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뮤니티

게임실행 및 홈페이지 이용을 위해 로그인 해주세요.

시인의 마을 세오
「秘」오렌과 씨든
592 2025.07.05. 19:26

秘, 루어스의 비밀 문서고























서고 위치: 제2심층 서해서가 은철함

문서 인장: 「왕관과 검」「황금 테두리」

문서 제목: 오렌왕 발타사르의 최후 증언록

보관 연대: 세오력 6년, 얼음이 걷히고 뿌리가 눈을 뜨던 시기

발견 경위: 오렌 왕성의 잊힌 서가

문서 보존: 가을잎처럼 약간 바램

열람 제한: 고위 성직자 이상

관련 문서: 「방패와 창」 인장 루딘-오렌 평화조약



-



[문서고 관리인 주석]


이는 씨든의 발현으로부터 생환한
오렌의 발타사르 왕이 임종 직전 남긴 유언의 전모이다.

왕은 긴 침묵 끝에 입을 열었고,
침상에 누운 채 사흘 밤낮을 쉬지 않고 이야기를 이어갔다.

몸은 침묵을 택했으나, 말은 그보다 늦게 죽었다.

서기관 에델가르드는 단 한 마디도 놓치지 않으려 깃펜을 놓지 않았으며,
노왕의 마지막 말들이 흩어지지 않도록 양피지 위에 무겁게 새겼다.

이 기록은 이후 ‘침상의 증언’이라 불리며,
혼돈의 시대 이후 예언과 심판의 단초로 간주되었다.



-



[첫째 날]


죽음이 가까워오면 잊고 있던 것들이 부유한다고 했던가.
천장을 기어가는 거미의 여덟 다리가 각자의 리듬을 만들어내는 것까지 보인다.

에델가르드, 오랜 벗이여. 내가 한평생 가슴에 묻어둔 이야기를 이제야 꺼낸다.

엘문의 펜을 들어라. 떨리는 네 손이 반갑구나.
떨려야 한다. 본래 진실은 그런 떨림 속에서 깨어나는 법이니까.

테네즈와 나는 여섯 살의 나이에 운명으로 엮였다.
그의 아버지가 반역자로 성문에 목이 매달린 날, 선왕께서는 고아가 된 아이를 궁으로 데려왔다.

정치적 계산이었을 것이다.
반역자의 아들을 품어 관용을 보이려는.

하지만 아이들이 무엇을 알았겠나.
우리는 같은 침대에서 잤고, 같은 식탁에서 밥을 먹었고, 같은 스승 아래서 검을 배웠다.

밤마다 테네즈는 이를 갈았다. 처음엔 잇몸 병인 줄 알았다.
하지만 그건 증오를 *어 삼키는 소리였다.

매일 밤 아버지의 시신이 새들에게 뜯기는 꿈을 꾸며,
그는 복수를 뼛속 깊이 새겨 넣고 있었다.

나는 친구가 악몽에 시달린다고만 생각했다.
때로는 그의 이마에 손을 얹어 열을 재기도 했다. 그럴 때마다 그는 웃었다.

웃음엔 온기가 있었고, 어딘가 기울어져 있었다.
나중에야 알았다. 그건, 연민을 한 번 *어 조롱으로 뱉는 자의 웃음이었다.

세월이 흘러 우리는 각자의 왕국을 물려받았다.

그리고 루딘이라는 공동의 적 앞에서 동맹을 맺었다.
나는 이를 우정의 연장이라 믿었다. 테네즈는 달랐겠지만.

보리가 황금빛으로 물들어가던 9월의 어느 날, 그의 밀서가 도착했다.

붉은 밀랍에 찍힌 그의 인장 - 부러진 검 위에 올려진 왕관.
지금 생각하면 이 문장 자체가 테네즈의 삶을 보여주고 있었다. 부러진 것 위에 세워진 권력.

“형제여, 드디어 루딘을 무릎 꿇릴 때가 왔다. 고대의 힘이 우리 손에 들어왔으니.”

밀서와 함께 온 것은 검은 참나무로 만든 목함이었다.
뚜껑에는 은으로 상감한 고대 문자들이 살아있는 것처럼 은은히 빛났다.

그 빛은 규칙적으로 명멸했는데,
거대한 심장의 박동 같기도 했고, 깊은 잠에 빠진 무언가의 호흡 같기도 했다.

목함을 든 사자는 둘이었다.

하나는 중년의 남자로 수염에 서리가 내려앉은 것처럼 희끗했고,
다른 하나는 아직 수염도 나지 않은 앳된 청년이었다.

그들의 행동이 묘했다.

늙은 사자는 연신 침을 삼키며 목함을 내려놓을 때 손이 떨렸고,
젊은 사자는 계속 문 쪽을 흘끔거리며 발을 문 쪽으로 향하고 있었다.

왕의 사자가 왕의 알현실에서 도망갈 준비를 하다니.

“긴 여정에 지치신 듯하군. 쉬었다 가시게.”

“아닙니다, 전하. 저희는… 급히 돌아가야 합니다.”

“그럴 만큼 급한 일이 있나?”

“주군께서… 기다리십니다.”

대화는 거기서 끝났다.
그들은 예의상 필요한 인사만 마치고는 거의 뛰다시피 알현실을 빠져나갔다.

마부에게 물으니 그들은 물도 마시지 않고 곧장 말에 올라 성문을 나섰다고 했다.
죽음을 피해 달아나는 자들처럼.

나는 목함을 왕좌의 방으로 옮기도록 했다.
가렌과 엘리아스만을 곁에 두고서.

가렌은 내 근위대장이자 가장 신뢰하는 기사였고, 엘리아스는 왕국 최고의 궁정 마법사였다.
이들이라면 무슨 일이 있어도 나를 지켜줄 것이라 믿었다.

왕좌의 방은 오렌 왕가에 대대로 전해지는 성소였다.
높은 아치형 천장에는 별자리가 보석으로 수놓아져 있었고, 벽에는 역대 왕들의 초상화가 걸려 있었다.

그들의 눈이 후손인 나를 지켜보고 있었다.
혹은 경고하고 있었는지도 몰랐다. ‘그것을 열지 말라’고.

목함의 첫 번째 봉인을 풀었을 때, 방 안의 온도가 뚝 떨어졌다.
숨을 내쉴 때마다 하얀 김이 피어올랐고, 빠르게 가라앉았다.

촛불들이 일제히 흔들리더니,
거의 꺼질 듯 낮아졌다. 불꽃이 움찔했다.

빛이, 무언가를 피하려는 것처럼 ㅡ 방 안 어딘가에서 그것이 깨어났다는 듯이.

두 번째 봉인이 풀렸을 때는 더했다. 대리석 벽을 타고 서리가 번져나갔다.
복잡한 무늬를 그리며 퍼져가는 그것은 얼음이라기엔… 너무 확고하게, 살아 있었다.

벽에 걸린 초상화들의 얼굴에도 서리가 끼었고,
조상들의 눈동자가 일제히 하얗게 변했다.

“전하, 이건…” 엘리아스가 무언가 말하려 했지만, 나는 손짓으로 그를 막았다.
이미 너무 깊이 들어와 버렸다. 돌아갈 수 없는 강을 건넌 것이다.

