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오래전부터 어둠이 시대를 앞선 게임이라 말하곤 했다.
친구들은 내 어둠 사랑을 아는만큼 이 이야기를 할때면 또 그소리냐며 핀잔을 주곤 했지만
난 그때도 진심이었고 오늘날까지도 정말로 그렇게 믿고 있다.
예를들어 코마디움을 중심으로 한 파티 사냥 시스템.
4가지 속성을 기반으로 PVE와 PVP에 모두 효과적인 전략으로 쓰였던 속성 시스템.
외부 커뮤니티가 활발하지 않았던 당시, 게임 내에서 간단하게 접속할 수 있는 게시판의 존재 등.
한때는 이 모든 것들이 추억 보정일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지만
클래식 와우를 하면서 다시한번 이 생각을 굳히게 된다.
왜냐하면 그 오래된 게임을 하면서도 게임성에 놀란적이 한두번이 아니었으니까.
얼마전 리마스터로 출시된 고전명작 파이널 판타지 택틱스를 하면서도 비슷한 감정을 느꼈다.
-고전 명작은 단순한 추억 보정이 아니라, 그 자체로 훌륭한 게임이라는 걸-
특히 어둠의전설은 단순한 게임 시스템뿐만 아니라 유저가 참여할 수 있는 부분이 굉장히 많았는데
흔히 알려진 현자와 시인은 물론이고
이벤트 담당이나 게시판 관리조차도 유저들이 직접 했다는 사실!
(초기에는 정액비를 감면해주는 대가로 이런 시스템이 있었다)
오늘은 최근 게임을 접한 유저분들에게는 조금 생소할 수도 있는 유저 자치 시스템.
쉽게 말하면 어둠의전설의 경찰 제도에 대한 이야기를 해보려 한다.
어둠의전설에는 총 4번의 제재 시스템이 있었고
결과적으로 모두 실패했다.
자 과거로 떠나보자.
(오래된 이야기인만큼 틀린 부분이 있을 수도 있답니다)
1) 범죄자 길드
미국 어둠을 접한 사람들이 입을모아 신기하다고 말하는 부분이 바로 [가드 제도]다.
대충 맥락을 보면 유저 투표로 선출된 가드가 마을별로 존재해 유저간의 분쟁을 해결하고 제재를 한다는 부분인데
당연히 그 시초는 우리 나라의 어둠의전설에서 파생된 것이다.
(그래서 초기 어둠 이미지에는 각 마을별 가드복이 있는걸 확인할 수 있다)
하지만 여러가지 폐단으로 인한 문제점이 생겨 적극적으로 채용되지는 못했고
이를 보완한 제도를 처음으로 만든 것이 바로 [범죄자 길드]다.
범죄자 길드는 정말 간단하다.
분쟁이 생기거나 누군가 잘못을 하면 그걸 특정 홈페이지에 올리게 되고
점수를 매겨, 한 아이디가 특정 점수를 넘으면 모든 길드의 적이 되어버리는..
간단하면서도 효율적인 방법이었다.
하지만 이상과는 달리 크게 성공하진 못했는데.. 이유는 단순했다.
당시만 해도 게임을 즐기는 80%의 유저는 1,2써클로 해당 제도에는 큰 관심이 없었던 것!
덤으로 외부 사이트를 이용해야만 하는 방식은 큰 진입장벽이 됐다.
마을에서 발경과 나르콜리가 걸리던 시절..
게임을 10분이라도 더 하면 더 했지 누가 저런 시스템에 관심을 가졌겠는가.
범죄자 길드에 등록된 아이디는 대부분 공개 아이디였으며,
많은 유저들이 기억조차 하지 못할만큼 대중화에 실패해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지게 된다.
* 게임 초기에 공개 아이디를 해보신 분들은 아이디가 모두 빨간색으로 뜨는 경험을 해보셨을 거에요.
그게 바로 범죄자 길드였답니다.
2) 게시판 담당 (어둠 지킴이)
첫번째 시도에 실패한 운영자가 관심을 돌린 것은 바로 유저 자치 시스템.
즉 인력을 사용해 유저들을 관리하는 방법이었다.
하지만 당시만해도 운영자가 모든 걸 관리할 수 없기에
게임을 굉장히 오래해온 올드 유저들을 대상으로 게시판 담당을 선출하게 된다.
(실제로 유저에게 일일이 귓말로 캐스팅했다는 비화가 전해진다)
하지만 특정 권한을 유저에게 맡기는 건 리스크를 동반하는 일이기도 했다.
운영자에 가까운 케릭터를 받은 이들은 문제를 일으키게 되는데..
