 이 방향을 피해요," 마르코가 말했다.
"그 경계가 처음 나타났을 때는 많은 사람들이 호기심에 이곳으로 왔어요. 하지만 몇몇이 돌아오지 않자..."

시간이 흐르면서 바다의 색이 변하기 시작했다. 짙은 청록색에서 점점 회색으로,
이제는 금속성 광택을 띠기 시작했다. 액체 수은 같은 빛. 커넬은 미간을 찌푸렸다.
바다가 내뿜는 기운이 달라지고 있었다.

물결 아래로 무언가 커다란 그림자가 지나가는 것이 보였다.
커넬은 몸을 기울여 바다를 들여다보았다. 그림자는 사라졌다.

하지만 순간, 바닷물 자체가 그를 올려다보는 듯했다.
수백 개의 눈이 수면 아래서 그를 응시하는 듯한 소름 끼치는 감각.

"저기!"

마르코의 외침에 고개를 들자, 시야 끝에 회색 벽이 보였다.
안개가 아니었다. 일반적인 안개와는 전혀 다른 무엇. 경계가 너무나 선명했다.
구름벽처럼, 혹은 유리벽처럼 바다를 가로막고 서 있었다.

"저건... 자연스럽지 않아." 커넬의 목소리가 바람에 날렸다.

배가 그 장막에 가까워지자 세바스티안이 준 반지가 따뜻해지는 것을 느꼈다.
반지 안의 푸른 선이 빠르게 회전하기 시작했다. 방향을 잃은 나침반.

"시간의 경계..." 그의 가슴속 공감의 상처도 덩달아 차가워졌다.
다이애나의 슬픔이 그의 안에서 소용돌이쳤다.

마르코는 배의 속도를 늦추었다. "천천히 들어가는 게 좋을 거예요. 그 너머는..."

망설였다. 눈빛이 흔들렸다.

"말로 설명하기 어려워요."

배의 뱃머리가 장막의 경계를 뚫고 들어갔다. 그 순간, 이상한 감각이 커넬을 덮쳤다.
몸이 갑자기 무거워졌다가 가벼워졌다. 밀도가 다른 액체 속으로 들어가는 느낌. 공기가 더 무거워진 듯했고,
소리는 둔탁해졌다. 파도 소리가 늘어지고, 바람 소리가 왜곡되었다.

귓가에 속삭임이 들리는 듯했다. 이름을 부르는 듯한, 또는 경고하는 듯한 목소리들.
커넬은 머리를 흔들었다. 환청일까, 실제로 누군가가 말하는 걸까? 경계가 모호해졌다.

"들어... 들어요? 저기?"

마르코의 목소리가 물속에서 들리는 것처럼 울렸다. 커넬은 그를 돌아보았다.
마르코의 움직임이 느려져 있었다. 손을 들어 앞을 가리키는 동작이 끈적한 꿀 속에서 움직이는 것처럼 느렸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다음 순간에는 움직임이 번개처럼 빨라 보였다.
마르코의 손이 일순간에 앞쪽을 가리키고 있었다. 중간 과정이 생략된 것처럼.

"시간이... 시간이 미끄러지고 있어." 커넬의 목소리도 자신에게 낯설게 들렸다.
때로는 너무 느리고, 때로는 너무 빨랐다.

마르코가 배를 완전히 장막 속으로 밀어 넣었다. 이제 그들은 완전히 다른 세계에 있었다.
뤼케시온 항구는 시야에서 사라졌다. 장막이 너무 짙어서 10미터 앞도 제대로 보이지 않았다.
회색빛이 그들을 완전히 감쌌다.

깊은 심연 속에서 푸른빛, 은빛, 때로는 보랏빛 광채가 일렁이고 있었다.
무지개 빛깔의 기름이 물 위에 퍼지듯, 색채가 그들 주위에서 소용돌이쳤다.

"이제 어디로 가야 할지..." 마르코의 목소리가 흔들렸다.

커넬은 반지를 보았다.
푸른 선이 계속해서 회전하다가 멈추고 한 방향을 가리켰다. 서쪽이었다.

"저쪽으로 가보자."

배는 장막 속을 천천히 움직였다. 시간의 감각이 완전히 붕괴되기 시작했다.
마르코의 움직임이 때로는 지나치게 빨라 보였다가, 때로는 물속에서 움직이는 것처럼 느려 보였다.
커넬 자신의 생각조차 비정상적으로 빨라지거나 느려지는 것을 느꼈다.

"이곳에서는 시간이 일정하게 흐르지 않아," 커넬이 말했다.
"시간이 물결치는 것 같아."

"이해가 안 돼," 마르코가 중얼거렸다. "어떻게 이런 일이..."

