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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의 마을 세오
「秘」엔드르 유적의 아홉 문 - 2
416 2025.08.07. 23:04

외전 - 秘, 루어스의 비밀 문서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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엔드르 유적의 아홉 문 - 2부


















2층 - 산란의 방



나선형 계단은 생각보다 길었다.

돌로 만든 계단은 수천 년의 세월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견고했지만,
곳곳에 이상한 점액이 묻어 있었다.

벽면에는 희미하게 빛나는 녹색 이끼가 자라고 있어서 횃불 없이도 어느 정도 앞을 볼 수 있었다.
하지만 빛은 불안정했다. 숨을 쉴 때마다 밝아졌다 어두워졌다 했는데, 마치 이끼 자체가 살아 숨 쉬는 것 같았다.

“이 이끼…” 아르카디우스가 벽을 자세히 살피며 말했다.
“단순한 발광 이끼가 아니에요. 포자를 통해 번식하는데, 이 포자를…” 그가 코를 막았다.
“우리가 들이마시고 있군요.”

“해롭지는 않겠죠?” 세라가 걱정스럽게 물었다.

“당장은 아니지만… 오래 노출되면 문제가 될 수 있어요.
폐에 뿌리를 내리거든요.”

“그거 참 좋은 소식이네.” 그롬이 비꼬았다.
“개미한테 먹히기 전에 이끼한테 먹힐 수도 있다는 거군.”

계단을 내려갈수록 온도가 올라갔다. 냄새도 변했다.
위층의 달큼한 개미산 냄새와는 다른, 더 원초적이고 본능적인 냄새였다.

뭔가 살아있는 것의 냄새.
태어나고 자라는 것들의 냄새.

마침내 계단이 끝나고 새로운 공간이 나타났을 때, 모두가 숨을 멈췄다.
거대한 동굴이었다. 천장은 20미터는 넘어 보였고, 넓이는 대성당 세 개를 합친 것보다 컸다.

하지만 정말 숨 막히는 것은 크기만이 아니었다. 바닥 전체가 알로 뒤덮여 있었다.
수천, 아니 수만 개의 알들이 질서 정연하게 배열되어 있었는데, 크기와 색깔이 각각 달랐다.

달걀만 한 하얀 알부터 사람 머리통만 한 검은 알,
그리고 마차 바퀴만 한 황금빛 알까지.

반투명한 껍질 사이로는 꿈틀거리는 형체들이 보였다.
어떤 것은 이미 완전한 형태를 갖추고 있었고, 어떤 것은 아직 형체도 없는 덩어리였다.

“빌어먹을…” 그롬이 중얼거렸다.
“개미 왕국의 요람이야.”

천장과 벽에는 벌집처럼 구멍이 뚫려 있었다.

각각의 구멍은 다른 곳으로 통하는 터널이었고, 터널에서는 쉴 새 없이 일개미들이 드나들었다.
어떤 개미는 알을 옮기고, 어떤 개미는 먹이를 운반하고, 또 어떤 개미는 알을 핥아 깨끗이 하고 있었다.

모든 움직임이 놀라울 정도로 체계적이었다.
거대한 기계의 부품들처럼 각자의 역할을 완벽하게 수행하고 있었다.

“조용히.” 실비아가 낮은 목소리로 경고했다.
“아직 우리를 못 봤어. 개미들은 시각보다 후각과 진동에 의존하거든. 조심스럽게 움직이면…”

하지만 그녀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마르쿠스가 첫 발을 내디뎠다.
갑옷이 바닥과 부딪치며 둔탁한 소리를 냈다. 그의 발밑에서 으스러지는 소리가 났다.

작은 알 하나를 밟은 것이었다.
투명한 체액이 흘러나오며 독특한 냄새를 풍겼다.

그 순간 모든 개미가 동시에 멈췄다.

수백 마리의 일개미가 일제히 고개를 돌려 침입자들을 바라보았다.
그들의 겹눈에는 감정이 없었지만, 행동에는 분명한 의도가 있었다.

알이 위협받고 있다.
침입자를 제거해야 한다.

“망했어.” 실비아가 단검을 뽑았다.

일개미들이 날카로운 경보음을 내기 시작했다.
소리로 전달한다기보다. 페로몬과 진동이 섞인 복잡한 신호 체계였다.

경보는 순식간에 퍼져나갔고, 벽과 천장의 모든 구멍에서 개미들이 쏟아져 나오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수십 마리였지만, 곧 수백 마리가 되었다.

“원진을 만들어!” 마르쿠스가 외쳤다. “등을 맞대고!”

다섯 명이 재빨리 원형 진형을 만들었다. 각자가 한 방향을 맡아 방어했다.
개미들은 사방에서 몰려왔다. 바닥에서, 벽에서, 천장에서. 심지어 알들 사이에서도 튀어나왔다.

첫 번째 파도가 덮쳤다.
일개미들이 턱을 딱딱거리며 돌진했다.

마르쿠스의 검이 춤을 췄다.
이반의 『서리늑대』는 미스릴의 날카로움으로 개미들의 단단한 외골격도 쉽게 베어냈다.
하지만 하나를 쓰러뜨리면 둘이 그 자리를 메웠다.

그롬의 도끼가 호를 그리며 개미들을 쓸어냈다.
“이런 젠장! 알을 밟지 않으려니까 제대로 싸울 수가 없잖아!” 그의 말이 맞았다.

