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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의 마을 세오
[순례자] - 9장. 사막의 도서관
610 2025.05.11. 22:34

순례자, 그림자의 언약. 10


9장. 사막의 도서관
























태양이 만든 그림자는 축복의 영역이다.
뜨거운 광선이 지붕과 첨탑을 뚫고 내리쬐는 세계에서, 그림자만이 유일한 안식처다.

커넬은 원색의 천으로 칭칭 감싼 머리를 마른 손바닥으로 꾹 눌렀다.
노엠의 거리는 그가 상상했던 동방의 모습과는 판이했다.

거대한 둥근 돔들과 하늘을 찌르는 뾰족한 첨탑,
모래색 외벽을 타고 뻗어 오르는 푸른 넝쿨들. 달아오른 돌에서는 향신료 냄새가 피어올랐다.

산더미처럼 쌓인 붉은 고추와 노란 심황 가루가 바람에 흩날리며 그의 코를 간질였다.

가장 낯설었던 건 사람들의 눈빛이었다.
거리를 활보하는 상인들, 모래바람을 맞으며 흥정하는 여인들,
그리고 우물가에 모여 이야기를 나누는 노인들의 눈.

커넬은 그들의 대화를 전혀 이해하지 못하면서도, 그 눈빛에 담긴 무언가는 이해할 수 있었다.
세월의 풍화를 견뎌낸 눈동자들이 자신을 향했다 돌아섰다.
처음 마주한 검은 동자들은 그를 잠깐 바라보곤 이내 무관심으로 돌아갔다.

이곳은, 이방인에게도 이방인의 자리를 내어주는 도시였다.

"길을 잃으셨습니까, 서방에서 오신 분?"

목소리는 불현듯, 그러나 불가사의하게도 그의 모국어로 울렸다.
커넬이 돌아보니 천으로 얼굴을 반쯤 가린 여인이 그를 올려다보고 있었다.
눈동자ㅡ한쪽은 호박색, 다른 쪽은 청록색ㅡ가 사막의 뜨거운 햇빛 아래서조차 빛을 발했다.

"당신은..."

"천체해석사 아이샤라고 합니다." 그녀가 천을 살짝 내려 미소를 보였다.
"당신이 오실 거라고 들었습니다, 구마사 커넬."

뜨거운 바람이 불어왔다. 모래먼지가 그들 사이를 스쳐 지나갔다.
그녀의 말이 모래알처럼 그의 이해 위에 쌓였다.

"내가 온다는 걸 어떻게..."

아이샤는 대답 대신 손가락을 들어 한 방향을 가리켰다.
"먼저 그늘로 들어가시죠. 서방의 피부는 이곳 햇빛을 견디지 못합니다."

그녀를 따라 허름한 찻집으로 들어서자, 향신료가 혼합된 차의 달콤한 향기가 코끝을 자극했다.
구석진 자리에 앉은 두 사람 앞에 줄무늬 천을 두른 소년이 유리잔을 내려놓았다. 뜨거운 차 위로 박하 잎이 떠다녔다.

"이곳 사람들은 당신처럼 생긴 사람을 '서방의 그림자'라고 부릅니다." 아이샤가 천천히 말했다.
"피부가 하얗고, 눈이 밝아서죠. 어둠 속에서도 빛나니까요."

이색 눈동자는 두 개의 세계를 동시에 바라보는 듯했다.
호박색 눈은 온기와 현실을, 청록색 눈은 냉정과 초월을 담고 있었다.

"내 이름을 어떻게 알았지?"

"당신의 명성이 서방에만 머물 거라 생각했습니까?" 그녀가 부드럽게 웃었다.
"아벨 대성당의 커넬, 에일린의 영혼을 달래고 포보스의 이중성을 꿰뚫은 자,
다이애나의 슬픔을 받아들인 공감자, 아르고스의 시간을 재정렬한 사람... 충분합니까?"

커넬은 잔을 내려놓았다. 자신의 여정이 타인에게 이렇게 세세히 알려졌다는 사실이 당혹스러웠다.

"나는 영원의 도서관을 찾고 있다."

"그래서 제가 여기 있는 거죠." 아이샤의 목소리에는 기묘한 울림이 있었다.
"당신을 그곳으로 안내하기 위해서요."

커넬은 그녀의 눈을 바라보다가 허리춤에 찬 카이런의 나침반을 쓰다듬었다.
이 낯선 땅에서 처음으로 무언가 그에게 가닿은 느낌이었다.


-


"당신의 세계에서는 마왕 뮤레칸에 대해 어떻게 가르치지요?"

지붕 없는 천문대 안에서 아이샤가 물었다.
노엠의 학문 중심지는 커다란 원형 광장을 중심으로 넓게 펼쳐져 있었다.
둥근 돔과 고대 석재로 지어진 이곳은 루어스 제국의 도서관보다 몇 배는 큰 규모였다.

"어둠과 혼돈의 근원이라고 말하지." 커넬이 벽에 걸린 별자리 지도를 살펴보며 대답했다.
"7정신을 거스른 제8의 존재. 균형을 깨뜨린 악의 화신."

아이샤의 웃음 뒤에는 슬픔이 스며있었다.