마지막 봉인에 손을 대는 순간, 뭔가 잘못되었음을 온몸으로 느꼈다.
봉인이 풀리는 것이 아니라 봉인이 나를 풀어주는 것 같았다. 마치 내가 열쇠이고 목함이 자물쇠인 것처럼.

뚜껑이 저절로 열렸다. 아닌가? 열렸다는 표현은 맞지 않다.
현실의 일부가 접혀서 안과 밖의 경계가 사라졌다고 해야 할까. 목함 안에서 어떤 것이 흘러나왔다.

그걸 뭐라고 불러야 할지 모르겠다.

연기 같기도 했고 물 같기도 했고 살아있는 그림자 같기도 했다.
형체가 없으면서 동시에 모든 형체를 품고 있는 무언가.

그것이 공중에서 서서히 응축되기 시작했다.
보이지 않는 조각가가 허공을 빚어 형상을 만들어내는 것처럼.

사람의 모습이 나타났다.
정확히는 한때 사람이었을 모습이.

씨든이었다.

키는 나와 비슷했지만 이 사실만이 인간과의 유일한 공통점이었다.
피부는 깊은 물에 오래 잠겨있던 시신처럼 창백하고 투명했다.

그 투명한 피부 아래로 검은 흐름이 일렁였다.
혈관이라고 하기엔 너무 기괴하게 꿈틀거렸고, 살아있는 것 같으면서도 죽은 것 같았다.

썩어가는 나무의 수액과 깊은 땅속을 흐르는 지하수가 뒤섞인 것 같은,
그 어떤 비유로도 설명할 수 없는.

가장 끔찍한 것은 눈이었다.

눈이 있어야 할 곳에는 텅 빈 구멍만 있었고, 그 심연 같은 공허 속에서 푸른 불꽃이 타올랐다.
불꽃이라고 했지만 이 역시 정확한 표현은 아니다.

차가운 별빛 같기도 했고, 얼어붙은 번개 같기도 했고, 영혼의 마지막 불씨 같기도 했다.
그 불꽃이 나를 보았다. 눈이 없는데도 분명히 보고 있었다.

나의 겉모습이 아니라 내면의 모든 것을 - 두려움, 후회, 거짓, 위선,
그리고 왕이라는 가면 뒤에 숨은 나약한 인간의 본모습까지.

씨든이 천천히 고개를 돌려 방을 둘러보았다.

벽에 걸린 조상들의 초상화를 하나하나 훑었고,
보석으로 수놓은 천장의 별자리를 올려다보았고, 황금으로 장식된 왕좌를 응시했다.

그리고는 오래전에 알던 곳에 돌아온 것처럼,
혹은 예상했던 것을 확인한 것처럼 고개를 끄덕였다.

그가 처음으로 소리를 냈을 때,
나는 인간의 언어라는 것이 얼마나 보잘것없는 도구인지 깨달았다.

낮고 깊은 진동이 뼛속을 파고들었다.

산이 무너질 때 땅속 깊은 곳에서 올라오는 울림 같기도 했고,
거대한 빙하가 갈라질 때의 비명 같기도 했고, 별이 죽어갈 때 우주로 퍼져나가는 마지막 한숨 같기도 했다.

하지만 그 모든 것보다 더 오래되고 더 깊다는 것은 분명했다.
언어가 생기기 전, 의미가 만들어지기 전, 최초의 생명이 느꼈을 원초적 공포의 소리.

가렌이 반사적으로 검을 뽑았다. 그의 검은 가문 대대로 전해 내려오는 보검이었다.
아홉 명의 왕이 바뀌는 동안에도 주인을 지켜온 검.

손잡이에는 어린 시절 가렌이 실수로 떨어뜨렸을 때 생긴 작은 흠집이 있었다.
그 흠집을 볼 때마다 가렌은 쑥스러워하곤 했다. 완벽한 기사가 되고자 했던 소년의 작은 실수.

“전하, 물러서십시오!”

가렌의 목소리에는 두려움이 없었다. 정확히는 두려움을 억누르고 있었다고 생각한다.
기사의 맹세가 본능을 이기고 있었다. 그가 씨든을 향해 돌진했다.

완벽한 검이었다.
발놀림, 자세, 각도, 판단. 모든 것이 그가 스승에게 배운 그대로였으리라.

검이 씨든의 가슴을 향해 일직선으로 뻗어나갔다.
가을의 태양이 그의 검신을 따라 흘렀다. 이 순간만큼은 가렌이 빛의 화신처럼 보였다.

정의가 악을 무찌르는 고전적인 그림.
우리가 어린 시절부터 믿어온 이야기.

하지만 동화는 현실 앞에서 산산조각 났다.

검이 씨든에게 닿기 직전,
부서졌다. 폭발한 것도 아니고 꺾인 것도 아니었다.

그저 존재하기를 멈췄다.
겨울 아침의 고드름이 햇살에 닿아 사라지듯, 꿈이 깨어나는 순간 흩어지듯,

바닥엔 금속 파편 몇 조각만이 남았다.
검이라 부르기엔 너무 가벼운, 의미를 잃은 쇠붙이들.

가렌이 텅 빈 검자루를 든 채 멈춰 섰다. 평생 처음으로 무력해진 그의 모습을 보았다.
검을 잃은 기사는 무엇인가? 날개를 잃은 새? 목소리를 잃은 시인? 그보다 더한 어떤 것. 존재를 부정당한 존재.

씨든이 다시 울림을 냈다. 이번에는 음의 높낮이가 복잡하게 변주되었다.
여러 겹의 화음이 서로 얽히고 풀리며 기괴한 화음을 만들어냈다. 웃음이었다.

하지만 우리가 아는 웃음과는 달랐다. 조롱도 아니고 즐거움도 아니었다.
더 근본적인 차가움. 존재의 부조리함 자체를 확인하는, 혹은 우주의 농담을 이해한 자의 웃음.

씨든이 오른팔을 천천히 들어 올렸다. 움직임은 느렸지만 거스를 수 없는 필연성이 있었다.
계절이 바뀌는 것처럼, 조수가 밀려오는 것처럼. 그의 손이 가렌을 향했다.

하지만 닿지는 않았다.
한 자쯤 떨어진 허공에서 손가락을 천천히 구부렸다.

가렌이 갑자기 두 손으로 목을 움켜쥐었다.
보이지 않는 거대한 손이 그의 목을 조르는 것 같았다.

얼굴이 붉게 달아올랐다가 점차 보랏빛으로 변했다.
눈의 핏줄이 터질 듯 부풀어 올랐다. 강철 같던 무릎이 꺾이며 바닥에 쓰러졌다.

“안 돼! 그만하라!”

내가 소리쳤다. 아니, 비명을 질렀다고 해야 맞겠다. 왕의 위엄도 권위도 그 순간에는 아무것도 아니었다.
그저 친구가 죽어가는 것을 지켜봐야 하는 무력한 인간의 절규였다.

