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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의 마을 세오
[순례자] - 에필로그
518 2025.06.08. 23:37

순례자, 그림자의 언약. 14


에필로그. 두 빛의 서약

























커넬의 이야기가 끝났다.

서재에 흘러든 침묵은 살아있었다.
숨 쉬고 있었고, 맥박치고 있었다.

커넬의 마지막 말이 공기 중에 스며들면서 모든 것이 제자리를 찾아가는 중이었다.
오랜 여행을 마치고 집에 도착한 사람이 느끼는 그런 안도감이 서재 전체를 감쌌다.

리나는 감히 움직일 수 없었다.

지금 이 순간이 너무나 완전해서, 조금이라도 건드리면 깨어질 것 같았다.
모든 이야기가 가슴속에서 천천히 뿌리를 내리고 있었다.
각각이 하나의 별이 되어 그녀 안에서 새로운 우주를 그려가고 있었다.

커넬을 바라보았다.
변해 있었다. 정확히는 원래 모습을 되찾은 것 같았다.

한쪽 눈의 금빛이 늦은 오후 햇살처럼 따뜻하게 흘러내렸고,
다른 쪽 눈의 은빛은 초승달처럼 차분하게 빛났다.
두 빛이 만나는 지점에서 무언가 새로운 것이 탄생하고 있었다.

완전함이었다.

빛도 어둠도 아닌,
둘이 하나가 된 완전함이었다.

“주교님.”

목소리가 떨렸다. 목소리가 나오지 않았다. 입술만 움직였을 뿐이었다.
하지만 커넬은 알아들었다. 그의 두 눈이 각각 다른 방식으로 미소를 지었다.

금빛 눈은 따뜻하게,
은빛 눈은 깊게.

“많이 놀랐구나.”

커넬이 말했다. 목소리도 변해 있었다. 더 깊어졌다.
천 년 된 나무의 나이테에서 나오는 소리 같았다.

“정말… 정말 그런 일이 있으셨던 건가요?”

“있었다.”

간단한 대답이었다.
하지만 그 안에 모든 것이 담겨있었다.

커넬이 자신의 손을 바라보았다. 손등의 혈관을 따라 미세한 은빛 선들이 흐르고 있었다.
살아있는 강처럼, 살아있는 번개처럼 움직이고 있었다.

“아프셨을 텐데요.”

“아팠지.”

커넬이 고개를 끄덕였다.

“온몸이 찢어지는 것 같았다.
하지만 동시에 꿰매지는 기분이기도 했다. 평생 반쪽으로 살았다는 걸 깨달았을 때의…”

말이 끝나지 않았다.
어떤 말로도 그 경험을 완전히 설명할 수는 없었다.

리나가 조심스럽게 손을 뻗어 커넬의 손등에 닿았다.
차가웠다. 동시에 뜨거웠다. 얼음과 불이 공존하는 불가능한 온도였다.

“이상해요.”

리나가 속삭였다.

“차갑기도 하고 뜨거우기도 해요.”

“균형이란 모순의 포옹이다.”

커넬이 말했다.

“서로 반대되는 것들이 싸우지 않고 춤추는 것이다. 미워하지 않고 사랑하는 것이다.”

리나가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이해했다고 할 수는 없었다.
하지만 무언가 중요한 진실을 들었다는 건 알 수 있었다.

“그럼 이제 주교님은 완전해지신 건가요?”

“완전하다는 게 뭘까?”

커넬이 되물었다.
늘 그랬듯이 질문으로 질문에 답했다.

“음… 더 이상 실수하지 않는 것? 모든 걸 아는 것?”

“그렇다면 나는 아직도 불완전하다.”

커넬이 웃었다.
쓸쓸한 웃음이었지만 동시에 기쁜 웃음이기도 했다.

“여전히 실수할 것이고, 여전히 모르는 게 산더미다. 다만…”

창밖을 바라보았다. 새벽이 밝아오고 있었다.
어둠과 빛이 하늘 끝에서 만나 아름다운 경계선을 그리고 있었다.

“다만 실수하는 나를 미워하지 않게 되었다.
모르는 게 많은 나를 부끄러워하지 않게 되었다.”

리나의 가슴이 먹먹해졌다.
뭔가 깨달음의 순간이 다가오는 걸 느꼈다.

“저도 언젠가는…”

“너에게도 때가 올 것이야.”

