秘, 루어스의 비밀 문서고
두 번째 증언: 성화기사 카렌
빛의 수도원에서 12년 동안 우리는 하나의 진리를 배웠다.
죽음은 끝이며 죽은 자는 돌아오지 않는다는 것을.
뮤레칸은 타락한 영혼들을 가두는 어둠의 왕이고 그를 섬기는 것은 이단임을.
나는 의심하지 않았다. 시험을 통과했다. 이마에 빛의 인장을 새겼다.
성화의 기도를 완벽하게 외울 수 있었다.
악령을 물리치는 의식을 수천 번 연습했다.
마인 골짜기에 도착했을 때 나는 확신에 차 있었다. 이 미신을 뿌리 뽑을 수 있다고.
골짜기는 서쪽 산맥 기슭에 자리 잡고 있었다.
집들은 돌을 쌓아 만들었다. 지붕은 이엉으로 덮었다.
마을 중앙의 우물가에서 아이들이 놀고 있었고 여자들이 빨래를 하고 있었다.
내가 흰 외투를 입고 나타나자 사람들이 움직임을 멈추곤 나를 바라보았다.
그들의 눈빛에는 두려움이 없었다. 어떤 호기심 같은 것이 있었다. 어떤 이는 동정하는 표정을 지었다.
그것이 나를 불편하게 만들었다.
왜 그들이 나를 동정하는가.
마을 입구의 제국 초소에는 병사 두 명이 주둔하고 있었다.
나이 든 병사가 경례하며 “성화기사님, 오시느라 고생하셨습니다.”라고 인사했다.
“보고를 받고 싶습니다.”
그가 잠시 망설이는 게 보였다. “조심하셔야 합니다.”
“무엇을?”
“이곳 사람들은 다릅니다. 특히 겨울이 다가오면요.”
그의 목소리가 낮아졌다.
“어떻게 다릅니까?”
병사는 명확하게 대답하지 않고 고개만 저었다.
“직접 보시면 아실 겁니다.”
나는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 변경 병사들은 늘 그렇다.
너무 오래 도시에서 멀리 떨어져 있으면 미신을 믿게 된다. 그림자를 두려워하게 된다.
라켈리움에 대한 기록을 읽어낸 기억.
마인 골짜기에서만 자생하는 식물.
동지기 전후에만 핌. 강렬한 황금빛. 일부 학자들은 환각 성분이 들어있다고 주장함.
이 꽃으로 길을 만들어 망령을 부르는 이단 의식이 대대로 행해짐. 제국은 이를 금했다.
하지만 골짜기 사람들은 은밀하게 계속해왔다.
이제 제국 의회는 내년에 무력으로라도 이를 근절하기로 결정했다.
내 임무는 명확했다. 의식을 관찰한다. 악령의 존재를 확인한다.
주동자들을 체포한다. 매우 간단한 문제였다.
-
멜리사를 만난 것은 사흘째 되는 날이었다.
그녀의 집 마당에 라켈리움 바구니가 있었다. 처음 보는 꽃이었다.
수도원의 약초학에서 배운 어떤 식물과도 달랐다.
색이 자연스럽지 않게 선명했다.
가까이 다가가자 향기가 코를 찔렀다.
달콤했다. 꿀처럼, 아니 꿀보다 더 진한 단맛이었다.
이어 곧 씁쓸한 뒷맛이 혀 밑에 고였다. 그다음엔 알 수 없는 냄새들이 겹겹이 밀려왔다.
흙 냄새. 썩은 나뭇잎 냄새. 아니, 썩는다는 표현도 맞지 않았다.
부패가 아니라 변화의 냄새. 무언가 형태를 바꾸는 과정의 냄새.
나는 수도원에서 시체를 본 적이 있다. 죽은 지 사흘째 되는 수사의 시체.
그때 맡았던 냄새가 희미하게 섞여 있었다. 하지만 동시에 갓 태어난 아기의 냄새도 있었다.
끝과 시작이 한 송이 꽃에 뒤섞여 있었다.
머리가 어지러워졌다. 시야가 흔들렸다.
나는 한 걸음 물러서며 외투 소매로 코를 막았다. 환각 성분. 학자들의 주장이 맞았다.
단순한 환각제가 아니었다. 무언가 더 깊은 곳을 건드리는 것 같았다.
기억이 아닌 것의 기억. 내가 경험하지 않은 것에 대한 그리움.