"흥미롭군요. 우리는 다르게 기억해요. 뮤레칸은 균형 그 자체였어요.
7정신이 만든 균형을 그대로 유지하려 한 자... 그래서 그들에게 반대된 겁니다."

커넬은 놀라움을 감추지 못했다. "무슨 말이지? 뮤레칸은 악마들의 왕이잖아."

"누구의 관점에서요?" 그녀가 물었다. "빛이 너무 강렬하면 그림자도 깊어지죠.
7정신의 빛이 강해질수록, 균형을 위해 어둠도 커졌어요. 자연의 이치니까요."

그녀는 천문대의 중앙에 자리한 거대한 천체 관측기를 돌렸다.
"보세요, 빛과 어둠은 항상 함께 존재합니다. 둘 중 하나가 없다면 다른 하나도 존재할 수 없어요."

그 말은 커넬의 내면 깊은 곳을 건드렸다. 수도원에서 배운 모든 가르침이 흔들렸다.
기둥 뒤로 사라지던 아이샤의 실루엣이 그의 망막에 각인되었다.

그녀는 더 깊은 곳으로 들어갔다.
커넬은 망설임 없이 그 뒤를 따랐다.

다음 방에는 그가 본 적 없는 장치들이 늘어서 있었다.
유리 관과 금속 관이 복잡하게 얽혀 무언가를 증류하는 듯했다. 연금술 장치였다.

"당신의 구마 기술은 무엇을 기반으로 하나요?" 아이샤가 물었다.

"빛의 마법, 그리고 균형의 원리지."

"그런데 악마를 쫓아내기만 하면 균형이 이루어지나요?"

커넬은 멈칫했다.
그녀의 질문이 날카로운 칼처럼 그의 확신을 베어냈다.

"우리 세계의 연금술은 모든 것이 변형될 수 있다고 가르쳐요." 아이샤가 유리 플라스크를 들어 올렸다.
안에는 붉은 액체가 담겨 있었다. "악한 것도 변형될 수 있어요. 제거하는 것보다 변형시키는 게 더 높은 수준의 마법이죠."

"구마(驅魔)와 연성(煉成)..." 커넬이 중얼거렸다.

"그렇습니다." 아이샤가 고개를 끄덕였다. "쫓아내는 것과 변형시키는 것.
당신이 이제까지 걸어온 길이 전자라면, 앞으로 걸어갈 길은 후자일지도 모르죠."

그녀는 커넬에게 양피지 두루마리를 건넸다.
그가 본 적 없는 문자로 가득했다.

"영원의 도서관으로 가는 길을 알려주는 지도입니다.
하지만 이 글자를 읽을 수 있어야 해요."

커넬은 두루마리를 펼쳐보았다. 기이한 문양과 상징들이 그를 조롱하는 듯했다.

"어떻게 읽지?"

"먼저 당신의 내면에서 답을 찾아야 해요.
지식은 밖에서 들어오는 게 아니라, 안에서 깨어나는 것이니까요."


-


달빛이 노엠의 거리를 은빛으로 물들이던 밤,
커넬은 아이샤가 마련해 준 숙소의 테라스에 홀로 앉아 있었다.

메디나 구역의 가장자리에 위치한 이 오래된 건물에서는 도시 너머로 끝없이 펼쳐진 사막이 보였다.
달빛 아래 모래 언덕들은 거대한 바다의 물결처럼 일렁였다.

카이런의 나침반이 그의 손 안에서 미약하게 떨렸다.
그것은 도시의 밖, 광활한 사막을 향해 일정하게 가리키고 있었다.

내일이면 사막 횡단이 시작된다.
그는 남겨진 시간 동안 그의 여정을 되돌아보았다.

에일린의 영혼을 달래던 순간, 포보스 신전에서 두려움과 마주하던 때,
다이애나의 슬픔이 가슴에 얼음 결정으로 맺히던 밤, 그리고 아르고스호의 시간의 미로 속에서 길을 찾던 경험.
그 모든 기억이 물결처럼 그의 의식 속에서 흘러갔다.

눈을 감고 깊이 숨을 들이마시자, 다이애나의 슬픔이 녹아내린 자리에서 새로운 감각이 솟아났다.
언어로는 형용할 수 없는 것ㅡ세상의 모든 슬픔과 기쁨, 두려움과 용기가 하나의 실타래처럼 엮여 그의 내면을 채웠다.

달이 구름에 가려지고, 테라스 위로 어둠이 내려앉았다.
커넬은 비로소 깨달았다.

빛은 어둠의 부재가 아니며, 어둠은 빛의 부재도 아니었다.
둘은 서로의 안에 공존했다.

"이제 알겠군요." 아이샤의 목소리가 어둠 속에서 들려왔다.
그녀는 어느새 그의 곁에 서 있었다. "당신은 두루마리를 읽을 준비가 됐어요."

커넬이 양피지를 다시 펼쳤을 때,
이전에는 의미 없던 상징들이 이제 그에게 말을 걸어왔다.

그것은 사막의 길과 오아시스의 위치,
그리고 그곳에 숨겨진 영원의 도서관으로 가는 비밀스러운 입구에 대해 이야기했다.