커넬이 부드럽게 말했다.

“네 그림자와 만날 때가. 하지만 두려워하지 마라.”

“왜요?”

“그림자는 적이 아니니까. 네가 아직 사랑하지 못한 너 자신의 일부일 뿐이다.”

커넬이 첫 번째 촛불을 바라보며 말을 이었다.

“에일린도 처음에는 자신의 죽음을 받아들이지 못했다.
죽음이 끝이라고 생각했으니까. 하지만 죽음이 변화일 뿐이라는 걸 깨달았을 때…”

“평안을 찾을 수 있었죠.”

리나가 말을 이어받았다.

“그렇지.”

커넬이 두 번째 촛불로 시선을 옮겼다.

“포보스도 마찬가지였다. 자신이 두려움의 신이 된 걸 부끄러워했어.
하지만 두려움도 필요한 감정이라는 걸 받아들였을 때 본래 모습을 되찾을 수 있었다.”

세 번째, 네 번째, 다섯 번째, 여섯 번째 촛불들을 차례로 바라보며 계속했다.

“다이애나는 자신의 슬픔을, 타르시우스는 자신의 광기를,
자날은 자신의 고독을, 세바스티안은…”

목소리가 잠깐 떨렸다.

“세바스티안은 자신의 한계를 받아들였다.”

침묵이 흘렀다. 깊고 무거운 침묵이었다.
하지만 압박으로 다가오지 않았다. 오히려 포근했다.

“제 그림자는 뭘까요?”

리나가 조심스럽게 물었다.

“스스로 찾아야 한다.”

커넬이 대답했다.

“하지만 힌트는 줄 수 있다.
네가 가장 숨기고 싶어 하는 것, 가장 부끄러워하는 것이 바로 네 그림자다.”

리나가 자신의 마음속을 들여다보기 시작했다. 깊고 어두운 곳까지.
그러자 조금씩 보이기 시작했다. 흐릿하지만 분명히 있었다.

“저는…”

목소리가 작아졌다.

“저는 혼자 남겨지는 게 무서워요.
모든 사람이 저를 떠날까 봐. 그래서 항상 완벽하려고 해요.”

“그것도 네 그림자의 일부일 것이다.”

커넬이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전부는 아닐 거다. 그림자는 생각보다 복잡하니까.”

“언제 만날 수 있어요?”

“준비가 되면 저절로 만나게 되지. 억지로는 안 된다.”

커넬이 일어나서 책상으로 갔다. 서랍을 열고 두꺼운 가죽 책을 꺼냈다.
표지에는 제목이 없었다. 하지만 책 전체에서 오래된 지혜와 깊은 슬픔의 냄새가 동시에 풍겨 나왔다.

“이건 세바스티안의 구마서다. 그리고 내 평생의 기록이기도 하다.”

책을 리나에게 건네며 말했다.

“제목을… ‘그림자의 사도’라고 하자.”

리나가 조심스럽게 책을 받아 들었다. 무게가 이상했다.
가벼우면서 동시에 무거웠다. 깃털 같으면서 동시에 바위 같았다.

첫 장을 펼치자 세바스티안의 글씨가 나타났다.

‘진정한 구마사는 악마를 쫓아내는 자가 아니라, 균형을 창조하고 지키는 자다.’

그 아래에는 커넬의 글씨가 있었다.

‘균형은 사랑에서 시작되고 용서로 완성된다.’

그리고 맨 아래에는 더 최근의 글씨가 있었다.

‘완전한 균형은 그림자를 받아들일 때 이루어진다.’

“이것도 주교님이 쓰신 건가요?”

“그래. 그 날의 내가 썼다.”

커넬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림자와 하나가 된 후에.”

리나가 책장을 넘겼다. 온갖 도표와 그림들이 가득했다.
하지만 기술서가 아니었다. 각 페이지마다 살아있는 경험이 숨 쉬고 있었다.

“이 모든 걸 배워야 하나요?”

“배우는 게 아니야.”

커넬이 말했다.

“경험하는 거다. 책은 지도일 뿐이야.
진짜 길은 네가 만들어가야 한다.”

리나가 조심스럽게 물었다.

“그 시절의… 그 때의 모든 갈등들은?”

커넬의 표정이 잠깐 굳어졌다.
하지만 곧 평온해졌다.

“지나간 바람과 같다.”

