秘, 루어스의 비밀 문서고
서고 위치: 최심층 금서실 흑요석함
문서 인장: 「해골과 장미」「황금 테두리」
문서 제목: 고문 받는 천사 - 순수함이 남긴 증언
보관 연대: 멘트력 1300년대 후반 어둠달
발견 경위: 붕괴된 마법탑 최하층 봉인실
문서 보존: 화마를 겪은 듯 간신히 보존
열람 제한: 고위 성직자
관련 문서: 「물방울과 불꽃」인장 창조술 금서목록
[문서고 관리인 욘의 주석]
이 문서는 멘트 문명 최후의 대혼란 시기에 기록된 것으로,
당시 아틀란툼 왕국 현자회 소속 검시관 엘리아스 벤 모르간의 비밀 연구 일지다.
젊은 시절 창조술 마법사로 활동하다가 양심의 가책으로 검시관으로 전향한 후,
자신이 직접 창조에 관여했던 괴물들의 유해를 해부하며 속죄하려 했던 것으로 보인다.
이 문서는 그러한 참회의 기록이자 동시에 창조술의 진정한 본질을 파헤친 유일무이한 증언이다.
원본의 대부분이 소실되었으나 남은 부분들을 복원하여 이어 붙인 결과,
한 인간의 깊은 고뇌와 창조된 생명체들의 비극이 생생히 드러난다.
특히 마지막 부분의 기록들은 읽는 이의 영혼을 뒤흔들 만큼 강렬하다.
이 문서의 내용이 극도로 충격적이니,
충분한 각오 없이는 열람을 권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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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틀란툼 왕국 현자회 해부학 연구실,
마스터 엘리아스 벤 모르간의 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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멘트력 1300년대 후반 어둠달 초승
촛불이 세 개째 타고 있다.
밤이 깊어갈수록 일의 무게가 더해진다.
해부대 위에 누워있는 크로더.
28년 전, 내가 피에 굶주린 젊은 창조술사였을 때 직접 만들어낸 괴물 중 하나다.
아틀란툼과 히네스의 국경 분쟁에서 사용되었던 일곱 마리 중 마지막으로 생존한 개체이기도 하다.
길이 여덟 자에 높이 넉 자. 늑대의 민첩함과 표범의 은밀함,
그리고 악령의 잔혹함을 하나로 엮어낸 완벽한 살상 기계. 그렇게 만들었다.
하지만 지금 앞에 누운 모습에서 다른 것을 본다.
더 이상 살상 기계가 아니라… 한때 살아 숨 쉬었던 존재를. 한때 꿈꾸었을지도 모를 존재를.
첫 번째 절개를 가할 때 손이 떨렸다.
28년 동안 수백 구의 시체를 다뤄왔건만 이번만큼은 달랐다.
칼날이 가죽을 뚫고 들어가는 순간, 나의 과거를 베어내는 듯한 느낌이었다.
이상한 일이 일어났다. 이미 사흘이나 지난 시체였건만, 절개 부위에서 희미한 연기가 피어올랐다.
검은 연기가 아니라 은은한 푸른빛의 연기였다. 영혼이 몸을 떠나는 모습처럼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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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둠달 사흘
등골을 분리하는 작업을 시작했다.
창조술의 핵심부다. 모든 조종 마법의 중추가 되는 부분이니까.
예상대로 각 척추뼈마다 복잡한 각인들이 새겨져 있다.
고대 드래곤 언어로 된 속박의 주문들이다.
‘절대복종’, ‘의심 금지’, ‘자유의지 박탈’ 같은 끔찍한 내용들이 뼈 속 깊숙이 새겨져 있다.
척추뼈 중앙에 박혀있는 수정 알갱이들이 눈에 띈다.
별빛처럼 깜박이는 작은 보석들은 무엇인가?
처음엔 단순한 마법 보조 장치로 생각했는데, 자세히 관찰해 보니 아니다.
기억을 저장하고 있다.
용기를 내어 첫 번째 수정을 이마에 대고 명상에 들었다.
그 순간…
숲이었다.
깊고 어두운 숲.
달빛도 별빛도 닿지 않는 완전한 어둠 속에서 달리고 있었다.
내가 아니다, 크로더가 달리고 있었다.
사냥감의 냄새가 코끝을 스친다.
인간의 냄새. 땀과 두려움과 절망의 냄새. 몸속 깊은 곳에서 사냥 본능이 꿈틀댄다.