"지도는 3일 분량의 물과 식량,
그리고 사막의 밤을 견디기 위한 담요가 필요하다고 말하는군." 커넬이 중얼거렸다.

아이샤는 고개를 끄덕였다. "내일 해뜨기 전에 떠나요.
사막에서는 밤이 당신의 친구가 될 테니까."


-


"노엠에서 지금까지 그 어떤 사람도 내게 그런 질문을 한 적이 없다네."

리나가 깜짝 놀라 고개를 들었다. 몇 시간째 침묵 속에서 이야기를 듣고 있던 중이었다.
커넬 주교는 갑자기 프레임 밖으로 튀어나온 듯한 말을 던졌다.

"어떤 질문을 말씀이십니까?" 리나가 혼란스러워하며 물었다.

"왜 아이샤가 나를 기다리고 있었는지, 왜 그녀가 내 언어를 완벽하게 구사했는지에 대해서 말이다."
노인의 목소리에는 옅은 웃음기가 돌았다. "네가 지금 속으로 생각하고 있던 것과 같은 질문을."

리나는 얼굴이 붉어졌다. 정확히 그런 의문이 그녀의 머릿속을 맴돌고 있었다.

"앞으로 나아가기 전에, 그 답을 알려주겠다." 커넬 주교가 말했다.
"책을 읽다가 갑자기 첫 페이지로 돌아가는 것처럼 말이야. 때로는 그러한 도약이 필요하지."

리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커넬 주교는 계속했다.


-


사막은 살아있었다. 아침에는 팽창하고 밤에는 수축하는 거대한 생명체.

커넬과 아이샤는 낙타 두 마리를 타고 노엠을 떠난 지 하루가 지났다.
그들 주변으로는 모래만이 끝없이 펼쳐졌다. 지평선은 불분명한 선으로만 존재했고, 태양은 자비 없이 내리쬐었다.

"사막에는 비밀이 숨겨져 있어요." 아이샤가 두건 아래에서 말했다.
"무한한 허무 속에 감춰진 모든 것."

"영원의 도서관은 어떤 곳이지?" 커넬이 물었다.

"모든 지식이 보존된 장소라고 말할 수도 있고, 존재하지 않는 곳이라고도 할 수 있어요."
그녀의 대답은 수수께끼 같았다. "모래처럼 만질수록, 당신의 손가락 사이로 빠져나가는 곳이죠."

태양이 정점에 달했을 때, 그들은 낙타를 멈추고 좁은 그늘 아래서 휴식을 취했다.
커넬은 물통을 들어 목을 축였다. 천을 풀어 이마의 땀을 닦으며, 그는 저 멀리 지평선이 아른거리는 것을 보았다.

"신기루를 보는 건가?"

아이샤는 그의 질문에 대답하지 않고 나침반을 확인했다. "신기루라...
그건 무엇이 실제이고 무엇이 환상인지를 묻는 질문이에요. 당신은 어떻게 구별하지요?"

"감각을 믿을 수 없다면, 이성을 따르지." 커넬이 대답했다.

"이성도 마찬가지로 속일 수 있어요." 아이샤가 반박했다.
"당신이 정말로 신뢰할 수 있는 것은 무엇인가요?"

커넬은 잠시 생각에 잠겼다. "균형이야. 어떤 것이 자연의 균형을 깨뜨리면,
그것은 환상이거나 왜곡된 것이지."

아이샤의 눈이 반짝였다. "좋은 대답이에요. 균형이 모든 판단의 기준이 된다면,
선과 악의 구분도 달라질 수 있겠죠."

그의 이마에 주름이 졌다. "무슨 뜻이지?"

"균형을 지키는 악은 선이 될 수 있고, 균형을 깨뜨리는 선은 악이 될 수 있다는 뜻이에요."

그들은 다시 길을 나섰다.
오후의 햇살이 모래 위에 길게 그림자를 드리우는 동안, 커넬은 아이샤의 말을 곱*었다.
그의 마음속에서는 오래된 확신들이 모래성처럼 무너지고 있었다.


-


밤이 되자 사막은 완전히 다른 세계로 변했다.
뼈를 에는 듯한 추위가 그들을 덮쳤고, 별들은 가까이 다가와 그들의 머리 위를 비추었다.

그들은 작은 모래 언덕 아래에 야영지를 마련했다.
불꽃이 제공하는 소박한 온기 속에서, 아이샤는 주머니에서 작은 주머니를 꺼냈다.

"두 번째 시험입니다." 그녀가 말했다.
"이것을 마시고 당신이 보는 것을 말해주세요."

주머니에서 나온 것은 진한 초록색 차였다. 커넬은 의심스러운 눈길로 그것을 바라보았다.

"독은 아니에요." 아이샤가 웃었다. "적어도 몸에는요."

커넬은 액체를 들이켰다. 쓴맛이 혀를 강타했고, 곧이어 따뜻한 감각이 그의 몸 전체로 퍼져나갔다.
그의 시야가 흐려지다가 다시 또렷해졌을 때, 그는 구름 한 점 없는 밤하늘을 보았다.

별들이 이전과는 완전히 다른 방식으로 빛나고 있었다. 메시지를 전하려는 것처럼.