노파가 나왔다.
작고 허리가 굽었지만 눈빛은 날카로웠다.
“루어스에서 오셨군요.”
“성화기사 카렌입니다.”
“들어오십시오.”
노파는 나를 집 안으로 들였다. 차를 내주었다. 나는 경계하며 받았다.
차에 무언가 탔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지만, 노파는 같은 주전자에서 자신의 차도 따랐다.
김이 모락모락 올라왔다. 약초 냄새.
라켈리움과는 다른, 평범한 약초들의 냄새.
“얼마나 오래 하셨습니까?” 찻잔을 들며 내가 물었다.
“이 의식을.”
“육십 년.”
그 숫자가 나를 놀라게 했다.
“그렇게 오래 하셨으면 어떤 확신이 있으시겠군요.”
노파는 찻잔을 천천히 들어 올린뒤, 한 모금 마시곤 창밖을 바라보았다.
해가 기울고 있었다.
석양빛이 방 안으로 비스듬히 들어와 먼지를 황금빛으로 물들였다.
“오히려 반대입니다.”
“무슨 말씀입니까?”
“육십 년을 해도 확신할 수 없습니다. 그것이 진짜인지 환영인지.”
노파의 목소리는 담담했다.
나는 이해할 수 없었다.
“알 수 없는 행위를 육십 년이나 계속하신 겁니까?”
“그렇습니다.”
“왜입니까?”
노파는 한참을 침묵했다. 차를 한 모금 더 마셨다.
찻잔을 내려놓는 소리가 방 안에 울렸다. “확신이 없어도 하지 않을 수는 없습니다.”
그녀가 나를 바라봤다. “만약 진짜라면 어떻게 합니까?
만약 정말 그들이 돌아오는데 내가 길을 만들지 않는다면?
그들은 어둠 속에서 길을 잃을 겁니다. 영원히.”
나는 뭐라 대꾸할 수 없었다. 수도원에서 배운 답이 입 밖으로 나오지 않았다.
죽은 자는 돌아오지 않는다. 뮤레칸의 영역에서 돌아오는 것은 악령뿐이다.
그렇게 배웠다. 하지만 그 말들이 목구멍에 걸려 나오지 않았다.
“성화기사님.” 노파의 목소리가 더 낮아졌다.
“당신은 믿음이 있으십니까?”
“물론입니다.”
“무엇을?”
“제국의 교리가 옳다는 것을. 뮤레칸은 악마이고 죽은 자는ㅡ”
“그 믿음은 어디서 옵니까?” 노파가 나를 가로막았다. 찻잔을 내려놓고 나를 똑바로 바라봤다.
“배워서 얻은 믿음입니까, 아니면 경험해서 얻은 믿음입니까?”
나는 말을 어떻게든 이어가려 노력했다.
“수도원에서 12년 동안ㅡ”
“배웠다는 말이군요.”
“경험이 모든 것은 아닙니다.” 내 목소리가 방어적으로 들렸다.
“진리는 경험을 초월합니다. 신의 말씀은ㅡ”
“그럼 신의 말씀을 직접 들어보셨습니까?”
나는 대답할 수 없었다. 들어본 적 없다. 사제들이 전하는 말씀을 들었을 뿐이다.
사제들도 그 위 사제들에게서 들었을 것이다. 그렇게 거슬러 올라가면 어디에 닿을까.
신에게 닿을까.
아니면 그저 오래된 책에 닿을 뿐일까.
“당신은 죽어본 적이 있습니까?” 노파가 물었다.
“물론 없습니다.”
“뮤레칸을 본 적이 있습니까?”
“...당연히 없습니다.”
“제3의 세계에 가본 적이 있습니까?”
“...없습니다.”
“그럼 어떻게 압니까?” 노파의 목소리는 비난하는 것이 아니었다.
그저 내게 물었다. “경험하지 않은 것을 어떻게 믿습니까?”
나는 할 말을 잃었다. 찻잔을 들었다.
차가 식어 있었다. 한 모금 마셨다. 쓰디쓴 맛이 입 안에 퍼졌다.
“나도 확신하지 못합니다.” 노파가 창밖을 다시 바라봤다.
“육십 년을 해도. 하지만 그래서 계속합니다. 확신할 수 없기에, 더욱.”
“저로선... 이해할 수 없습니다.”
