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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의 마을 세오
「秘」 파괴신의 발걸음
464 2025.07.24. 22:23

秘, 루어스의 비밀 문서고
















서고 위치: 최심층 흑요석함

문서 인장: 「해골과 장미」「검은 테두리」

문서 제목: 파괴신의 발걸음 - 대전쟁의 그늘

기록 연대: 퀸셰어 치세 초기

발견 경위: 테네즈 영지의 폐성 우물 바닥, 가죽 주머니에 싸인 채 침수

문서 보존: 가을 잎처럼 약간 바램

열람 제한: 고위 성직자 이상

관련 문서: 없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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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서고 관리인 주석]

이 문서는 대전쟁 당시 테네즈 진영에 있었던
익명의 생존자가 남긴 기록으로 추정된다.

필체와 문체로 미루어 상당한 연륜의 학자로 보이며,
패전 후 수십 년간 은둔하며
이 증언을 써 내려간 것으로 여겨진다.

승자의 기록과는 다른 시각을 담고 있어
읽는 이의 신중한 판단을 요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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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서 시작]

청명한 나팔 소리가 대평원을 가로질러 울려 퍼지는 가운데 흰 깃발이 바람에 펄럭이면서,
황금빛으로 물든 지평선 너머로 우뚝 솟은 도시 루어스의 전승절이 시작되었다.

왕도를 따라 늘어선 석조 건물들은 모두 처마 끝마다 제국의 문장이 새겨진 비단을 내걸었다.
붉은 벽돌과 하얀 회벽으로 단장한 저택들과 고대 양식의 정원들 사이로 뻗은 대로를 따라,
시장의 활기찬 소음을 지나, 웅장한 광장과 구름을 찌를 듯한 성 벨라시온 대성당을 거쳐 승리의 행렬이 나아갔다.

진홍색 케이프를 두른 고위 사제들과 침묵의 서약을 지키는 수도승들,
그리고 갓 태어난 아기를 품에 안고 경건하게 찬송가를 부르는
젊은 어머니들로 이루어진 선두 행렬은 질서정연하면서도 경건했다.

다른 대로에서는 황실 악단의 화려한 연주와 확성 주문이 걸린 성가대의 합창이 뒤섞여 점차 웅장해졌고,
그 장엄한 선율에 맞춰 시민들이 춤추듯 행진했다.

행렬 자체가 하나의 거대한 축전이었다.
음악과 환호성을 뚫고 날렵한 제비처럼 아이들이 까르르 웃으며 어른들 사이를 누비고 다녔다.

모든 기념 행렬은 완만한 곡선을 그리며 도시의 중심부로 모여들었다.

시민들이 ‘정복왕의 광장’이라 부르는 거대한 원형 광장에서는,
찬란한 아침 햇살 아래 갑주를 벗은 기사들이 진흙투성이 맨발로 홀리루딘의 동상 앞에 무릎 꿇고 있었다.

군마들에게는 화려한 장식 대신 소박한 삼베 천을 둘렀고 보석 박힌 재갈 대신 가죽끈만을 물렸다.
검게 염색한 갈기는 추모의 의미로 짧게 잘라냈고, 오직 붉은 리본 하나만이 승리를 상징하듯 나부꼈다.
말들은 주인과 함께 고개를 숙이고 있었다.

모든 생명체가 대전쟁의 대가를 기억하는 듯했다.

멀리 대평원 너머로는 끝없이 펼쳐진 황금빛 밀밭이 풍요의 증거처럼 출렁거렸다.
아침의 대기가 너무나 맑아서 지평선 끝에 희미하게 보이는 옛 테네즈 영지의 폐허가 신기루처럼 떠올랐다가 사라졌다.

연무장을 둘러싼 깃발들이 마법으로 만든 미풍에 일제히 나부꼈다.

드넓게 펼쳐진 광장의 숙연한 분위기 속에서, 도시의 구석구석에서 모여든 군중의 속삭임이
때로는 물결처럼 퍼지고 때로는 잦아들다가 마침내 거대한 종소리와 함께 일제히 침묵으로 변하는,
수만 명의 경건한 기도와 수백 개의 악기가 만들어내는 진혼곡이 루어스의 하늘을 가득 채웠다.

통합이여! 이 피로 얻은 통합의 진정한 의미를 아는 자 누구인가?

그렇다면 내가 루어스를 어떻게 그려야 할까?
황금으로 치장한 왕좌에서 수많은 신하들을 굽어보며 권위를 과시하거나,
보석으로 장식된 화려한 행렬 속에서 백성들의 찬사를 받으며 우쭐대는 퀸셰어 여제의 모습을 상상할까?

