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뮤니티

게임실행 및 홈페이지 이용을 위해 로그인 해주세요.

시인의 마을 세오
「秘」박테리아 선장
555 2025.06.14. 22:34

秘, 루어스의 비밀 문서고















서고 위치: 제3심층 서해서가 청동함

문서 인장: 「물방울과 불꽃」「구리 테두리」

문서 제목: 신들을 거스른 항해자 - 박테리아 선장의 영원한 항해

보관 연대: 세오력 167년 춘분기

발견 경위: 뤼케시온 등대지기의 유품 상자

문서 보존: 바닷바람에 절인 듯 소금기 배임

열람 제한: 글을 아는 자 이상

관련 문서: 「나무와 뿌리」 인장 동방 항로 괴담집





[문서고 관리인 욘의 주석]


등대지기 마르투스가 죽기 전 남긴 증언록이다.

이 기록의 진위 여부를 둘러싸고 학자들 사이에 논란이 있지만,
마르투스 사후 실제로 뤼케시온의 조수 현상이 정상화되었다는 점에서 완전히 무시할 수는 없는 자료다.
특히 시간 마법의 부작용에 대한 구체적 묘사는 금기 마법 연구에 중요한 단서를 제공한다.



-----



뤼케시온 등대지기 마르투스의 증언



물때가 바뀌는 새벽 네 시였다. 조수간만의 차가 가장 큰 시각이다.
물이 바다로 빠져나가며 갯벌을 드러내는 순간, 안갯속에서 배 한 척이 천천히 모습을 드러냈다.

삼십 년 간 이 등대를 지켜오면서 수천 척의 배를 봤지만,
그 배는 처음 본 순간부터 다르다는 걸 알 수 있었다.

다른 배들은 물 위에 떠 있으면서 파도에 따라 위아래로 흔들렸는데,
그 배는 마치 공중에 그려진 그림처럼 완전히 정지해 있었다. 바다에 그림자도 만들지 않았다.

돛은 바람을 받고 있는 것처럼 부풀어 있었지만 바람 소리는 전혀 들리지 않았다.
뿐만 아니라 배가 물을 가르는 소리도, 밧줄이 삐걱거리는 소리도, 선원들이 움직이는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완전한 침묵 속에서 그 배만이 안개 사이로 미끄러지듯 움직이고 있었다.

망원경을 들어 자세히 들여다보니 더욱 기이했다.
갑판 위에 한 사람이 서 있었는데, 그는 나를 정확히 바라보고 있었다.

그 거리에서는 불가능한 일이었다. 등대에서 항구까지는 족히 한 식경은 되는데,
그 정도 거리에서 사람의 눈동자를 보는 건 말이 안 됐다.

하지만 분명히 그는 나를 보고 있었다.

그리고 천천히 손을 들어 인사를 건넸다. 그 순간 나는 온몸에 소름이 돋았다.
얼굴은 고래 왁스처럼 창백했고, 눈동자는 바다보다 깊고 어두웠다.

등대의 불빛이 갑자기 깜빡거렸다. 삼십 년 간 한 번도 그런 적이 없었는데.
등대의 불꽃은 특별한 고래기름으로 만들어져 한 번 켜면 한 달은 꺼지지 않는다.

바람이 아무리 세게 불어도,
비가 아무리 쏟아져도 꺼진 적이 없었다.

그런데 그 배가 나타나는 순간부터 불빛이 불안정해지기 시작했다.
무언가가 등대의 빛을 흔들고 있는 것처럼.

나는 급히 등대 아래로 내려갔다. 혹시 기름에 문제가 있나 확인하려고.
하지만 기름통은 가득 차 있었고, 심지도 멀쩡했다. 그런데 불꽃만 계속 흔들리고 있었다.

“등대지기님.”

뒤에서 목소리가 들렸다.
돌아보니 아까 배에서 본 그 남자가 등대 안에 서 있었다.

