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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의 마을 세오
「秘」크리스마스의 전설 - 2
736 2025.12.21. 20:49

秘, 루어스의 비밀 문서고

크리스마스의 전설 -
어둠의 달 이야기















빗물은 어둠을 기억한다.

하늘에서 떨어질 때는 빛 속에 있었을지라도, 땅을 통과하며 반드시 어둠을 지난다.
흙의 냄새와 뿌리의 그림자, 오래된 뼈와 금속의 식은 감촉을 지나 마침내 가장 낮은 곳으로 흘러간다.

레반은 그 사실을 알고 있었다.

천장 틈에서 떨어지는 물방울을 컵에 받아 마실 때마다,
이 물이 어떤 경로로 여기까지 왔는지를 생각했기 때문이다.

빗물은 자유로웠다. 어디에도 머무르지 않고, 잡히지 않으며, 결국 가장 깊은 곳까지 도달했다.
그리고 지금, 그 자유가 레반의 입술을 적시고 있었다.

지하 감옥의 벽돌은 기억하지 않는다.
수많은 이름이 여기서 불렸고, 수많은 비명이 여기서 사라졌지만, 돌은 그들을 붙잡지 않는다.

남는 것은 차가움뿐이다. 계절이 바뀌어도 변하지 않는 온도,
사람의 체온을 오래 견디지 못하고 끝내 빼앗아가는 무심함.

레반은 벽에 등을 대고 앉아, 자신에게서 빠져나간 온기가 어디로 가는지를 생각했다.
돌은 돌려주지 않았다. 알면서도 기대하지 않는 법을 가르칠 뿐.

-

열여섯 번째 겨울. 지하로 내려온 햇수로는 셋째였고,
정확한 날짜는 알 수 없었지만 손가락으로 세어보면 그쯤이었다.

벽에 긁어놓은 금들이 중간에서 끊기고 다시 시작된 이유는,
어느 순간부터 하루를 세는 일이 무의미해졌기 때문이다. 그래도 레반은 긁었다.

돌조각으로 벽을 긁는 소리는 작았지만 확실했고, 이 소리가 사라지면 자신도 함께 사라질 것 같았다.
손끝이 닳아 피가 배었고, 돌가루가 손톱 밑에 끼었다. 밤이면 손가락이 쑤셨다.
이 아픔은 그가 아직 살아 있다는 유일한 증거로 기능했다.

하루에 한 번, 혹은 이틀에 한 번, 빵이 왔다.

간수가 철창 사이로 밀어 넣는 빵은 늘 비슷한 크기였고,
곰팡이가 핀 부분을 떼어내고 나면 손가락 두 마디 남짓이 되었다.

레반은 빵을 천천히 먹었다. 먹는 시간만큼은 배고픔이 미뤄졌고,
먹는 동안에는 다른 생각을 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아버지가 굽던 빵의 냄새가 떠올랐고, 따뜻했던 부엌과 나무로 된 식탁, 빵칼의 둔한 소리가 함께 떠올랐다.
기억들은 잠시 혀를 적셨다가 곧바로 목을 조였다. 삼키고 나면 입안이 비었고, 비어 있는 시간이 다시 시작되었다.

옆 방에서는 늘 기침 소리가 들렸다. 아주 오래된 기침.
밤이면 더 잦았고, 낮에도 간간이 이어졌다.

레반은 그 기침으로 시간을 짐작했다. 간수의 발소리보다 그의 기침이 더 규칙적이었기 때문이다.
얼굴을 본 적은 없었지만, 어느 날 철창 사이로 내밀어진 손을 보고서 레반은 그가 늙었다는 것을 알았다.

주름이 깊었고, 손등에 반점이 있었으며,
그 손은 때때로 빵을 밀어 넣었다. 자기 몫보다 조금 덜 딱딱한 빵이었다.

물론 밀어냈다. 받을 수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이유를 설명할 수는 없었지만, 받는 순간 무언가를 잃을 것 같았다.

