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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의 마을 세오
「秘」망각 이후의 형상
4369 2025.10.19. 00:36

秘, 루어스의 비밀 문서고



















서고 위치: 최심층 중앙서가 흑요석함

문서 인장: 「왕관과 검」「부서진 거울」

문서 제목: 알마게니움 최후의 왕상

보관 연대: 세오력 103년 동지기

발견 경위: 알마게니움 지하 신전 유적 발굴 중

문서 보존: 겨울나무처럼 일부 손상

열람 제한: 구마사 및 왕실 사가 이상

관련 문서: 「깨진 왕관과 피」 ㅡ 멘트 문명 멸망기 연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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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서고 관리인 주석]


알마게니움의 마지막에 대한 기록은 대부분 전설과 신화로 뒤섞여 있지만,
이 고문서의 발견으로 인해 실마리를 얻게 되었다.

지하 신전에서 발굴된 왕상과 함께 발견된 석판에는
멸망의 순간을 목격한 신전 수호자의 증언이 새겨져 있었다.

순수의 시대가 어떻게 종말을 맞았는지,
그리고 왕상이 왜 그토록 처참하게 파괴되었는지를 이해할 수 있는 유일한 기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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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서 시작]


알마게니움의 마지막 왕 카르마논의 청동상은
순수의 시대가 끝나기 직전 완성되었다.

장인 아르케시스가 삼 년을 들여 조각한 걸작이었다.
첫 해엔 왕의 얼굴을 관찰했다. 아침의 얼굴, 정오의 얼굴, 황혼의 얼굴.

둘째 해엔 청동을 주조했고,
마지막 해엔 그 얼굴을 천천히, 그러나 집요하게 새겨 넣었다.

나는 소나티네 신전의 수호자로서 그 모든 세공을 지켜보았다.

망치가 청동을 울릴 때마다 신전의 돌기둥까지 미세하게 떨렸다.
왕상은 세 사람의 키만큼 높았고, 얼굴은 왕과 닮아 있었다.

넓은 광대뼈, 두툼한 입술, 우뚝 솟은 코. 머리카락은 띠로 묶였고,
눈썹은 갈매기처럼 휘었으며, 턱수염은 무겁게 도식화되어 있었다.

“천 년은 갈 것입니다, 신관님.” 아르케시스의 손은 화상 자국으로 덮여 있었고,
손가락 마디마다 청동 가루가 스며 검게 변색되어 있었다.
“천 년이라.” 나는 쓴웃음을 지었다. “우리에게 그만큼의 시간이 남았을까.”

왕상 봉헌식은 그해 가을에 열렸다.
하늘은 폭우를 쏟았고, 순수의 시대엔 드문 일이었다.

카르마논 왕은 비를 맞으며 신전 계단을 올랐다.
왕관이 젖어 무겁게 가라앉았다. 나는 신전 입구에서 그를 맞았다.

왕의 얼굴은 청동상과 같았지만, 동시에 달랐다.
청동은 단단하고 영원했으나, 인간의 얼굴은 피로와 세월로 물들어 있었다.

횃불이 일제히 켜지며 왕상을 비추었다. 청동이 불빛을 받아 반짝였다.
“닮았는가?” 왕이 물었다. “완벽히 닮았습니다, 전하.” “거짓말.” 왕이 쓴웃음을 지었다.
“저건 내가 아니야. 정확히는 내가 되었어야 할 모습이지. 순수의 시대가 끝나지 않았다면.”

봉헌식이 시작되었다. 제물들이 바쳐졌고 향이 피어올랐다.
사제들이 노래를 불렀으며, 백성들이 무릎을 꿇었다.

왕은 신들에게 기도했지만, 그의 입술은 오래된 기도문을 더듬기만 했다.
천 년 동안 이어진 언어가 그 입에서 낯선 듯 흩어졌다.
봉헌식이 끝난 뒤에도 그는 왕상 앞을 떠나지 않았다.