"무엇이 보이나요?" 아이샤의 목소리가 멀리서 들려왔다.

"별들이... 움직이고 있어." 커넬이 중얼거렸다.
"그들이 패턴을 그리고 있어. 멘탈로니아의 7정신... 그리고 제8의 존재..."

별들은 살아있는 존재처럼 그의 눈앞에서 춤을 추기 시작했다.
그들은 7개의 큰 별자리를 형성했고, 그 주위를 원형으로 둘러싸고 있는 어두운 공간이 보였다.
그러나 그 어둠은 단순한 부재가 아니라, 다른 별들을 품고 있는 품격 있는 어둠이었다.

"균형..." 커넬이 숨을 내쉬었다. "7정신과 뮤레칸은 서로를 완성시키는 균형의 일부였어..."

그의 시야가 다시 흐려졌다가 맑아졌을 때, 아이샤는 그를 주의 깊게 바라보고 있었다.

"당신은 두 번째 시험도 통과했어요." 그녀가 말했다.
"이제 영원의 도서관으로 가는 길을 보여드리겠습니다."

그녀는 모래 위에 복잡한 문양을 그렸다.
문양은 나선형으로 안쪽으로 회전하며 중심을 향해 가는 길을 보여주고 있었다.

"내일 이 지도대로 가면, 사흘째 되는 날 해질 무렵에 우리는 멘트 문명의 유적에 도착할 거예요.
그곳에서 도서관의 입구를 찾을 수 있어요."

커넬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의 의식은 여전히 별들이 보여준 균형의 이미지로 가득했다.


-


셋째 날, 그들은 지평선 위에 흐릿하게 솟아오른 무언가를 발견했다.
처음에는 먼지 폭풍이나 신기루로 보였으나, 가까이 다가갈수록 그것은 형체를 갖기 시작했다.

반쯤 모래에 묻힌 거대한 건축물이었다.
멘트 문명의 유적이었다.

"세스라틴." 아이샤가 경외의 목소리로 말했다. "지식의 도시라는 뜻이에요."

그들은 낙타에서 내려 모래에 반쯤 묻힌 계단을 올라갔다.
유적의 입구는 거대한 문으로 막혀 있었지만, 오랜 세월의 풍화로 틈이 생겨 있었다.

내부는 놀랍도록 시원했다. 고대의 건축가들은 끊임없이 공기가 순환하도록 설계한 것이다.
벽에는 정교한 벽화들이 그려져 있었고, 그중 일부는 커넬이 익숙하게 알고 있는 멘트 문명의 이야기들을 담고 있었다.

그러나 벽면 중앙에는 그가 한 번도 본 적 없는 장면이 그려져 있었다ㅡ
7정신과 뮤레칸이 원형으로 둘러앉아 무언가를 논의하는 모습이었다.
적대적인 대결이 아니라, 평화로운 회의였다.

"어떻게 이런 일이 가능하지?" 커넬이 의아해하며 물었다.
"뮤레칸은 멘탈로니아에 반기를 들었잖아."

"혹은 그렇게 기록된 것일 수도 있죠." 아이샤가 말했다.
"역사는 승자가 쓰는 법이니까요."

그녀는 깊숙한 홀로 그를 안내했다. 그곳에는 더 많은 벽화들이 있었고,
천장에는 정교한 천문도가 그려져 있었다. 벽면의 글자들은 서방의 언어와 달랐지만,
이상하게도 커넬은 그 의미를 직관적으로 이해할 수 있었다.

"균형의 수호자..." 그가 벽면을 따라 손가락을 움직이며 읽었다.
"뮤레칸은... 균형의 수호자였어?"

"7정신은 인간 세계에 개입하기 시작했어요." 아이샤가 설명했다.
"그들은 너무 많은 빛을 가져왔고, 자연스러운 어둠을 밀어냈죠. 뮤레칸은 그 균형을 지키려 했어요.
그가 악마가 된 것은 후대의 해석이었죠."

커넬의 세계관이 무너지는 소리가 그의 귀에 들렸다.
그의 모든 훈련, 모든 사명이 다른 시각에서 보면 전혀 다른 의미를 가질 수 있다는 사실이 그를 흔들었다.

깊은 생각에 잠겨 벽화를 바라보던 커넬은 아이샤가 사라진 것을 알아차렸다.
그의 시선이 홀 전체를 훑었으나, 그녀의 모습은 온데간데없었다.

"아이샤?" 그의 목소리가 텅 빈 공간에 울려 퍼졌다.

침묵. 그러나 멀리서 황금빛 광채가 일순간 반짝였다.
그는 본능적으로 그 빛을 향해 걸음을 옮겼다.

좁은 회랑을 지나자 발아래 세계가 펼쳐졌다. 숨이 막혔다.

거대한 원형 홀.
그러나 '홀'이라는 단어는 그 공간을 설명하기에 턱없이 부족했다.

천정은 보이지 않았고, 바닥은 끝없이 나선형으로 이어져 내려갔다.
수천 개의, 아니 셀 수 없이 많은 빛줄기가 허공을 가로질러 춤을 추고 있었다.