발밑에 깔린 알들 때문에 움직임이 제한되었다. 특히 큰 알들은 피해야 했는데,
그것들을 깨뜨리면 무엇이 나올지 알 수 없었다.

실비아는 민첩하게 움직이며 개미들의 관절을 노렸다.
“발밑 조심해! 큰 알은 특별한 개체야. 깨우면 안 돼!” 그녀의 단검이 번개처럼 빠르게 움직였다.
사막의 암살술은 좁은 공간에서도 효과적이었다.

“플라미칼로!” 아르카디우스가 화염 파동을 발사했다.
불꽃이 부채꼴로 퍼지며 개미 무리를 태웠다. 타들어가는 외피 냄새가 진동했다.

불은 알들에게도 위험했다.
열에 노출된 알들이 부화하기 시작했다.

“안 돼! 불을 쓰면 알들이 깨어나요!”
세라가 경고했지만, 이미 늦은 후였다.

정말로 열받은 알들에게서 움직임이 시작됐다.
껍질에 금이 가고, 안에서 뭔가 밀어내는 소리가 났다.

마침내 알 하나가 완전히 갈라지며 안에서 뭔가 기어 나왔다.
갓 태어난 개미였지만, 이미 송아지만 한 크기였다.

온몸이 끈적한 점액으로 뒤덮여 있었지만,
턱은 그롬을 박살 낼 수 있을 만큼 충분히 위협적이었다.

“유충이 아니라 성체가 나와?” 아르카디우스가 놀랐다.
“이건 제가 아는 곤충의 생태가 아니에요!”

새로 태어난 개미들이 본능적으로 침입자들을 공격하기 시작했다.

이들의 외피가 아직 완전히 굳지 않아 일반 개미보다 약했지만,
대신 더 빠르고 예측할 수 없는 움직임을 보였다.

전투는 점점 혼란스러워졌다.
사방에서 개미들이 몰려들었고, 발밑에서는 계속 새로운 적들이 태어났다.
원진이 흐트러지기 시작했다.

세라의 시선이 산란실 중앙에 멈췄다. “저 큰 알...”

다른 알들과는 확연히 다른 거대한 알이 있었다.
지름이 3미터는 되어 보이는 황금빛 알이었고, 주변에는 특별히 큰 병정개미들이 지키고 있었다.
알 표면에는 묘한 무늬가 있었는데, 맥박 하듯 빛나고 있었다.

“여왕의 알이야.” 실비아가 말했다.
“아마 차기 여왕이 될 개체일 거야.”

마르쿠스가 결단을 내렸다. “저걸 인질로 잡자.”

“제정신이야?” 그롬이 물었다. “그래도 되는 거야?”

“다른 방법이 있어? 이대로는 끝이 없어!”

마르쿠스가 여왕의 알을 향해 돌진했다.
병정개미들이 막으려 했지만, 그의 검술은 루어스 최고 수준이었다.

『서리늑대』가 푸른빛을 내며 호위병들을 베어냈다.
그리고 마침내 여왕의 알 앞에 섰을 때, 그는 검을 높이 들어 올렸다.

“멈춰! 한 발짝만 더 움직이면 이 알을 부순다!”

놀랍게도 효과가 있었다.
모든 개미가 일제히 동작을 멈췄다.

공격하려던 자세 그대로 얼어붙었다. 산란실 전체가 갑자기 조용해졌다.
들리는 것은 동료들의 거친 숨소리뿐이었다.

“됐어.” 마르쿠스가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이제 천천히 빠져나가면…”

하지만 그때 여왕 알에서 이상한 일이 일어났다.
맥박 하던 빛이 갑자기 빨라지더니, 알 전체가 진동하기 시작했다. 껍질에 균열이 생겼다.

“안 돼…” 아르카디우스가 뒷걸음질 쳤다.
“조기 부화야. 위협을 느끼면 즉시 부화하도록 진화한 거예요!”

껍질이 산산조각 나며 안에서 뭔가 나왔다.
하지만 예상과 달리 개미가 아니었다. 적어도 완전한 개미는 아니었다.

반은 인간, 반은 개미인 기괴한 혼종이었다.

키는 3미터가 넘었고, 상반신은 인간 여성의 형태를 유지하고 있었지만, 하반신은 개미였다.
피부는 황금빛 외피로 덮여 있었고, 머리에는 왕관처럼 생긴 더듬이가 있었다.

놀랍게도, 그것이 인간의 말을 했다.

“누가… 나의 탄생을… 방해하는가…”
목소리는 어렸지만, 안에는 타고난 위엄이 있었다.

“말한다고?” 세라가 한 발 물러섰다. 손이 떨렸다.

새로 태어난 존재가 황금빛 겹눈으로 그들을 훑어보았다.
“나는… 제2여왕 카이라… 어머니의 뒤를 이을 자…”

“방금 태어났는데 어떻게 말을 할 수 있지?”
아르카디우스가 학자적 호기심을 참지 못했다.

카이라가 고개를 돌려 그를 바라보았다.
“나는… 어머니의 기억을 물려받았다… 천 년의 지식이… 내 안에 있다…”

그녀가 손을 들자 주변의 일개미들이 다시 움직이기 시작했다.
이번에는 그들을 공격하지 않았다. 대신 카이라 주위로 모여들어 단단한 보호의 진형을 만들었다.