-

“신관.” 왕의 목소리는 바람에 섞인 듯 희미했다.
“솔직히 말해다오. 우리는 끝났는가?” 나는 대답 대신 침묵했다. “그렇군.” 왕이 고개를 끄덕였다.

“베누스크에서 죽은 청년을 기억하는가?”
기억하고 있었다. 순수의 시대에 처음으로 천수를 다하지 못한 자.

그의 죽음 이후 사람들은 질문하기 시작했고, 자연의 이면을 파헤쳤으며, 마법이 태어났다.
“그 청년이 죽지 않았다면,” 왕이 말했다. “우리가 질문하지 않았다면, 순수의 시대는 계속되었을까.”

왕은 청동상의 발치에 주저앉았다. 왕관이 떨어져 돌바닥에 부딪혔다.
“나는 신들의 대리인이라 불렸지만, 신들도 침묵했다. 마법을 막을 수도, 전쟁을 막을 수도 없었다.”

그는 청동을 주먹으로 내리쳤다. 피가 흘렀고, 붉은 선이 돌 틈새를 채웠다.
“승자가 패자에게 하는 일을 나는 안다. 그들은 내 얼굴을 파낼 거야.
눈을 도려내고, 귀를 자르고, 수염을 뜯겠지.”

왕은 왕관을 청동상 발치에 놓았다. “신관, 이 상을 지켜다오. 내가 죽고 알마게니움이 멸망하더라도.
우리가 한때 존재했다는 증거로.” “그리 하겠습니다, 전하.”

“거짓말하지 마. 넌 지킬 수 없어.” 왕은 잠시 웃었다. “그래도 고맙네.”
마지막 횃불이 꺼졌다. 왕의 발소리가 점점 멀어졌다. 그것이 그를 본 마지막 순간이었다.

-

전쟁은 석 달 뒤에 일어났다.

이카루스의 군대가 알마게니움의 중심부를 공격했다.
마법사들이 하늘에서 불을 내렸고, 땅이 갈라졌다. 단 사흘 만에 왕성은 함락되었다.

나는 신전에 남았다. 부상자들을 돌보고 죽어가는 자들에게 마지막 기도를 올렸다.
하늘은 밤마다 붉게 물들었다. 도시가 타는 빛이었다. 왕의 죽음을 전한 전령은 피투성이였다.
“전하께서 전사하셨습니다.” 그는 그 말을 끝으로 숨을 거두었다.

나는 왕상 앞에 무릎을 꿇었다.
왕이 잊었던 기도문을 다시 외웠다. 그러나 신들은 듣지 않았다.

이카루스의 군대가 신전으로 들이닥쳤다. 지휘관은 젊었고, 승리의 확신으로 빛나고 있었다.
“알마게니움의 신관이냐.” “...그렇다.”
“항복하라.” “저항하지 않겠다... 다만, 이것만은 지켜야 한다.” 그가 왕상을 올려다보며 비웃었다.

“패배한 왕의 얼굴이군. 끌어내려라.” 병사들이 밧줄을 감았다.
청동이 삐걱거렸다. 그러나 움직이지 않았다. “부숴라.” 망치가 내리쳤다. 금속이 울렸다.

봉헌식의 그날과 같은 소리였지만, 뜻은 정반대였다. 그때는 창조였다. 지금은 파괴였다.
“그만!” 내가 소리쳤다. 병사들이 나를 넘어뜨렸다. 갈비뼈가 부러졌다. 피가 입 안에 고였다.

“계속해라.” 유령의 목소리는 담담했다. 병사들이 다시 망치를 들었다.
청동의 눈이 파였다. 귀가 부서졌다. 수염이 뜯겨나갔다. 왕의 얼굴은 조금씩 사라져 갔다.

그들은 웃으며 일했다. 승리의 노래를 불렀다. “왜 이런 짓을 하는가.”
유령은 내게 시선을 내리며 미소 지었다. “승자가 패자에게 하는 일이다. 네 왕도 그랬을 것이다.”