언제 들어온 건지 전혀 몰랐다. 등대로 올라오는 길은 하나뿐이고,
그 길에는 자갈이 깔려 있어서 누가 와도 소리가 난다. 더구나 문은 안쪽에서 걸쇠를 걸어놨는데.

“어떻게…”

“박테리아라고 합니다.”

그가 손을 내밀었다. 악수를 하는데 이상했다.
체온은 있었지만 맥박이 전혀 느껴지지 않았다. 손목에 피가 흐르지 않는 것 같았다.

그리고 그의 손바닥에서는 바닷물 냄새가 났다.
생선 비린내가 아니라 깊은 바다 밑바닥의 냄새였다.

“차 한 잔 드시겠습니까?”

나는 왜 그런 말을 했는지 모르겠다.
평생 낯선 이를 집에 들인 적도 없고, 밤중에 찾아온 사람에게 차를 대접한 적도 없었다.

하지만 그 순간 오래된 친구를 만난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정확히는 그래야 한다는 강박 같은 게 들었던 것 같다.

그는 고개를 끄덕이고 내 뒤를 따라 거실로 들어왔다.
그런데 이상하다. 발소리가 전혀 들리지 않았다.

이 방은 바닥이 나무라서 누가 걸으면 삐걱거리는 소리가 나는데,
그에게서는 아무 소리도 나지 않았다.

차를 끓이는 동안 그는 의자에 앉아 조용히 주위를 둘러봤다.
그의 시선이 머무는 곳마다 묘한 한기가 감돌았다. 겨울 바다의 찬 바람이 실내로 들어온 것 같았다.

“이 차는 어디서 나는 겁니까?”

차를 건네주자 그가 물었다.
찻잔을 입술에 댔지만 실제로 마시지는 않는 것 같았다. 목구멍이 움직이지 않았다.

“저 너머 오렌에서 자라는 풀입니다. 이름은 모르지만 어부들이 가끔 따다 주고 가죠.
바다에서 오래 일하면 입 안이 짜지는데, 이 차를 마시면 좀 나아진다고 해서.”

“바다 짠맛을.” 그가 중얼거렸다.
“나도 한때는 그 맛을 없애고 싶어 했는데.”

찻잔을 다시 입에 댔지만 여전히 차는 줄어들지 않았다.
찻잔에 구멍이 뚫려 있어서 차가 계속 새어 들어오는 것 같았다.

“이 등대는 언제부터 있었습니까?”

“제 할아버지가 지으셨으니까… 족히 백 년은 됐을 겁니다.”

“그럼 아시겠군요. 백 년 전 이 바다에서 무슨 일이 있었는지.”

나는 고개를 저었다. 할아버지는 그 시절 이야기를 극도로 꺼리셨다.
어렸을 때 몇 번 물어봤지만 “잊어야 할 일들”이라며 절대 말씀해주지 않으셨다.
그리고 돌아가시기 전에 “절대 알려하지 말라”는 유언을 남기셨다.

“모르시는군요.” 박테리아가 쓸쓸하게 웃었다.
“그럼 뤼케시온의 물때가 왜 이상한지도 모르시겠네요.”

“그건 지형 때문이라고 들었는데요.”

“아닙니다. 시간 때문입니다.”

갑자기 등대의 불이 더 심하게 깜빡거렸다.
동시에 찻잔들이 미세하게 떨리기 시작했다.

“백 년 전, 이 바다에서 한 남자가 금기된 마법을 썼습니다.
시간의 흐름을 거꾸로 되돌리는 마법이었죠.”

박테리아의 목소리가 낮아졌다.
등대의 불빛이 불안정해질수록 그의 모습도 흐릿해지는 것 같았다.

“시간을 되돌리는 마법이라니… 그런 게 가능한 일인가요?”

“불가능합니다. 하지만 시도는 할 수 있죠. 그리고 실패하면…”

그가 창밖을 바라봤다. 안개가 더 짙어지고 있었다.

“시간이 뒤틀립니다. 과거와 현재가 뒤섞이고, 죽은 자와 산 자의 경계가 흐려지죠.
그래서 이 바다의 물때가 하루에 네 번씩 바뀌는 겁니다.
시간이 정상적으로 흐르지 못하고 앞뒤로 출렁거리고 있거든요.”