“너희는… 시험을 통과해야 한다…” 카이라가 말했다.
“이곳을 지나가려면… 자격을 증명하라…”

“또 시험?” 그롬이 짜증을 냈다. “그냥 싸우는 게 낫겠어.”

카이라가 손짓하자 산란실 한쪽 벽이 열렸다.
그 안에는 거대한 석판이 있었고, 고대 문자로 뭔가 적혀 있었다.

“읽어라…” 카이라가 명령했다. “그리고 답하라…”

아르카디우스가 석판 앞으로 다가갔다. “음… ‘백 개의 알 중 하나만 살릴 수 있다면,
무엇을 선택하겠는가? 가장 강한 것? 가장 약한 것? 아니면 무작위?’”

“뭔 쓸데없는 질문이야.” 실비아가 투덜거렸다.

하지만 카이라의 표정은 진지했다. “답하라… 잘못된 답은… 죽음을 부른다…”

마르쿠스가 앞으로 나섰다.
“가장 강한 것이다. 생존 가능성이 가장 높으니까.”

카이라가 고개를 저었다. “그것은… 인간의 답이다…
개미는 그렇게 선택하지 않는다…”

“그럼 뭘 선택한다는 거야?” 그롬이 물었다.

“개미는… 선택하지 않는다…” 카이라가 설명했다. “모든 알이 소중하다…
하나를 위해 아흔아홉을 버리는 것은… 집단에 대한 배신이다…”

“그럼 어떻게 하라는 거야?” 마르쿠스가 답답해했다.

“방법을 찾아라…” 카이라가 말했다.
“백 개 모두를 살릴 방법을…”

“말이 안 돼! 조건 자체가 하나를 택하라는 건데!”

“불가능은… 포기하는 자의 변명이다…” 카이라가 차갑게 대답했다.

그때 세라가 뭔가 떠올랐다.
“잠깐… 혹시 이건 선택의 문제가 아니라 희생의 문제 아닐까요?”

“무슨 뜻이야?” 마르쿠스가 물었다.

“만약 누군가 자신을 희생해서 백 개의 알에 생명력을 나눠준다면?”

카이라의 표정이 미묘하게 변했다. “계속하라…”

세라가 용기를 내어 말을 이었다. “성직자는 생명력을 다룰 수 있어요. 제가…
제가 제 생명력을 나눠서 모든 알을 살릴 수 있을지도…”

“세라, 안 돼!” 마르쿠스가 막으려 했다.

하지만 카이라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건… 개미의 답이다… 개체는 집단을 위해 존재한다… 하지만…”

그녀가 세라를 똑바로 바라보았다. “진짜로 그럴 수 있는가? 말이 아니라… 행동으로?”

세라가 떨리는 손을 들어 올렸다.
하지만 그때 마르쿠스가 그녀의 팔을 잡았다.

“아니다. 다른 방법이 있을 거야.” 그가 카이라를 향해 돌아섰다.
“우리는 인간이다. 우리의 방식으로 해결하겠다.”

“어떻게?”

마르쿠스가 주변을 둘러보았다.
그리고 산란실의 구조를 파악했다.

“알들을 여기서 꺼내서 안전한 곳으로 옮기면 된다. 하나만 선택하는 게 아니라, 모두를 구하는 거다.
시간이 걸리고 위험하겠지만, 불가능하지는 않다.”

카이라가 잠시 침묵했다. 그리고 놀랍게도, 미소를 지었다.
개미의 얼굴에 나타난 인간적인 미소는 기괴했지만, 진심이 담겨 있었다.

“흥미롭다… 어머니가 말했다…
인간은 예측할 수 없다고… 정해진 규칙을 따르지 않는다고…”

그녀가 손을 들자 일개미들이 길을 열었다. 산란실 반대편에 새로운 통로가 나타났다.

“통과다… 아래로 가라… 하지만 경고한다…
아래는 더욱 위험하다… 독의 미로가 기다린다…”

“고맙다.” 마르쿠스가 고개를 숙였다.

카이라가 마지막으로 말했다. “그리고… 너희의 동료… 이반이라는 인간…
아직 완전히 잃지 않았다… 어머니의 통제가 완벽하지 않다… 희망이 있을지도…”

그 말에 마르쿠스의 눈이 빛났다. “정말인가?”

“서둘러라… 시간이 없다… 변이가 완성되기 전에…
아홉 번째 문에 도달해야 한다…”

다섯 명이 새로운 통로로 들어갔다.

뒤를 돌아보니 카이라가 여전히 그들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녀의 황금빛 겹눈에는 알 수 없는 감정이 담겨 있었다.

개미도 인간도 아닌,
중간 어딘가에 있는 존재의 고독이었을까.

통로를 따라 내려가면서 실비아가 중얼거렸다.
“이상해. 개미가 우리를 도와주다니.”

“완전한 개미가 아니잖아.” 아르카디우스가 말했다.
“반은 인간이야. 어쩌면 그 인간적인 부분이…”

“닥쳐.” 그롬이 끼어들었다. “말 같지도 않은 고민은 살아 나가서 해.
일단 독의 미로라는 게 뭔지 준비나 하자고.”



-



3층 - 독의 통로



세 번째 층으로 내려가는 계단은 이전과 달랐다.

벽면이 축축했고,
어디선가 물 떨어지는 소리가 들렸다.

자세히 들여다보니, 물이 아니었다. 물이라기엔 너무 끈적거렸고,
떨어질 때마다 치익 하는 소리가 났다.