자존심이었을 수도 있고, 혼자 버틸 수 있다는 믿음이었을 수도 있다.
그러나 빵은 다음 날도 왔고, 그다음 날도 왔다. 결국 레반은 그것을 먹었다. 말은 하지 않았다.
너무 오래 말을 하지 않아 목소리가 낯설었고, 입을 열면 공기만 새어 나왔다.

대신 벽을 두드렸다. 한 번, 두 번. 그러면 벽 너머에서도 같은 리듬이 돌아왔다.
아주 충분한 대화였다. 말보다 확실한 것이 있었다.

-

레반이 이곳에 오게 된 것은 전쟁 때문이었다.
정확히 말하면, 전쟁이 끝난 뒤였다.

정복왕 루딘의 통일 전쟁이 마무리되고 병사들이 돌아오던 해, 아버지도 돌아왔다.

살아 돌아왔다는 사실 하나만으로 마을 사람들은 안도했지만,
문을 열고 들어온 아버지는 이미 다른 사람이었다.

몸은 있었으나 시선은 늘 다른 곳을 보고 있었고, 밤이면 잠들지 못한 채 중얼거렸다.
불타는 것들에 대해, 무너지는 소리에 대해, 이름을 부르다 멈추는 순간들에 대해.
전쟁은 그를 데려갔다가, 몸만 돌려보낸 것처럼 보였다.

가을에 루어스 사람들이 왔다. 지난 전쟁 중, 죄없이 불타고 짓밟힌 마을이 있었고,
누군가 책임을 물어야 했으며, 증언이 있었다. 아버지의 이름이 불렸다. 레반은 그날의 공기를 기억했다.

아버지는 고개를 들지 못했고,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전쟁은 그의 말까지 가져갔다.
레반은 분명 알았다. 아버지가 그런 일을 할 사람이 아니라는 것을.
그러나 진실은 힘이 없었고, 침묵은 죄로 기록되었다.

그날 밤, 레반은 별을 세며 잠들지 않았다. 하나, 둘, 셋. 숫자가 커질수록 생각도 깊어졌다.
그리고 새벽이 올 무렵, 그는 결심했다. 자신이 아버지 대신 루어스로 가겠다고.

아이는 죽이지 않는다는 법을, 열다섯 이전은 사형에 처하지 않는다는 루어스의 율법을 레반은 알고 있었다.
마을 서기의 아들이었던 친구가 가르쳐준 것이었다. 아버지는 견디지 못할 것이었다.

전쟁이 그를 이미 반쯤 죽여놓았다.
하지만 레반은 버틸 수 있을 것 같았다.

다음 날, 레반은 모든 것을 외워서 말했다. 날짜와 장소, 불을 붙인 순서까지.
사실이 아닌 것들을 사실처럼 말했고, 거짓을 진실처럼 쌓아올렸다.

병사들의 웃음이 멎는 데에는 오래 걸리지 않았다. 아이의 눈이 너무도 차분했기 때문이다.
거짓말을 하는 눈이 아니었다. 확신하는 눈이었다.

그렇게 레반은 끌려갔고, 뒤돌지 않으려 했으나, 끝내 아버지의 목소리를 들었다.
이름을 부르는 소리. 그 소리가 멀어질 때까지, 레반은 걷는 것을 멈추지 않았다. 뒤돌아보면 무너질 것 같았기에.

루어스의 지하는 끔찍했고, 어둠은 갑작스러웠다.
처음 문이 닫히던 순간의 철성은 아직도 귀에 남아 있었다.

철컹. 그 소리는 레반을 이곳에 고정시켰다.
이후의 시간은 물처럼 흘렀다. 계절이 바뀌고, 몸이 변하고, 기억이 마모되었다.

첫 겨울은 뼈를 얼렸다. 담요는 얇았고 돌은 차가움을 끝없이 뿜어냈으며,
레반은 무릎을 가슴에 붙이고 밤을 견뎠다. 이빨이 부딪치는 소리가 감방 안을 채웠다.

소음조차 곧 얼어붙는 것 같았다. 빵이 얼었고 물도 얼었다. 레반은 얼음을 입에 넣고 천천히 녹였다.
혀가 얼얼했지만 목마름은 그보다 더 견디기 어려웠다. 입술이 터져 피가 났고, 그 피조차 금방 말라버렸다.