나는 소름이 돋았다. 갑자기 등대 밖에서 모든 소리가 사라졌다.
파도 소리도, 바람 소리도, 갈매기 울음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완전한 적막이 흘렀다.

“그 마법사가 누구였는지 아십니까?”

박테리아가 나를 똑바로 봤다. 그의 눈동자 속에서 뭔가 번뜩였다.

“왜 제 이름이 박테리아인지 궁금하지 않으셨습니까?”

생각해보니 정말 이상한 이름이었다. 박테리아. 들어본 적 없는 낯선 이름이었다.
어느 지방의 말인지도 모르겠고, 무슨 뜻인지도 알 수 없었다.

“제 본명은 박테리온입니다.
박테리온 아르고스. 백 년 전 그 마법사였습니다.”

찻잔이 손에서 떨어질 뻔했다.

“불가능합니다. 백 년 전이라면…”

“죽었어야 하죠. 맞습니다. 실제로 죽었습니다.”

그가 웃었는데, 그 웃음 속에 백 년의 외로움과 절망이 담겨 있었다.

“하지만 시간 마법은 제가 예상한 대로 작동하지 않았습니다.
죽은 사람을 되살리는 대신, 죽은 저를 완전히 죽지 못하게 만들었거든요.
썩지 않는 시체처럼, 끈질기게 이 세상에 붙어있게 했습니다.
그래서 사람들이 저를 박테리아라고 부르기 시작했죠. 죽지도 못하는 괴물이라는 뜻으로.”

“그럼 지금 당신은…”

“죽었지만 살아있습니다. 살아있지만 죽어있고요.”

박테리아가 자신의 가슴을 가리켰다.

“심장은 뛰지 않지만 의식은 있습니다. 숨은 쉬지 않지만 말은 할 수 있고요.
음식도 먹지 않지만 배고프지도 않습니다. 잠도 자지 않지만 피곤하지도 않고요.”

그가 일어나 창가로 걸어갔다.
역시 발소리가 나지 않았다. 공기를 밟고 걷는 것 같았다.

“가장 끔찍한 건, 이 바다를 떠날 수 없다는 겁니다. 마법이 실패한 이 지점에 영원히 묶여 있거든요.
백 년 동안 같은 바다를, 같은 하늘을, 같은 별들을 바라보며 살고 있습니다.”

“그런데 왜 배를 타고 다니는 겁니까?”

“습관입니다. 그리고… 희망 때문이기도 하고요.”

“희망이요?”

박테리아가 자신의 배를 바라봤다.
안갯속에서도 그 배만은 선명하게 보였다.

“언젠가는 이 저주를 풀 방법을 찾을 수 있을 거라는.
그래서 계속 이 바다를 헤매고 있습니다. 백 년째 같은 항로를, 같은 희망을 품고.”

그의 목소리에 깊은 피로가 묻어있었다.
백 년의 무게가 고스란히 느껴졌다.

“그런데 최근 들어… 정확히는 삼 년 전부터 이상한 일이 생기기 시작했습니다.”

“무슨 일입니까?”

“배에 사람들이 타기 시작한 겁니다.”

박테리아가 돌아봤다.
그의 얼굴에 복잡한 감정이 스쳤다.

“죽을 때가 된 사람들이요.
병들어 죽어가거나, 사고를 당해 죽을 운명인 사람들이 배를 찾아옵니다.
제가 그들을 불러낸 것처럼.”

“어떻게 그런 사람들을 알아보는 겁니까?”

“냄새로 압니다. 죽음의 냄새가 나거든요.”

박테리아가 코를 킁킁거렸다.

“달콤하면서도 역겨운, 꽃이 썩는 것 같은 냄새입니다. 한 번 맡으면 절대 잊을 수 없는 냄새죠.
그리고 그 냄새가 진해질수록 죽음이 가까워진 겁니다.”

소름이 돋았다.
나는 무의식 중에 자신의 몸 냄새를 맡아봤다.