“제발… 그를 놓아달라. 내가 잘못했다. 내가…”

씨든이 나를 돌아보았다. 텅 빈 눈구멍 속의 푸른 불꽃이 나를 응시했다.
순간 내 몸의 모든 열기가 빠져나가는 것을 느꼈다. 피가 얼어붙고 심장이 느려졌다.

하지만 추위보다 더 끔찍한 것…
그의 시선 속에 담긴 아주 오래전부터 예정된 결론이 있었다.

무관심? 그건 아니었다. 무관심이라면 차라리 나았을 것이다.
씨든의 시선 속에는 일종의 이해가 있었다. 마치 ‘너는 네가 무엇을 했는지 모른다’는 연민 같은.

신이 미물을 내려다보는 그런 초월적 연민. 하지만 그 연민 속에는 어떤 따뜻함도 없었다.
사실을 확인하는 차가운 인식만이 있을 뿐.

길고 낮은 울림이 이어졌다.

한 음으로 시작해서 여러 갈래로 갈라지며 복잡한 화음을 만들었다가 다시 하나로 모이는 소리.
일종의 말이었다. 언어는 아니었지만 의미는 전달되었다.

‘네가 원한 것이다.’

씨들이 손을 내렸다.
가렌이 바닥에서 격하게 기침을 하며 숨을 들이켰다.

살아있었다. 하지만 변해있었다.
그의 검은 머리 절반이 백발이 되어있었고, 매끈했던 얼굴에는 깊은 주름이 파여있었다.

엘리아스가 지팡이를 들어 올렸다.
오크나무로 만든 지팡이 끝에서 룬 문자가 빛나기 시작했다.

궁정 마법사로서 그는 이런 상황을 막아야 할 의무가 있었다.
비록 상대가 무엇인지 알 수 없다 해도.

“화이라 이그니스! 불꽃의 왕이여, 내 부름에 답하라!”

엘리아스의 음성이 왕좌의 방에 울려 퍼졌다. 그가 수십 년간 쌓아온 지식과 의지의 결정체였다.
공기가 진동하고 현실의 장막이 찢어지며 불의 정령계로 통하는 문이 열렸다.

거대한 화염이 폭발하듯 피어올랐다.
붉은색, 주황색, 노란색, 하얀색, 그리고 가장 중심부의 푸른색까지.

모든 색깔의 불꽃이 하나로 뭉쳐 씨든을 향해 쏟아졌다.
돌기둥이 열기에 금이 가고, 천장의 보석들이 녹아내리기 시작했다.

나는 왕좌 뒤로 몸을 피하면서도 이 모든 것을 지켜 보았다.

이것이 인간이 도달할 수 있는 마법의 극한이었다. 엘리아스가 평생을 바쳐 연마한 소환술의 정점.
이 화염 속에서는 강철도 돌도 모래도 모두 하나가 되어 사라질 것이다.

그러나 씨든은 타오르지 않았다.

불꽃이 그의 몸에 닿는 순간 얼음이 되었다. 아니, 얼음보다 더 차가운 결정체로 변했다.
불타는 얼음이라니 모순이지만, 다른 표현을 찾을 수 없다.

화염이 씨든의 주위에서 푸른 결정으로 변해 바닥에 떨어졌다.
쨍그랑거리는 소리를 내며 산산조각 났다. 그 조각들은 다시 증기가 되어 사라졌다.

불의 개념 자체가 부정당하는 것 같았다.
열은 차가움의 부재일 뿐이라는 진리를 눈앞에서 증명하듯이.

씨든은 불꽃 속에 서 있었지만,
그를 해하지 못했다. 오히려 불꽃이 그를 두려워하는 것 같았다.

엘리아스의 얼굴이 창백해졌다. 평생의 신념이 무너지는 순간이었다.
마법이란 무엇인가? 의지로 현실을 바꾸는 기술이 아니던가? 하지만 씨든 앞에서 그의 의지는 아무것도 아니었다.

씨든이 엘리아스를 바라보았다. 단지 그뿐이었다. 손짓도 주문도 없었다.
텅 빈 눈구멍의 푸른 불꽃이 마법사를 응시했을 뿐.

그런데 엘리아스의 목소리가 사라졌다. 입을 열고 닫았지만 소리가 나오지 않았다.
성대가 마비된 것도 아니고 주문이 막힌 것도 아니었다. ‘소리’라는 개념 자체가 그에게서 박탈된 것 같았다.

음성을 잃은 마법사. 단순히 벙어리가 된 것 이상의 의미였다.
엘리아스의 소환술은 언어에 기반했다.

룬 문자의 배열과 의미가 현실을 바꾸는 열쇠였다.
이제 그는 열쇠를 잃은 것이다.

엘리아스의 눈에 공포를 넘어선 절망이 번졌다. 존재의 의미를 잃은 자의 공허함.
그는 무릎을 꿇고 머리를 감싸 쥐었다. 소리 없는 울부짖음이 그의 입에서 새어 나왔다.

씨든이 다시 창가로 걸어갔다.
그의 발걸음이 닿는 곳마다 대리석 바닥에 복잡한 서리 무늬가 새겨졌다.

언뜻 보면 아름다운 예술품 같았지만, 자세히 보면 그 안에 어떤 살아 움직이는 것이 있었다.
작은 얼음 결정들이 스스로 자라나고 변화하며 알 수 없는 형태를 만들어갔다.

창밖으로 오렌의 들판이 펼쳐져 있었다.

황금빛 보리가 가을바람에 물결치고, 농부들이 수확을 준비하고 있었다.
아이들이 논두렁을 따라 뛰어다니며 웃음소리를 내고 있었다.

평화로운 오후였다.
전쟁의 그림자는 있었지만, 일상은 계속되고 있었다.

씨든이 깊게 숨을 들이마셨다. 아니, 숨이라고 할 수 있을까?
그의 가슴이 부풀어 올랐지만 공기를 마시는 것은 아니었다. 더 본질적인 세계의 잔열을 흡수하고 있었다.

생명력? 이 또한 정확한 표현은 아니다. 존재의 따뜻함, 시간의 흐름, 변화의 가능성…
살아있음을 살아있게 만드는 그 모든 것들을.

창문의 유리가 그의 숨에 얼어붙었다. 복잡한 얼음무늬가 번져나갔다. 풍경이 그 안에 왜곡되어 비쳤다.

황금빛 보리밭은 잿빛 황무지로, 웃고 있던 아이들은 얼어붙은 조각상으로.
예언이었을까. 아니면, 씨든이 바라보는 진짜 세계였을까.

그리고 그가 울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목구멍 깊은 곳에서 올라오는 낮은 진동이었다. 하지만 점차 커지고 복잡해졌다.
하나의 음이 둘로 갈라지고, 둘이 넷이 되고, 넷이 여덟이 되어 기하급수적으로 증폭되었다.

각각의 음은 서로 다른 높이와 색깔을 가지고 있었지만,
동시에 하나의 거대한 화음을 이루었다.

언어 이전의 언어였다.

늑대가 달을 보고 우는 이유, 고래가 깊은 바다에서 노래하는 이유,
바람이 겨울 산을 지날 때 내는 소리의 의미.

문명이 잊어버린,
아니 잊으려 했던 근원의 부름.

나는 그 울음소리를 들으며 이상한 감정에 사로잡혔다.