그의 목소리가 잘려나갔다. 커넬은 놀라서 그를 보았다. 마르코는 한순간 멈춘 듯했다.
그의 입이 반쯤 열린 채로, 눈은 깜빡이는 중간에 고정되어 있었다.
그리고 다음 순간, 그가 다시 움직이기 시작했다.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 가능한 거죠?"

커넬은 등줄기에 소름이 오르는 것을 느꼈다.
마르코는 자신이 잠시 시간 속에 고정되었다는 사실을 전혀 눈치채지 못한 것 같았다.

"멘트 문명의 힘이야. 아주 오래전, 사람들이 시간의 흐름을 조작하려 했던 흔적이지."

두 사람은 대화를 이어가려 했지만, 점점 더 어려워졌다.
목소리가 장막 속에서 기묘하게 울리고, 가끔은 말을 하기도 전에 상대가 대답하는 듯한 감각이 들었다.
시간의 순서가 뒤틀리고 있었다.

커넬은 꿈에서 본 수면 아래의 눈들을 떠올렸다. 이 장막 속에도 그들이 있는 걸까? 그를 지켜보는 시간의 눈들?
그는 왼쪽 가슴을 만졌다. 다이애나의 슬픔이 결정체가 되어 그를 보호하는 듯했다.

항해는 계속되었다.

몇 시간이 지났을까? 아니면 단 몇 분? 혹은 며칠?
시간의 감각을 완전히 상실한 채, 그들은 회색 심연을 표류했다.

커넬은 자신의 기억조차 의심스러워졌다.
베일라드 저택에서의 경험이 몇 달 전인지, 몇 년 전인지, 아니면 아직 일어나지 않은 일인지 혼란스러웠다.

그의 과거가 펼쳐진 지도처럼 눈앞에 펼쳐지는 듯한 환각이 찾아왔다.

카르토 마을에서의 첫 임무, 에일린과의 만남, 포보스 신전에서의 두려움과의 대면,
거울 속의 진실, 다이애나와의 춤... 모든 기억이 한순간에 압축되어 그의 의식을 강타했다.

숨을 헐떡이며 정신을 차렸을 때,
장막 속에서 어두운 형체가 서서히 드러나고 있었다.

거대한 돛대, 커다란 선체, 그리고 펄럭이는 돛.
아르고스호였다.

마르코의 숨이 턱 막혔다. "드디어..."

유령선은 회색 장막 속에서 서서히 모습을 드러냈다. 30년 전의 탐험선이었지만,
놀랍도록 온전한 모습이었다. 녹슨 흔적도, 부서진 부분도 없었다. 어제 항구를 떠난 것처럼 완벽했다.

하지만 가장 기이한 것은 배 주위였다. 파도가 정지해 있었다.

물이 얼어붙은 것처럼 움직이지 않고, 배에 부딪히는 순간에 영원히 고정되어 있었다.
돛은 바람에 펄럭이는 한 순간에 멈춰 있었다. 심지어 배 주위를 날던 몇몇 갈매기도 공중에 정지해 있었다.

"이게 무슨?" 마르코가 속삭였다.

"시간이 멈춰 있어..." 커넬의 목소리가 떨렸다.
그는 다이애나의 '기억의 감옥'보다 훨씬 더 강력한 시간의 왜곡을 느꼈다.
단순한 기억의 반복이 아니었다. 실제 시간 자체가 정지해 있었다.

마르코는 배를 아르고스호에 가까이 가져갔다. 유령선은 그들의 작은 배보다 세 배는 더 컸다.
높은 선체가 그들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시간의 절벽처럼.

"어떻게 올라가죠?" 마르코가 물었다.

마침 아르고스호의 측면에 작은 사다리가 보였다. 고정된 파도 위로 내려온 사다리.
마르코는 배를 그쪽으로 몰았다. 하지만 이상한 일이 벌어졌다. 거리가 줄어들지 않았다.
아무리 배를 몰아도, 아르고스호와의 거리는 언제나 같았다.

"이건..." 마르코의 표정이 당혹스러워졌다.
"왜 가까워지지 않는 거죠?"

"공간도 왜곡되고 있어," 커넬이 말했다.
"시간이 멈추면 공간도 고정돼."

커넬은 잠시 생각에 잠겼다. 다이애나의 감옥을 풀었던 방법을 떠올렸다.
그때는 그녀의 슬픔을 공유하면서... 그가 가슴의 공감의 상처를 문질렀다.
다이애나의 슬픔이 가슴속에서 떨리고 있었다.

"우리도 시간을 받아들여야 해," 그가 말했다.
"도달하려고 하지 마. 그냥... 흘러가게 두는 거야."

"무슨 소린지..."

"배를 향해 나아가려고 하면 절대 도달할 수 없어.
목적지에 대한 생각을 버려. 그냥 노를 저어."