공기는 점점 무거워졌다.
달콤하면서도 코를 찌르는 냄새가 점점 진해졌다.

“독가스야.” 아르카디우스가 코와 입을 막았다.
“그것도 아주 진한. 개미들이 분비하는 신경독 같은데…”

정말로 계단을 내려갈수록 숨쉬기가 어려워졌다.
처음에는 조금 불쾌한 정도였지만, 점차 어지러움이 시작됐다. 세라가 비틀거리기 시작했다.

“어지러워요…” 그녀가 벽을 짚으며 말했다.

“해독 마법은?” 마르쿠스가 물었다.

세라가 떨리는 손으로 치유 마법을 시전 했다.
“디톡스… 디베노모…” 하지만 효과가 미미했다.

세라가 다시 치유 주문을 시도했지만 독의 검은 기운이 황금빛 마법을 밀어냈다.
“안 돼요. 뿌리가 너무 깊어요.”

“그럼 어떻게 하지?” 그롬이 물었다. 그의 목소리도 평소보다 느릿했다.
독이 이미 모두에게 영향을 미치기 시작한 것이다.

실비아가 배낭에서 뭔가를 꺼냈다. 작은 유리병들이었다.

“사막에서 구한 해독제야. 완벽하지는 않지만 증상을 완화시킬 수는 있을 거야.”
그녀가 각자에게 병을 나눠줬다. “한 모금씩만. 아껴 써야 해.”

해독제는 쓰고 역겨웠지만, 확실히 효과가 있었다. 머리가 조금 맑아지고 호흡이 편해졌다.
하지만 일시적일 뿐이라는 것을 모두가 알고 있었다.

마침내 계단이 끝나고 새로운 공간에 들어섰다.
그런데…

“미로야.” 마르쿠스가 앞을 바라보며 말했다.

정말로 그들 앞에는 복잡한 미로가 펼쳐져 있었다.
통로가 여러 갈래로 나뉘어 있었고, 각각의 통로는 다시 여러 갈래로 갈라졌다.

벽은 돌이 아니라 굳어진 개미 분비물로 만들어진 것 같았다.
표면이 왁스처럼 매끄러웠고, 독특한 광택이 있었다.

“이런 구조는…” 아르카디우스가 감탄했다.
“개미들이 페로몬으로 길을 표시하는 방식을 물리적으로 구현한 거예요.
각 통로마다 다른 종류의 화학물질이 발라져 있을 거예요.”

“그래서?” 그롬이 물었다.

“잘못된 길로 가면… 아마 더 강한 독을 만날 거예요.
치명적인 농도의 신경독이나 부식성 산이 분사될 수도 있고요.”

그들이 서 있는 입구에서 세 갈래 길이 뻗어 있었다.
왼쪽 통로에서는 시큼한 냄새가 났고, 벽면에 녹색 얼룩이 번져 있었다.

가운데 통로는 가장 넓었지만 바닥에 끈적한 점액이 고여 있었다.
오른쪽 통로는 좁고 어두웠으며, 어디선가 바람 소리 같은 것이 들려왔다.

“어느 길로 가지?” 마르쿠스가 물었다.

실비아가 무릎을 꿇고 바닥을 살펴보았다.
사막에서 길을 찾는 법을 익힌 그녀는 미세한 흔적도 놓치지 않았다.

“여기 봐. 발자국이야.” 그녀가 가운데 통로 입구를 가리켰다.
“군화 자국. 루어스 표준 규격. 이반 대장 일행이 이쪽으로 갔어.”

“간단하군. 그럼 따라가기만 하면 되겠네.”
그롬이 앞으로 나서려 했지만 실비아가 막아섰다.

“잠깐. 너무 쉽지 않아?” 그녀가 의심스러운 눈으로 통로를 살폈다.
“개미들이 일부러 흔적을 남겨둔 것일 수도 있어. 함정으로 유도하려고.”

“그럼 어떻게 해야 할까요?” 세라가 물었다.
독 때문인지 그녀의 안색이 점점 창백해지고 있었다.

아르카디우스가 주문을 외웠다. “디텍트 포이즌!”
그의 스태프 끝에서 희미한 빛이 나와 세 통로를 차례로 비췄다.

“왼쪽은 산성이 강해요. 피부가 녹을 정도의 농도예요. 가운데는…
이상하네. 독은 약한데 다른 뭔가가 있어요. 오른쪽은 신경독이 제일 진해요.”

“가운데가 제일 안전하다는 거네?” 마르쿠스가 결론을 내렸다.

“꼭 그렇지는 않아요.” 아르카디우스가 경고했다.
“독이 약하다는 건 다른 종류의 위험이 있을 수 있다는 뜻이니까.”

하지만 다른 선택지가 없었다.

그들은 조심스럽게 가운데 통로로 들어갔다.
바닥의 점액이 부츠에 달라붙어 걸을 때마다 찐득한 소리가 났다.

벽면은 살아있는 것처럼 미세하게 움직이고 있었는데,
자세히 보니 수천 마리의 작은 유충들이 꿈틀거리고 있었다.

“으악!” 세라가 비명을 질렀다. “벽이 살아있어요!”

“유충들이야.” 실비아가 확인했다. “아직 작아서 위험하지는 않아.
하지만 건드리지 마. 자극하면 페로몬을 분비해서 큰 놈들을 부를 거야.”