그 빛들은 바닥에 복잡한 문양을 그렸다가, 벽면을 타고 흘러내렸다가,
다시 허공으로 솟아올랐다. 살아있는 구조물처럼.

그리고 그 한가운데에 아이샤가 서 있었다.

더 이상 그녀는 노엠의 천체해석사가 아니었다. 흙먼지 묻은 여행복은 사라지고,
그 자리에 황금빛과 청록빛이 교차하는 갑옷 같은 예복이 그녀를 감쌌다.
이색 눈동자에서는 자연스레 빛이 흘러나왔다.

"나는 영원의 도서관의 수호자입니다."

목소리는 더 이상 한 사람의 것이 아니었다.
수천 개의 목소리가 하나로 뭉쳐 그녀의 입을 통해 울려 퍼졌다.

"그리고 당신은 오백 년 만에 이곳을 찾아온 첫 번째 방문자입니다."

커넬은 묵묵히 그녀를 바라보았다.
침묵이 때로는 천 마디 말보다 강력하다. 질문이 필요 없는 순간.

"당신의 영혼을 지켜봤습니다." 아이샤가 손을 뻗어 그를 가리켰다.

"에일린의 죽음을 안식으로 인도하는 모습을, 포보스의 두려움이 지닌 이중성을 꿰뚫는 시선을,
다이애나의 슬픔을 자신의 가슴에 담는 용기를, 아르고스호에서 시간의 흐름을 바로잡는 지혜를.
당신은 본능적으로 균형을 추구합니다. 비록 그것을 '구마'라 부를지라도."

그녀의 양손이 우아한 원을 그리며 벌어졌다.
커넬의 발아래 바닥이 물처럼 갈라지며 나선형 계단이 모습을 드러냈다.
계단은 황금빛으로 빛났지만, 아래로 이어지는 길은 칠흑 같은 어둠이었다.

"이제 영원의 도서관으로 내려갈 시간입니다."

커넬은 망설임 없이 첫 계단을 밟았다. 깊이를 가늠할 수 없는 나선 계단을 내려가는 동안,
주변은 점점 어두워졌다. 오직 아이샤의 의복에서 발산되는 미약한 빛만이 그들의 길을 비추었다.

"천년 전, " 아이샤의 목소리가 어둠을 가르며 흘러나왔다.
"나 역시 당신처럼 한 명의 탐구자였습니다. 노엠의 천체해석사이자 예연서 해독가였죠.
별들의 움직임과 균형의 원리를 연구하던 중, 영원의 도서관에 관한 전설을 발견했습니다."

계단은 끝없이 이어졌다. 커넬의 다리는 피로를 느끼지 않았다.
마치 신체의 법칙이 이곳에서는 더 이상 유효하지 않은 것처럼.

"내가 이곳에 도착했을 때, 도서관은 나에게 선택을 제안했습니다." 아이샤가 계속했다.
"수호자가 되어 영원을 살며 도서관을 지키거나, 일부의 지식을 취하고 현세로 돌아가거나."

계단의 끝에 도달했을 때, 그들 앞에는 거대한 문이 나타났다. 단순한 금속이 아니었다.
액체와 고체의 경계에 있는 듯한 물질로, 표면에는 끊임없이 변하는 문양들이 흐르고 있었다.

"당신은 어떤 선택을 했지?" 커넬이 물었다.

아이샤의 눈에 수천 년의 시간이 스쳐 지나갔다.
"나는 지식을 갈구했습니다. 그리고 지식의 대가는... 영원함이었죠."

아이샤는 문 앞에 멈춰 섰다. "이 문은 특별합니다.
수천 년 동안 단 네 명만이 열 수 있었죠. 당신이 다섯 번째입니다."

커넬은 문을 유심히 살폈다. 그 표면에는 손잡이도, 열쇠구멍도 없었다.
"어떻게 여는 거지?"

"카이런의 나침반입니다." 아이샤가 커넬의 허리춤을 가리켰다.
"우리는 그것을 '균형의 증표' 라고 부릅니다.
그 안에 담긴 진정한 힘은 당신이 아직 완전히 깨닫지 못했을 수도 있지만."

커넬은 품 안에서 나침반을 꺼냈다. 먼 곳을 가리키던 바늘이 미친 듯이 회전하다가,
갑자기 문 중앙을 가리켰다. 그는 직감적으로 나침반을 문에 가져다 댔다.

순간, 나침반과 문이 하나가 되어 빛났다. 건조한 공기를 가르는 낮은 진동음이 울렸다.
문의 표면이 물결치더니, 중앙에서부터 바깥으로 갈라지며 천천히 열렸다.

아이샤의 눈빛이 빛났다. "환영합니다, 구마사 커넬. 영원의 도서관에."


-


커넬의 눈앞에 펼쳐진 광경은 인간의 언어로 형용하기 어려웠다.

도서관은 수직과 수평의 개념을 무시한 채 끝없이 펼쳐졌다.
위로는 천문학적인 높이의 천장이 솟아있었고, 아래로는 측량할 수 없는 깊이의 나선형 서가가 이어졌다.
중력은 이곳에서 단지 하나의 제안에 불과했다. 책들은 벽을 따라, 천장을 따라, 심지어 허공에 떠다니며 존재했다.