마르코는 의아한 표정을 지었지만, 커넬의 말을 따랐다.
고개를 끄덕이고 조심스럽게 노를 저었다. 이번에는 배를 아르고스호에 대려고 하지 않고,
그저 노를 젓는 행위 자체에 집중했다.

커넬도 마음을 비웠다. 반지를 벗어 손바닥 위에 올려놓았다.
푸른 선이 이리저리 흔들렸다. 눈을 감고 가슴속의 차가움에 집중했다.
다이애나가 시간 속에 갇혔던 기억. 그녀의 슬픔. 그리고 해방.

놀랍게도, 거리가 줄어들기 시작했다.

"됐어..." 마르코가 속삭였다.

마침내 그들의 작은 배가 아르고스호에 닿았다. 두 사람은 사다리를 붙잡았다.
시간의 파도가 얼어붙어 있음에도 사다리는 만질 수 있었다.

"조심해," 커넬의 목소리가 떨렸다.
"배에 올라가는 순간, 우리도 이 시간의 영향을 받을지 몰라."

그는 자신이 다이애나의 기억 속에 갇혔던 순간을 떠올렸다. 하지만 지금은 달랐다.
그때는 공감의 춤을 통해 의도적으로 들어간 것이었지만, 지금은 실제 시간의 왜곡 속으로 들어가는 것이다.

마르코가 먼저 사다리를 타고 올라갔다. 커넬이 뒤를 따랐다.
사다리를 오르는 감각이 기묘했다. 물속에서 움직이는 듯 무거웠고, 때로는 공중에 떠 있는 듯 가벼웠다.
시간이 들숨과 날숨처럼 수축과 팽창을 반복하는 느낌이었다.

사다리의 중간쯤에서 커넬은 갑자기 자신의 어린 시절 기억이 떠올랐다.
처음으로 나무에 오르던 날, 높은 가지에서 떨어져 다리를 다쳤던 일.
왜 하필 지금 그 기억이 떠오른 걸까? 시간의 왜곡이 기억마저 뒤섞어 놓는 것 같았다.

마르코가 먼저 아르고스호의 갑판에 발을 디뎠다.
순간, 그의 몸이 흐릿해졌다가 다시 선명해졌다. 그가 방향감각을 잃은 듯 비틀거렸다.

커넬도 갑판에 올라섰다. 그 순간 이상한 감각이 전신을 감쌌다.
시간이 파도처럼 그를 덮쳤다 물러나기를 반복했다.

"괜찮아?" 커넬이 마르코에게 물었다.

마르코는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의 움직임이 지나치게 느렸다.
"이상한 느낌이에요... 몸이 뭉개지는 것 같아요."

두 사람은 조심스럽게 갑판을 살폈다.

아르고스호의 내부는 완벽하게 보존되어 있었다.
목재 갑판은 윤이 나고, 로프는 팽팽히 당겨져 있었으며, 선체의 금속 부분은 녹 하나 없이 빛났다.
하지만 가장 기이한 것은 선원들이었다.

갑판 위에는 스무 명 정도의 선원들이 있었다. 그들은 모두 정지해 있었다.
누군가가 시간을 멈춰놓은 듯, 한 동작의 중간에 얼어붙어 있었다.

한 선원은 로프를 당기는 중이었고, 다른 이는 돛을 올리고 있었다.
갑판을 닦던 소년의 얼굴에는 반쯤 지어진 웃음이 걸려 있었다.

커넬은 가까운 선원을 자세히 살폈다. 그들은 인형이 아니었다.
피부에는 미세한 혈관이 보였고, 하나하나의 모공이 모두 보일 정도로 실제 인간이었다. 다만 시간만 멈춰 있을 뿐.

"이게 어떻게..." 마르코의 목소리가 떨렸다.

"시간의 감옥이야," 커넬이 천천히 말했다. "그들 모두 같은 순간에 갇힌 거야."

마르코는 가장 가까운 선원에게 다가갔다.
키가 크고 어깨가 넓은 중년의 남자였다. 그는 나침반을 들여다보는 중이었다.

"이분들... 살아있는 거예요?"

"그래, 아마도. 그들의 시간이 멈춘 것뿐이야. 영원히 같은 순간을 사는 거지."

커넬은 베일라드 저택에서의 경험을 떠올렸다. 다이애나와 저택의 사람들은 같은 기억 속에 갇혀 있었지만,
적어도 그들은 움직였다. 하지만 여기 있는 선원들은 완전히 정지해 있었다. 더 강력한 시간의 왜곡이었다.

마르코는 선원의 앞에 서서 손을 흔들었다. 아무런 반응이 없었다.
그는 용기를 내어 선원의 어깨를 건드렸다. 만질 수는 있었지만, 돌처럼 단단했다.

"이건... 불가능한 일이잖아." 마르코가 중얼거렸다.