“하지만 이상한 건, 그들이 모두 자발적으로 온다는 겁니다.
억지로 데려가는 게 아니라요. 그들은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안도하는 것 같아요.”

“왜 그럴까요?”

“배에서는 고통스럽지 않게 죽을 수 있거든요.
평화롭게, 꿈을 꾸듯이. 마지막 순간에 미소를 지으면서 눈을 감습니다.”

박테리아의 목소리가 떨렸다.

“그리고 저는… 그들의 생명력을 조금씩 받습니다.
그래서 이 상태를 유지할 수 있는 거죠.”

“그럼 당신은 다른 사람의 죽음으로 버티는 겁니까?”

박테리아의 어깨가 떨렸다.
고개를 숙이더니 한참 동안 말이 없었다.

“그렇습니다. 제가 괴물이 된 거죠.”

목소리가 갈라졌다.

“아무리 그들이 자발적으로 왔다고 해도, 아무리 편안하게 죽는다고 해도,
결국 저는 다른 사람의 죽음을 먹고사는 존재가 된 겁니다.”

잠시 침묵이 흘렀다.
바깥에서는 여전히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시간이 멈춘 것 같았다.

“알 수 없는 것은… 그들이 모두 제게 감사해한다는 겁니다.
죽기 전에 반드시 고맙다고 말해요. ‘이제 편안해질 수 있어서 고맙다’라고.”

“무슨 뜻일까요?”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확실한 건, 그들이 제 배에서 보내는 마지막 시간이 행복해 보인다는 겁니다.
두려워하지도 않고, 후회하지도 않아요.”

박테리아가 다시 자리에 앉았다. 의자가 삐걱거리지 않았다.
그의 무게가 의자에 전달되지 않는 것 같았다.

“그런데 한 달 전부터 더욱 이상한 일이 일어나고 있습니다.”

“무엇입니까?”

“죽은 사람들이 다시 나타나기 시작했습니다. 제 배에서 죽었던 사람들이요.”

“유령으로 말입니까?”

“아닙니다. 살아있는 사람으로요. 하지만 예전과는 완전히 달라져서.”

“어떻게 달라졌습니까?”

박테리아의 표정이 복잡해졌다.

“기억이 없습니다. 자신이 누구인지, 어디서 왔는지, 어떻게 죽었는지 아무것도 기억하지 못해요.
갓 태어난 아이처럼 순수해졌어요.”

“그럼 완전히 다른 사람이 된 건가요?”

“그런 것도 아닙니다. 성격이나 버릇, 말투 같은 건 그대로예요.
하지만 과거에 대한 기억만 깨끗하게 사라진 거죠.”

박테리아가 잠시 말을 멈췄다가 다시 입을 열었다.

“그런데 한 가지만은 생생하게 기억합니다.”

“무엇을요?”

“배에서 본 것들을요. 바다 저편에 있는 것들을.”

나는 숨을 죽이고 들었다.

“그들은 모두 같은 말을 합니다. 바다 끝에 거대한 문이 있다고.
그리고 그 문 너머로 다른 세계가 보인다고요.”

“다른 세계라니요?”

“시간이 거꾸로 흐르는 세계입니다.
죽은 자가 살고, 산 자가 죽는 세계. 슬픔이 기쁨이 되고, 이별이 만남이 되는 곳이라고 해요.”

박테리아의 목소리가 떨렸다.

“그리고 그 세계에서는… 제가 행했던 마법이 성공했다고 합니다.”

“성공했다고요?”

“네. 죽은 사람이 되살아났다고 합니다.”

“누가 되살아났다는 겁니까?”

박테리아가 오랫동안 침묵했다. 창밖의 안개가 더욱 짙어졌다.
그러다 조용히, 간신히 들릴 정도로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제 딸입니다.”

“딸이요?”

“엘리아. 열두 살에 열병으로 죽었습니다.”

박테리아의 목소리가 완전히 갈라졌다. 백 년 된 상처가 다시 벌어지는 것 같았다.