공포와 경외,
혐오와 매혹이 동시에 밀려왔다.

끔찍하게 아름다웠다.
파괴적이면서도 순수했다. 죽음의 노래임과 동시에 태초의 자장가였다.

창밖에서 응답이 시작되었다.

먼저 숲에서였다. 늑대들의 합창이 들려왔다. 하지만 저마다의 울음소리를 잊은.
완벽하게 조율된 하나의 소리였다. 수백, 수천의 늑대가 하나의 존재가 되어 대답하고 있었다.

이어서, 산에서도 포효가 울려 퍼졌다. 겨울깃의 곰들은 아니었다.
그건 켈바르였다 - 죽음에 가까운 잠에서 깨어나는 자들. 계절을 거슬러, 본능을 거슬러, 깊고 둔중한 숨소리를 내뱉으며.

하늘에서는 새들이 소리를 냈다. 까마귀도, 매도 아니었다.
하르나크, 비페라, 울브라의 깃털짐승들. 평소엔 결코 울지 않던 마물들이 공명했다.

울기만 한 것이 아니라, 떨어졌다.
목소리가 아닌 날개의 진동으로 하늘을 때렸다.

작은 것들도 마찬가지였다. 울브라의 참조류들 - 소리 대신 파장을 남기는 새들까지도
그 기괴한 울음에 동참했다. 깃털들이 벗겨지고, 하늘이 진동했다.

합창이 아니라, 수렴이었다.
모두가 하나의 울림으로.

그리고 땅 밑에서도 소리가 들려왔다. 무엇인지는 알 수 없었다.
하지만 많았다. 무수히 많은 것들이 땅을 뚫고 올라오는 소리.

긁고, 파고, 갉아먹는 소리.
오랫동안 잠들어 있던 것들이 깨어나는 소리.

“이럴 수가…”

내가 중얼거렸다. 이제야 깨달았다.
씨든은 무기가 아니었다. 그는 자연 자체였다.

자연이라는 말도 부족하다. 문명 이전의 야생, 질서 이전의 혼돈, 의미 이전의 순수한 힘.
어둠이 형체를 갖고 일어선 것이다.

“막아야 한다!”

내가 소리쳤지만, 이미 늦었다. 씨든이 더욱 날카롭게 울부짖었다.
쇠가 쇠를 긁는 것보다 더 끔찍한, 영혼 자체를 할퀴는 소리. 그의 명령이었다.

‘오라. 사냥의 시간이다.’

이유를 알 수는 없으나, 의미는 전달되었다.
온 세상의 야생이 그 부름에 답했다.

숲이 꿈틀거렸고, 산이 진동했고, 하늘이 어두워졌다.
문명의 얇은 껍질 아래 숨어있던 태고의 어둠이 일제히 고개를 들었다.

엘리아스가 소리 없는 입으로 무언가를 외쳤다. 아마도 경고일 것이다.
혹은 최후의 주문을. 하지만 부를 수 없는 마법은 무력했다. 그는 절망적으로 손짓을 하다가 주저앉았다.

가렌은 백발이 된 머리를 들고 간신히 일어섰다.
검은 없었지만 여전히 기사임에 틀림없었다. 떨리는 다리로 내 앞을 가로막았다.

끝까지 충성을 다하려는 것이다.
하지만 그가 막을 수 있는 것은 더 이상 아무것도 없었다.

씨든이 창문으로 다가갔다. 손을 대지도 않았는데 유리창이 얼어붙었다가 가루가 되어 흩어졌다.
차가운 바람이 왕좌의 방으로 밀려들어왔다. 9월의 바람이 아니었다. 시간과 계절을 거스른 한겨울의 칼바람이었다.

그가 창틀에 한 발을 올렸다. 인간이라면 주저할 높이였지만 그에게는 아무 의미가 없었다.
뛰어내리기 전에 한 번 더 뒤를 돌아보았다. 텅 빈 눈구멍이 나를 마지막으로 응시했다.

그 시선 속에 무엇이 있었나? 조롱? 연민? 경고? 아니다. 그보다 더 복잡한 것.
마치 ‘너는 이제 시작을 보았을 뿐이다’라고 말하는 것 같았다. 혹은 ‘네가 연 것은 단순한 상자가 아니다’라고.

씨든이 허공으로 몸을 던졌다. 떨어지는 것이 아니라 미끄러지듯 하강했다.
세계의 규칙은 그에게는 제안일 뿐 법칙이 아닌 것처럼.

땅에 닿는 순간 충격은 없었다.
깃털이 내려앉듯 가볍게 착지했다.

성문을 향해 걸어가기 시작했다. 느리지만 멈추지 않는 걸음.
그가 지나간 자리마다 풀이 시들고 땅이 얼어붙었다.

발자국이 찍힌 곳에서는 서리가 피어올라 기괴한 꽃처럼 퍼져나갔다.
가을의 정원이 순식간에 영원의 겨울로 변해갔다.

문지기들은 이미 자리를 비웠다. 누가 명령한 것도 아닌데 성문이 열려 있었다.
열렸다기보다는 씨든을 맞이하기 위해 길을 내준 것 같았다. 무거운 참나무 문짝이 스스로의 의지로 움직인 것처럼.

문턱에서 씨든이 멈춰 섰다. 북쪽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구름이 소용돌이치며 모여들고 있었다. 검은 구름이 아니었다.

잿빛과 푸른빛이 뒤섞인, 이 세상의 것이 아닌 색깔의 구름이었다.
그 중심에서 무언가가 꿈틀거렸다. 거대한 형체들이 구름 속을 헤엄치고 있었다.

씨든이 마지막으로 한 번 더 울었다. 이번에는 더 크고 더 복잡했다.
백 개의 목소리가 천 개가 되고, 천 개가 만 개가 되어 온 하늘을 가득 채웠다.

나는 알고 있었다.
이는 개선가였고 진혼곡이었고 파괴의 송가였고 창조의 비가였음을.

‘시작되었다. 오래된 약속이 깨어난다. 잊힌 것들이 돌아온다.
균형이 무너지고 새로운 질서가 선다. 혹은 질서 이전의 혼돈이.’

씨든이 성문을 나서 북쪽으로 향했다. 그를 따라 겨울이 퍼져나갔다.
생명의 부재, 온기의 소멸, 시간의 정지. 그 모든 것이 하나가 되어 대지를 뒤덮어갔다.

멀리서 비명소리가 들려오기 시작했다.
사람들의 비명, 가축들의 울부짖음, 집이 무너지는 소리, 나무가 쓰러지는 소리.
하지만 이내 그 모든 소리가 멈췄다. 씨든이 지나간 후에는 침묵만이 남았다. 죽음보다 더 깊은 침묵.

나는 부서진 창가에 서서 그 모든 것을 지켜보았다.

내가 풀어놓은 재앙을. 테네즈의 거짓말에 속아,
전쟁에 대한 조급함에 눈이 멀어, 경고를 무시하고 연 상자에서 나온 것을.

하지만 이상하게도 후회는 없었다. 아니, 후회를 넘어선 확신이 있었다.
피할 수 없는 운명이었을 것이다라는 확신.