"불가능하지만 일어나고 있지." 커넬이 대답했다.
"멘트 문명은 우리가 알고 있는 자연의 법칙을 넘어선 힘을 다뤘어."

마르코는 갑자기 몸을 돌려 갑판을 가로질러 달려갔다.

그는 선원들 사이를 헤집고 다니며 얼굴들을 살폈다.
그의 발걸음이 불규칙적이었다. 때로는 빠르게, 때로는 느리게, 시간이 그의 움직임을 방해하는 듯했다.

"아버지!" 그가 외쳤다.



-



커넬은 갑판을 천천히 걸었다.
발걸음마다 시간이 이상하게 느껴졌다.

때로는 한 걸음을 떼는 데 영원이 걸리는 것 같았고,
때로는 순식간에 갑판 반대편에 도착하는 것 같았다. 그는 주변을 면밀히 조사했다.

배의 상태는 완벽했다. 시간이 배에 영향을 미치지 않는 것 같았다.

하지만 이상한 점도 있었다. 갑판 한쪽에 있는 나침반이 미친 듯이 회전하고 있었다.
정지해 있지 않고 끊임없이 회전했지만, 그 움직임이 보이지 않는 순간들이 있었다. 시간이 조각나 있는 듯했다.

커넬은 자신의 숨결이 공기 중에 흰 안개처럼 멈춰 있는 것을 보았다.
손을 뻗어 그 안개를 만져보았다. 만질 수 있었다. 그의 숨이 시간 속에 결정화된 것이다.

문득 베일라드 저택에서 얼어붙은 눈물을 떠올렸다.
그때는 슬픔이 얼어붙은 것이었다면, 지금은 시간 자체가 얼어붙은 것이다.

커넬은 선실로 향하는 문을 발견했다.

문은 반쯤 열려 있었다. 안으로 들어갔다. 좁은 복도를 따라 여러 개의 방이 있었다.
각 방에도 역시 시간이 멈춘 선원들이 있었다. 누군가는 침대에 누워 책을 읽고 있었고,
또 다른 이는 옷을 갈아입는 중이었다.

복도 끝에는 더 크고 화려한 문이 있었다. 선장실이었다.
커넬은 마르코를 부르려다 멈췄다. 그는 마르코가 아버지를 찾고 있다는 것을 알았고,
방해하고 싶지 않았다. 혼자서 선장실로 향했다.

문은 쉽게 열렸다. 안에는 넓은 방이 있었고,
창문을 통해 얼어붙은 바다와 안개가 보였다. 방 중앙에는 큰 책상이 있었고, 그 뒤에 선장이 앉아 있었다.

타르시우스 선장은 50대 중반으로 보이는 강인한 인상의 남자였다.
회색이 섞인 검은 수염과 깊은 주름이 그의 얼굴에 새겨져 있었다.

배의 항로를 그리는 중이었다. 그의 앞에는 큰 지도가 펼쳐져 있었고,
한 손에는 컴퍼스를, 다른 손에는 특이한 나침반을 들고 있었다.

커넬의 시선이 그 나침반에 고정되었다.

일반적인 나침반과는 거리가 멀었다. 황금과 이상한 푸른빛 금속으로 만들어져 있었고,
가운데는 빛나는 수정이 있었다. 나침반의 바늘은 금과 은으로 만들어졌으며, 끊임없이 회전하고 있었다.
갑판 위의 나침반과 마찬가지로 시간에 구애받지 않고 움직이고 있었다.

"시간의 나침반..." 커넬이 속삭였다.

그는 책상에 다가가 지도를 살폈다. 마이소시아 대륙의 서쪽 해안을 보여주고 있었다.
뤼케시온 항구에서 시작해 서쪽으로 향하는 경로가 그려져 있었다.
그 끝에는 미지의 대륙이 희미하게 그려져 있었고, '시간의 문'이라는 글자가 쓰여 있었다.

커넬은 책상 위의 다른 물건들도 조사했다. 일지가 있었다.
조심스럽게 일지를 열었다. 마지막 기록은 30년 전의 것이었다.

'서쪽으로 향한다. 시간의 문을 찾아서. 나침반이 그곳을 가리키고 있다.
우리는 멘트의 비밀을 밝힐 것이다.'

일지의 페이지를 더 넘기려 했지만, 나머지 페이지들은 서로 달라붙은 것처럼 열리지 않았다.
시간이 그것들마저 붙들고 있었다.

커넬은 선장을 자세히 살폈다. 다른 선원들과 달리, 그의 눈가에서 미세한 움직임이 감지되었다.
몇 초 단위로 깜박이는 듯했다. 완전히 시간이 멈추지 않은 것이었다.

"당신은 조금 다르군요," 커넬이 말했다.
"다른 이들보다 시간의 영향을 덜 받고 있어요."