각 층마다 셀 수 없이 많은 책장들이 원형으로 늘어서 있었고,
그 사이사이로 복잡한 통로들이 미로처럼 얽혀 있었다.
어떤 서가들은 물리적 법칙을 무시한 채 옆으로, 위로, 심지어 거꾸로 뻗어 있었다.

가장 놀라운 것은 그 안의 책들이었다.

책장마다 동물 가죽 두루마리, 나무 코덱스, 금속판, 발광하는 텍스트,
심지어 고체와 액체의 경계에 있는 기묘한 물질에 적힌 글자들까지.
모든 형태와 크기의 지식 저장소들이 이곳에 보존되어 있었다.

"이것은..." 커넬의 목소리가 떨렸다.

"모든 시간, 모든 장소의 지식입니다." 아이샤가 경건한 목소리로 말했다.
"발견된 것, 잊힌 것, 아직 발견되지 않은 것까지."

그들은 첫 번째 층계를 탐험했다. 빛의 근원은 보이지 않았지만,
공간 전체가 부드러운 황금빛으로 물들어 있었다.

때때로 그 빛은 파도처럼 일렁이며 색을 바꾸었다.
청록색, 자주색, 그리고 다시 황금색으로.

"이 구역은 멘트 문명 시대의 기록들입니다." 아이샤가 말했다.
그녀의 손이 한 서가를 향해 우아하게 움직였다. "특히 이 책장에는 당신이 찾을 만한 것이 있을 거예요."

그녀는 금색 테두리가 있는 두꺼운 책 한 권을 꺼냈다.
표지에는 '악마의 계보'라는 제목이 낯선 글자로 새겨져 있었지만, 커넬은 그 의미를 본능적으로 이해했다.

"이 책은..." 그가 책을 조심스럽게 받아들며 물었다.

"악마라 불리는 존재들의 참된 기원을 담은 문서입니다." 아이샤의 목소리에 깊은 슬픔이 묻어났다.
"서방 세계에서는 금지된 지식이죠."

커넬은 숨을 깊게 들이쉬고 책을 펼쳤다. 페이지는 그가 넘길 때마다 미묘하게 변했다.
때로는 글자가 흘러내리는 듯했고, 때로는 이미지가 살아 움직이는 듯했다.

그가 알고 있던 모든 악마의 계보, 그들의 이름과 형태, 그리고 능력이 상세히 기록되어 있었다.
그러나 그 내용은 수도원의 경전과는 판이하게 달랐다.

"불가능해..." 그가 중얼거렸다. 손가락이 페이지 위를 떨리며 움직였다.
"이 기록에 따르면, 대부분의 악마들은..."

"원래는 신이었거나 정령이었죠." 아이샤가 나지막이 말했다.
"그들 중 많은 이들이 단지 균형을 잃었거나, 인간의 공포와 오해로 악마로 낙인찍혔을 뿐이에요."

커넬은 특정 페이지에서 움직임을 멈췄다.
그곳에는 그가 에일린의 마을에서 마주한 죽음의 서판에 관한 기록이 있었다.
서판은 원래 휴식과 안식의 증명이었음이 적혀 있었다.

"나는... 내가 평생..." 그의 말은 혼란 속에 흐려졌다. 손이 떨리며 책장을 붙잡았다.

아이샤는 재촉하지 않았다. 시간은 이곳에서 다른 방식으로 흘렀다.
그가 필요한 만큼 생각할 시간을 주었다.

커넬은 계속해서 페이지를 넘겼다.

포보스 신전에서 그가 마주한 공포의 형상들, 다이애나의 저택에서 만난 슬픔의 영혼들,
심지어 아르고스호의 시간의 왜곡까지.
그가 악마의 소행이라 믿었던 모든 현상들이 사실은 균형을 잃은 자연의 힘이었음을 책은 말하고 있었다.

7정신과 마왕 뮤레칸의 관계에 관한 부분에서는, 어떻게 뮤레칸이 원래는 균형의 수호자였는지,
어떻게 7정신이 인간 세계에 과도하게 간섭하자 그가 어둠의 힘으로 균형을 회복하려 했는지가 서술되어 있었다.

"그렇다면..." 커넬의 눈에 깊은 혼란이 스쳤다. "구마사로서의 내 임무는..."

"어쩌면 구마가 아니라 중재였을지도 모릅니다." 아이샤의 목소리에는 연민이 깃들어 있었다.
"악마를 쫓아내는 것이 아니라, 균형을 회복시키는 것이었을지도요."

책을 덮은 커넬의 손에서 힘이 빠졌다.
그의 얼굴에 떠오른 표정은 배신당한 충격, 분노, 깨달음, 그리고 묘한 해방감이 뒤섞인 것이었다.
평생의 신념이 모래성처럼 무너져 내리는 소리가 그의 귀에 울렸다.

"내 모든 행동은... 헛된 것이었나?" 그의 목소리는 갈라졌다.

"그렇지 않아요." 아이샤가 그의 어깨에 손을 얹었다.
그녀의 손길은 수천 년의 지혜를 담고 있었다.