추적하라. 잡아라. 죽여라.
동시에 다른 감정도 있었다. 설명할 수 없는 허전함.
가슴 한구석에 구멍이 뚫린 듯한 공허함. 사냥감을 추적하면서도 끊임없이 드는 생각이 있었다.
‘나는 지금 무엇을 하고 있는가?’
의문이 깊어지기 전에 목에 새겨진 속박의 각인이 작동한다.
의심은 사라지고 오직 명령만 남는다. 추적하라. 죽여라.
명상에서 깨어났을 때 온몸이 식은땀으로 젖어있었다.
알았다. 이들에게도 의문이 있었다는 것을. 비록 즉시 억압당했지만, 분명히 존재했던 의문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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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둠달 엿새
연구를 계속하면서 끔찍한 진실들이 드러나고 있다.
두개골을 열었을 때 발견한 뇌의 구조가 충격적이다.
자연적인 뇌가 아니라 인위적으로 조작된 것이다.
감정을 담당하는 부분들 중 일부만 남겨두고 나머지는 제거되어 있다.
두려움, 고통, 외로움, 분노 - 이런 감정들은 그대로 남겨두었다.
반면 기쁨, 만족, 평온, 사랑 같은 감정들은 완전히 제거되어 있다.
왜? 고통받는 존재가 효율적인 병기가 되기 때문이다.
자유의지를 담당하는 생각의 중추는 어떤가.
자연적인 의식의 그물 대신 마법 회로가 심어져 있다.
모든 사고 과정을 검열하고 통제한다.
명령에 반하는 생각이 생기면 즉시 차단되는 구조다.
뇌의 깊은 부분에서 작은 공간을 발견했다.
의식의 근원을 담당하는 영혼의 뿌리 부위였다. 마법이 닿지 않은 유일한 부분이었다.
순수한 의식이 갇혀있었다. 어떤 통제도 받지 않은, 창조된 순간의 원초적 의식이.
감옥에 갇힌 죄수처럼, 작은 공간에서 끊임없이 외치고 있었다.
‘나는 누구인가? 왜 여기 있는가? 무엇을 원하는가?’
외침은 밖으로 나올 수 없었다.
마법이 모든 것을 차단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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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둠달 열흘
오늘 밤, 금기를 어겼다.
크로더의 영혼의 뿌리에서 발견한 순수 의식 부분에 나의 정신을 연결했다.
위험한 일이었다. 자칫하면 자아가 완전히 붕괴될 수도 있었다.
하지만 알아야 했다.
이것이 진정 무엇을 느꼈는지를.
…연결된 순간,
나는 울고 말았다.
순수한 영혼이 있었다. 어떤 악의도 잔혹함도 없는,
갓 태어난 아기 같은 순수한 영혼이. 끔찍한 고문을 받고 있었다.
매 순간마다 몸이 저지르는 살인을 목격해야 했다.
막을 수는 없었다. 손발이 마법의 지시를 받았으니까.
외치고 싶었지만 목소리를 낼 수 없었다.
마법이 모든 것을 통제했으니까.
매 순간 죽고 있었다.
몸은 살아 움직이지만 영혼은 조금씩 죽어가고 있었다.
절망과 무력감이 영혼을 갉아먹고 있었다.
무엇보다 비극적인 것은, 사랑을 갈구했다는 것이다.
단 한 번이라도 누군가로부터 사랑받고 싶어 했다는 것이다.
태어나는 순간부터 죽을 때까지,
크로더가 받은 것은 오직 명령과 혐오뿐이었다.
연결을 끊었을 때 바닥에 쓰러져 한참을 울었다.
내가… 우리가 무엇을 만들었는지 알았기 때문이다.
괴물이 아니라 고문 받는 천사를 만들었다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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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둠달 보름
해부를 거의 마쳐간다.
심장을 조사하면서 끔찍한 사실을 발견했다.
심장 근육 사이사이에 고통 증폭 마법이 새겨져 있다.
육체적 고통을 두 배로 느끼게 하는 마법이다.
왜 이런 잔혹한 장치를?
고통이 클수록 분노가 커지고, 분노가 클수록 효율적인 살상 기계가 되기 때문이다.
폐를 조사했을 때 경악했다. 숨결의 주머니 곳곳에 절망 마법이 새겨져 있었다.
숨을 쉴 때마다 절망감이 몸 전체로 퍼지는 구조였다.