선장은 물론 대답하지 않았다. 하지만 커넬은 그의 눈동자가 미세하게 자신을 향해 움직이는 것을 느꼈다.
마치 그가 커넬을 인식하고 있는 듯했다.

"선장님, 타르시우스 선장님. 제 말이 들리십니까?"

아무 대답이 없었지만, 선장의 손가락이 미세하게 떨리는 것 같았다. 커넬은 선장 앞으로 다가갔다.
그가 들고 있는 나침반을 더 자세히 보려 했지만, 선장의 손에 단단히 쥐어져 있었다.

선장이 시간의 나침반을 직접 다루었기 때문에 그 영향을 덜 받는 것일까?
아니면 다른 이유가 있을까?

갑자기 갑판에서 외침이 들렸다.

"아버지!"

커넬은 급히 선장실을 나와 갑판으로 향했다. 마르코는 한 선원 앞에 무릎을 꿇고 있었다.

그 선원은 40대 중반의 건장한 남자로, 로프를 감는 중이었다.
그의 얼굴은 마르코와 닮아 있었다. 같은 코와 턱선. 그리고 깊은 눈.

"아버지, 제 말 들리세요? 저예요, 마르코!" 그가 선원의 얼굴을 양손으로 감싸 쥐었다.
그의 목소리는 공허한 갑판에 메아리쳤다.

커넬은 마르코에게 다가갔다. "그가 당신 아버지인가요?"

"네, 분명해요," 마르코의 눈에서 눈물이 흘러내렸다.
"하지만 반응이 없어요. 저를 **도 못해요."

그의 눈물이 공중에 멈춰 있었다. 마르코는 자신의 뺨을 타고 흐르던 눈물이 멈춘 것을 보고 놀랐다.
그가 손을 들어 그 눈물을 만졌다. 고체처럼 단단했다. 작은 유리구슬 같았다.

"시간이... 내 눈물까지..." 그가 중얼거렸다.

커넬은 마르코의 아버지를 살폈다. 그는 다른 선원들과 마찬가지로 시간 속에 완전히 고정되어 있었다.
로프를 감는 순간에 영원히 갇혀 있었다.

"어떻게 하면 되나요?" 마르코가 절박하게 물었다.
"어떻게 하면 아버지를 구할 수 있죠?"

그의 목소리에는 분노와 슬픔, 그리고 희망이 뒤섞여 있었다.
커넬은 그의 안에서 소용돌이치는 감정의 폭풍을 느낄 수 있었다.

"시간의 감옥을 풀 방법을 찾아야 해요," 커넬이 말했다. "베일라드 저택에서처럼..."

그는 생각에 잠겼다. 다이애나의 '기억의 감옥'과 이 '시간의 감옥'은 비슷하면서도 달랐다.
다이애나의 경우는 한 사람의 슬픔이 만든 감옥이었지만, 이것은 더 근본적인 시간 자체의 왜곡이었다.

"공감이 필요할지도 몰라요," 커넬이 말했다. "당신 아버지의 시간을 느끼는 거죠."

그는 마르코의 아버지 앞에 무릎을 꿇었다. 공감의 상처에 집중했다.
다이애나의 슬픔을 받아들였던 것처럼, 이 선원의 시간을 느껴보려 했다.

그가 선원의 손을 잡는 순간, 강렬한 감각이 그를 덮쳤다.
무한히 늘어진 한 순간, 영원히 변하지 않는 현재.

끝없이 같은 생각과 감정을 반복하는 의식.
그것은 한 방울의 물이 떨어지려다 영원히 공중에 멈춰 있는 것 같은 느낌이었다.
고통스러운 멈춤. 커넬은 숨이 막혔다.

"안돼... 너무..." 그는 손을 떼려 했지만, 그 순간에 함께 갇힌 것처럼 움직일 수 없었다.
몸이 천천히 굳어가는 느낌이 들었다. 그의 심장박동이 느려지고, 생각이 둔해졌다.

바로 그때, 가슴속의 얼음 결정이 갑자기 뜨거워졌다. 다이애나의 슬픔이 그를 깨우는 듯했다.
_잊지 마, 당신은 방문자야. 이 시간에 속하지 않아._

커넬은 힘겹게 손을 떼었다.
그는 뒤로 비틀거리며 넘어졌다. 마르코가 그를 붙잡았다.

"괜찮아요? 얼굴이 창백해졌어요!"

"그들은... 인식하고 있어," 커넬이 힘겹게 말했다.
"그들은 갇혀 있다는 것을 알아. 하지만 빠져나올 수 없어. 그들에겐 이 한순간이 영원처럼 느껴지고 있어."

마르코의 얼굴이 창백해졌다. "아버지가... 고통받고 계신 건가요?"