특별 케릭터에게만 있었던 케릭터 소환이나 출두, 각종 미구현 이펙트를 오남용 하는 일이 벌어졌고
게임의 초기였던만큼 이 행동들이 크게 주목받진 않았지만
날이갈수록 그 부작용은 커져만 갔다.
운영자 케릭터가 마을을 침공해 유저들과 PVP를 겨루는 낭만의 이벤트 [다크 군단]
유저를 상대로 수많은 이벤트를 열고 즐거움을 줬던 [제로지대]
게시판을 담당하고 관리하는 [게시판 담당]
이후 어둠의전설의 자치 시스템을 개편하여 만들어진 [어둠 지킴이]
(우리가 기억하는 운영자가 아니라 어둠 지킴이라는 별도의 시스템이 있었음)
해당 이벤트와 시스템은 유저들이 스스로 운영의 한 부분을 맡아 게임을 함께 만들어가는.
이상적으로만 흘러간다면 그야말로 더 좋은 방법이 없을만큼 신선한 시도였지만
동시에 일반 유저들에겐 엄청난 시기와 질투, 박탈감을 주는 일이기도 했다.
가장 큰 문제는 익명성이었다.
초기 어둠의전설은 넥슨으로의 로그인이 아니라, 케릭터 로그인을 하는 방식으로
케릭터를 받은 사람들 대부분이 익명으로 활동하게 되었으니
각종 부작용을 막을 수 없다는 치명적인 단점이 드러난 것이다.
결국 이 문제는 끝까지 해결되지 못했고
시인을 제외한 대부분의 직책이 사라지며 (현자는 추후에 생겼다)
유저들이 게임 운영에 참여할 수 있는 시스템은 이 시기를 기점으로 사라지게 된다.
그렇게 짧게 만들어진 어둠 지킴이 제도는
채팅 제한(채팅을 치면 **로 나옴)과 게시판 제한(말 그대로 게시판에 글 못씀)등의
제재를 가할 수 있는 권한이 주어졌지만
아주 잠깐의 활동만을 했을 뿐, 게임의 시스템으로 정착되진 못했다.
3) 범죄자 제도
앞선 시스템에서 운영자는 한가지 교훈을 얻게되는데
그건 바로 익명성이 보장된 활동에는 큰 책임이 따르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따라서 책임감을 가질 수 있는 유저에게 그 권한을 주기로 마음먹었고
여기서 선택받은 유저들이 바로 공식 길드성을 쟁취한 각 길드의 마스터들이다.
(어둠의전설은 2000년, 리니지의 영향을 받아 공성전이 도입됐다)
당시에 유행했던 다크 스토리, 혹은 통합헌병 카페에 억울한 부분을 스크린샷과 함께 게시하면
각 길드 마스터들은 자신의 판단하에 재량껏 고발을 할 수 있었는데
특정 누군가가 큰 권력을 휘두를 수 없게끔 3인 이상의 길드 마스터가 동의해야만 처벌이 이루어졌고
처벌과 사면만큼은 운영자의 손으로 이루어지며 나름 합리적인 시스템을 구축하기에 이른다.
이 제도는 꽤 오랜기간 운영됐으며, 실제로 많은 사람들의 손을 거쳐 다수의 제재가 이루어졌다.
(얼마전까지만 해도 공식길드 업무 게시판이 있었으며 그 내용을 볼 수 있었다)
익명이 보장되지 않아 막중한 책임감이 필요한 자리였고,
공식 길드는 그만큼 상징적인 자리였기에 초기에는 반발 여론이 거세지 않았던 것으로 기억한다.
하지만 이 방식에도 문제는 있었다.
가장 먼저 영상 녹화가 보편화되지 않았던 당시의 게임 환경을 생각하면
단순히 스크린샷만으로 정황을 판단해야 했는데 그것이 완벽하게 이루어질리 없었다.
그리고 범죄자가 되면 사실상 케릭터를 사용할 수 없는 단계에 이르는데
합의를 봐주는 대가. 일명 합의금을 받아내기 위한 명목으로 악용될 소지가 다분했다.
(현실의 공갈 사기단이랑 별 다를바가 없다)
안그래도 게임에서 파급력이 큰 공식 길드에게 유저를 심판할 수 있는 권한까지 주어지니
그들이 얼마나 큰 영향력을 가졌을지는 굳이 설명할 필요가 없다.
개인적으로 공식 길드에게 메리트를 주는 방식은 신선하고,
무엇보다 RPG의 특성과 목표를 생각했을 때
결코 나쁘지 않은 아이디어였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그게 다른 사람을 심판할 수 있는 권한이란 게 너무 과했을 뿐..