혹은 궁전의 높은 누각에서 내려다보며 제국의 광대함에 도취되어 있는 군주의 모습을?
아니다. 여제는 검소한 가마를 타고 다녔고, 기사들은 소박한 철검을 고집했으며,
백성들은 리콜의 마법에 의존하지 않고 자신의 두 발로 걸어 다녔다.

그들은 타락한 향락주의자들이 아니었다.
권력에 취해 방탕한 삶을 일삼는 폭군들과는 거리가 멀었다.

물론 내가 루어스의 모든 관습과 제도를 완벽히 이해한다고 주장하는 것은 아니다.
다만 그런 것들이 의외로 신중하게 절제되어 있었다는 점은 분명하다.

테네즈의 공포 정치나 어둠의 전설 연합의 폭정을 겪었기에,
그들은 권력의 남용이나 마법의 오용, 종교적 광신, 맹목적 복종 같은 것들을 경계했다.

그런데 나는 지금 무엇을 설명하려 애쓰는 것일까?

루어스 사람들은 단순한 이상주의자가 아니었고, 목가적인 농부도 아니었으며,
무지한 군중도 순진한 낙천주의자도 아니었다. 그들의 세계는 상상하는 것보다 훨씬 복잡하고 미묘했다.

문제는 우리가 평화를 나약함과 동일시하는 전쟁 숭배자들과 냉소적인 편견에 익숙해져 있다는 점이다.
오직 갈등만이 의미 있고 고통만이 진실하다는 식으로 믿도록 길들여져 있다.

이는 삶의 가능성을 부정하는 일이다.

파괴를 미화하는 것은 창조를 모독하는 일이며,
폭력을 정당화하는 것은 평화의 가치를 부정하는 일이다.

우리는 선조들이 목숨 바쳐 지킨 거의 모든 가치를 하찮게 여기게 되었다.
더는 조화로운 삶에 대해 진지하게 논의할 수 없을 뿐 아니라 공존의 의미조차 이해하지 못하는 시대가 되었다.

내가 어떻게 루어스 시민들의 삶을 온전히 전달할 수 있겠는가?
그들은 안일하게 현실에 안주하는 겁쟁이들이 아니다. 그들은 고통 없는 삶을 영위하는 성숙하고,
사려 깊으며 생동감 넘치는 시민들이다.

실로 얼마나 놀라운 성취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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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내가 그 의미를 보다 설득력 있게 전달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나의 서술을 따라가다 보면, 루어스가 현실과 동떨어진 이상향, 실재하지 않는 환상의 도시처럼 느껴질지도 모른다.

어쩌면 각자의 경험과 상상력으로 그 모습을 재구성하는 편이 더 나을 수도 있다.
나로서는 모든 이의 기대에 부응할 만큼 완벽하게 묘사할 재능이 부족하니까.

예를 들어 고대 선문명기 아틀란툼의 기계화된 도시를 생각해 보자.

전설에 따르면 그들의 거리에는 골렘이 끄는 마차가 굴러다녔고
마법으로 부양하는 건축물들이 하늘을 가득 메웠다고 하지만,

루어스에는 그런 것들이 (앞으로도) 존재하지 않을 것이라 확신한다.
루어스 사람들은 균형의 가치를 알기 때문이다.

균형이란 필수불가결한 것, 유용하되 위험하지 않은 것,
그리고 해로울 뿐인 것을 명확히 구분하는 지혜에서 나온다.

특히 두 번째 범주에 속하는 것들 - 필수적이지는 않으나 삶을 윤택하게 하는 것들,
편의와 아름다움과 여유 같은 가치들을 고려할 때, 그들은 에테르나 연금술, 무형 강화,

그리고 우리가 꿈꾸는 혁신적인 마법들, 예컨대 시간 조작 마법이나 공간 확장 주술,
대전쟁 당시 사용되다가 봉인된 디먼스텔라와 같은 파괴적인 마법들을 온화한 용도로 바꾸어 쓰는
기법 같은 것들을 이미 개발했을지도 모르고, 혹은 그런 가능성을 알면서도 의도적으로 자제했을 수도 있다.

아틀란툼이 그토록 발달한 기계 문명에도 불구하고
결국 멸망의 길을 걸었다는 교훈을 루어스 사람들은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사실이 중요한 것은 아니다.