"고통이라기보다는... 끝없는 기다림이야." 커넬이 일어서며 말했다.
그의 다리가 여전히 후들거렸다. "하지만 지금은... 아무것도 할 수 없을 것 같아. 더 알아봐야 해."

두 사람은 배를 더 탐색하기로 했다. 선원들의 숙소, 화물칸, 조타실까지, 그들은 배의 구석구석을 살폈다.
어디에나 시간 속에 갇힌 선원들이 있었고, 모든 물건들은 완벽하게 보존되어 있었다.
시간이 이 배를 영원한 박물관으로 만들어버린 것 같았다.

화물칸에서 그들은 특이한 물건들을 발견했다. 정교하게 조각된 상자들,
이상한 문양이 그려진 천, 그리고 멘트 문명의 것으로 보이는 유물들.
모두 서쪽 대륙을 탐험하기 위한 준비물들이었을 것이다.

"이 배는 단순한 탐험선이 아니었던 것 같아,"
커넬이 말했다. "멘트 문명의 비밀을 찾아 떠난 거야."

조타실에는 항해 일지와 여러 장비들이 있었다. 커넬은 항해 일지를 살폈다.
거기에는 아르고스호의 사명이 더 자세히 기록되어 있었다.

"그들은 '시간의 문'이라는 곳을 찾고 있었어," 커넬이 마르코에게 설명했다.
"멘트 문명의 유적으로 추정되는 서쪽 대륙의 어떤 장소. 선장은 시간의 나침반을 이용해 그곳을 찾으려 했지만..."

"대신 시간 속에 갇혔군요," 마르코가 중얼거렸다. 그의 눈에는 분노가 스쳐 지나갔다.
"멘트의 저주받을 유물들! 왜 사람들은 그런 위험한 것들을 계속 찾는 거죠?"

커넬은 마르코를 이해했다. 그도 똑같은 의문을 품었었다.

카르토 마을에서, 포보스 신전에서, 베일라드 저택에서...
모두 멘트 문명의 금기된 힘을 다루다가 재앙을 맞은 곳들이었다.

"인간의 본성이야," 커넬이 조용히 말했다.
"미지의 것을 알고 싶어 하는 욕망. 자연의 법칙을 초월하고 싶은 욕망."

"그 욕망이 내 아버지를 여기 가두었어요!"
마르코가 갑자기 소리쳤다. 그의 목소리가 시간 속에 멈춘 배에 울렸다.

커넬은 대답하지 않았다. 그 순간 마르코에게 필요한 것은 위로의 말이 아니었다.
그저 분노를 표출할 수 있는 공간이었다.

해가 기울기 시작했다.

물론 장막 속에서는 해의 위치를 정확히 알 수 없었지만,
두 사람의 내면에서 시간이 흐르고 있음을 느꼈다. 그들만의 시간이 여전히 존재했다.

"여기서 밤을 보내야 할 것 같아," 커넬이 말했다.
"지금 장막 속으로 돌아가면 길을 잃을 거야."

마르코는 망설였다. "이 배에서 자는 게... 안전할까요?
우리도 시간에 갇힐 수 있지 않나요?"

커넬은 자신의 가슴에 손을 얹었다. 얼음 결정이 여전히 그를 보호하고 있는 듯했다.
"우리는 이미 이 배에 올라와 있잖아. 아직 우리의 시간은 흐르고 있어. 하지만..."

그는 잠시 생각했다. "밤에 뭔가 변화가 있을지도 몰라.
베일라드 저택에서도 밤이 되면 상황이 달라졌으니까."

두 사람은 빈 선실을 찾아 짐을 풀었다. 마르코는 아버지 가까이에 있고 싶어 했지만,
커넬은 그것이 좋은 생각이 아니라고 설득했다. 감정에 너무 빠져들면 이 배의 시간에 영향을 받을 수 있었다.

"내일 더 방법을 찾아볼게," 커넬이 약속했다. "지금은 쉬자."

마르코는 마지못해 동의했다. 그의 눈에는 여전히 절망과 분노, 그리고 희망이 뒤섞여 있었다.
두 사람은 각자의 침대에 누웠다. 커넬은 잠들기 전에 세바스티안의 반지를 다시 살폈다.
반지 안의 푸른 선이 이제는 배의 선수 방향, 즉 서쪽을 가리키고 있었다.

서쪽. 시간의 문.

그 밤, 커넬은 무거운 꿈을 꾸었다. 꿈속에서 그는 다이애나와 춤을 추고 있었다.
하지만 그녀의 얼굴이 점점 흐려지더니, 마르코의 아버지의 얼굴로 변했다.

그리고 그 얼굴은 다시 타르시우스 선장의 얼굴로 바뀌었다.
모두 시간 속에 갇힌 영혼들. 그들은 모두 그에게 속삭였다.

