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3. 12
고3의 막바지 겨울, 사촌이랑 도쿄에 갔다.
그 형은 고등학교 3년 내내 나를 사람 만들겠다는 확고한 목표가 있었다.
자기가 오래 들어온 록 음악을 들려주고, 혼자 가던 콘서트에 데려갔고, 오래된 영화관과 서점에도 함께 갔다.
무엇을 봐야 하는지, 뭘 들어야 하는지, 어떻게 느껴야 하는지를 말하진 않았지만, 그냥 자꾸 보여줬다.
그땐 왜 저렇게까지 하나 싶었는데, 지금은 그게 나를 만드는 데 큰 역할을 했다는 걸 안다.
도쿄에서 처음 전철을 탈 때, 습관처럼 이어폰을 꺼내려다가 형에게 제지당했다.
“아직 여행이 뭔지 모르네. 그냥 좀 지루해 봐. 이어폰 꽂지 말고, 주변을 좀 봐.”
그게 뭐 대단한 말인가 싶었는데, 창밖으로 스쳐 가는 거리랑, 전철 안의 조용한 소음,
바쁜 얼굴들이 이상하게 또렷이 들어왔다.
그때 처음으로 ‘지루함을 그대로 겪는 시간’이 뭔지 생각했던 것 같다.
서른이 넘어서 다시 형이랑 여행을 갔다.
이번엔 교토 옆의 작은 소도시 조요였다.
고베에서 밤 늦게 도착했고, 내 아이폰은 배터리가 방전되었다.
숙소를 찾아가야 했고, 형에게 구글맵 좀 쓰자고 했다.
형은 주소만 알려주고, 지도를 보여주진 않았다.
“그냥 찾아가 봐. 그렇게 어렵지 않아.”
어려웠다.
실제로 한 시간 넘게 헤맸다.
길도 좁고, 어두웠고, 사람도 거의 없었다.
처음엔 화가 났다. 왜 이렇게 불편하게 구냐고.
그런데 헤매는 동안, 점점 내 화가 형에게서 나에게로 옮겨갔다.
나는 지금, 아무것도 못 하고 있다는 사실이 답답했다.
지도 없으면 길 하나 제대로 못 찾고, 내 위치도 감도 못 잡는다는 사실이.
효율과 속도에 너무 익숙해져 있다는 게, 스스로 민망했다.
나는 그런 사람을 싫어한다고 생각했었다.
항상 빠르고 정확하게 움직이고, 계획대로 행동해야만 안심하는 사람.
그런데 내가 그런 사람이었다.
답답한 시간을 못 견디는 사람.
잠깐의 지루함도 뭔가로 채워야만 하는 사람.
화면을 열고, 음악을 틀고, 손을 움직이고 있어야 마음이 놓이는 사람.
형은 나를 사람 만들겠다고 했었다.
그 말이 무슨 뜻인지, 그날 알 것 같았다.
사람을 사람답게 만드는 건, 잘 기다릴 줄 아는 일이라는 걸.
지루함을 억지로 없애지 않고, 가만히 겪을 수 있는 일.
그 안에서 나를 조금 들여다보는 일.
그걸 모른 채 오래 살았다.
지루한 시간은 무의미한 거라고 생각했고, 그 틈을 어떻게든 뭔가로 채우려 했다.
그게 습관이 되고, 그 습관이 나를 만든 줄도 몰랐다.
그때 형이 말했던 말이, 이제야 조금 이해된다.
‘여행이 뭔지 모른다’는 말.
그 말은 그냥, 이어폰을 빼고 주변을 보라는 뜻이 아니라,
뭔가를 하지 않아도 괜찮은 순간을 받아들이라는 뜻이었다.
형은 예나 지금이나 그대로다.
나는 그때보다 조금은 다른 사람이 되었으면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