통로는 구불구불 이어졌다. 때로는 넓어졌다가 다시 좁아지기를 반복했다.
그리고 가끔씩 옆으로 나 있는 작은 구멍들이 보였는데, 그 안에서는 뭔가 꿈틀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한참을 걸어가다가 갑자기 통로가 넓은 공간으로 이어졌다.
원형의 방이었는데, 천장 중앙에 거대한 구멍이 뚫려 있었다. 그리고 그 구멍에서…

“위를 봐!” 마르쿠스가 외쳤다.

천장의 구멍에서 거대한 형체가 내려오고 있었다.
처음에는 그냥 검은 덩어리처럼 보였지만, 가까이 오자 그것이 무엇인지 분명해졌다.

거미였다. 아니, 거미와 개미의 혼종이었다.
여덟 개의 다리를 가졌지만 몸통은 개미였고, 머리에는 개미의 턱과 거미의 독니가 함께 있었다.

“이건 뭐야?” 그롬이 도끼를 들며 외쳤다.
“거미야 개미야?”

“둘 다야!” 아르카디우스가 놀라서 외쳤다. “문헌에서 읽은 적이 있어요.
엔드르인들이 서로 다른 종을 융합시키는 실험을 했다고… 하지만 실제로 볼 줄은…”

거미개미가 천장에서 뛰어내렸다. 그 크기는 오우거만 했고, 여덟 개의 다리가 각각 창처럼 날카로웠다.
착지하자마자 입에서 실을 뿜었다. 평범한 거미줄이 아니었다. 실에 닿은 바닥이 지지직거리며 녹아내렸다.

“산성 거미줄이야!” 실비아가 옆으로 굴렀다.
“닿으면 안 돼!”

전투가 시작됐다.
거미개미는 거미의 민첩성과 개미의 힘을 모두 가지고 있었다.

천장과 벽을 자유자재로 오르내리며 공격했고, 산성 거미줄을 연속으로 발사했다.
게다가 독니에서는 마비독까지 뿜어냈다.

마르쿠스가 방패로 거미줄을 막았지만,
산성 때문에 방패가 녹아내리기 시작했다. “젠장! 이대로는 안 돼!”

그롬이 도끼를 던졌다. 회전하는 도끼가 거미개미의 다리 하나를 잘라냈다.
검은 체액이 뿜어져 나왔다. “하하! 맞췄다!”

하지만 거미개미는 일곱 개의 다리로도 충분히 빨랐다.
벽을 타고 올라가 천장에서 다시 공격을 준비했다.

“불화살로는 안 돼요!” 아르카디우스가 마법 공격을 시도했지만 효과가 없었다.
“외골격이 너무 두꺼워요!”

실비아가 그림자 속에서 나타나 거미개미의 복부를 노렸다.
단검이 부드러운 관절 사이를 파고들었다. “관절이야! 다리 연결 부위가 약점이야!”

세라는 동료들에게 강화 마법을 걸었다.
“블레싱 오브 에나르마!” 신성한 빛이 그들을 감싸며 힘과 속도가 증가했다.

협공이 효과를 보이기 시작했다.

마르쿠스가 정면에서 주의를 끌고, 그롬이 측면을 공격하고, 실비아가 사각에서 급소를 노렸다.
아르카디우스는 빙결 마법인 소루마로 거미개미의 움직임을 둔화시켰다.

마침내 마르쿠스의 검이 거미개미의 머리를 관통했다.
『서리늑대』의 미스릴 검신이 두꺼운 외골격도 뚫었다.

거미개미가 마지막 발악으로 거미줄을 사방으로 뿜었지만,
이미 늦었다. 거대한 몸이 쿵 소리를 내며 쓰러졌다.

“휴…” 그롬이 도끼를 회수하며 한숨을 쉬었다.
“이런 괴물이 또 있을까?”

“아마 더 있을 거야.” 실비아가 경계를 늦추지 않았다.
“이건 시작일 뿐이야.”

방의 반대편에 세 개의 통로가 더 있었다.

이번에도 선택을 해야 했다. 이번에는 단서가 있었다.
거미개미의 시체 근처 바닥에 뭔가 새겨져 있었다.

아르카디우스가 읽었다. “‘똑바로 가는 자는 죽음을 만나고,
돌아가는 자는 시작으로 돌아가며, 옆으로 가는 자는 진실에 가까워진다.’”

“수수께끼야.” 마르쿠스가 눈살을 찌푸렸다.
“똑바로는 가운데, 돌아가는 건 왼쪽으로 도는 길, 옆으로는 오른쪽이겠지?”

“너무 단순한 건 아닐까요?” 세라가 의심했다.

“때로는 단순한 게 정답이야.” 그롬이 말했다.
“복잡하게 생각하다가 함정에 빠지는 것보다는 나아.”

논의 끝에 그들은 오른쪽 통로를 선택했다.
‘진실에 가까워진다’는 말이 가장 희망적으로 들렸기 때문이다.

새로운 통로는 이전보다 좁았다.

한 명씩 일렬로 가야 할 정도였다. 벽면에는 괴상한 것들이 박혀 있었다.
얼핏 돌조각인 줄 알았는데, 자세히 보니 뼈였다. 인간의 뼈와 개미의 외골격 조각이 섞여 있었다.

“이전 탐험대의 흔적인가…” 마르쿠스가 중얼거렸다.

통로를 따라가다가 또 다른 함정을 만났다. 바닥에 압력판이 있었는데,
실비아가 닿기 직전 가까스로 발견해 냈다. “멈춰! 바닥을 밟으면 안 돼!”