"서쪽으로... 서쪽으로 가야 해..."



-



한밤중, 커넬은 이상한 감각에 눈을 떴다. 배 전체가 미세하게 진동하고 있었다.
살아있는 생명체처럼 심장이 뛰는 듯했다. 그는 침대에서 일어나 창밖을 바라보았다.

어둠 속에서 안개가 빛나고 있었다. 은빛과 푸른빛이 섞인 기묘한 빛이었다.
별들이 안개 위에 흩뿌려진 것처럼 보였다. 하지만 이것들은 별이 아니었다. 시간의 파편들이었다.

"마르코?" 커넬이 불렀지만 대답이 없었다.

다른 침대를 보니 마르코는 이미 나가고 없었다.
커넬은 급히 옷을 입고 선실 밖으로 나왔다.

복도는 텅 비어 있었지만, 어딘가에서 목소리가 들려왔다.
수십 명이 속삭이는 것 같은 소리였다. 유령선이 깨어나고 있었다.

커넬은 소리를 따라 갑판으로 나갔다.
놀라운 광경이 펼쳐졌다.

갑판 위의 선원들이 움직이고 있었다. 아주 천천히, 물속에서 움직이는 것처럼 느리게,
하지만 분명히 움직이고 있었다. 그들은 여전히 서로를 인식하지 못하는 듯했다.
각자 자신의 임무에만 집중하고 있었다.

"자정..." 커넬이 중얼거렸다.

시간의 경계가 약해지는 순간이었다. 베일라드 저택에서도 비슷한 현상이 있었다.
자정은 하루의 끝이자 시작, 경계의 시간이었다.

커넬은 마르코를 찾아 갑판을 살폈다. 그는 갑판 한쪽에 서 있었다.
그의 아버지 앞에. 이제 그의 아버지도 천천히 움직이고 있었다.
로프를 감고, 풀고, 다시 감는 동작을 반복하고 있었다.

"아버지, 제발 저를 봐요," 마르코가 간절히 부탁했다.

놀랍게도, 선원이 천천히 고개를 들었다.
그의 눈이 마르코에게 향했다. 인식의 기색이 스쳐 지나갔다.

"마... 르코..." 공기 속으로 흩어지는 목소리.

마르코의 얼굴에 놀라움이 번졌다. "아버지! 제 말이 들리세요?"

선원은 대답하지 못했다. 그저 다시 로프로 시선을 돌렸다.
하지만 그 짧은 순간, 그는 아들을 인식했다. 커넬은 한 걸음 뒤로 물러났다.

마르코와 그의 아버지에게 시간을 주고 싶었다.
비록 짧고 불완전한 소통이지만, 희망의 증거였다.

커넬은 선장실로 향했다. 타르시우스 선장도 움직이고 있을 것이다.
그는 문을 열고 들어갔다.

타르시우스 선장은 책상에서 일어나 창가에 서 있었다.

그의 손에는 여전히 시간의 나침반이 들려 있었고, 나침반의 바늘이 서쪽을 가리키고 있었다.
나침반에서는 푸른빛이 흘러나왔다. 그 빛이 선장의 얼굴을 비추고 있었다.

"타르시우스 선장님," 커넬이 불렀다.

선장이 천천히 돌아섰다. 그의 눈은 맑았다.
다른 선원들보다 훨씬 더 의식이 또렷해 보였다. 시간의 나침반 때문일까?

"당신은... 누구요?" 선장의 목소리는 먼 곳에서 들려오는 것 같았다.
물속에서 들려오는 소리 같았다.

"커넬입니다. 구마사 커넬이에요. 당신을 돕기 위해 왔습니다."

선장의 눈에 희미한 웃음기가 돌았다. "너무 늦었소... 우리는 갇혔소. 시간 속에..."

선장의 말은 중간중간 끊겼다.
깨진 유리조각을 이어 붙인 것처럼 불완전했다.

"어떻게 된 일인가요? 무슨 일이 있었던 거죠?"

선장은 창밖을 바라보았다. 그의 눈에 슬픔과 향수가 깃들어 있었다.

"우리는... 서쪽으로 가야 했소. 시간의 문을 찾아서. 하지만...
나침반이... 어떤 힘에 휩쓸렸소."

"시간의 나침반이요?"

"멘트의 유물이오. 시간과 공간을 넘어 길을 찾아주는..." 선장이 나침반을 들어 보였다.
"하지만 우리가 장막 속에 들어섰을 때, 나침반이 통제를 벗어났소. 시간이... 휘어졌소."

커넬은 조심스럽게 물었다. "서쪽에는 무엇이 있나요? 시간의 문이란 무엇인가요?"

선장은 희미하게 웃었다. 그의 웃음소리가 방 안에 물결처럼 퍼졌다.