다만 루어스 주변 지역에서 모여든 제국의 신민들이 제국의 대로를 따라 며칠에 걸쳐 걸어오거나,
상인들의 마차를 얻어 타고 험한 산길과 강을 건너며, 혹은 가족 단위로 소달구지에 짐을 실어 나르며

전승절 수일 전부터 속속 도착한 덕분에 북적이는 중앙 광장은, 비록 화려한 왕궁보다는 소박하더라도
대전쟁 이후 마이소시아에서는 단연 가장 의미 있는 공간이라는 점만은 강조하고 싶다.

교통 문제야 어떻게 해결했든 간에 지금까지 내가 루어스에 대해 서술한 내용만으로도
냉소적인 사람들은 코웃음 칠지도 모른다. 평화로운 일상, 종소리, 행렬, 기념일, 그리고 또 무엇이란 말인가…

원한다면 여기에 성대한 연회를 추가로 상상해도 좋다.
그런 화려한 장면이 루어스를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된다면.

다만 거룩한 사제와 수도자들이 가득한 곳에서 종교적 열광에 사로잡혀,
신성한 7신과의 합일을 추구하며 신분이나 출신,
신자나 이교도를 가리지 않고 무차별적으로 개종을 강요하는 광신도 집단을 떠올리지는 말기를 바란다.

사실 처음엔 나도 그런 우려를 했지만 기우였다.
루어스에는 극단적 종파가 없다고, 적어도 이성을 마비시키는 위험한 사이비는 존재하지 않는다고 보는 것이 맞다.

신앙은 깊되 맹신은 없는 셈이다.

물론 가난한 이들과 함께 빵을 나누듯
자신의 확고한 믿음을 겸손하게 전하며 각지를 순례하는 이들은 있을 것이다.

그들도 행렬에 참여하게 하자. 기도하는 무리 속에서 종을 울리고 향을 피워 경건함을 표현하며.
그리고 이건 특히 중요한데, 그러한 신실한 만남을 통해 형성된 공동체를 따뜻하게 돌보도록 하자.

내가 확신하는 한 가지는
루어스 사람들이 죄책감에 짓눌려 있지 않다는 사실이다.

처음에 나는 루어스에 취기를 돋우는 술 이외의 것들이 없을 거라 생각했지만, 지나치게 순진한 기대였다.
향락을 아는 이들이라면 루어스 어느 뒷골목에서든 은밀하면서도 매혹적인 ‘베노미’의 향취를 감지할 수 있을 것이다.

베노미는 처음에는 마음과 몸의 긴장을 풀어주고, 이어서 몇 시간 동안 평온한 몽상 상태를 유도하며,
세상의 신비로운 연결성을 직관하게 한 뒤, 마침내 형언할 수 없는 관능의 향연을 선사한다.
다행히 베노미는 의존성도 적고 해롭지 않다.

그보다 더 소박한 취향의 소유자들에게는 포도주면 충분할 것이다.
이 평화로운 도시에 그 밖에 무엇이, 대체 무엇이 더 필요하겠는가?

물론 전투에서 거둔 승리의 기억, 용기에 대한 존경이 있을 수도 있다.
하지만 맹목적 신앙 없이도 의미 있는 삶을 살 수 있듯이, 우리는 전쟁 없이도 충분히 고귀할 수 있다.

무자비한 정복으로 얻는 영광은 진정한 영광이 아니며,
그런 방식으로는 참된 명예를 얻을 수도 없다.

설령 영광이 있다 해도 피비린내 나는 것일 뿐이며
그러한 명예의 대가는 감당하기 어려울 만큼 무거울 뿐이다.

끝없이 너그러운 이해, 이 세상 모든 존재의 내면에 잠재된 가장 순수하고 고귀한 가능성과의 공감,
그리고 이 세상이 보여주는 무한한 아름다움!

그런 것들이야말로 루어스 시민들의 가슴속에 충만한 긍지이며,
그들이 기념하는 대전쟁이야말로 그러한 가치를 실현하는 삶인 것이다.
그들 대부분에게 베노미가 불필요할 정도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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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행렬의 대부분이 ‘정복왕의 광장’에 도착했다.

광장 한편에 마련된 흰색과 붉은색 장막에서는 축제 음식의 구수한 냄새가 퍼져 나온다.
어린아이들의 볼은 꿀과자 가루로 반짝거린다.
젊은 수련 기사들은 각자의 말에 올라타 대형을 갖춰 마상 경연을 준비한다.