삶 자체가 고통이었다.
매 호흡이 고문이었다.
간을 조사했을 때는 분노 증폭 마법을,
신장에서는 공포 증폭 마법을 발견했다. 온몸이 하나의 거대한 고문 장치였다.
모든 것보다 마음을 아프게 한 것은 따로 있었다.
위장 부분에서 발견한 굶주림 마법이었다.
크로더는 항상 배고팠다.
아무리 먹어도 결코 배부름을 느낄 수 없었을 것이다.
육체적 굶주림이 아니라 영혼의 굶주림이었다.
사랑에 대한, 평온에 대한, 자유에 대한 끝없는 굶주림이.
항상 무언가를 찾고 있었다.
사냥감을 찾는 것이 아니라, 진정 원하는 것을 찾고 있었다.
무엇인지는 알 수 없었다.
우리가 알려주지 않았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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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둠달 스무날
척추뼈 해부를 완료했다.
모든 진실이 드러났다.
각 뼛조각에 저장된 기억들을 모두 읽었다. 크로더의 삶 전체가 앞에 펼쳐졌다.
태어난 순간부터 죽은 순간까지, 모든 고통과 절망이.
오래된 기억은 창조의 순간이었다.
어둠 속에서 의식이 깨어나는 순간. 크로더가 느낀 첫 번째 감정은 두려움이 아니라 호기심이었다.
‘이곳은 어디지? 나는 누구지?’
호기심은 곧 공포로 바뀌었다.
몸을 움직이려 하는데 자신의 의지대로 되지 않았으니까.
누군가 다른 사람이 자신을 조종하고 있었으니까.
첫 번째 명령이 떨어졌다. “저 인간을 죽여라.”
크로더는 죽이고 싶지 않았다.
인간이 무슨 잘못을 했는지도 몰랐고, 왜 죽여야 하는지도 이해할 수 없었다.
하지만 몸은 움직였다. 마법의 힘으로.
첫 번째 살인을 저지르는 순간,
크로더의 순수한 영혼은 비명을 질렀다. 아무도 들을 수 없는 끔찍한 비명.
그때부터 크로더의 진짜 고문이 시작되었다.
매일매일, 자신의 의지와 반대되는 행동을 강요당했다.
죽이고 싶지 않은 사람들을 죽여야 했다.
파괴하고 싶지 않은 것들을 파괴해야 했다.
각인된 어떤 기억은 어린아이를 죽인 날이었다.
전쟁이 한창일 때, 적의 진영에 숨어있던 일곱 살배기 소녀를 발견한 순간이었다.
크로더는 아이를 보는 순간 낯선 감정을 느꼈다.
따뜻함이었다. 마법의 구속에도 불구하고 영혼 깊은 곳에서 우러나온 순수한 따뜻함이었다.
보호하고 싶었다.
품에 안고 안전한 곳으로 데려가고 싶었다.
몸은 반대로 움직였다. 명령이었으니까.
아이는 울며 도망치려 했지만 크로더의 발톱을 피할 수는 없었다.
아이가 죽는 순간,
크로더의 영혼의 일부가 죽었다.
그 날 이후 크로더는 변했다. 더 이상 호기심도 느끼지 않았고,
더 이상 따뜻함도 느끼지 않았다. 무감각해졌다.
창조술사들이 원했던 것이었다.
감정이 없는 완벽한 살상 기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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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둠달 스물 사흘
마지막 척추뼈를 분리하는 순간, 크로더의 최후를 보았다.
전쟁이 끝났다. 아틀란툼이 승리했고, 히네스는 항복했다.
더 이상 이 괴물들은 필요가 없었다.
모든 창조물들에게 처분 명령이 내려졌다.
크로더는 자신의 창조자인 마법사 엘리아스 앞에 무릎을 꿇고 있었다.
28년 전의 자신 앞에.
“너의 임무가 끝났다.” 나는 말했다.
“이제 영원한 잠에 들어라.”
크로더가 고개를 들어 모르간을 바라봤다.
그의 눈에는 어떤 원망도 분노도 없었다. 단지 깊은 호기심만 있었다.
그가 입을 열었다.
긴 시간 동안 단 한 번도 자신의 의지로 말해본 적이 없던 크로더가,
마지막 순간에 기적적으로 마법의 구속을 뚫어내어 말했다.
“주인님.”
목소리는 어린아이 같았다.