"당신은 항상 본능적으로 균형을 추구했어요. 에일린을 안식으로 이끌었고,
포보스의 진정한 본질을 이해했으며, 다이애나의 슬픔을 받아들였고, 시간의 흐름을 바로잡았죠.
그것은 모두 균형을 향한 여정이었어요. 다만 당신은 그 행위를 '구마'라 불렀을 뿐이죠."

그녀의 말은 폭풍우 속의 등대와 같았다.
커넬의 혼란스러운 마음에 작은 빛줄기가 스며들었다.

"다시 읽어보세요." 아이샤가 책을 가리켰다.

커넬은 '악마의 계보'를 다시 펼쳤다. 이번에는 책이 다른 부분을 보여주었다.
각각의 '악마'가 원래 어떤 존재였는지, 어떻게 변질되었는지,
그리고 진정한 균형을 되찾기 위해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를 알려주고 있었다.

시간이 흘렀다. 책의 페이지는 끝없이 이어졌고, 커넬은 점점 더 깊이 빠져들었다.
그가 알던 세계와 완전히 다른 관점, 완전히 새로운 이해가 그의 의식을 재구성했다.

마침내 그는 고개를 들었다. 그의 눈빛이 달라져 있었다.
더 깊고, 더 넓게 보는 눈빛이었다.

"왜 나인가?" 그가 아이샤를 응시하며 물었다.
"왜 모든 사람 중에 나를 선택했지?"

아이샤의 이색 눈동자가 신비롭게 빛났다.
호박색 눈은 과거를, 청록색 눈은 미래를 비추는 듯했다.

"당신 안에는 특별한 균형이 있어요.
빛과 어둠을 동등하게 품을 수 있는 영혼. 매우 드문 자질이죠."

그녀는 커넬을 또 다른 층계로 안내했다. 그곳에는 살아 움직이는 듯한 지도가 바닥에 그려져 있었다.
빛과 어둠, 불과 물, 바람과 대지가 서로 얽히고 흐르는 패턴이 지도 위를 흘러 다녔다.

"마이소시아 대륙의 균형 지도입니다. 모든 원소와 마나의 흐름을 보여주죠."

지도 위에는 황금빛 선들이 마치 강물처럼 흐르고 있었다.
대부분의 선은 조화롭게 흘렀지만, 특정 지역에서는 왜곡되거나 막혀 있었다.

"보세요, 이곳." 아이샤가 지도의 한 부분을 가리켰다. 루어스 제국의 심장부였다.
"균형이 심각하게 깨져있어요. 이건 최근에 일어난 일이에요."

커넬은 지도를 유심히 살폈다. 루어스 중심부에서는 빛의 에너지가 비정상적으로 강하게 소용돌이치고 있었고,
그 영향으로 주변 지역의 어둠이 기형적으로 짙어지고 있었다.

"이건..." 그의 목소리에 공포가 스며들었다.

"누군가 의도적으로 균형을 깨뜨리고 있어요." 아이샤의 목소리가 어두워졌다.
"그리고 그 중심에는 당신이 잘 아는 인물이 있을 가능성이 높아요."

커넬의 심장이 빠르게 뛰었다. 머릿속에 한 얼굴이 떠올랐다. "세바스티안..."

"당신의 스승, 세바스티안 대주교가 위험한 상황에 처해 있어요.
그가 변화하고 있어요."

"어떻게? 그는... 그는 항상 빛의 수호자였어. 어떻게 그가..."

"때로는 선한 의도가 가장 위험한 법이죠." 아이샤의 목소리가 부드럽게 울렸다.
"지나친 빛은 깊은 그림자를 만들어요. 당신은 이제 선택을 해야 합니다. 이 지식과 함께 어떻게 하시겠어요?"

커넬은 다시 균형 지도를 바라보았다. 루어스에서 시작된 불균형이 서서히 전체 대륙으로 퍼져나가고 있었다.
그것은 서서히 자라나는 질병처럼 보였다.

"서방으로 돌아가야 해." 그가 결심한 듯 말했다. "균형을 회복시켜야 해."

아이샤의 눈에 만족감이 번졌다.
"현명한 선택이에요. 하지만 먼저, 당신이 가져갈 것이 있어요."

그녀는 그를 도서관의 더 깊은 곳으로 안내했다.
그들은 여러 층계를 지나 마침내 도서관의 심장부에 도착했다.

그곳에는 빛으로 만들어진 듯한 작은 육각형 방이 있었고,
중앙에는 황금빛 받침대 위에 한 권의 책이 놓여 있었다.

"이것은 '균형의 서'입니다." 아이샤의 목소리가 경외로 가득 찼다.
"멘트 문명 이전부터 존재해 온 책이에요. 진정한 균형 회복의 비밀이 담겨 있죠."

커넬이 다가가자 책이 스스로 열렸다.
황금빛 페이지 위로 글자들이 물결치듯 나타났다 사라졌다.

그가 바라볼 때마다 다른 내용을 보여주는 듯했다. 어떤 페이지에서는 복잡한 의식에 관한 설명이,
다른 페이지에서는 깊은 철학적 사유가, 또 다른 페이지에서는 단순한 수수께끼가 그를 기다리고 있었다.

"이 책은 당신의 필요에 따라 형태를 바꿉니다." 아이샤가 설명했다.
"당신이 알아야 할 것만을 보여주죠."