“뭐가 나오는데?” 그롬이 물었다.

실비아가 조심스럽게 메커니즘을 살폈다.
“벽에서… 뭔가 나올 것 같아. 아마 독침이나 분사…”

그녀가 도구를 사용해 함정을 해제하려 했지만, 너무 복잡했다.
“안 돼. 너무 정교해. 우회해야 해.”

하지만 통로가 너무 좁아서 압력판을 피해 갈 방법이 없었다.
그때 아르카디우스가 아이디어를 냈다. “레비테이션!”

그가 부양 마법을 시전 하자 한 명씩 공중에 떠올랐다.
압력판 위를 떠서 지나갈 수 있었다. 하지만 아르카디우스의 마나 소모가 극심했다.

“더는… 못하겠어요…” 다섯 명을 모두 띄운 아르카디우스가 헐떡였다.
“마나가 거의…”

“괜찮아. 잘했어.” 마르쿠스가 그의 어깨를 두드렸다.

함정을 지나자 통로가 갑자기 넓어졌다.
이윽고 그들 앞에 놀라운 광경이 펼쳐졌다.

거대한 지하 호수였다. 물이 아닌 끈적하고 녹색빛이 도는 액체였다.
그리고 표면에서는 유독한 증기가 피어오르고 있었다.

“산성 호수네.” 실비아가 돌을 하나 던져보았다.
돌이 액체에 닿자마자 치익 소리를 내며 녹아 사라졌다. “건너갈 수 없어.”

호수 건너편에 출구가 보였다. 하지만 어떻게 건너가야 할지가 문제였다.
그때 세라가 뭔가를 발견했다.

“저기 보세요! 천장에 뭔가 매달려 있어요!”

정말로 천장에는 쇠사슬들이 매달려 있었다.
일정한 간격으로 배치되어 있어서, 하나씩 잡고 건너갈 수 있을 것 같았다. 하지만…

“함정일 수도 있어.” 마르쿠스가 신중했다.

“다른 방법이 있어?” 그롬이 물었다.
“수영은 못하겠고, 날아갈 수도 없고.”

“사슬이 버틸지 확인해봐야 해.” 실비아가 돌을 사슬에 던졌다.
사슬이 흔들렸지만 튼튼해 보였다. “일단 견딜 것 같은데…”

그들은 한 명씩 사슬을 잡고 건너가기로 했다.
실비아가 가장 가볍고 민첩했으므로 먼저 출발했다.

그녀는 원숭이처럼 재빠르게 사슬에서 사슬로 옮겨 탔다.
중간쯤 갔을 때, 아래에서 뭔가 움직였다.

“밑에 뭔가 있어!” 그녀가 외쳤다.

산성 호수의 표면이 출렁거렸다. 그리고 거대한 촉수가 튀어나왔다.
아니, 촉수가 아니었다. 거대한 지렁이 같은 생물이었는데, 온몸이 점액으로 뒤덮여 있었다.

“빨리 건너!” 마르쿠스가 소리쳤다.

실비아가 전속력으로 사슬을 타고 건넜다. 지렁이 괴물이 그녀를 잡으려 했지만 간신히 피했다.
그녀가 건너편에 도착하자마자 다음 사람이 출발했다.

하나씩 아슬아슬하게 건너갔다.
괴물은 계속 공격했지만, 다행히 사슬 높이까지는 닿지 않았다.

마지막으로 무거운 갑옷을 입은 마르쿠스가 건널 차례였다.

그가 사슬을 잡자 삐걱거리는 소리가 났다. 무게를 견디기 힘든 것 같았다.
조심스럽게 한 칸씩 옮겨가는데, 갑자기 사슬 하나가 끊어지고 말았다.

“마르쿠스!” 세라가 비명을 질렀다.

마르쿠스가 한 손으로 간신히 다음 사슬을 잡았다.
하지만 그 충격으로 검집에서 『서리늑대』가 빠져 산성 호수로 떨어졌다.

“안 돼!” 그가 검을 잡으려 했지만 이미 늦었다.
이반의 검이 산성 액체에 닿자마자 지지직거리는 소리를 냈다.

완전히 녹아내리진 않았다.
미스릴의 마법적 특성이 산성을 어느 정도 견뎌내고 있었다.

“검은 포기 해!” 실비아가 외쳤다. “빨리 건너와!”

마르쿠스가 남은 사슬들을 필사적으로 잡고 건넜다.
괴물이 마지막 공격을 시도했지만, 그는 간신히 건너편에 도착했다.

모두가 안전하게 건넜지만, 이반의 검을 잃은 것은 큰 손실이었다.
마르쿠스가 산성 호수를 바라보며 자책했다.

“대장님의 검을…”

“어쩔 수 없었어.” 그롬이 위로했다.
“목숨이 더 중요하지.”

그들 앞에는 또 다른 계단이 기다리고 있었다.
아래로 내려가는 계단이었다. 독의 미로를 통과한 것이다.

하지만 기쁨보다는 불안이 앞섰다.
과연 아래에는 무엇이 기다리고 있을까.

“카이라가 경고했어.” 실비아가 말했다.
“아래로 갈수록 더 위험하다고.”

“그래도 가야지.” 마르쿠스가 결연한 표정으로 계단을 내려가기 시작했다.
“이반 대장을 구하려면. 그리고 이 모든 비밀의 답을 찾으려면.”