결국 유저가 유저를 처벌한다는 문제에 대한 논란은 끊이지 않았고
범죄자 제도를 끝으로 유저 자치 시스템은 막을 내리게 된다.
4) 어둠 자경단
위의 1,2,3의 처벌 대상은 단순한 비매너 혹은 사기 정도로 분류됐다면
이 시기에는 드디어 [사냥 방해]라는 단어가 본격적으로 탄생한. 혼돈의 시기이기도 하다.
오픈 필드로 구성되어 진행되는 어둠의전설이란 게임의 특성상 다른 유저를 마주치게 되는데
그 유저가 몬스터에게 힐을 한다면, 혹은 같이 몬스터를 잡아버린다면 어떻게 대응할 수 있을까?
놀랍게도 대응 방법이 없다.
방해꾼은 한명이지만 팀은 최소 5명에서 각 팀의 경우 풀파티로도 이루어진다.
심지어 부캐, 부 계정으로 방해를 하는 건 어렵지 않았고
당하는 쪽은 정말 일방적으로 리콜을 누를 수 밖에 없는. 악질중의 악질인 것이다.
한때는 사냥 방해를 업무 방해로 판단해 형사 고소를 진행하는 사람도 있었고
넥슨 본사까지 찾아가 항의를 하는 사람들이 생길만큼 심각한 문제였다.
하지만 운영자의 근무 시간을 생각하면 현실적으로 24시간 모니터링이 가능할리 없었고
함께 몬스터를 잡는 행위를 무조건 악질적인 방해로 규정지을 수 없는 약관의 문제도 있었다.
그래서 운영자가 떠올린 방법은 그 판단 또한 [유저]에게 맡긴다는 발상이었다.
어둠 자경단은 유저 투표로 선출된 자경단이 본인의 아이디를 걸고 제재를 진행하며
뉴비들을 위한 버프, 아이템 지원 등의 부가 업무를 진행할 계획이었다.
실제로 이 내용은 2017년에 진행된 오프라인 간담회에서 가장 먼저 언급한 내용이고
기사로도 확인할 수 있는 부분이다.
이 소식이 전해졌을 때 각종 어둠 커뮤니티에선 뜨거운 논쟁이 벌어졌던 것으로 기억한다.
그렇게 실패하고도 또 유저에게 권력을 주는 발상은 위험하다는 부정적인 여론이 거셌지만
방해에 대한 현실적인 해결책이 없었던 만큼 시도는 해보는게 낫다는 긍정적인 여론도 존재했다.
하지만 어둠 자경단은 끝내 게임에 도입되지 않았다.
오프라인 간담회에 유저들을 초청하고, 가장 중요한 업데이트로 발표했던 만큼
자경단을 도입할 의도는 있었던 것으로 보이나
개발 단계에서 우리들이 알 수 없는 어른들의 사정이 있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수년간 지독히도 해결할 수 없었던 사냥 방해 문제는 의외로 쉽게 해결됐는데
퀵던전이라는 인스턴스 던전을 개발해 경험치도, 어빌리티도 모두 한 곳에서 한다는
아주 단순하고도 허무한 방식의 업데이트로.
대 사냥 방해의 시대는 막을 내린다.
이후 게임 업데이트의 방향성은 한동안 [유리드]라는 이름하에
수많은 던전이 인스턴스화 되기 시작했다.
인스턴스 던전이 나쁜 것은 결코 아니지만..
오픈 필드만이 가진 게임의 매력을 이어가지 못한 부분은 큰 아쉬움으로 남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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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임의 역사를 돌이켜보면
새로운 시스템의 도입이 반드시 성공으로 이어지진 않는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오히려 실패는 필연에 가깝지만
그 실패를 발판삼아 계속 새로운 시도를 했다는 사실이 더 중요한 것이다.
그래서 RPG는 재밌는 것 같다.
나뿐만이 아니라 수많은 유저들이 함께 공유하는 세계관.
그 안에서 벌어지는 다양한 사건과 사고.
모든 안전 수칙이 피로 쓰인다는 말이 있듯
우리가 경험하고 있는 수많은 시스템은
이 게임을 먼저 접한 사람들의 유산이 아닐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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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운 시도를 끊임없이 반복했던 과거와는 달리
모든게 편해지고, 보다 간단하게 변하고 있는 게임의 모습이 가끔 적응이 되지 않을 때가 있다.
어디까지가 편의성이고, 어디까지가 불편함이며
그 경계선에서 어디까지가 게임의 즐거움일까.
단순히 수치가 올라간다고 해서 즐거움이 비례해 올라가지 않듯
어둠의전설이 보다 과정의 즐거움을 느낄 수 있는 게임으로 남았으면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