씨든은 언젠가는 깨어날 존재였고,
내가 아니었어도 누군가가 그 봉인을 풀었을 것이다.

그렇다면 나는 단지 도구였나? 거대한 순환의 한 부분?

가렌이 비틀거리며 다가왔다. 그의 늙은 얼굴에는 여전히 충성심이 빛나고 있었다.
하지만 그 눈에는 물음도 있었다. ‘왜 이런 일이 일어났는가? 우리가 무엇을 잘못했는가?’

나는 대답할 수 없었다.
답을 알지 못했으니까.

첫날밤, 북쪽 하늘이 불타올랐다. 차가운 빛이었다.
얼음이 타오르는 것 같은, 혹은 영혼이 소멸하는 것 같은 푸르스름한 빛. 벨리아 마을이 있던 방향이었다.

새벽, 급히 근위대를 보냈다.
스무 명의 정예병이 말을 타고 북쪽으로 향했다. 돌아온 것은 한 명뿐이었다.

토비라는 이름의 신병이었다. 열여덟 살의 앳된 얼굴은 하룻밤 사이에 노인이 되어 있었다.
그의 머리는 새하얗게 세었고, 눈에는 너무 많은 것을 본 자의 공허함이 있었다.

“마을이… 마을이 사라졌습니다.”

그가 간신히 입을 열었을 때,
목소리는 갈라져 있었다.

“무슨 뜻이냐? 파괴되었다는 말이냐?”

“아닙니다. 사라졌습니다. 완전히. 흔적도 없이.”

나는 직접 가보기로 했다. 가렌이 말렸지만,
나의 실수를 눈으로 확인해야 했다. 기사단을 이끌고 북쪽으로 향했다.

벨리아 마을은 정말로 사라져 있었다.
마을이 있던 자리는 잿빛 평원이 되어 있었다.

빛이 빠진 세상, 의미가 소거된 공간, 존재가 부정된 장소.
흑백도 아닌, 색이라는 개념 자체가 없는 무(無)의 들판.

바람이 불었지만 소리가 없었다. 움직임은 있는데 소리가 없는 바람. 평원이 알 수 없는 가루를 날렸다.
재인지 먼지인지, 혹은 존재의 잔해인지. 손으로 잡으려 하면 아무것도 없었다.

그곳에 씨든의 발자국이 있었다.

거대한 발자국. 땅 위에 찍힌 건 아니었다. 바닥이 아니라, 더 깊은 무엇인가가 파였다.
그 자리에선 아무 소리도 없었다. 발자국 안은 어두웠고, 그 어둠엔 끝이 없었다.

보는 것만으로 빨려 들어갔다.
빛, 방향, 그리고 내가 알고 있던 모든 거리감.

주변에는 온갖 짐승들의 흔적이 어지럽게 나 있었다.

늑대, 켈바르, 하르나크, 그리고 이름 붙일 수 없는 것들의 발자국.
하지만 모두 한 방향을 향하고 있었다. 씨든을 따라 북쪽으로.

둘째 날, 동쪽의 세 마을이 같은 운명을 맞았다.

이번에는 생존자들이 있었다. 생존자라고 부를 수 있을진 모르겠지만.
그들의 육체는 살아있었으나 영혼은 이미 다른 곳에 있는 것 같았다.

머리카락이 하얗게 센 채로,
초점 없는 눈으로 허공을 보며 중얼거렸다.

“푸른 불꽃… 텅 빈 눈… 울음소리… 끝없는 울음소리…”

그들에게서 정연한 증언을 들을 수는 없었다.
하지만 파편적인 말들을 종합해 보니 대략의 그림이 그려졌다.

씨든이 마을에 나타났을 때, 먼저 모든 불이 꺼졌다고 했다.
횃불도, 난로도, 심지어 별들마저도. 그리고 울음소리와 함께 짐승들이 쏟아져 나왔다고.

“늑대만이 아니었습니다. 켈바르, 하르나크, 심지어 땅 밑에서 올라온 것들도…
짐승들은 서로 싸우지 않았습니다. 모두가 하나였습니다. 씨든의 의지 아래 하나로.”

셋째 날, 나는 오렌의 모든 기사와 마법사들을 소집했다.
가렌은 아직 회복되지 않았지만 갑옷을 입고 나왔다.

늙은 몸으로, 검도 없이. 하지만 그의 눈에는 여전히 투지가 있었다.
죽어가면서도 충성을 다하려는 기사의 마지막 자존심.

엘리아스도 왔다. 목소리를 잃었지만 손짓과 필담으로 조언을 했다.
그가 쓴 글귀 중 하나가 아직도 기억난다

“씨든은 선문명의 궁극병기입니다. 하지만 단순한 무기가 아닙니다.
살아있는 개념입니다. 문명 이전의 야생, 질서 이전의 혼돈. 우리가 맞서는 것은 존재의 부정 그 자체입니다.”

오렌 왕국의 최정예가 출정했다. 기사단 전체와 마법단의 핵심이었다.
하지만 돌아온 것은 절반도 되지 않았다. 그나마도 모두 부상을 입거나 정신이 나간 상태였다.

부대장 로렌츠가 보고했다.
그의 갑옷은 얼음으로 뒤덮여 있었고, 왼팔은 동상으로 시커멓게 변해 있었다.

“전하, 우리의 무기는 통하지 않았습니다. 검도, 창도, 화살도. 마법도…
모든 것이 그에게 닿기 전에 의미를 잃었습니다.”

“의미를 잃었다고?”

“다른 표현을 찾을 수 없습니다. 검은 검이기를 멈췄고, 불은 불이기를 포기했습니다.
그 앞에서 우리가 가진 모든 것은… 무의미했습니다.”

일주일이 지나자 오렌 북부 전체가 죽음의 땅이 되었다.

씨든과 그의 무리는 멈추지 않고 북진했다.
그들이 지나간 자리는 모두 잿빛 무(無)로 변했다. 생명도, 죽음도, 그 어떤 것도 남지 않았다.

난민들이 수도로 몰려들었다. 하지만 우리가 그들을 지킬 방법은 없었다.
성벽도, 마법진도, 그 어떤 것도 씨든을 막을 수 없을 것이다. 우리는 멸망을 기다리는 것밖에 할 수 없었다.

그때였다.

루딘의 전령이 도착한 것은.



-



[둘째 날]


어제는 루딘의 전령이 오는 것까지 썼구나. 에델가르드,
이제는 너도 느끼겠지. 이야기가 우리보다 오래 버티고 있다는 걸.

전령이 가져온 것은 편지 한 통이었다.
루딘의 친필. 봉인도 하지 않은 채였다. 숨길 것이 없다는 뜻이었다.

“오렌왕 발타사르에게.

동맹이든 적이든, 무고한 백성이 죽어가는 것을 두고 볼 수는 없습니다.
씨든을 막기 위해 내 마법사들을 보내겠습니다. 조건은 없습니다.
다만 이 재앙이 끝난 후, 그대와 이야기하고 싶을 뿐입니다.

- 루딘”

짧은 편지였다. 하지만 그 안에는 내가 평생 ** 못한 것이 있었다.
진정한 왕의 도량이랄까.