봄이 왔을 때 빗물이 늘어났다. 레반은 그 물로 얼굴을 씻었다. 오랜만이었다.
물이 피부에 닿을 때의 감촉이 낯설었다. 손으로 얼굴을 쓸어내리면 턱수염이 만져졌다.

언제 이렇게 자랐는지 몰랐다. 거울이 없었기에, 자신이 어떤 모습인지 알 수 없었다.
어쩌면 이미 아버지가 기억하는 얼굴이 아닐지도 몰랐다.

여름은 무더웠다. 지하인데도 공기가 무겁게 가라앉았고,
레반은 바닥에 누워 돌의 시원함을 찾았지만 돌은 금방 레반의 체온을 빼앗아 따뜻해졌다.

숨을 쉴 때마다 가슴이 답답했고, 공기가 끈적했다. 물이 부족했다.
입술이 다시 갈라졌고, 혀가 부었다. 벽에 이마를 대고 하루 종일 앉아 있는 날도 있었다.
더는 생각할 힘도, 움직일 힘도 없었다.

가을에 아버지가 왔다. 문이 열렸을 때 쏟아진 빛이 너무 밝아서 레반은 눈을 가렸다.
아버지는 일 년 만에 십 년은 늙어 있었다. 머리가 희었고 등이 더 굽었으며 손을 제대로 움직일 수 없었다.

두 사람은 마주 앉아 말하지 못했다. 아버지가 울었고, 레반은 울지 못했다.
눈물이 어디로 갔는지 알 수 없었다. 빗물은 천장에서 내려왔지만, 눈물은 올라오지 않았다.

간수가 왔을 때 아버지는 레반을 다시 안았다. 너무도 세게. 레반은 아버지의 심장 소리를 들었다.
빠르고 불규칙했다. 새처럼 작게 떨고 있었다. 문이 닫히고 아버지의 발소리가 멀어졌다.

레반은 주저앉았다.
아버지의 온기가 식어가는 것을 느끼며, 다시 혼자가 되었다.

그 뒤로 아버지는 오지 않았다.
레반은 매일 발소리를 기다렸다.

간수의 발소리, 다른 죄수들의 신음, 쥐가 기어가는 소리, 빗물이 떨어지는 소리.
모든 소리가 아버지일 수도 있었다. 하지만 이제 문은 열리지 않았다.

어느 날, 빵을 넣던 간수가 말했다. 아버지가 매일. 매일 왔다는 것.
그리고 중죄인을 만날 수 없다는 법에 막혔다는 것.

다음 날도 간수는 말했다. 이번엔 궁성으로 갔다고.왕에게 호소하려 한다고.
레반은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목이 메었다.

또 다음 날에는 루어스의 온갖 길드에 아버지가 도움을 요청하고 있다는 사실을 전했다.
레반은 벽에 이마를 댔다. 아버지의 모습이 그려졌다. 구부정한 등, 목적을 잃은 손, 희어진 머리.
그 모습으로 왕궁 계단을 오르고, 길드의 문을 두드리고, 사람들 앞에 무릎을 꿇는 모습.

겨울이 다시 왔다. 두 번째 겨울은 더 혹독했다. 레반이 약해진 탓이었다.
살이 빠져 뼈만 남았고 담요에는 구멍이 났으며, 추위는 이 구멍으로 파고들었다. 기침이 시작되었다.

가슴속에서 무언가 긁히는 것 같았다. 옆 방의 빵이 없었다면 레반은 버티지 못했을 것이다.
빵은 계속 왔다. 계약이라도 맺은 양, 규칙적으로.

늙은 남자는 한 번도 말을 걸지 않았지만, 빵을 밀어 넣을 때마다 벽을 두드렸다.
한 번, 두 번. 살아 있느냐고 묻는 것 같았다. 레반도 두드렸다. 살아 있어. 살아 있다고.

-

한 해의 가장 긴 밤이 왔다.

간수들이 말했다. 왕이 내려온다고, 어쩌면, 사면이 있을 수 있다던가.
레반은 기대하지 않았다. 기대는 이곳에서 가장 먼저 부서지는 것이었다.