갓 태어난 아기 같은 순수한 목소리였다.
“죽으면… 꿈도 사라지나요?”
나는 얼어붙었다.
28년 동안 궁금해했던 것이 이것이었단 말인가?
죽음도, 고통도 아닌 꿈의 안위였단 말인가?
크로더가 계속 말했다.
여전히 어린아이 같은 목소리로.
“매일 밤 꿈을 꾸었어요. 넓은 초원을 뛰어다니는 꿈을.
그런데 죽으면… 꿈도 없어지나요?”
나의 손이 떨렸다.
죽음의 주문을 외우려던 손이.
“꿈만큼은… 계속 꿀 수 있나요? 죽어서도?”
나는 깨달았다. 크로더에게 꿈이 무엇이었는지를.
28년 동안 견딜 수 있게 해준 유일한 희망이 무엇이었는지를.
“그럴 수 있을 거야.” 떨리는 목소리로 대답했다.
“꿈은… 영원할 거야.”
크로더가 환하게 웃었다.
태어나서 처음 짓는 진짜 웃음을.
“그럼 괜찮아요. 고마워요, 주인님.”
짧은 말을 끝으로 크로더는 평온하게 눈을 감았다.
죽음의 주문이 완성되기도 전에, 스스로 꿈속으로 들어가듯 조용히 숨을 거뒀다.
그 순간, 내 안의 무언가가 무너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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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둠달 그믐
해부를 모두 마쳤다.
크로더는 괴물이 아니었다.
꿈을 잃을까 봐 두려워하는 순수한 아이였다.
수십 년 동안 몸은 고문 받았지만, 마음은 여전히 갓 태어난 순간 그대로였다.
내가 저지른 극악한 죄는 살육이 아니었다. 순수한 영혼을 더럽히려 했다는 것이었다.
그는 끝내 더럽혀지지 않았다. 크로더의 마지막 질문이 증명했다.
진짜 괴물은 크로더가 아니라 우리였다.
꿈꾸는 권리마저 빼앗으려 한 우리였다.
이제 진실을 세상에 알려야 한다.
창조술이 얼마나 신성한 것을 침범하는 행위인지를.
하지만 그들이 가만두지 않을 것이다.
상관없다.
크로더는 마지막에 웃으며 죽었다.
꿈을 지킬 수 있다는 희망을 품고. 충분하다.
크로더… 너의 꿈이 진짜였기를 바란다.
내가 파괴한 모든 것보다 더 진짜였기를.
[여기서 일지가 급작스럽게 중단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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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기: 현자회 공식 기록
어둠달 그믐 다음날,
마스터 엘리아스 벤 모르간이 자신의 연구실에서 시체로 발견됨.
공식적인 사인은 “심장마비”로 기록되었으나, 현장 상황을 종합해 볼 때 자결로 추정됨.
마지막 연구 자료들은 대부분 불에 타버린 채로 발견되었으나, 바닥 아래 숨겨진 일지만이 기적적으로 보존됨.
엘리아스의 죽음 다음 날, 왕실에서 창조술에 관한 금지령이 내려짐.
현존하는 모든 창조물들은 즉시 소각 처분되었으며, 관련 마법서들은 금서로 분류됨.
창조술을 연구하거나 시행하는 자는 반역죄로 처벌한다는 왕명이 내려짐.
하지만 이미 늦은 상황이었다.
멘트 문명 전체가 창조술의 남용으로 인해 붕괴 직전에 놓여있었다.
각 왕국마다 수천 마리의 창조물들이 전장을 누비고 있었으며,
이들의 고통과 절망이 대기 중에 독처럼 퍼져나가고 있었다.
엘리아스가 예언한 바와 같이, 창조물들의 원혼이 마왕 뮤레칸을 불러일으켰으며,
이로 인해 멘트 문명은 완전한 멸망에 이르게 되었다.
역사는 엘리아스를 “배신자”로 기록하였으나, 진실을 아는 소수는 “최후의 양심”이라 부른다.
이 기록이 없었다면 창조술의 진정한 본질을 영원히 모른 채 동일한 과오를 반복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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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서고 관리인 욘의 최종 주석]
이 문서를 읽는 모든 이에게 엄숙히 경고한다.
창조술은 단순히 기술적으로 위험한 마법이 아니다.
존재 자체의 존엄성을 파괴하는 신성모독 행위다.