적에게조차 손을 내미는 용기.
루딘에게는 이미 적과 아군의 구분이 무의미했는지도 모른다.

그에게는 오직 사람만이 있었으니까.

처음에는 함정이라고 생각했다. 오렌이 약해진 틈을 타 침공하려는 계략이라고.
하지만 다른 선택이 있었나? 우리는 이미 막다른 골목에 몰려있었다.

이틀 후, 루딘의 마법사들이 도착했다.

서른 명의 흰 로브를 입은 마법사들. 그들을 이끄는 것은 대마법사 멜칸데르였다.
전설적인 현자. 루딘의 스승이자 마이소시아 대륙 최고의 마법사.

백발이 성성한 노인이었지만,
그의 눈에는 젊은이보다 더한 열정이 타오르고 있었다.

“발타사르 왕이시여.”

그가 내게 고개를 숙였다. 적국의 왕에게 예를 표하는 것이다.
형식적인 예의가 아니었다. 진심이 담겨있었다.

“늦어서 죄송합니다. 더 일찍 왔어야 했는데.”

“어떻게… 씨든을 막을 방법을 아시오?”

멜칸데르가 낡은 양피지 두루마리를 꺼냈다.
고대 문자로 빽빽이 적혀있었다. 선문명 시대의 유물이었다.

“절대영결의 진. 모든 것을 얼려 시간마저 멈추게 하는 궁극의 봉인술입니다. 하지만…”

그가 잠시 말을 멈췄다.
그의 얼굴에 그림자가 드리웠다.

“대가가 있습니다. 시전자의 생명력을 모두 소모합니다.
한 명이 아니라… 열 명이 필요합니다.”

순간 왕좌의 방이 침묵에 잠겼다. 열 명의 목숨.
그것도 대륙 최고의 마법사들의 목숨. 그들이 자신들의 죽음을 알고도 여기 온 것이다.

“자원자가 있소?”

내가 묻자 멜칸데르가 쓸쓸하게 웃었다.

“이미 정해졌습니다. 우리가 여기 온 순간부터.”

그날 밤, 나는 열 명의 마법사를 한 명씩 찾아갔다. 왕으로서가 아니라 한 인간으로서.
그들의 희생에 감사하기 위해서. 아니, 사과하기 위해서. 내 실수로 인해 그들이 죽어야 한다는 것에.

마지막으로 찾아간 것은 엘레나였다. 스물둘의 젊은 마법사.
루딘이 직접 발탁한, 가장 촉망받는 신예였다고 했다. 그녀는 탑 꼭대기에서 별을 보고 있었다.

“폐하께서 오실 줄 알았습니다.”

그녀가 돌아** 않고 말했다.

“미안하오. 내가… 내가 어리석었소.”

“후회하십니까?”

“당연하지 않소?”

엘레나가 돌아보았다.
놀랍게도 그녀는 웃고 있었다.

“후회는 과거에 묶인 자들의 사치입니다. 저희는 미래를 위해 왔습니다.”

“하지만 그대들의 미래는…”

“끝나겠지요. 하지만 다른 이들의 미래는 계속됩니다. 그것으로 충분합니다.”

그녀의 말에 나는 할 말을 잃었다. 스물둘의 나이에 어떻게 그런 달관에 이를 수 있을까?
그녀의 눈에는 분명 두려움도 있었다. 하지만 두려움보다 더 큰 수용이 있었다.

“죽는 것이 아닙니다, 전하. 제가 행했던 모든 것, 배웠던 모든 것,
사랑했던 모든 것이 이 주문 속에 녹아들 것입니다. 그리고 영원히 남겠지요. 씨든을 묶는 사슬이 되어.”

다음 날 새벽,
씨든이 수도에서 불과 10리 떨어진 곳까지 접근했다는 보고가 들어왔다.

북쪽 지평선이 잿빛으로 물들어 있었다. 씨든이 지나온 길이었다.
생명이 사라진 땅. 의미가 소거된 공간. 그리고 그 잿빛이 천천히, 멈추지 않고 우리를 향해 다가오고 있었다.

성벽 위에 거대한 마법진이 그려졌다.
멜칸데르의 지휘 아래 마법사들이 밤새 작업한 것이다.

수백 개의 룬과 기호들이 복잡하게 얽혀있었다.
고대의 지혜와 작금의 기술이 하나로 합쳐진 궁극의 주문진.

열 명의 마법사가 마법진의 중심에 원을 그리며 섰다.
흰 로브가 아침 바람에 펄럭였다.

그들의 얼굴은 평온했다.
죽음을 앞둔 자들의 얼굴이 아니었다. 중요한 의식을 앞둔 사제들 같았다.

멀리서 씨든의 울음소리가 들려왔다. 복잡한 화음의 그 울음. 듣는 것만으로도 온몸이 얼어붙는 것 같았다.
하지만 이번에는 달랐다. 울음소리에 뭔가 다른 것이 섞여있었다. 호기심? 놀람? 혹은 기대?

씨든이 언덕 너머로 모습을 드러냈다.
그를 따르는 것들의 행렬이 끝없이 이어졌다.

드렐가, 모르바크, 그리고 이름 붙일 수 없는 것들.
씨든의 의지 아래 하나로 움직이는 거대한 유기체였다.

씨든이 성벽 앞에서 멈춰 섰다.
고개를 들어 마법진을 올려다보았다.

텅 빈 눈구멍의 푸른 불꽃이 복잡한 룬 문자들을 하나하나 읽어 내려가는 것 같았다.
그리고는 그 특유의 울음을 냈다. 이번에는 분명히 달랐다.

인정? 그래, 그것은 인정하는 소리였다.
‘그래, 이 정도면 나를 상대할 자격이 있다’는.

“시작합시다.”

멜칸데르의 신호와 함께 열 명의 마법사가 주문을 외우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각자의 목소리였지만, 점차 하나로 합쳐졌다.

룬 문자들의 운율이 공기를 진동시켰다.
현실의 법칙이 흔들리기 시작했다.

마법진이 빛나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작은 푸른빛이었지만, 점차 강해졌다.
룬 문자 하나하나 살아나 춤추듯 움직였다. 서로 연결되고 분리되며 더 복잡한 패턴을 만들어갔다.

그때 나는 보았다.
마법사들이 변하기 시작하는 것을.

엘레나의 갈색 머리가 먼저 하얗게 변했다.
한 올 두 올이 아니라 모두 순식간에.

스물둘의 얼굴에 주름이 생기기 시작했다.
눈가에, 입가에, 이마에. 시간이 빨리 감기는 것처럼 그녀는 늙어가고 있었다.

다른 마법사들도 마찬가지였다.

젊은이들은 중년이 되고, 중년들은 노인이 되었다.
그들의 생명력이 마법진으로 흘러들어 가고 있었다. 문자 그대로 목숨을 바쳐 주문을 만들어내는 것이다.

씨든이 움직였다. 처음으로 그가 먼저 행동했다.
팔을 들어 마법진을 향해 뻗었다. 공기가 얼어붙으며 창 모양의 얼음이 형성되었다.

아니다. 얼음이 아니었다.
그보다 더 근원적인 무언가. 존재의 부정이 물질화된 것.