“내일 밤 보러 오십시오.” 노파가 일어섰다.
“그리고 직접 판단하십시오. 당신의 신앙으로.”
그날 밤 초소로 돌아와 나는 잠을 이룰 수 없었다. 침대에 누워 천장을 바라봤다.
노파의 말이 머릿속을 맴돌았다. 확신이 없어도 계속한다는 그 말.
그것이 무슨 의미인지 생각했다. 나는 믿음으로 가득 차 있다. 의심의 여지가 없다.
하지만 노파는 의심을 품고도 계속한다. 어느 쪽이 더 강한 신앙인가.
그 생각이 들자 불안해졌다. 일어나 앉았다. 수도원에서 배운 교리를 되새겼다.
뮤레칸은 악마다. 제3의 세계는 어둠이다. 죽은 자는 돌아오지 않는다.
힘주어 소리내**만, 점점 공허하게 들렸다.
메아리 같았다. 내용 없는 소리의 반복.
창을 열어 밤하늘을 바라봤다. 별이 총총했다. 수도원에서 주교님이 말했다.
별은 신이 만든 빛이라고. 어둠을 밝히기 위한 빛이라고.
하지만 지금 보니 별빛은 너무 약했다. 어둠을 밝히기엔 턱없이 부족했다.
오히려 어둠이 더 광대해 보인다. 별은 그저 어둠 속에 떠 있는 작은 점들일 뿐이었다.
-
다음 날 해가 지자 골짜기의 분위기가 변했다.
사람들이 하나둘 집에서 나왔다. 모두 손에 무언가를 들고 있었다.
음식이거나 촛불이거나 작은 물건들. 그들은 멜리사의 집 쪽으로 모여들기 시작했다.
나도 따라갔다. 흰 외투가 눈에 띄었지만 아무도 나를 막지 않았다. 오히려 길을 열어주었다.
어떤 노인은 내 어깨를 툭 치며 “잘 보십시오”라고 했는데,
그 말이 경고인지 격려인지는 알 수 없었다.
멜리사의 마당에는 이미 수십 명이 모여 있었다. 모두 침묵하고 있었다.
중앙에 라켈리움으로 만든 길이 있었다. 대문에서 집 안까지 이어진 황금빛 길.
달빛을 받아 그 길은 은은하게 빛나고 있었다.
바람이 불 때마다 꽃잎들이 떨렸다. 길 전체가 이 날만을 기다린 것 같았다.
나는 본능적으로 그 길을 유심히 관찰했다. 성화기사로서의 훈련이 작동했다.
악령의 통로를 찾아내는 훈련. 하지만 이상하다. 라켈리움 길에서 어둠의 기운이 느껴지지 않는다.
악령의 통로라면 차가움이 있어야 했다. 생명을 빨아들이는 공허함이 있어야 했다.
하지만 이 길은 따뜻했다. 아니, 따뜻하다는 표현도 정확하지 않았다.
온기와 냉기가 동시에 있었다. 삶과 죽음이 한 길 위에 공존하고 있었다.
멜리사가 나왔다. 그녀는 라켈리움 길 앞에 섰다. 옛 말투로 리듬이 있는 목소리로 말하기 시작했다.
“피어난 것은 시들고 시든 것은 다시 피어나며…”
사람들이 따라 말했다. 나는 개입해야 한다는 것을 알았다. 이것은 이단 의식이다.
제국의 명령에 따라 중단시켜야 한다. 하지만 발이 땅에 붙은 것처럼 움직이지 않았다.
입이 굳어서 말이 나오지 않았다. 왜인지 알 수 없었다.
두려움 때문일까. 아니면 다른 무언가.
사람들이 촛불을 켰다.
누군가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다. 낮고 느린 멜로디였다.
다른 사람들이 하나둘 합류했다. 노래는 슬프면서도 아름다웠다.
절망적이면서도 희망적이었다. 나는 가사를 이해할 수 없었다. 하지만 노래의 의미는 알 수 있었다.
이것은 부르는 노래였다. 죽은 이들을 부르는 노래.
수도원에서 배운 모든 지식이 이것을 막으라고 명령했지만, 나는 움직일 수 없었다.
자정이 가까워지자 노래가 멈췄다. 침묵이 흘렀다. 모두가 라켈리움 길을 바라보고 있었다.