“제가 시간 마법을 쓴 이유가 바로 그것이었습니다.
딸을 되살리려고. 엘리아가 죽던 그 순간으로 시간을 되돌려서 병을 고쳐주려고 했던 거죠.”

그의 손이 심하게 떨렸다.
찻잔을 움켜쥐었지만 찻잔은 깨지지 않았다.

“병이 심해지는 걸 지켜보면서도 아무것도 할 수 없었습니다.
의사들은 손을 놓았고, 약초도 소용없었고, 기도도 통하지 않았어요.
그래서 마지막 수단으로 금기 마법에 손을 댄 거였습니다.”

눈물이 그의 뺨을 타고 흘렸다.
투명했지만 바닷물처럼 짤 것이다.

“하지만 실패했습니다. 시간은 돌아가지 않았고,
엘리아는 되살아나지 못했어요. 대신 저만 이런 꼴이 됐죠.”

“그런데 다른 세계에서는 성공했다는 겁니까?”

“그렇다고 합니다. 제 딸이 살아있다고.
건강하게, 행복하게. 이제 꽃다운 처녀가 되었을 거라고 해요.”

박테리아가 일어났다.
창밖의 배가 천천히 움직이기 시작했다.

“그래서 저는 그 세계로 가려고 합니다.”

“어떻게요?”

“문을 열면 됩니다. 하지만…”

박테리아가 말을 멈췄다. 얼굴이 더욱 어두워졌다.

“큰 대가를 치러야 합니다.”

“어떤 대가입니까?”

박테리아가 나를 똑바로 봤다.
그의 눈에 깊은 고민이 가득했다.

“이 세계의 시간을 완전히 뒤틀어야 합니다.
문을 열려면 엄청난 시간의 힘이 필요한데, 그 힘을 얻으려면…”

그가 숨을 깊이 들이쉬었다.
하지만 실제로는 숨을 쉬지 않는 것 같았다.

“이 지역 모든 사람의 시간을 빨아들여야 합니다.
과거와 현재, 미래가 뒤섞이면서 많은 사람이 혼란에 빠질 거예요.”

“얼마나 많은 사람입니까?”

“뤼케시온 전체. 어쩌면 더 넓은 지역까지도.”

나는 경악했다.
뤼케시온에는 수만 명이 살고 있었다.

“그럼 그 모든 사람이 피해를 본다는 뜻입니까?”

“죽지는 않습니다. 하지만 시간이 뒤섞이면서 기억이 뒤바뀔 거예요.
어떤 사람은 갑자기 아이가 되고, 어떤 사람은 순식간에 늙어버릴 거예요.
과거의 일이 현재에 일어나고, 미래의 일이 과거에 일어나고…”

박테리아의 목소리가 점점 작아졌다.

“그리고 그 혼란 속에서 많은 사람이 길을 잃을 거예요.
자신이 누구인지, 어디에 있는지, 무엇을 해야 하는지 알지 못하게 될 거예요.”

“그런 끔찍한 일을…”

“저도 알고 있습니다.” 박테리아가 고개를 숙였다.
“저 때문에 무고한 사람들이 고통받게 될 거라는 걸.”

“그런데도 하려고 하는 겁니까?”

박테리아가 오랫동안 대답하지 않았다.
그저 창밖의 자신의 배만 바라봤다.

“모르겠습니다. 백 년 동안 혼자 있다 보니 판단이 잘 안 서요.
다른 사람들의 고통과 제 딸을 저울질하는 게 옳은 일인지.”

“혼자서 그런 큰 결정을 내리기에는 너무 무겁지 않습니까?”

“그래서 당신에게 이야기하는 겁니다.”

박테리아가 나를 봤다.
그의 눈에 간절함이 보였다.

“누군가에게 말하고 싶었어요.
백 년 만에 처음으로 솔직하게. 그리고 조언을 구하고 싶었고요.”

나는 잠시 생각했다. 이런 거대한 문제에 대해 조언한다는 게 과연 옳은 일일까.
하지만 그의 절박함을 외면할 수도 없었다.