그것이 마법진을 향해 날아갔다. 하지만 마법진에 닿는 순간 산산조각 났다.
마법사들의 생명력으로 만들어진 방벽이 그것을 막아낸 것이다. 처음으로 씨든의 공격이 무력화된 순간이었다.

씨든의 울음소리가 변했다. 분노? 아니었다. 오히려… 기쁨?
마침내 자신과 대등한 적수를 만났다는 환희 같은 것이 느껴졌다. 그는 더 크게 울부짖기 시작했다.

땅이 갈라지고 하늘이 어두워졌다.

씨든을 따르던 괴물들이 일제히 돌진했다. 수백, 수천의 마수들이 성벽을 향해 밀려왔다.
하지만 그들 역시 마법진에 닿는 순간 멈춰 섰다. 시간이 느려지고, 움직임이 둔해지더니, 마침내 완전히 정지했다.

절대영결의 진.
시간마저 얼려버리는 궁극의 마법.

마법사들의 주문이 절정에 달했다. 이제 그들의 모습은 거의 알아볼 수 없었다.
엘레나는 백발의 노파가 되어있었고, 다른 이들도 마찬가지였다. 생명의 마지막 불꽃을 태우고 있었다.

“지금이다!”

멜칸데르의 외침과 함께 마법진이 폭발하듯 빛났다.
모든 것을 안으로 빨아들이는 것 같은, 거대한 무의 소용돌이가 생겨났다.

씨든을 향해 퍼져나갔다. 잿빛도 아니고 푸른빛도 아닌, 색이라는 개념을 초월한.
그것이 닿는 곳마다 모두 멈췄다. 바람이, 구름이, 날아가던 새들까지도.

씨든이 뒤로 물러섰다. 그리고는 모든 힘을 모아 울부짖었다. 이제까지와는 차원이 다른 울음이었다.
천 개의 목소리가 만 개가 되고, 만 개가 십만 개가 되어 온 세상을 뒤흔들었다.

하지만 소용없었다.
절대영결의 진은 멈추지 않았다. 씨든의 울음마저 얼려버렸다.

소리가 공중에서 결정이 되어 부서져 내렸다. 보고 있는 것조차 버거웠다.
소리가 물질이 되어 산산조각 나는 광경.

마침내 절대영결이 씨든에게 닿았다.

이 순간을 어떻게 설명해야 할까. 멈춘 것도, 얼어붙은 것도 아니었다.
움직임이 사라진 게 아니라, 처**터 없던 것처럼. 씨든은 시간과 존재의 경계에 잠겼다.

씨든의 마지막 울음이 울려 퍼졌다.
그런데 이상했다. 분노도 절망도 아니었다.

오히려… 안도? 그래, 안도하는 소리였다.
마침내 쉴 수 있다는, 영원한 잠에 들 수 있다는 안도.

그렇게 바라보다가… 문득, 생각했다.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씨든도, 원해서 그렇게 된 건 아니었겠지.

그도 처음엔 이름이 있었을 것이다. 괴물의 이름이 아닌.
사랑하는 사람들, 지키려 했던 것들. 그런 게 있었겠지.

누군가 그걸 꺾었고, 그를 칼로 만들었고, 천 년을 그 안에 가두었고.
지금, 그에게 죽음은 벌이 아니라… 해방이었을지도 모른다는.

씨든이 완전히 멈췄다. 그와 함께 모든 것이 정지했다.
마수들도, 바람도, 심지어 먼지까지도. 거대한 얼음 조각상이 된 세상.

일시적인 것이 아니었다.
영원히, 혹은 누군가가 다시 봉인을 풀 때까지 지속될 정지였다.

열 명의 마법사가 하나둘 쓰러졌다. 엘레나가 마지막이었다.
백발이 된 그녀가 나를 보며 희미하게 웃었다. 입술이 움직였다. 소리는 나오지 않았지만 무슨 말인지 알 수 있었다.

‘이제… 안전합니다…’

그리고 그녀도 눈을 감았다. 평화로운 얼굴이었다. 깊은 잠에 든 것처럼.
모두가 그랬다. 고통의 흔적은 없었다. 그들은 웃으며 영원으로 떠났다.

멜칸데르만이 남아있었다.
그도 많이 늙어있었지만 아직 살아있었다. 그가 비틀거리며 내게 다가왔다.

“끝났습니다, 전하. 씨든은 봉인되었습니다.”

“얼마나… 얼마나 오래?”

“알 수 없습니다. 백 년일 수도, 천 년일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언젠가는… 누군가가 또다시…”

그는 더 말하지 못했다. 기력이 다했던 것이다.

내가 그를 부축했다. 한때 적이었던 나라의 왕이 적국의 현자를 부축하는 광경.
하지만 이제 적과 아군의 구별이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감사하오. 정말로… 감사하오.”

“감사는 루딘 왕께 하십시오. 그분이 아니었다면…”

일주일 후,
루딘이 왔다. 대군을 이끌고 온 것이 아니었다.

그의 가장 충직한 심복인 아인델만 대동한 채,
여행자의 차림으로. 검은 갑옷 대신 적색 로브를 걸치고 있었다.

“발타사르 왕.”

그가 나를 부를 때,
거기에는 어떤 적의도 조롱도 없었다.

나는 무릎을 꿇었다.

오렌의 왕이 적국의 왕에게 무릎을 꿇는 것. 전례 없는 일이었다.
하지만 내가 루딘에게 할 수 있는 최소한의 예의였다.

“용서해 주시오. 내 어리석음이 이 모든 비극을…”

“일어나십시오.”

루딘이 나를 일으켜 세웠다.
그의 손은 거칠었다. 전사의 손이었다. 하지만 따뜻했다.

“우리 모두가 실수했습니다.
테네즈에게 속은 것은 당신만이 아닙니다. 저도 그를 믿었으니까요.”

“하지만 마법사들이… 당신의 백성이…”

“그들은 제 백성이기 이전에 자유로운 인간들이었습니다.
스스로 선택했고, 명예롭게 죽었습니다.”

루딘의 눈을 보니 그가 진심임을 알 수 있었다.
복수하러 온 것이 아니었다. 그보다 더 큰 가치를 위해 온 것이다.

“이제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모르겠소. 왕국의 북부는 모두 죽은 땅이 되었고,
백성의 절반을 잃었소. 왕으로서 실격이오.”

“그렇다면 함께 가시지요.”

“무슨 말씀이오?”

루딘이 북쪽을 가리켰다.
씨든이 봉인된 곳. 거대한 얼음 조각상이 된 괴물과 군단.

“당신만의 책임이 아닙니다. 우리 모두의 책임입니다.
인간이 만든 재앙이니, 인간이 함께 지켜야 합니다.”

그날, 오렌은 독립을 포기하고 루딘의 깃발에 합류했다.
항복이 아니었다. 선택이었다. 혼자서는 지킬 수 없는 것을 함께 지키기로 한 것이다.



-



[셋째 날]


마지막 날이구나, 에델가르드.
내일이면 나도 떠난다. 하지만 아직 하고 싶은 말이 남아있다.