밤이 깊어졌고 지하 전체가 숨을 죽였다. 발소리가 들렸다.
횃불 빛이 복도를 밝혔고 그림자가 벽에 흔들렸다.

발소리가 옆 감방 앞에서 멈췄다. 문이 열렸고 늙은 남자가 나왔다.
빵을 주던 그 사람이었다. 허리가 굽었고 수염이 길었으며 걷기 힘들어 보였다.

간수가 부축했다. 늙은 남자는 레반을 보았다. 눈이 마주쳤고, 그는 미소 지었다. 작게. 그리고 고개를 끄덕였다.
레반도 고개를 숙였다. 고맙다는 말을 하고 싶었지만, 목소리가 나오지 않았다.
그들이 지나갔다. 발소리가 멀어졌고, 이내 사라졌다.

레반은 생각했다. 끝났다고. 당연하다고. 레반은 생각했다.
끝났다고... 당연하다고... 이곳에서 살아남은 사람은, 늘 누군가의 몫을 대신 가져가는 법이었다.

늙은 남자가 받을 자격이 있었다. 빵을 나눠준 사람. 누군가를 살린 사람.
하지만 발소리가 다시 들렸다. 무언가 내려와 레반의 방 앞에서 멈췄다. 곧이어 문이 열렸고, 빛이 쏟아졌다.

한 남자가 서 있었다. 키가 크고 망토를 입었으며 두건을 쓰고 있었다.
젊었다. 아버지보다 젊어 보였다. 그는 레반을 조용히 응시했다. 레반은 그를 올려다보았다.

남자가 두건을 벗었다. 서른쯤 되었을까. 수염이 짧았고 눈빛은 날카로웠지만 차갑지 않았다.
뭔가를 결정한 사람의 눈이었다. 후회하지 않기로 한 눈.

남자가 손을 내밀었다. 레반은 그 손을 보았다. 상처가 많았고 검을 쥔 손이었다.
전쟁터에서 돌아온 손. 레반은 잠시 망설였다. 이것이 현실인지 꿈인지 알 수 없었다.

그러나 그 손을 잡기로 했다. 따뜻했다. 살아 있는 온기. 남자가 레반을 일으켰다.
간수가 쇠사슬을 풀었다. 이곳에 들어온 뒤로 구속이 풀린 것은 처음이었다.
쇠사슬이 바닥에 떨어졌다. 철컹.

레반은 그 소리를 들었다. 처음 들어올 때와 같은 소리.
하지만 의미가 달랐다. 발목이 가벼웠다. 이상하다. 무게가 없다는 것이 오히려 불안했다.

복도로 나왔다. 다른 죄수들이 보고 있었다. 레반은 고개를 숙였다. 그들의 눈빛을 마주할 수 없었다.
부러움, 질투, 체념. 모든 것이 섞여 있었다.

계단을 한 계단씩 올라갔다. 다리가 떨렸다.
긴 시간 제대로 걷지 않아서, 근육이 어떻게 움직이는지 잊어버린 것 같았다.

남자가 레반의 팔을 잡아주었다. 빛이 밝아졌고 공기가 가벼워졌다.
레반은 숨을 깊이 들이마셨다. 루어스에서 처음으로 맞는 신선한 공기. 이토록 맑고 청명했던가.

문이 나왔다. 두꺼운 철로 된 문이었다.
남자가 그 문을 열자, 밖이 한순간에 열렸다.

루어스에 눈이 내리고 있었다.
아주 새하얀 눈. 레반은 그 눈을 바라보다가 자리에 멈춰 섰다.

하늘이 보이고 별도 보였다.
흐릿했지만 분명히 저 어디에 있었다. 천장이 없는,

끝을 가늠할 수 없는 공간이 머리 위로 펼쳐져 있다.
세상은 감옥에서 기억하던 것보다 훨씬 넓었다.

레반은 밖으로 나섰다. 눈이 얼굴에 떨어져 곧 녹았고, 차가운 물이 뺨을 타고 흘렀다.
그는 본능처럼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눈이 멈출 기색 없이 내려온다.