“제가 감히 조언을 드릴 자격이 있을지 모르겠지만…”

“말씀해 보세요.”

“포기하시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박테리아가 놀란 표정을 지었다.

“왜 그렇게 생각하십니까?”

“따님을 사랑하시는 마음은 이해합니다.
하지만 그 사랑이 다른 사람들의 고통을 정당화할 수는 없다고 생각해요.”

나는 조심스럽게 말을 이어갔다.

“그리고… 진정으로 사랑한다는 건 때로는 놓아주는 것이기도 하잖아요.”

박테리아의 눈에서 눈물이 더 많이 흘렸다.

“놓아준다는 게… 무슨 뜻입니까?”

“따님이 정말 다른 세계에서 행복하게 살고 있다면, 그걸로 족하지 않을까요?
굳이 아버지가 그 세계로 가야 할 이유가 있을까요?”

박테리아가 말없이 나를 바라봤다.

“오히려 따님 입장에서는…
아버지 때문에 다른 사람들이 고통받는다는 걸 알면 괴로워하지 않을까요?”

“엘리아는… 착한 아이였어요.”

박테리아의 목소리가 떨렸다.

“개미 한 마리도 밟기 싫어했죠.
다친 새를 보면 울면서 집으로 데려와서 치료해 주곤 했어요. 그런 아이가…”

그가 말을 멈췄다.

“그런 아이가 다른 사람들의 고통을 대가로 아버지를 만나고 싶어 할 리 없겠죠.”

“그렇게 생각합니다.”

박테리아가 창가로 다시 걸어갔다.
그의 배가 조금씩 항구에서 멀어지고 있었다.

“하지만 백 년 동안 그 아이만 생각하고 살았어요.
다시 만날 수 있다는 희망만으로 버텨왔는데…”

“그 희망이 헛된 건 아니었잖아요.
다른 세계에서라도 따님이 행복하게 살고 있다는 걸 확인하셨으니까.”

“그것만으로도 족해야 한다는 뜻입니까?”

“네. 부모의 사랑이란 게 원래 그런 거 아닐까요? 자식이 행복하면 그걸로 충분한.”

박테리아가 한참 동안 바다를 바라보더니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당신 말이 맞는 것 같아요. 엘리아라면 분명 그렇게 말했을 거예요.
‘아빠, 다른 사람들을 괴롭히면서까지 나를 만나러 오지 마. 나는 여기서 행복해’라고.”

그의 목소리에 체념과 동시에 안도감이 섞여 있었다.

“그럼 결정하신 건가요?”

“아직 마음이 흔들려요. 하지만 당신 말을 들으니… 엘리아의 목소리가 들리는 것 같아요.”

박테리아가 문 쪽으로 걸어갔다.

“내일 새벽에 최종 결정을 내릴 겁니다.”

“어떤 방식으로요?”

“문을 열지, 아니면 이 저주를 끝낼지.”

“저주를 끝낸다는 건…”

“완전히 사라지는 겁니다. 이번에는 정말로 죽는 거죠.”

박테리아가 문 앞에서 잠시 멈춰 서더니 뒤돌아봤다.

“제가 백 년 전에 했던 선택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세요?”

“어떤 선택 말입니까?”

“딸을 되살리려고 금기된 마법을 쓴 것.”

나는 신중하게 대답했다.

“잘못된 선택이었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이해할 수 있는 선택이기도 해요.”

“무슨 뜻입니까?”

“사랑하는 사람을 잃는다는 건 견디기 힘든 일이니까요.
그 순간에는 아무것도 제대로 생각할 수 없죠. 하지만 지금은 다르잖아요.
백 년의 시간 동안 충분히 생각할 기회가 있었으니까.”

박테리아가 고개를 끄덕였다.

“맞아요. 그때는 정말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어요.
오직 엘리아를 되살려야 한다는 생각뿐이었죠.”

“지금은 어떠세요?”

“이제는… 조금 더 많은 것들이 보여요. 제 딸도, 다른 사람들도.”