인자한 미소의 노부인이 바구니에서 아칸더스를 하나씩 꺼내어 지나가는 이들에게 건네고,
건장한 청년들은 그 꽃을 투구나 머리에 꽂는다.

군중의 한쪽 구석에는 열두 세 살쯤 되어 보이는 소녀가 홀로 앉아 은빛 류트를 연주한다.
사람들은 발걸음을 멈추고 귀 기울이며 온화하게 미소 짓지만 아무도 소녀에게 말을 걸지는 않는다.

끊임없이 이어지는 선율에 몰입한 소녀의 깊고 맑은 눈은 애절하면서도
초월적인 음악 속에 완전히 빠져들어 주변 세계를 의식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소녀가 마침내 연주를 멈추고 류트를 든 손을 천천히 내려놓는다.

소녀의 고요한 침묵이 신호라도 된 양
경기장 주변의 망루에서 웅장하고도 엄숙한 호른 소리가 길게 울려 퍼진다.

군마들은 우아하게 고개를 들어 올리거나 낮은 울음으로 화답한다.
기수들은 진지한 표정으로 말의 목을 쓰다듬으며 차분히 말을 건넨다.

“준비됐나, 오랜 벗이여……”

그들은 출발선에 질서정연하게 늘어선다.
경기장을 에워싼 관중들이 마치 바람에 일렁이는 대평원의 풀밭처럼 물결친다.

마침내 대전쟁 기념 연무 의식이 시작되는 것이다.

내 이야기를 믿는가? 축제와 도시, 그리고 모든 평화에 관한 나의 묘사가 진실하다고 생각하는가?
의구심을 품는다면 이제 한 가지를 더 밝혀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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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까지 내가 쓴 모든 문장들이 거짓말이라면 어떨까.
아니, 거짓말이라는 표현이 정확하지 않다.

진실의 한 면만을 보여준 것이라고 해야 할까.

내가 루어스의 축제와 평화로운 일상을 묘사했지만, 이는 마치 성당의 색유리 창을 통해 본 세상과 같다.
아름답고 거룩하지만, 유리 너머의 실제 풍경과는 다른 것이다.

색깔과 빛이 굴절되고 선택되어 보이는 것이다.
루어스의 진실은 그 유리창 너머에 있다.

루어스 제국 도서관의 깊은 곳에는 감춰진 방이 있다.
정확히는 일곱 층 아래, 가장 깊고 어두운 곳에 자리한 봉인된 공간이다.

그곳으로 통하는 길은 하나뿐이고 문은 고대의 마법과 금세기의 주술이 겹겹이 둘러싸고 있다.
좁고 습한 복도 끝에 있는 철문 너머, 좁은 정방형 공간에는 쇠사슬로 옭아맨 검은 석함 하나가 놓여 있다.

함의 표면에는 멘트 시대보다 오래된 문양들이 새겨져 있고,
그 위로 일곱 개의 봉인이 겹쳐져 있다. 바닥은 차갑고 축축하며, 오랜 세월이 쌓인 먼지가 공기 중에 떠다닌다.

석함 안에는 책이 한 권 들어 있다.

책이라고 부르기에는 어딘가 다른 존재인데, 검게 그을린 가죽 표지 위로 붉은 글씨가 새겨져 있다.
『파괴신의 발걸음』. 3일 전쟁의 모든 기억과 뮤레칸과 7신이 벌인 싸움의 진실,

멘트 문명이 멸망한 참된 이유를 담은 금서 중의 금서다.

뮤레칸의 의지가 스며든 그릇이라 말하는 이가 있는가 하면, 봉인을 유지하는 닻이라 여기는 이도 있고,
미래에 다시 깨어날 재앙의 씨앗이라 두려워하는 이도 있다.

루어스 사람들은 지하에 무엇이 봉인되어 있는지 안다.

직접 내려가 본 이도 있고, 전해 들은 이도 있다.
왜 그곳이 그런 식으로 봉쇄되어야 하는지에 대해서는 모두가 침묵하며 받아들인다.

정확한 연유를 말로 설명할 수는 없지만, 불가항력적 필연처럼 그런 상태가 유지되어야 한다.
과거가 현재 속에 묻혀 있어야 하고, 어둠이 빛 속에 잠재해야 하듯이.

루어스의 젊은이들은 성년이 되면서 제국 시민으로서 완전한 권리와 의무를 갖게 될 때
비로소 지하 깊은 곳의 비밀에 대해 듣게 된다.