마침내 왕상의 머리가 잘려나갔다. 비명 같은 금속음이 신전 천장을 울렸다.
텅 빈 눈구멍이 하늘을 응시했다. 신들을 찾는 듯했다.

“이카루스로 가져가라.” 병사들이 머리를 들고 계단을 내려갔다.
청동이 돌을 긁으며 길게 자국을 남겼다. 왕의 마지막 흔적이었다. 머리 없는 몸통만 남았다.
왕의 이름이 지워진 육신. 그들은 그것마저 내버리고 떠났다.

폐허 속에서 정신을 차렸을 때, 나는 여전히 살아 있었다.
잔해를 치우는 소리가 들렸다. 아르케시스였다. “신관님!” 그가 울었다. “살아 계셨습니까!”

그가 나를 끌어냈고, 물과 빵을 건넸다. “왕상은?”
“머리는 가져갔습니다. 몸통은ㅡ.”

청동 몸통은 쓰러져 있었다. 팔과 다리가 부러진 채.
“숨겨야 합니다.” 우리는 밤을 기다렸다.

청동 몸통을 지하 안치실로 끌었다. 무거운 몸통이 돌바닥을 긁으며 이동했다.
그곳에 안치했다. “언젠가 누군가 이것을 발견하겠지.” 나는 석판을 꺼내 정으로 새기기 시작했다.

멘트와 알마게니움에 대해, 카르마논 왕에 대해, 우리가 어떻게 파괴되었는지에 대해.
손끝이 갈라지고 피가 스며들었지만 멈추지 않았다. 마지막으로 새긴 문장은 이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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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를 읽는 자에게. 알마게니움 최후의 왕 카르마논의 청동상이다.
머리는 이카루스의 환영들이 가져갔다. 눈을 파내고, 귀를 자르고, 수염을 뜯었다.
하지만 이 몸통은 남았다. 우리가 한때 존재했다는 증거다.
우리를 기억하라. 우리를 비웃지 마라. 언젠가 너희도 우리처럼 될 것이다.”
-

나는 석판을 왕상 옆에 두고, 입구를 돌로 봉했다. 신전의 문양을 새겼다.
아는 자만 알아볼 수 있는 문양이었다. 그리고 우리는 폐허를 떠났다.

신전은 무너졌고, 천 년의 건축이 하루 만에 재가 되었다.
그러나 그 아래 깊은 곳, 청동 왕상은 여전히 남아 있었다. 어둠 속에서 누군가를 기다리고 있었다.

기억될 때까지, 잊히지 않기 위해.
카르마논 왕은 옳았다. 영원한 것은 없었다.

청동도, 왕도, 문명도. 하지만 나는 알았다 ㅡ
끝나는 것과 잊히는 것은 다르다는 것을. 알마게니움은 사라졌으나,
이 석판이 남아 있는 한 우리의 이름은 완전히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이것이 내가 할 수 있었던 전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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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서 하단 주석]


세오력 103년, 봄.
이 석판은 알마게니움 지하 신전 유적에서 청동 몸통과 함께 발견되었다.

왕상의 몸은 심하게 손상되었으나, 멘트 문명의 주조 기술을 보여주는 귀중한 유물이다.
석판의 기록을 완전히 입증할 방법은 없지만, 왕상 절단면의 손상 형태가 석판의 내용과 일치한다.

왕상의 머리는 아직 발견되지 않았다. 이카루스 또한 잿더미로 사라졌기에,
그 머리는 아마 영원히 돌아오지 않을 것이다.

알마게니움은 천 년을 지속했다. 카르마논은 멘트 시대의 마지막 왕으로 기록된다.
그의 청동상은 완성된 지 석 달 만에 파괴되었다.

천 년을 가리라던 장인의 예언은 빗나갔다.

그러나 이 석판은 천 년을 넘어 우리에게 도달했다.
청동보다 오래 살아남은 기록.


무엇이 정말로 영원한가.











Fi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