간단한 대답이었다.
하지만 그 안에 모든 것이 담겨있었다.

“모든 폭풍은 언젠가 잠잠해진다.”

“정말로요?”

“복수를 선택하지 않았을 때 모든 것이 변할 수 있었다.”

커넬이 제7촛불을 바라보았다.

“증오 대신 이해를, 분노 대신 연민을 선택했을 때.”

리나가 깊은 안도의 숨을 내쉬었다.

“그럼 이제 평화로운 세상이 된 건가요?”

“평화롭다. 하지만 지루하지는 않아.”

커넬이 웃었다.

“평화란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 것이 아니야.
일어나는 모든 일을 사랑으로 받아들일 수 있는 것이다.”

“제가 앞으로 할 일은?”

“네가 만날 상황들을 균형으로 이끄는 것이다.”

커넬이 작은 가죽 가방을 꺼냈다.

“첫 번째 여행을 떠날 시간이다.”

리나의 가슴이 두근거리기 시작했다.

“어디로요?”

“서쪽 끝에 레시라는 마을이 있지. 그곳에 이상한 일이 일어나고 있다고 한다.”

“어떤 일이요?”

“밤마다 마을 사람들이 똑같은 꿈을 꾸는, 과거의 꿈을.”

“무서운 꿈인가요?”

“그건 네가 가서 확인해야 할 일이다. 타인의 말로는 진실을 알 수 없으니.”

가방을 건네며 말했다.

“필요한 것들이 들어있다. 하지만 진짜 중요한 건 네 안에 있어.”

“도구는 없나요?”

“없다.”

커넬이 단호하게 말했다.

“나침반이 없어도 마음이 방향을 안다.
시간을 재는 도구가 없어도 현재가 영원이다. 진정한 힘은 외부에서 오지 않아.”

리나가 고개를 끄덕였다.
가슴속에서 무언가 뜨거운 것이 타오르기 시작했다.

“무서워요.”

솔직하게 말했다.

“혼자 가는 게.”

“혼자가 아니다.”

커넬이 리나의 가슴을 가리켰다.

“네 안에 우리 모두가 있다.
에일린도, 포보스도, 이사벨라도, 타르시우스도, 자날도, 세바스티안도, 그리고 나도.”

정말 그런 것 같았다.
리나는 느낄 수 있었다. 가슴속에서 여러 존재들이 함께 숨 쉬고 있다는 것을.

“실수해도 괜찮나요?”

“실수하지 않는 사람은 배우지 못해.”

커넬이 부드럽게 웃었다.

“나도 수없이 실수했다. 하지만 모든 실수가 지금의 나를 만들었지.”

리나가 일어섰다.
책을 품에 안고, 가방을 어깨에 메었다.

“이제 가야겠어요.”

“그렇지.”

커넬이 첫 번째 촛불 앞으로 다가갔다.

“떠나기 전에 작별 인사를 해야겠다.”

“에일린.”

커넬이 조용히 말했다.

“리나를 부탁한다.”

촛불이 한 번 크게 흔들렸다.

두 번째, 세 번째, 네 번째, 다섯 번째,
여섯 번째 촛불들 앞에서도 같은 인사를 했다.

마지막으로 제7촛불 앞에 섰다.

“이것은 아직 끄면 안 된다.”

커넬이 말했다.

“네가 돌아올 때까지 계속 타오를 것이다.”

“감사합니다, 주교님.”

리나가 깊이 고개를 숙였다.

“모든 것에 대해서.”

“고마워할 것 없다. 강물이 바다로 흘러가듯 자연스러운 일이다.”

리나가 서재 문을 향해 걸어갔다.
문 앞에서 한 번 더 돌아보았다.

커넬이 서 있었다.
일곱 개의 촛불에 둘러싸인 채로. 완전한 균형을 이룬 모습으로.

“잘 다녀오겠습니다.”

“잘 다녀와라. 그리고 기억해라.”

커넬의 목소리가 축복처럼 울렸다.

“넌 혼자가 아니야.”


-


리나가 문을 열었다.
복도에 새벽의 첫 빛이 황금색으로 흘러들고 있었다.

한 발 내디뎠다.
그리고 뒤돌아** 않고 걸어갔다.

발소리가 점점 멀어져 갔다. 결의에 찬 발소리였다.
새로운 전설을 향해 떠나는 젊은 구마사의 발소리였다.