최심층으로 내려가는 이들은 대부분 호기심에 이끌린 청년들이지만,
때로는 오랜 세월의 지혜를 쌓은 노인이 다시 찾기도 하며,
한 번 목격한 후로 그 기억에서 벗어나지 못해 몇 번이고 되돌아오는 이들도 있다.

아무리 충분한 사전 설명을 들었다 해도
젊은 방문자들은 실제 광경 앞에서 언제나 압도되고 혼란에 빠진다.

한 권의 책이 어떻게 그토록 무거운 존재감을 뿜어낼 수 있는지,
어떻게 그토록 깊은 두려움과 동시에 거부할 수 없는 매혹을 동시에 불러일으킬 수 있는지 납득하지 못한다.

그들이 지금까지 쌓아온 모든 확신과 믿음이 흔들리는 것을 경험한다.
처음에는 부정하고 의문을 제기하며, 이어서 절망에 빠진다.

어떤 이는 위험한 금서를 완전히 없애야 한다고,
더 깊은 곳에 묻어버리거나 아예 화염에 태워 소각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그들의 의지로는 어찌할 수 없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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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약 누군가 봉인을 해제하여 석함을 열고 금서를 꺼낸다면,
펼쳐서 읽기 시작한다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재앙인가, 해방인가.

정말로 그런 일이 벌어진다면,
바로 그 순간부터 루어스가 지금까지 유지해온 모든 평형과 조화와 안정은 한순간에 무너져 내릴 것이다.

모든 시민이 공유하는 암묵의 이해가 바로 이것이다.
금서는 봉인된 채로 남아야 한다.

한 사람의 지적 호기심을 만족시키기 위해 루어스 전체 시민이 누리는 평온한 일상을 파괴할 수는 없으며,
개인의 진실 추구를 위해 공동체 전체의 안녕을 위협할 수는 없다는 것,
바로 이런 논리가 지하 깊은 곳의 위험을 감수하게 만드는 근거인 것이다.

규칙은 절대적이며 예외란 존재하지 않는다.
파괴신의 발걸음에는 손대지 말아야 한다.

금서의 존재를 확인하고 이러한 무거운 현실과 대면했을 때,
대개의 젊은이들은 깊은 침묵에 잠기거나, 감당하기 어려운 충격으로 며칠간 앓아눕기도 한다.

그러고는 몇 주일 혹은 몇 년에 걸쳐 지하실에서 본 광경을 되새기며 사색한다.
시간이 흐르면서, 그들은 비록 파괴신의 발걸음을 없앨 수 있다 해도 현명한 선택은 아니라는 것을 깨닫기 시작한다.

조금의 지식을 얻고, 조금의 진실을 알게 되더라도 반드시 행복으로 이어지지는 않기 때문이다.
진실을 아는 것이 언제나 자유를 가져다주지는 않는다는 것을 이해하게 된다.

더욱이 금서는 이미 오랜 세월 최심층에 봉인되어 있었고, 앞으로도 계속 그곳에 있을 것이다.
너무 오래 봉쇄되어 있었기 때문에 이제는 루어스라는 도시의 일부가 되어버렸다.

만약 제거한다면 무언가 근본적인 것이 무너져 내릴지도 모른다.
오래된 건물에서 가장 중요한 주춧돌을 빼내는 것처럼.

금서에 대한 복잡한 감정과 철학적 고민을 안고 돌아온 이들은
점차 현실이 보여주는 기묘한 균형을 이해하고 받아들이기 시작한다.

루어스 사람들의 평온한 삶 이면에는 분노와 공포, 호기심을 억누르려는 의지,
그리고 무력한 수용이 숨어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무지하고 안일한 행복 같은 것은 애초에 존재하지 않는다.

루어스 시민들은 지하의 금서와 마찬가지로
자신들 역시 어떤 보이지 않는 사슬에 묶여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

루어스 사람들도 선택이라는 것의 의미를 안다.

고상한 취향으로 지어진 건축물들, 영혼을 울리는 음악,
심오한 학문을 가능하게 만드는 모든 것들이 바로 파괴신의 발걸음이 존재하기 때문이며,
동시에 시민들이 금서를 건드리지 않기로 선택했기 때문이다.

루어스 사람들이 자신들의 아이들에게
그토록 자애롭게 대하는 것도 어쩌면 바로 그 때문인지 모른다.