나는 성화의 기도를 준비하고는, 입술을 움직였다. 첫 구절을 외우려 했다. “빛이시여, 어둠을 물리치소서…”
하지만 목소리가 나오지 않았다. 목구멍이 막힌 것 같았다.
다시 시도했다. 여전히 소리가 나오지 않았다. 손이 떨리기 시작했다.
그때 라켈리움 길 끝에서 무언가 변하기 시작했다. 빛의 미세한 일렁임.
공기가 물결치듯 흔들렸다. 그다음에는 형체가 잡히기 시작했다. 흐릿한 윤곽. 점점 선명해졌다.
나는 숨을 멈췄다. 손이 더 심하게 떨렸다. 이마에 식은땀이 맺혔다.
그건 사람이었다.
정확히는 사람의 형상이었다.
투명했지만 분명 존재했다. 빛으로 만들어진 것 같았지만 그림자도 있었다. 움직이고 있었다.
라켈리움 길을 따라 천천히 걸어오고 있었다. 한 명이 아니었다. 둘, 셋, 그 이상.
나는 그것들을 관찰했다. 악령을 판별하는 훈련대로. 악령이라면 특징이 있다.
움직임이 부자연스럽다. 형태가 일그러진다. 주변의 생명을 빨아들인다.
하지만 이 형상들은 달랐다. 움직임이 자연스러웠다. 정말 살아있는 사람처럼 걸었다.
주변의 촛불은 꺼지지 않았다. 오히려 더 밝게 타올랐다.
이것은 내가 배운 악령이 아니었다.
그럼 무엇인가.
마을 사람들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각자 자기 집으로, 자기가 만든 길로 흩어져 갔다.
형상들도 따라갔다. 각자의 길을 따라. 나는 멜리사를 따라 그녀의 집 안으로 들어갔다.
방 안은 촛불로 밝혀져 있었다. 중앙에 상이 차려져 있었다.
음식들이 정성스럽게 놓여 있었다. 라켈리움 길 끝에 한 남자의 형상이 서 있었다.
멜리사는 그 앞에 무릎을 꿇었다.
“여보.” 그녀가 속삭였다.
형상이 움직였다. 손을 뻗어 멜리사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그 손길은 부드러워 보였다. 멜리사가 울기 시작했다. 소리 없이. 그녀의 어깨가 떨렸다.
나는 뒤로 물러섰다. 내 눈앞에 이것이 대체 무엇인가.
수도원에서 배운 것에 따르면, 이것은 반드시 악령이어야 했다. 즉시 정화되어야 했다.
나는 다시 성화의 기도를 시도했다. 입을 열었다. “빛이시여…” 하지만 그 말이 거짓말처럼 느껴졌다.
내 앞에 있는 것이 어둠이라면, 왜 멜리사는 평화로워 보이는가. 악령이라면, 왜 그 손길은 부드러운가.
형상이 말하기 시작했다. 목소리는 새벽 바람같이 낮고 부드러웠다.
“많이 힘들었지.” 형상이 멜리사에게 말했다. “혼자서.”
“당신이 보고 싶었어요.” 멜리사가 대답했다.
“나도.” 형상이 말했다. “매일.”
그들은 계속 이야기를 나눴다. 평범한 부부의 대화였다. 농사 이야기. 이웃 이야기. 손자 이야기.
너무 평범해서 이상한. 악령이 이런 이야기를 할까. 악령이 자식을 걱정할까.
나는 밖으로 나왔다. 숨이 막혔다. 신선한 공기가 필요했다.
골짜기 전체에서 같은 일이 벌어지고 있었다.
각 집마다 형상들이 있었다. 사람들이 그들과 이야기하고 있었다.
어떤 이는 울고 어떤 이는 웃고 어떤 이는 그저 조용히 바라보고 있었다.
나는 한 집 창가로 다가갔다. 안을 들여다봤다.
늙은 여자가 어린 소녀의 형상과 마주 앉아 있었다.
“할머니 건강하세요?” 소녀가 물었다. “그럼, 건강하지.” 여자가 대답했다.
“네가 걱정할 것 없어.” “저 잘 지내요. 아프지 않아요.” 소녀가 말했다. “거기는 평화로워요.”
나는 다른 집으로 갔다.
중년 남자가 노인의 형상 앞에 무릎을 꿇고 있었다.
“아버지, 용서하십시오. 제가 농사를 망쳤습니다.” “괜찮다.” 노인이 말했다.