그가 문을 열었다. 바깥은 여전히 안개가 자욱했다.

“내일 아침에 답을 알 수 있을 겁니다.”

“어떻게요?”

“만약 해가 평소처럼 떠오르면 제가 올바른 선택을 한 거고…”

박테리아가 잠시 말을 멈췄다.

“그리고 만약 해가 뜨지 않는다면 제가 결국 이기적인 길을 택한 거겠죠.”

“저는 해가 뜰 거라고 생각해요.”

“왜 그렇게 확신하세요?”

“오늘 밤 당신과 대화하면서 느꼈거든요.
당신은 이미 답을 알고 있어요. 다만 용기가 필요했을 뿐이죠.”

박테리아가 쓸쓸하게 웃었다.

“용기라… 백 년 동안 살면서 가장 어려운 용기네요.”

“가장 숭고한 용기이기도 하고요.”

“그렇게 생각해요?”

“네. 자신의 욕망을 포기하고 다른 사람들을 위해 희생하는 것보다 숭고한 게 어디 있겠어요.”

박테리아가 안갯속으로 한 걸음 내디뎠다.

“오늘 밤이 제게는 진짜 마지막 밤일 거예요.”

“왜요?”

“어떤 선택을 하든 이 모습으로는 더 이상 존재할 수 없거든요.
문을 열면 다른 세계로 가야 하고, 포기하면 완전히 소멸하고.”

그의 모습이 안갯속에서 흐려지기 시작했다.

“그동안… 정말 외로웠어요.”

“이제는 외롭지 않으실 거예요.”

“왜 그렇게 생각하세요?”

“따님이 기다리고 있을 테니까요. 저 세상에서든, 이 세상에서든.”

박테리아의 목소리가 점점 멀어졌다.

“고마워요. 백 년 만에 처음으로… 누군가와 진짜 대화를 나눌 수 있었어요.”

“저야말로 소중한 이야기를 들려주셔서 고맙습니다.”

“당신 같은 사람이 더 많았다면… 저도 이런 선택을 하지 않았을 텐데.”

그의 목소리가 거의 들리지 않을 정도로 작아졌다.

“고마웠습니다.”

“저야말로…”

안개가 완전히 그를 삼켰다.
나는 창가에서 한참 동안 그가 사라진 곳을 바라봤다.

그의 배도 천천히 안갯속으로 사라졌다. 처**터 없었던 것처럼.

그날 밤 나는 전혀 잠을 이루지 못했다. 계속 창밖을 바라보며 새벽을 기다렸다.
박테리아가 어떤 선택을 할지 궁금했고, 동시에 두려웠다.

자정이 지나고,
새벽 두 시가 지나고, 세 시가 지났다.
동쪽 하늘이 희끄무레하게 밝아지기 시작했다.

그리고 다섯 시 삼십 분.
해가 떠올랐다.

평소와 똑같이,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붉은 태양이 수평선 위로 천천히 올라오면서 바다를 황금빛으로 물들였다.
안개도 서서히 걷혔다. 갈매기들이 울기 시작했고, 파도 소리도 다시 들렸다.

나는 깊은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박테리아가 올바른 선택을 한 것이다.

해가 완전히 떠오른 후, 나는 급히 등대를 점검했다.
밤새 깜빡거리던 불빛이 어떻게 됐는지 확인하고 싶었다.

놀랍게도 등대의 불은 이제 완전히 안정되어 있었다.
평소처럼 꺼지지 않고 환하게 타오르고 있었다.

항구로 내려가 보니 더욱 놀라운 일이 벌어져 있었다.
어부들이 웅성거리며 무언가를 이야기하고 있었다.

“무슨 일입니까?”

나는 가장 나이 많은 어부에게 물었다.

“이상하네, 마르투스. 오늘 밤 물때가 완전히 바뀌었어.”

“어떻게요?”

“하루에 네 번씩 바뀌던 게 이제 두 번만 바뀐다고. 다른 바다처럼 제대로 말이야.”