씨든의 발현 이후 내가 깨달은 것들에 대해 말하고 싶다.
권력에 대해, 선택에 대해, 그리고 인간에 대해.

씨든은 악이었을까?

처음에는 그렇다고 생각했다. 절대적인 악. 파괴와 죽음의 화신.
하지만 시간이 지나며 생각이 바뀌었다. 그는 악이 아니었다. 힘이었다.

방향도 목적도 없는 순수한 힘. 문명 이전의 야생, 질서 이전의 혼돈.

악으로 만든 것은 인간이었다.
그를 무기로 만들고, 적을 파괴하는 도구로 사용하려 한 인간의 욕심.

테네즈만이 아니다. 선문명 시대에 씨든을 만든 자들,
그리고 이를 봉인하지 않고 후세에 남긴 자들. 모두가 공범이었다.

그렇다면 나는?

나도 마찬가지였다. 전쟁에서 이기고 싶었다.
백성을 지킨다는 명분으로, 하지만 실은 왕좌를 지키고 싶었다.

욕심이 눈을 멀게 했다.
명백한 경고들을 무시하게 했다.

하지만 루딘은 달랐다.

그도 왕이었고, 그도 전쟁을 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는 적국의 백성을 구하기 위해 자신의 백성을 보냈다.

아무런 조건 없이.
그것이 옳았기 때문에.

그때 나는 깨달았다. 진정한 왕이 무엇인지를.
왕관을 쓴다고 왕이 되는 것이 아니다.

백성을 위해 올바른 선택을 하는 자가 왕이다.
설령 이 결정이 자신에게 불리하더라도.

씨든이 남긴 상처는 아직도 아물지 않았다.
북부의 땅은 여전히 죽어있고, 봄이 와도 꽃이 피지 않는다.

하지만 사람들은 돌아오고 있다. 조금씩, 천천히.
죽은 땅 주변에 씨를 뿌리고, 나무를 심는다. 언젠가는 다시 생명이 돌아올 것이라 믿으며.

씨든은 아직도 그곳에 있다. 얼어붙은 채로. 사람들이 이따금 방문한다고 한다.
거대한 얼음 조각상이 된 괴물을. 어떤 이들은 두려워하고, 어떤 이들은 경외하고, 어떤 이들은 연민한다.

변한 것은 없다. 씨든은 여전히 그 자리에 서 있다.
텅 빈 눈구멍의 푸른 불꽃도 얼어붙은 채로.

정확히 알 수는 없으나, 일면 평화로워 보이기까지 하다.
더 이상 울지 않아도 되고, 더 이상 파괴하지 않아도 되는 존재의 평화.

그 앞에 작은 사원이 세워져 있다. 누가 만들었는지는 모른다. 아마 마을 사람들일 것이다.
그들도 깨달았으리라. 씨든도 피해자였다는 것을. 인간의 욕심이 만든 또 하나의 희생자.

사원에는 꽃이 놓여있다.
겨울인데도 시들지 않는 하얀 꽃. 그리고 작은 팻말이 있다.


‘여기 영원에 다다른 이를 위해.

그가 다시는 깨어나지 않기를.

그가 평화를 찾기를.’


멜칸데르의 경고가 맞다면,
언젠가는 봉인이 풀릴 것이다.

백 년 후든 천 년 후든.
그리고 또 누군가가 씨든을 이용하려 할 것이다.

전쟁을 위해, 정복을 위해,
혹은 단순한 호기심으로.

그때를 위해 이 기록을 남긴다.

씨든은 무기가 아니다. 그는 비극이다.
인간이 인간이기를 포기했을 때 무엇이 되는지를 보여주는 거울이다.

그를 이용하려 하지 마라.
그를 두려워하되 연민하라. 그리고 기억하라.

혼자서는 괴물이 될 수밖에 없다.
하지만 함께라면 인간으로 남을 수 있다.

테네즈는 혼자였다.

복수심에 갇혀, 증오에 눈이 멀어,
혼자가 되기를 선택했다. 그래서 괴물이 되었다.

씨든을 깨운 것이 아니라 자신 안의 씨든을 깨운 것이다.

하지만 우리는 혼자가 아니었다.
가렌이 있었고, 엘리아스가 있었고, 멜칸데르가 있었고, 엘레나가 있었고,

무엇보다 루딘이 있었다.
서로가 서로를 인간으로 남게 해 주었다.

에델가르드,
오랜 벗이여.부탁이 있다.

이 기록을 지켜다오.
그러나 감추지는 말기를.

언젠가,
누군가는 이 말들을 필요로 할 테니까.

우리가 남긴 실수 위에 또다시 눈이 덮이지 않도록.

그리고 하나 더.
두려워하지 말라고 전해달라.

실수를 두려워하지 말고, 선택을 두려워하지 말라고.

완벽한 선택은 없다. 완벽한 왕도 없고, 완벽한 인간도 없다.
우리는 그저 매 순간 더 나은 선택을 하려고 노력할 뿐이다.

때로는 실패할 것이다. 나처럼.
하지만 그 실패에서 배우고, 다시 일어서고, 함께 걸어가면 된다. 그것이 인간이다.

창밖으로 봄비가 내린다.
겨울이 끝나가는구나. 씨든이 지나간 북쪽에도 언젠가는 봄이 올 것이다. 시간이 걸리겠지만.

나는 그때까지 살지 못할 것이다. 하지만 괜찮다.
내가 뿌린 씨앗이 아니더라도, 누군가가 뿌린 씨앗이 자라나 꽃을 피울 것이다.



[증언 종료]



[서기관 에델가르드의 비문]


전하께서는 이 마지막 말씀을 남기신 다음 날 새벽, 평화롭게 잠드셨습니다.
고통은 없으셨습니다. 오랜 여행을 마치고 집에 돌아온 사람처럼 편안한 얼굴이셨습니다.

전하의 유언대로 이 기록을 숨기지 않고 보관합니다.
필요한 이가 있다면 읽을 수 있도록. 같은 실수를 반복하지 않도록. 그리고 기억하도록.

우리는 혼자가 아니라는 것을.


- 왕실 서기관 에델가르드



-



[문서고 관리인 최종 주석]


이 증언록은 역사의 기록을 넘어선다.

한 인간이 자신의 실패를 통해 얻은 지혜, 권력의 본질에 대한 통찰,
그리고 연대의 가치에 대한 깨달음이 담겨있다.

특히 주목할 것은 발타사르왕이 씨든을 괴물이 아닌 또 다른 피해자로 이해하게 되는 과정이다.
이는 선악의 이분법을 넘어선 성숙한 인식을 보여준다.

“혼자서는 괴물이 될 수밖에 없다”는 통찰은 권력의 부패가 고립에서 온다는 것을 정확히 짚어낸다.
테네즈가 복수심에 갇혀 고립을 선택했을 때, 그는 이미 내면의 씨든을 깨운 것이다.

씨든의 봉인은 지금도 유지되고 있다. 하지만 언젠가 종말의 노래가 다시금 열릴 수 있다.
그때 이 기록이 경고가 되기를, 그리고 희망이 되기를 바란다.



ㅡ 루어스 제국 도서관 비밀문서고
관리인, 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