“농사는 그런 거다. 때로 되고 때로 안 되는 것.” “하지만 아버지가 평생 일구신 땅을ㅡ”
“땅은 여전히 거기 있지 않느냐. 너도 여전히 여기에 있고. 그것으로 충분하다.”
나는 성화의 기도를 시작해야 했다. 이것이 무엇이든 제국의 명령에 따라 막아야 했다.
하지만 할 수 없었다. 손이 떨렸다. 무릎에 힘이 빠졌다. 왜냐하면 확신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이것이 악인지 선인지,
저주인지 축복인지, 거짓인지 진실인지.
그리고 가장 두려운 것은, 만약 내가 이것을 막는다면,
나는 무엇을 막는 것인가. 악령인가. 아니면 사랑인가.
동이 트기 시작하자 형상들이 흐려지기 시작했다. 점점 투명해졌다. 빛을 잃어갔다.
사람들이 마지막 작별을 고했다. “내년에 또 올게요.” “기다릴게.” “사랑해.” “나도.” 형상들이 사라졌다.
새벽 안개 속으로 녹아들듯이. 라켈리움 길도 시들기 시작했다.
황금빛이 바랬다. 꽃잎이 검게 변하며 부서졌다.
사람들은 하나둘 집으로 들어갔다. 골짜기는 다시 침묵에 잠겼다.
하지만 이 침묵은 공허하지 않았다. 무언가로 가득 차 있었다.
나는 초소로 돌아와 책상 앞에 앉았다. 보고서를 작성해야 했다.
종이를 펼쳤다. 깃펜을 집어 들었다. 잉크병을 열었다. 깃펜을 잉크에 담갔다.
종이 위에 깃펜을 가져갔다.
첫 문장을 쓰려 했다.
“세오력 148년 겨울, 마인 골짜기에서 이단 의식을 목격하다.”
나는 그 문장을 바라봤다.
이단 의식. 그것이 맞는 표현인가. 깃펜을 들어 글자를 지웠다. 다시 썼다.
“세오력 148년 겨울, 마인 골짜기에서 악령 소환 의식을 목격하다.”
악령 소환. 그것도 맞지 않았다.
나는 악령을 봤다. 수도원에서 훈련 중에 한 번.
그 존재는 차가웠다. 공허했다. 증오로 가득 차 있었다. 하지만 오늘 본 형상들은 달랐다.
따뜻했다. 사랑으로 가득 차 있었다. 지웠다. 다시 썼다.
“세오력 148년 겨울, 마인 골짜기에서…”
무엇을 목격했는가. 무엇이라 이름 붙여야 하는가. 나는 깃펜을 내려놓았다.
다시 집어 들었다. 내려놓았다. 종이를 구겼다. 새 종이를 꺼냈다. 다시 시도했다.
한 문장을 쓰려 했다. 지웠다. 다시 썼다. 또 지웠다.
동이 밝았을 때 내 앞에는 여러 장의 구겨진 종이만 있었다.
보고서는 한 줄도 완성되지 않았다.
수도원에서 긴 시간 나는 믿음을 배웠다. 의심하지 않는 법을 익혔다.
제국의 교리가 절대적 진리라고 믿었다. 선과 악을 구분하는 법을 배웠다.
빛과 어둠을 나누는 법을 배웠다. 하지만 한 밤 사이에 그 모든 것이 흔들렸다.
이제 나는 알 수 없다.
뮤레칸이 정말 악마인지. 제3세계가 정말 어둠인지.
죽은 자가 정말 돌아오지 않는 것인지.
그리고 가장 두려운 것은 내가 더 이상 제국이 옳다고 확신할 수 없다는 것이다.
믿음 없는 나는 누구인가.
성화기사는 믿음으로 정의된다.
의심하지 않는 자. 빛을 의심 없이 따르는 자.
하지만 나는 이제 의심한다.
그렇다면 나는 아직 성화기사인가. 그럴 수 있는가.
내게 신앙이 남아 있는가.
신이 곁에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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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밖을 바라본다. 해가 떠오르고 있었다. 마인 골짜기를 비추고 있었다.
빛이었다. 하지만 그 빛이 어둠을 물리치는 것처럼 보이지 않았다.
아마도, 어둠과 공존하는 것처럼 보였다.
그림자는 사라지지 않았다. 빛이 강할수록 그림자도 짙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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