다른 사람들도 그를 따랐다.

계단은 이전보다 가팔랐고, 벽면의 돌은 검은색으로 변해가고 있었다.
마치 오래된 피가 스며든 것처럼 불길한 얼룩들이 군데군데 번져 있었다.

공기는 점점 차가워졌고,
이 차가움 속에는 썩은 냄새가 섞여 있었다.

죽음의 냄새였다.



-



4층 - 장막의 복도



네 번째 층에 발을 들여놓는 순간, 모든 것이 어둠에 잠겼다.

아르카디우스의 마법 빛이 갑자기 희미해지더니 겨우 촛불 하나 정도의 밝기로 줄어들었다.
그가 당황하며 스태프를 흔들었지만 소용없었다.

“뭔가 마법을 억제하고 있어요!”
아르카디우스가 더 강한 주문을 시도했다.

“루미나 맥시마! 브릴리언트 플레어!” 하지만 빛은 더 이상 밝아지지 않았다.
오히려 주문을 외울수록 더 어두워지는 것 같았다.

“대마법 장치야.” 실비아가 벽을 더듬으며 말했다.
“고대 엔드르의 방어 체계. 침입자의 마법을 무력화시키는 거지.”

그들이 서 있는 곳은 긴 복도였다. 얼마나 긴지 끝이 보이지 않았다.

좌우의 벽은 너무 매끄러워서 이음새 하나 찾을 수 없었고,
천장은 어둠에 묻혀 높이를 가늠할 수 없었다.
바닥만이 거친 돌로 되어 있어서 발걸음 소리가 메아리쳤다.

“손을 잡고 가자.” 마르쿠스가 제안했다.
“시야가 제한적이니 흩어지면 찾기 어려울 거야.”

다섯 명이 일렬로 손을 잡았다.
마르쿠스가 선두에, 그 뒤로 실비아, 아르카디우스, 세라, 그리고 그롬이 후위를 맡았다.
희미한 빛에 의존해 조심스럽게 전진하기 시작했다.

얼마 가지 않아 이상한 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
속삭임 같기도 하고, 바람 소리 같기도 한 알 수 없는 소음이었다.
멀리서 들려온 소리는 점점 가까워지고 있었다.

“뭔가 온다.” 실비아가 경고했다.

그녀의 말이 끝나자마자 어둠 속에서 뭔가 움직였다.
희미한 빛에 잠깐 비친 것은 창백한 형체였다.

인간도 개미도 아닌, 그 중간 어딘가에서 실패한 실험체 같았다.
너무 빨리 지나가서 제대로 볼 수 없었지만, 분명 그들을 관찰하고 있었다.

“방금 뭐였죠?” 세라가 떨리는 목소리로 물었다.

“몰라.” 마르쿠스가 검을 뽑았다. 이반의 검을 잃은 그는 예비로 가져온 더브릴을 사용해야 했다.
“확실한 사실은… 우리에게 우호적이지는 않은 것 같군.”

복도를 계속 걸어가다 보니 벽의 끝에 도달했다.

넓은 공간에 들어선 것 같았지만, 여전히 어둠 때문에 전체를 파악할 수 없었다.
그때 바닥에서 뭔가 튀어나왔다. 돌로 된 받침대였고, 그 위에는 수정구가 놓여 있었다.

수정구가 희미하게 빛나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 안에 영상이 나타났다.

과거의 기억인지, 환상인지 알 수 없었지만, 너무나 생생했다.
영상 속에는 이반과 그의 부하들이 있었다. 바로 이 층을 지나가는 모습이었다.

“대장님이야!” 마르쿠스가 수정구에 다가갔다.

영상 속의 이반은 지금의 마르쿠스처럼 동료들을 이끌고 있었다.
하지만 그들의 표정은 불안해 보였다. 무언가에 쫓기고 있는 것 같았다.

그리고 갑자기 어둠 속에서 뭔가 튀어나왔다.
영상이 흔들렸고, 비명소리가 들렸다. 그리고는 정적.

수정구가 다시 어두워졌다가 새로운 영상을 보여주었다.
이번에는 마르쿠스 자신이었다. 하지만 미래의 모습인 것 같았다.

그는 혼자였고, 갑옷은 찢어져 있었으며, 얼굴에는 깊은 상처가 있었다.
그리고 그의 눈은… 텅 비어 있었다. 영혼을 잃은 것처럼.

“이건 뭐야?”
마르쿠스가 수정구에서 물러났다.

다른 사람들도 각자 수정구를 발견했다.

실비아의 수정구에는 그녀가 동료들을 배신하고 혼자 도망치는 모습이 나타났다.
그롬의 것에는 그가 광기에 빠져 동료들을 공격하는 장면이 있었다.

아르카디우스는 금단의 지식을 얻기 위해 영혼을 파는 모습이었고,
세라는 치유에 실패해 모든 동료가 죽는 것을 지켜보고 있었다.

“환상이야.” 아르카디우스가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우리의 두려움을 보여주는 거야. 가장 무서워하는 미래를.”

“알아도 소용없어.” 실비아가 고개를 저었다.
“너무 생생해. 마치 정말로 일어날 일 같아.”

그때 어둠 속에서 목소리가 들려왔다. 낮고 끈적한 목소리였다.