커넬이 혼자 남았다.

하지만 외롭지 않았다. 충만했다.
긴 여정을 마친 사람의 그런 충만함이었다.

창밖에서 말발굽 소리가 들렸다.
리나가 떠나는 소리였다. 점점 작아지는 소리를 들으며 커넬은 깊은 만족감을 느꼈다.

모든 것이 완성되었다.

아니다.
완성이라는 말이 맞을까.

완성이란 끝을 의미하는데, 이건 끝이 아니었다.
변화였다. 새로운 형태로의 변화였다.

아벨 대성당의 종이 울렸다.
새벽 기도 시간이었다. 커넬이 서재를 나섰다.

복도를 걸으며 뒤돌아보니 일곱 개의 촛불이 조용히 타오르고 있었다.
제7촛불이 유독 밝게 빛나고 있었다.

리나를 기다리고 있는 것 같았다.

예배당에서 다른 성직자들과 함께 기도를 드렸다.
여러 목소리가 하나가 되어 찬송을 부를 때, 커넬은 진정한 평화를 느꼈다.

개인과 공동체의 균형이었다.

기도가 끝나고 일상이 시작되었다.
평범한 일상이었다. 하지만 모든 순간이 의미로 가득했다.

점심을 먹고, 책을 읽고, 젊은 성직자들과 대화하고, 정원을 산책했다.
특별할 것 없는 하루였다. 하지만 그 특별하지 않음이 특별했다.

저녁이 되어 서재로 돌아왔다.
촛불들이 여전히 타오르고 있었다. 제7촛불은 더욱 밝아진 것 같았다.

리나가 잘 지내고 있다는 신호 같았다.

창밖을 바라보았다.

별들이 하나둘씩 나타나고 있었다.
각각의 별이 다르지만 함께 하나의 밤하늘을 이루고 있었다.

균형이었다.
다양성과 통일의 균형이었다.

의자에 앉아 하루를 되돌아보았다.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은 하루였다.
하지만 그것이 바로 평화였다.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아도 충만한 하루였다.

세바스티안이 그리워졌다. 오랜만에 그리워졌다.
하지만 슬프지 않았다. 그가 어딘가에서 미소 짓고 있다는 걸 알 수 있었다.

‘잘했다, 커넬.’

세바스티안의 목소리가 들리는 것 같았다.

‘네 덕분에 모든 게 가능했다.’

‘아닙니다. 우리가 함께했기 때문입니다.’

마음으로 화답했다.

시간이 흘렀다. 며칠이 지나고, 몇 주가 지났다.
리나에게서는 아무 소식이 없었다.

하지만 걱정되지 않았다.
제7촛불이 계속 밝게 타오르고 있었기 때문이다.

잘 지내고 있다는 뜻이었다.

매일매일이 평범했다. 하지만 평범함 속에 깊은 의미가 스며들어 있었다.
기도하고, 독서하고, 대화하고, 산책하고, 명상하고. 반복되는 일상이었지만 지루하지 않았다.

매 순간이 선물 같았다.

어느 날 저녁,
평소와 다름없이 서재에서 책을 읽고 있는데 제7촛불이 갑자기 더 밝게 타오르기 시작했다.

무슨 일인가 싶어 촛불을 바라보는데,
순간 알 수 있었다.

리나가 자신의 그림자와 만났구나.

멀리 떨어진 곳에서 일어나는 일이었지만 느낄 수 있었다.
그녀가 중요한 순간을 겪고 있다는 것을.

며칠 후, 제7촛불이 다시 평상시대로 돌아왔다.
하지만 뭔가 달랐다. 더 안정적이었다. 더 깊었다.

리나가 성공했구나.

기쁨이 가슴에 차올랐다. 하지만 동시에 아쉬움도 있었다.
이제 정말로 그녀가 독립했다는 뜻이었으니까.

하지만 그것이 자연스러운 일이었다.
모든 스승이 겪어야 하는 일이었다. 제자가 스승을 넘어서는 순간을.

세바스티안도 그런 기분이었을까.
내가 독립했을 때.

아마도 그랬을 것이다.
기쁨과 아쉬움이 섞인 복잡한 감정이었을 것이다.

더 많은 시간이 흘렀다.
계절이 바뀌고, 또 바뀌었다. 커넬의 일상은 계속되었다. 평온하고 의미 있는 일상이.