나는 가슴이 두근거렸다. 박테리아의 말이 사실이었던 것이다.

“그런데 진짜 이상한 건…”

늙은 어부가 주머니에서 무언가를 꺼냈다.

“이게 내 그물에 걸려 있더라고.”

편지 한 통이었다. 겉봉에 “마르투스에게”라고 쓰여 있었다.

나는 손을 떨며 편지를 받아 들고 조심스럽게 뜯었다.

*마르투스*

*당신과의 대화 덕분에 올바른 선택을 할 수 있었습니다.*

*백 년 동안 잘못된 희망에 매달려 있었다는 걸 깨달았어요.
딸을 다시 만나고 싶다는 마음은 여전히 간절하지만,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이 있다는 걸 알게 됐습니다.*

*당신이 말씀하신 대로, 진정한 사랑은 때로 놓아주는 것이겠죠.*

*저는 이제 진정으로 죽을 수 있게 되었습니다. 백 년 만에 처음으로 평안한 마음으로.*

*엘리아도 이제 진정으로 자유로워질 수 있을 거예요. 아버지에 대한 걱정이나 죄책감 없이.*

*감사합니다. 당신이 아니었다면 저는 끝까지 잘못된 길을 걸었을 거예요.*

*박테리온 아르고스*

추신 : 뤼케시온의 물때는 이제 정상으로 돌아갈 겁니다. 제가 만든 시간의 뒤틀림이 사라졌거든요.
그리고 가끔 안개 낀 새벽에 아이 웃음소리가 들린다면, 그건 엘리아가 저를 부르는 소리일 거예요.
이제 함께 갈 수 있게 되었다며 기뻐하는.

편지를 다 읽고 나니 눈물이 흘렸다.
그의 마지막 선택이 얼마나 어려웠을지 상상이 됐다.

그날 이후 정말로 뤼케시온의 물때가 정상으로 돌아왔다.
하루에 두 번씩만 바뀌게 되었고, 어부들도 이제 예측 가능한 조업을 할 수 있게 됐다.

박테리아의 배는 다시는 나타나지 않았다. 하지만 그가 약속한 대로,
때때로 안개 낀 새벽에 바다에서 아이의 웃음소리가 들린다.

어부들은 그것이 엘리아의 웃음소리라고 말한다.
아버지와 함께 저 세상으로 떠나면서 내는 행복한 웃음소리라고.

나도 그 말을 믿는다.

일주일 후, 나는 박테리아가 마지막으로 앉았던 의자에 작은 촛불을 켜놨다.
그의 영혼이 평안히 쉬기를 바라는 마음에서였다.

그리고 매일 밤 그 촛불을 바라보며 생각한다.
진정한 용기란 무엇인지, 진정한 사랑이란 무엇인지에 대해.

박테리아는 백 년의 고통 끝에 마침내 답을 찾았다.
사랑한다는 것은 때로 놓아주는 것이며, 용기라는 것은 때로 포기하는 것이라는 답을.



------



[문서고 관리인 욘의 기록]


마르투스는 그 후로도 십 년을 더 살았다.
매일 밤 등대의 불을 밝히며 박테리아 선장을 생각했다고 한다.

그리고 평화로이 세상을 떠날 때, 그의 손에는 작은 흰 조개껍질이 쥐어져 있었다.
언제부터 갖고 있었는지는 아무도 모른다.

박테리아 선장의 이야기는 이후 뤼케시온의 전설이 되었다.

사람들은 어려운 선택의 기로에 설 때마다 이 이야기를 떠올린다.
“박테리아 선장이라면 어떤 선택을 했을까?” 하면서.

실제로 그 후 뤼케시온에서는 이상한 일들이 완전히 사라졌다.
시간이 정상적으로 흐르기 시작하면서 사람들의 삶도 평온해졌다.
그리고 무엇보다, 사람들이 서로를 더 배려하게 됐다고 한다.

진정한 용기는 때로 포기하는 데 있고,
진정한 사랑은 때로 놓아주는 데 있다는 것을 박테리아 선장이 몸소 보여준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