만약 금서가 어둠 속에서 먼지를 뒤집어쓴 채 잠들어 있지 않다면,
류트를 연주하던 소녀는 더 이상 순수한 음악을 만들어낼 수 없을 테고,
젊은 기사들이 말 위에서 햇살 아래 무예를 겨루며 명예를 추구하는 광경도 사라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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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마지막 이야기가 남아 있다.
가장 믿기 어려운 일에 대한 이야기다.

이따금씩 지하실의 금서를 목격한 젊은이들 중에는
침묵에 잠기거나 충격에 빠진 채로 집으로 돌아가지 않는 이들이 있다.

때때로 좀 더 나이 든 남자나 여자들도 며칠 동안 깊은 사색에 잠겨 있다가는 조용히 짐을 꾸린다.
루어스의 거리로 나선 그들은 왕도를 따라 홀로 걸어가며, 한참을 걸은 끝에 거대한 성문을 빠져나간다.
대평원의 끝없는 밀밭을 가로질러 걸어간다. 젊은이든 나이 든 이든 상관없이 모두들 홀로 길을 나선다.

밤이 깊어지면 그들은 작은 마을의 길을 따라, 창문에서 희미한 불빛이 새어 나오는 초라한 집들 사이를 지나,
들판의 어둠 속으로 걸어 들어간다. 혼자서 동쪽으로, 아니면 폐허가 된 옛 도시들을 향해 북쪽으로 향한다.

나는 그들이 향하는 곳을 제대로 묘사할 수 없다. 그런 곳이 아예 존재하지 않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떠나는 이들은 자신들이 가고자 하는 곳을 알고 있는 것 같다.

그들이 왜 떠나는지는 아무도 모른다.
단지 추측할 뿐이다.

금서가 보여준 진실을 견딜 수 없었던 것일까? 혹은 반대로,
진실을 너무나 깊이 이해해버린 나머지 더 이상 완벽한 제국의 일원으로 살아갈 수 없게 된 것일까?

떠난 이들을 기억하는 사람은 많지 않다.

가족들조차 며칠이 지나면 원래부터 그런 사람이 없었던 것처럼 일상을 이어간다.
루어스라는 거대한 도시가 자신에게 맞지 않는 이방인을 조용히 밀어내는 것처럼.

이렇게 도시는 여전히 평화롭고, 시민들은 여전히 행복하며,
지하 최심층의 금서는 여전히 봉인된 채로 잠들어 있다.

하지만 가끔, 아주 가끔, 어느 아주 깊은 밤.
성벽 위에서 파수를 서는 병사들이 멀리서 걸어오는 사람의 실루엣을 본다고 한다.

루어스를 향해 걸어오다가 어느 순간 멈춰 서서 한참을 바라보다가 다시 돌아서서 사라지는 그림자를.
혹시 그들은 돌아오고 싶어 하는 것일까? 아니면 단지 자신이 떠난 것이 옳았는지 확인하러 오는 것일까?

여기까지가 내가 아는 루어스의 진실이다.

평화와 번영의 도시, 대전쟁의 승리자, 홀리루딘과 퀸셰어 여제의 자랑스러운 수도.
그리고 지하 깊은 곳에 자신들이 외면한 과거를 봉인하고, 그 대가로 완벽한 현재를 누리는 도시.

진실이란 때로는 축복이고 때로는 저주다. 루어스 사람들은 이를 잘 알고 있다.
그래서 그들은 선택했다. 완전한 무지가 아닌, 그렇다고 완전한 앎도 아닌, 중간 어디쯤에 자리한 애매한 지혜를.

그런데 나는 글을 쓰는 내내 한 가지 의문에 시달렸다.

과연 내가 루어스의 진실을 말하고 있는 것일까, 아니면 또 다른 거짓을 만들어내고 있는 것일까?
지하 최심층의 금서만큼이나 위험할 수 있는 또 다른 이야기를 세상에 풀어놓고 있는 것은 아닐까?

이 글을 읽게 되는 이들에게 묻고 싶다. 만약 루어스에서 살아간다면,
그리고 혹시라도 제국 도서관의 심층으로 내려가게 된다면, 무엇을 선택하겠는가?

봉인된 진실 앞에서 돌아서는 것인가, 아니면 봉인을 열어보는 것인가?
혹은 세 번째 길이 있을까? 금서를 열지도 않고 도망가지도 않으면서, 그 존재와 함께 살아가는 길이?

아니면 때로는 모르는 것이 아는 것보다 나을 수도 있다는 것을,
어떤 문은 영원히 닫혀 있어야 한다는 것을 받아들일 수 있는가?

선택은 그대들의 몫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