가끔 다른 성직자들이 조언을 구하러 왔다. 커넬은 언제나 친절하게 대답해 주었다.
하지만 긴 이야기는 들려주지 않았다. 아직 때가 아니었다.

언젠가 진짜로 준비된 누군가가 올 것이다.
리나처럼 간절한 눈빛을 한 누군가가.

그때까지 기다릴 것이다.


-


어느 날 밤,
꿈을 꾸었다. 이상한 꿈이었다.

넓은 들판에 서 있었다. 끝없이 펼쳐진 들판이었다.
그리고 그 들판 곳곳에 사람들이 서 있었다.

에일린이 있었다. 포보스도 있었다.
이사벨라, 타르시우스, 자날, 세바스티안도 모두 있었다. 그리고 리나도 있었다.

모두가 미소 짓고 있었다. 평안한 미소였다.

“고생했다.”

세바스티안이 말했다.

“이제 쉬어도 된다.”

“아직 아닙니다.”

커넬이 대답했다.

“아직 할 일이 남았습니다.”

“뭔가?”

“기다리는 일입니다.. 다음 사람이 올 때까지.”

“언제까지?”

“필요한 만큼.”

꿈에서 깨어났다.
새벽이었다. 창밖으로 첫 빛이 스며들고 있었다.

제7촛불이 여전히 타오르고 있었다.
리나를 기다리면서. 아니, 리나가 언젠가 가르칠 누군가를 기다리면서.

무한한 순환이었다. 아름다운 순환이었다.

일어나서 세수를 하고 옷을 갈아입었다.
새로운 하루가 시작되었다.

예배당에서 기도를 드렸다. 다른 성직자들과 함께.
여러 목소리가 하나로 합쳐져 거대한 화음을 이루었다.

커넬은 그 화음 속에서 자신의 자리를 찾았다.
튀지 않고, 묻히지도 않는 자리를. 균형의 자리를.

기도가 끝나고 햇빛이 색유리창을 통해 들어왔다.
무지갯빛으로 흩어지는 빛을 바라보며 커넬은 생각했다.

모든 색깔이 다르지만 함께 아름다운 스펙트럼을 이룬다.
모든 존재가 다르지만 함께 완전한 우주를 이룬다.

이것이 균형이다.

예배당을 나와 정원을 걸었다. 꽃들이 피어있었다. 각기 다른 색깔과 향기를 가진 꽃들이.
하지만 모두 같은 햇빛을 받고, 같은 바람을 마시고 있었다.

한 젊은 수사가 다가왔다.

“주교님, 안녕하십니까.”

“질문이 하나 있습니다.”

커넬이 걸음을 멈췄다. 젊은 수사의 눈을 바라보았다. 진실을 갈구하는 눈빛이었다.
하지만 아직은 아니었다. 아직 간절함이 부족했다.

“뭔가?”

“어떻게 하면 주교님처럼 평온해질 수 있을까요?”

“평온하다고 생각하느냐?”

“네. 항상 그렇게 보이세요.”

커넬이 미소를 지었다.

“평온함은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 것이 아니다.
일어나는 모든 일을 받아들일 수 있는 것이다.”

“어떻게요?”

“그건… 긴 이야기지.”

커넬이 말했다.

“언젠가 진짜 질문을 하게 되면 들려주겠네.”

“진짜 질문이요?”

“그렇다. 지금 네 질문은 머리로 하는 질문이다.
언젠가 가슴으로, 영혼으로 하는 질문을 하게 될 때가 올 것이다.”

젊은 수사가 고개를 갸우뚱했다.

“그때까지는 네가 스스로 답을 찾아가야 한다.”

커넬이 다시 걷기 시작했다. 젊은 수사가 뒤따라왔다.

“그럼 언제쯤 그런 질문을 하게 될까요?”

“모른다. 사람마다 다르기 때문에.”

“힌트라도 주실 수는 없나요?”

커넬이 걸음을 멈추고 젊은 수사를 바라보았다.

“힌트?”

잠시 생각했다.

“고통이 찾아올 것이다. 네가 감당할 수 없을 만큼 큰 고통이.
그때 네가 어떤 선택을 하느냐에 따라 진짜 질문이 태어날 것이야.”

젊은 수사의 얼굴이 어두워졌다.

“고통이요?”