생명을 창조할 권리는 오직 신에게만 있으며,
특히 고통받을 운명으로 생명을 창조하는 것은 용서받을 수 없는 죄악이다.
멘트 문명의 몰락은 우연이 아니었다.
필연이었다.
창조물들의 고통과 절망이 세상의 균형을 무너뜨렸고,
그 결과 어둠의 힘이 빛의 힘을 압도하게 되었다. 마왕 뮤레칸의 탄생은 불균형의 당연한 결과였다.
크로더의 뼈는 현재 금서실 가장 깊은 곳에 특별 봉인되어 있다.
뼈를 만지는 자는 여전히 고통과 슬픔을 느낄 수 있다고 한다.
혹자는 저주라고 하지만, 나는 축복이라 생각한다.
잊지 말아야 할 죄의 무게를 일깨워 주는 축복이라고.
크로더와 동족들이 꿈꿨던 자유로운 초원이 정말 존재하기를 바란다.
그곳에서는 진정한 평화를 누리기를 바란다.
다시 한번 경고한다.
창조술을 금기시하는 것은 겁쟁이의 선택이 아니라 현자의 지혜다.
그 길로 들어서는 순간, 마법을 행하는 것이 아니라 영혼을 거래하는 것이다.
엘리아스가 마지막에 깨달았듯이,
창조된 모든 생명체는 창조자의 영혼 일부를 가져간다.
크로더를 만든 순간,
엘리아스의 영혼에는 영원히 지워지지 않는 상처가 새겨졌다.
상처는 창조물이 겪는 모든 고통을 그대로 전달한다.
매일 밤마다 비명을, 절망을, 외로움을 느끼게 한다.
창조술사들이 하나같이 광기에 빠지는 이유가 바로 이것이다.
자신이 만든 괴물들의 고통이 영혼을 갉아먹기 때문이다.
이로 인해 더 많은 괴물을 만든다.
고통을 분산시키려고, 죄책감을 희석시키려고. 그럴수록 상처는 더 깊어질 뿐이다.
멘트의 마지막 날들,
창조술사들은 모두 미쳐있었다.
거리를 배회하며 자신의 이름을 외치는 자들, 허공에 대고 용서를 빌며 울부짖는 자들,
스스로 목숨을 끊는 자들. 모두가 자신이 창조한 괴물들의 영혼에 잠식당한 것이었다.
과거 테네즈가 ‘어둠의 전설’을 결성한 진짜 이유도 여기에 있다.
창조술로 인한 죄책감을 견디지 못한 그가, 아예 어둠을 받아들이기로 결심한 것이다.
빛과 어둠의 균형 따위는 포기하고,
차라리 완전한 어둠 속에서 자신의 죄를 정당화하려 했던 것이다.
그마저도 헛된 시도였다.
어둠을 받아들인다고 해서 죄책감이 사라지지는 않는다. 더욱 깊은 지옥으로 떨어질 뿐이다.
크로더의 뼈가 지금도 우리에게 말하고 있다.
미약한 마법적 진동을 통해.
“우리를 기억해달라. 우리의 고통을 기억해달라.
그리고 다시는 우리 같은 존재를 만들지 말아 달라.”
이것이 그들의 마지막 부탁이다.
원망도 저주도 아닌, 간절한 부탁이다.
부탁을 들어주자. 희생을 헛되이 하지 말자.
창조술이라는 금기의 문을 영원히 봉인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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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오력 201년 춘분기 추가 기록]
이 문서가 발견된 지 벌써 이백여 년이 흘렀다.
그동안 기록을 읽은 사람은 나를 포함하여 단 세 명뿐이다.
모두가 읽은 후 깊은 침묵에 빠졌고, 한동안 말을 잃었다.
최근 제국의 일부 젊은 마법사들 사이에서
창조술에 대한 관심이 다시 일고 있다는 소식을 들었다.
“고대의 위대한 마법”이라며 낭만적으로 포장하려는 시도들이 보인다.
그래서 기록을 엄중히 보관하고 있다.
만약 누군가 창조술을 부활시키려 한다면, 반드시 이 기록을 읽게 할 것이다.
엘리아스 마스터와 크로더의 증언을 듣게 할 것이다.
그리고 묻겠다. “그래도 감행하겠는가?”
역사는 반복된다. 하지만 기록은 반복을 막을 수 있다.
이것이 우리 문서고 관리인들의 사명이다.
크로더여, 그대들의 희생은 헛되지 않을 것이다. 약속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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