그는 손을 펼쳤다. 눈송이가 손바닥에 내려앉았다가 이내 물이 되었다.
레반은 물을 바라보았다. 빗물처럼, 흘러온 길을 묻지 않는 자유.

그때 남자가 레반의 어깨에 손을 얹었다. 레반이 돌아보자 남자는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레반은 짧게 허리를 숙여 인사했고, 남자도 같은 방식으로 답했다.
그게 전부였다. 레반은 더 머물지 않고 돌아서서 걸었다.

집까지는 밤새 걸어야 했다.
눈은 계속 쌓였고 발은 자주 빠졌으며, 추위는 몸속까지 파고들었다.

몇 번이나 멈춰 설 뻔했지만, 그는 걷는 것을 그만두지 않았다.
숨이 가빠질 때면 나무에 기대어 잠시 숨을 고르고, 다시 발을 떼었다.
별이 조금씩 옮겨갔고, 동쪽 하늘이 서서히 밝아오기 시작했다. 새벽이었다.

하늘은 회색에서 옅은 푸른빛으로 변했고, 어느 순간 눈이 그쳤다. 그제야 마을이 보였다.
집들이 보였고, 굴뚝에서 연기가 오르고 있었다. 누군가는 이미 불을 지피고 있었다.

집 앞에 사람이 서 있었다.
눈을 맞으며, 움직이지 않은 채.

레반은 걸음을 늦추었고, 바로 다가가지 않았다. 그 사람도 그대로 서 있었다.
둘 사이로 다시 눈이 내리기 시작했다. 레반은 그 얼굴을 알아보았다.

아버지였다. 많이 늙어 있었고, 몸은 예전보다 작아 보인다.
그러나 그는 분명 서 있었다. 여전히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레반이 한 걸음 내디뎠다. 아버지도 한 걸음 다가왔다.
또 한 걸음, 다시 한 걸음. 그렇게 둘은 마침내 서로 앞에 섰다.
손이 먼저 닿았다. 차디찬 손. 그리고 마주 안았다.

울음은 없었다. 소리도 없었다. 그저 오래 안고 서 있었다.
눈이 어깨 위에, 머리 위에 쌓였고, 두 사람 위로 고요히 내려앉았다.

마을 사람들이 하나둘 나와 그 광경을 보았지만 아무도 가까이 오지 않았다.
눈은 모든 것을 덮고 있었다. 지나온 시간과, 죄와, 고통까지도.

한참이 지난 뒤, 레반이 낮게 물었다. 목소리는 갈라져 있었다.

“어떻게...”

아버지는 대답하지 않았다. 대답할 수 없는 얼굴이었다.
대신 레반을 조금 더 세게 끌어안았다.

레반은 더 묻지 않았다. 알 필요가 없었다.
아버지가 견뎌온 모든 시간과 걸어온 길이, 그 침묵 안에 충분히 담겨 있었다.

두 사람은 함께 집 안으로 들어갔다.
밖에서는 다시 눈이 내리기 시작했다.

지붕 위로, 길 위로, 발자국 위로.
그들이 지나온 모든 것을 덮으며, 아주 하얗게.


-


그해 겨울, 루어스의 지하 감옥에서 두 사람이 풀려났다는 소문이 돌았다.

사면은 루딘 왕의 이름으로 내려졌다. 통일 전쟁을 마친 지 얼마 되지 않은 젊은 왕이,
직접 지하로 내려가 선택한 두 사람이었다. 이유는 공표되지 않았다.

기록에는 날짜와 인장만 남았고,
그날이 한 해의 가장 긴 밤이었다는 사실, 눈이 내렸다는 메모만이 덧붙여졌다.

레반과 아버지가 그 뒤 어떻게 살았는지는 남아 있지 않다.

행정 문서도, 교구의 세례록도, 장터의 명부도 그들을 다시 호출하지 않는다.
다만 그런 삶이 있었을 가능성만 남아 있다.

빵을 굽고, 눈을 치우고, 다음 계절을 기다리며 하루를 넘겼을 시간들.
특별하지 않았기에, 기록되지 않은 날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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