커넬은 조심스럽게 '균형의 서'를 들어올렸다.
전혀 무게가 느껴지지 않았다. 책은 그의 손 안에서 따뜻하게 빛났다.

"이것을 가져가도 되는 거야?"

"도서관이 당신을 선택했어요. 책 스스로가 당신을 원한 거죠."

커넬은 깊이 고개를 숙였다. "어떻게 이런 귀중한 선물에 보답해야 할지..."

"균형을 회복시켜 주세요." 아이샤가 단순하게 말했다.
"그것이 우리의 유일한 소망입니다."

책을 품에 안은 커넬이 주변을 둘러보았다.
도서관의 무한한 깊이가 그를 끌어당기는 듯했다.

"아직 더 보여줄 것이 있습니다." 아이샤의 목소리가 깊어졌다.
"도서관의 진정한 심장부를 ** 않고는 떠날 수 없어요.
그곳에는 당신이 반드시 만나야 할 존재가 기다리고 있습니다."

그녀는 커넬을 또 다른 나선형 계단으로 안내했다.

이번 계단은 이전과 달리 더 깊고, 더 오래된 느낌이었다.
빛의 강도가 점점 강해졌고, 계단을 내려갈수록 주변 공기가 진동하는 듯했다.

"그 존재는 누구지?" 커넬이 물었다.

아이샤는 미소지었다. "도서관 그 자체이자, 모든 지식의 근원이죠. 곧 알게 될 거예요."

그들은 계단을 계속 내려갔다. 커넬은 자신이 균형의 또 다른 심층으로 들어가고 있음을 느꼈다.
'균형의 서'가 그의 품 안에서 미약하게 떨렸다.


-


노년의 커넬 주교는 이야기를 마치고 깊은 숨을 내쉬었다.

작은 방에는 이제 단 하나의 촛불만이 남아 있었다.
황금빛으로 타오르는 '지식의 불꽃'이었다. 그 불꽃은 방 안의 모든 것에 따뜻한 광채를 드리웠다.

리나는 숨 막히는 침묵 속에 앉아 있었다. 그녀는 자신이 몇 시간 동안 거의 움직이지 않았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녀의 다리는 저려왔지만, 그것보다 더한 충격이 그녀의 마음을 뒤흔들고 있었다.

"영원의 도서관이..." 그녀의 목소리가 떨렸다.
"정말 존재한다는 말씀이신가요?"

노인은 깊이를 알 수 없는 미소를 지었다. "존재와 비존재의 경계는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모호하단다.
어쩌면 도서관은 존재하면서 동시에 존재하지 않는 곳일지도 모르지."

그는 천천히 일어나 방 구석에 있는 오래된 트렁크로 다가갔다.
잠금장치를 열고 그 안에서 작은 책 한 권을 꺼냈다. 낡고 바랜 표지의 얇은 책이었다.
그러나 어떤 빛을 받으면 황금빛으로 빛나는 듯했다.

"이것이 내가 그날 도서관에서 가져온 '균형의 서'란다."

리나는 놀라움에 숨을 헐떡였다. 커넬 주교가 그녀에게 책을 건넸다. 리나가 책을 받아들자,
살아있는 생명체처럼 따뜻하게 느껴졌다. 그리고 이상하게도, 이 책이 그녀를 인식하는 것 같았다.

"이 책은..." 리나는 덜덜 떨리는 손으로 책을 펼쳤다. 페이지는 백지였다가,
순간 황금빛 글자들이 물결처럼 나타나기 시작했다. 그 글자들은 그녀가 이해할 수 없는 언어로 쓰여 있었다.

"저는..." 그녀가 당혹스러워하며 주교를 쳐다보았다. "글자를 읽을 수 없어요."

노인은 고개를 끄덕였다. "아직은 그럴 수 없는 것이 당연하지.
책은 준비된 자에게만 그 비밀을 드러내니까."

리나는 책을 천천히 덮었다. "그럼 왜 저에게 보여주신 건가요?"

"다음 이야기를 들으면 알게 될 거야." 커넬 주교의 목소리가 부드러워졌다.

"내일은 도서관의 심장부에서 내가 만난 존재에 대한 이야기란다.
그 다음으로는 '희생의 불꽃'에 관한 이야기가 기다리고 있지.
이 모든 것을 들으면, 네가 왜 여기 있는지, 왜 내가 너에게 이 모든 것을 말하고 있는지를 이해하게 될 거야."

리나는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녀의 손에 들린 책,
그리고 방 안에 남은 마지막 세 개의 촛불이 말없이 그녀를 바라보고 있었다.

특히 그 중 하나,
붉은빛이 감도는 촛불이 그녀의 시선을 끌었다. '희생의 불꽃'.

"지금은 휴식이 필요하겠구나." 노인이 말했다.
"내일 아침, 다시 이야기를 계속하자. 도서관의 심장부에서 내가 마주한 존재에 대해서."

리나는 고개를 숙이고 방을 나섰다. 그녀의 품에 안긴 '균형의 서'는 계속해서 미약한 온기를 내뿜었다.
마치 그녀의 심장과 박동을 맞추는 것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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