“환영받으라… 절망의 복도에… 여기서는 모든 자가 자신의 최악을 마주한다…”

목소리의 주인이 모습을 드러냈다. 한때 인간이었을 존재였다.
하지만 지금은 완전히 다른 무언가가 되어 있었다.

화랑 끝에 다다를 만한 키에,
몸은 가늘고 길었으며, 팔이 여섯 개나 있었다.

얼굴은 반쯤 녹아내린 것처럼 일그러져 있었고, 눈은 텅 비어 있었다.
온몸에서 검은 안개 같은 것이 피어오르고 있었다.

“나는 이곳의 관리자… 한때는 엔드르의 대마법사였지…
하지만 지금은… 어둠의 종복일 뿐…”

“당신이 이 환상을 만드는 거요?” 마르쿠스가 검을 겨누며 물었다.

관리자가 웃었다. 적어도 웃는 것처럼 보였다.
입이 찢어질 듯 벌어졌지만 소리는 나지 않았다.

“환상이라고? 아니다… 이것은 가능성이다…
너희가 걸어갈 수 있는 수많은 미래 중 하나… 그리고 대부분은… 이렇게 끝난다…”

그가 여섯 개의 팔을 움직이자 주변에 더 많은 수정구가 나타났다.
각각의 수정구에는 다른 미래가 담겨 있었다.

어떤 것에서는 그들이 개미로 변하고 있었고,
어떤 것에서는 서로를 죽이고 있었으며, 또 어떤 것에서는 미쳐서 웃고 있었다.

“선택하라… 어느 미래를 원하는가…
아니면 모든 미래를 거부하고… 여기서 영원히 머물 것인가…”

“장난 그만해!” 그롬이 도끼를 들고 관리자에게 달려들었다.
하지만 도끼는 그의 몸을 그냥 통과했다. 안개를 베는 것처럼.

“소용없다… 나는 이미 물질을 초월했다…
너희가 상대하는 것은 절망 그 자체다…”

세라가 뭔가 다른 것을 발견했다.
수정구들 사이에 하나 다른 것이 있었다.

다른 것들이 미래를 보여준다면, 이것은 과거를 보여주고 있었다.
엔드르의 전성기, 인간과 개미가 평화롭게 공존하던 시절이었다.

“저거 보세요!” 세라가 가리켰다. “다른 거예요!”

관리자의 표정이 변했다. 처음으로 당황한 것 같았다.

“그것은… 건드리지 마라… 그것은…”

하지만 이미 늦었다. 실비아가 재빨리 그 수정구를 잡았다.
순간 강렬한 빛이 폭발했다. 어둠이 찢어지고, 대마법 장치가 흔들렸다.

그리고 수정구에서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고대 엔드르어였지만, 이상하게도 모두가 이해할 수 있었다.

“미래는 정해지지 않았다. 운명은 스스로 만드는 것이다.
두려움에 굴복하는 자는 노예가 되지만, 맞서는 자는 자유를 얻는다.”

관리자가 비명을 질렀다.
“안 돼! 그것은 금지된 진실! 알아서는 안 되는 것!”

수정구의 빛은 점점 강해졌다. 그리고 빛이 다른 수정구들을 하나씩 깨뜨리기 시작했다.
절망의 미래들이 산산조각 나며 사라졌다. 관리자도 빛에 녹아내리기 시작했다.

“기억하라… 절망은… 언제나… 돌아온다…”

그의 마지막 말과 함께 어둠이 걷혔다.
대마법 장치가 파괴되면서 아르카디우스의 마법이 다시 제대로 작동하기 시작했다.

밝은 빛이 공간을 비추자 그들이 있는 곳의 전모가 드러났다.

거대한 원형 홀이었다.
벽면에는 수천 개의 깨진 수정구 조각이 박혀 있었고, 바닥에는 복잡한 마법진이 그려져 있었다.

그리고 홀 반대편에는 계단이 있었다.
아래로 내려가는 계단.

“끝났을까요?” 세라가 조심스럽게 물었다.

“이 층은 통과한 것 같아.” 마르쿠스가 대답했다. “하지만…”

그가 말을 끝맺지 못한 것은 바닥에서 뭔가를 발견했기 때문이다.
갑옷 조각이었다. 루어스 근위대의 문장이 새겨진 흉갑이었다. 이반의 부하 중 한 명의 것이 분명했다.

“적어도 여기까지는 왔었구나.” 마르쿠스가 갑옷 조각을 들어 올렸다.
안쪽에 피가 묻어 있었다. “하지만…”

“계속 가야 해.” 실비아가 말했다.
“여기서 멈출 수는 없잖아.”

그들은 다시 계단을 향해 걸어갔다.

네 번째 층의 시험은 통과했지만, 마음은 무거웠다.
관리자가 보여준 미래들이 완전히 거짓은 아닐 수도 있었다.

또한,
아래층으로 갈수록 더 큰 위험이 기다리고 있을 것이 분명했다.

계단을 내려가면서 아르카디우스가 중얼거렸다.
“다섯 번째 층은 뭘까요? 지금까지 물리적 위협, 수적 우세, 독과 함정, 정신 공격이 있었는데…”

“곧 알게 되겠지.” 그롬이 도끼를 어깨에 메며 대답했다.
“뭐가 나오든 부숴버리면 돼.”

하지만 그들 모두 알고 있었다.
단순한 힘으로는 해결할 수 없는 시험들이 남아 있을 것이라는 것을.

그리고 이반을 구하려면,
아홉 번째 문까지 가야 한다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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