“두려워하지 말게. 고통은 적이 아니네. 스승이지.”

커넬이 다시 걷기 시작했다.

“고통 없이는 성장도 없다. 상처 없이는 지혜도 없다.”

저녁이 되어 서재로 돌아왔다.
일곱 개의 촛불이 여전히 타오르고 있었다.

창밖을 바라보았다.
어둠이 내리고 있었다. 하지만 무서운 어둠이 아니었다. 포근한 어둠이었다.

별들이 하나둘씩 나타나기 시작했다.
각각의 별이 작은 빛을 발하며 광활한 우주를 밝히고 있었다.

커넬도 그런 별 중 하나였다. **만 소중한 빛을 발하는 별.

의자에 앉아 하루를 돌아보았다. 평범한 하루였다.
특별할 것 없는 일상이었다. 하지만 그 평범함이 특별했다.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은 하루. 아무도 구하지 않은 하루.
아무런 기적도 일으키지 않은 하루. 하지만 충만한 하루였다.

이것이 진정한 평화였다.
거창한 것이 아니라 이런 소소한 평범함이.


-


시간이 더 흘렀다.
몇 달이 지나고, 몇 년이 지났다. 커넬의 일상은 계속되었다. 변함없이, 평온하게.

가끔 제7촛불이 특별히 밝게 타오를 때가 있었다.
그럴 때마다 커넬은 알 수 있었다. 리나가 어디선가 누군가를 돕고 있다는 것을.

기쁜 일이었다. 자랑스러운 일이었다.

언젠가, 특별한 일이 일어났다. 제7촛불이 갑자기 두 개로 나뉘는 것이었다.
하나는 원래대로 타오르고, 다른 하나는 새로 생겨났다.

커넬이 깜짝 놀라서 촛불을 바라보았다.

‘리나가 제자를 받았구나.’

직감적으로 알 수 있었다.
멀리서 새로운 스승과 제자가 만났다는 것을.

순환이 계속되고 있었다.
아름다운 순환이.

커넬이 두 개의 촛불을 바라보며 미소를 지었다.
이제 정말로 모든 것이 완성되었다. 자신의 역할이 진짜로 끝났다.

하지만 끝이 아니라 변화였다.
새로운 형태로의 변화였다.

그날 밤, 커넬은 깊고 평안한 잠에 들었다. 꿈속에서 모든 사람들을 만났다.
에일린, 포보스, 이사벨라, 타르시우스, 자날, 세바스티안, 리나, 그리고 아직 만나지 못한 미래의 모든 사람들까지.

모두가 함께 춤추고 있었다. 시간을 초월한 춤을. 공간을 넘나드는 춤을.
빛과 어둠이, 기쁨과 슬픔이, 삶과 죽음이 하나가 되어 추는 영원한 춤을.

그리고 그 춤의 중심에는 사랑이 있었다.
조건 없는, 무한한 사랑이.

커넬이 꿈속에서 웃었다. 이제 모든 것이 완전했다.

아침이 왔다. 새로운 하루가 시작되었다.
커넬이 일어나 창밖을 바라보았다.

두 개의 촛불이 나란히 타오르고 있었다.
스승과 제자의 촛불이. 과거와 미래를 잇는 촛불이.

순환은 계속되고 있었다. 앞으로도 계속될 것이었다.

커넬이 평안한 미소를 지으며 새로운 하루를 맞았다.
오늘도 평범한 하루가 될 것이었다. 하지만 그 평범함 속에 무한한 의미가 스며들어 있을 것이었다.


-


모든 것이 제자리에 있었다.

커넌이 창밖을 바라보았다.
저 멀리 피에트 산맥의 능선이 하늘과 맞닿은 곳에서, 새벽빛이 조용히 번지고 있었다.

두 개의 촛불이 나란히 타오르고 있었다.

하나는 과거를 기억하고,
하나는 미래를 꿈꾸고 있었다. 그 사이에서 현재가 숨 쉬고 있었다.

바람이 불어왔다. 창문 너머로,
아직 쓰여지지 않은 이야기들을 실어 나르며.

커넬은 눈을 감았다.

그리고 들었다. 어디선가 들려오는 발소리를.
새로운 순례자의, 새로운 그림자와 만날 준비가 된 누군가의.

아직 멀었지만, 분명히 오고 있었다.

시간은 충분했다.





















Fi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