"멘트 문명의 비밀이오. 시간을 초월하는 문... 그곳에 가면...
과거와 미래가 만나는 곳이오. 모든 것을... 알 수 있소."

선장의 눈에 광기가 스쳤다. 그의 목소리가 더 또렷해졌다.

"나는 그곳에 가고 싶었소. 시간의 비밀을 알고 싶었소.
내 아내가... 병으로 죽기 전으로 돌아가고 싶었소."

그래서였구나. 커넬은 선장의 진짜 동기를 알게 되었다.
탐험이 아니었다. 개인적인 슬픔이었다. 잃어버린 사랑을 되찾으려는 욕망이었다.

"어떻게 당신들을 이 시간의 감옥에서 풀어줄 수 있을까요?"

선장의 표정이 굳어졌다. "나침반... 나침반을 서쪽으로...
배를 움직여야 하오... 서쪽으로..."

그의 목소리가 점점 희미해지기 시작했다. 움직임도 느려졌다.

"배를 움직이라고요? 어떻게요?"

"시간의... 흐름을... 따라야... 서쪽으로... 가야 한다..."

그리고 자정이 지나자,
선장은 다시 완전히 멈춰버렸다.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다시 시간 속에 고정되었다.
하지만 그의 마지막 말이 커넬의 마음에 남았다.

서쪽으로 가야 한다.

커넬은 갑판으로 돌아갔다. 마르코도 절망에 빠진 표정으로 서 있었다.
그의 아버지도 다시 시간 속에 갇혔다.

"잠깐이었지만, 절 알아봤어요," 마르코가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아버지가 절 알아봤어요."

그의 목소리에는 희망과 절망이 섞여 있었다. 그가 눈물을 훔쳤다.

"매일 이런 시간이 온다면...
적어도 하루에 한 번이라도 아버지와 이야기할 수 있을지도 몰라요."

그의 말에 비애가 물씬 배어 있었다. 커넬은 마르코의 어깨를 잡았다.

"시간이 돌아오고 있어. 매일 자정에 잠시 깨어나는 거야.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이 있을거야."

"선장은 뭐라고 했나요?"

"서쪽으로 가야 한다고 했어. 배를 서쪽으로 움직여야 한대."

"배를? 이 배를요?" 마르코가 놀라서 물었다.
"하지만 이 배는 시간 속에 갇혀 있잖아요!"

두 사람은 서로를 바라보았다. 할 수 있을까?
시간 속에 갇힌 배를 움직일 수 있을까?

"내일..." 커넬이 말했다. "내일 다시 생각해 보자."

그들은 각자의 선실로 돌아갔다.
하지만 편안히 잠들 수 있는 사람은 없었다.

시간의 무게가 너무 무거웠다.
커넬은 누워서 천장을 바라보았다.

그의 생각은 혼란스러웠다.

베일라드 저택에서 다이애나를 구출했던 방법을 떠올렸다. 하지만 그때와 상황이 달랐다.
이건 한 사람의 감정이 만든 감옥이 아니었다. 시간 자체의 왜곡이었다.

서쪽으로 가야 한다. 선장의 말이 계속 그의 머릿속에서 맴돌았다.
하지만 어떻게? 이미 시간이 멈춘 배를 어떻게 움직일 수 있을까?

그가 뒤척이며 생각에 잠겨 있을 때, 가슴 속의 얼음 결정이 미약하게 진동했다.
다이애나의 목소리가 그의 내면에서 들려오는 듯했다.

"시간도 춤을 춰. 그 리듬에 맞춰..."



-



푸른 촛불이 흔들렸다.

커넬 주교는 촛불의 맥박 같은 움직임을 바라보았다.
초의 푸른빛이 그의 얼굴에 그림자를 드리웠다.

"그렇게 우리는 첫날밤을 보냈지," 그가 리나에게 말했다.
"시간의 틈새에서."

"그들을 구할 방법을 찾으셨나요?" 리나가 물었다.

노인의 푸른 눈이 빛났다. "그건 내일 이야기해 주마.
서쪽으로의 항해는... 더 복잡한 이야기니까."

그는 손을 뻗어 푸른 촛불 주위를 맴돌게 했다.
불꽃은 그의 손을 따라 움직이는 듯했다. 춤을 추듯이.

"기억하거라, 리나. 길을 잃는 것과 방향을 찾는 것은 같은 여정의 두 면이다.
때로는 길을 잃어야만 진정한 방향을 발견할 수 있지."

창 밖으로 폭풍이 여전히 몰아치고 있었다.

하지만 성당 안은 고요했다. 푸른 촛불만이 그들의 세계를 비추고 있었다.
이 불꽃 속에서 리나는 어떤 배가 보이는 듯했다.

시간 속에 길 잃은 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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