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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의 마을 세오
끝맺음
17157 2025.12.28. 08:15









옛날엔 어둠을 접으며 케릭터를 삭제하는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당시만해도 케릭터를 자신의 분신이라고 표현할 만큼 애착이 강했던 시기여서

이런 결정을 보면서 종종 놀라곤 했죠.


어린 시절엔 막연히 "미련을 버리기가 그렇게 어려운 걸까?" 생각했던 기억이 있네요.


하지만 나이를 먹고보니 미련을 버리기 위한 선택이 아니더라구요.

케릭터가 사라져도, 두번다시 어둠에 돌아오지 않아도

후회가 없겠다는 생각.


오히려 미련을 모두 버렸을 때 가능한 결정이었다는 걸

뒤늦게 이해했습니다.



-



한동안 디아블로나 패스 오브 엑자일같은 시즌제 게임이 유행한 시기가 있었습니다.

저는 RPG를 좋아하지만 편견이 있었는데요.

열심히 키운 케릭터와 장비가 시즌이 끝남과 동시에 쓸모 없어진다.

그러면 왜 하는거지? 이해가 되질 않았죠.


하지만 직접 경험해보니 끝이 정해진 게임도 나름 재밌더라고요.


시즌 초에는 다같이 달리는 재미가 있고

중반에는 자신이 선택한 케릭터와 빌드를 완성해가는 재미

마지막엔 그 여정을 돌이켜보며 큰 여운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저는 어둠을 하면서 정말 많은 사람을 만났는데요.

지금까지 게임을 하는 사람은 당연하게도 거의 없습니다.


그들은 각자의 방식으로 시즌을 종료했고

간혹 들어오더라도 수년만에 접속해 안부를 남기는 정도이지

게임에 지속적인 관심을 갖지는 않더라고요.


그리고 이 모습이 가장 평범한 형태의 온라인 게임 유저라 생각합니다.

게임을 영원히 하는 사람은 없듯, 각자의 방식으로 매듭을 짓는 거죠.




그런데 저는 여전히 마무리를 짓지 못했습니다.

게임을 떠난 뒤에도 유튜브를 올리고, 이렇게 시인의 마을에 돌아오기도 하고

과거에 했던 블로그와 커뮤니티 활동, 방송까지 생각하면..


말로 표현할 수 없을만큼 긴 시간이었으니까요.


올해 초에 글을 쓰면서, 이 게임과 가까워지기 위한 노력이라는 표현을 했는데요.

1년이란 시간을 돌이켜 보면..

노력보단 미련에 더 가깝지 않나 싶습니다.


이미 게임은 제가 좋아하던 모습과는 많이 멀어졌고

스스로도 예전만큼 할 수 없다는 걸 알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게임을 좋아했던 시간이, 이 게임이 남겨준 기억이.

너무 강렬해 놓고싶지 않아 발버둥쳤던 것 같네요.



그게 무엇인지 정확하게 표현하긴 어렵지만

끝까지 놓지 못했던거죠.




-



슬램 덩크의 충격적인 엔딩을 보면서 말로 형용할 수 없는 감정을 느꼈지만

나이를 먹고난 뒤엔 이렇게 깔끔하게 마무리 한 만화가 어디 있겠냐는 생각을 하기도 합니다.

실제로 엔딩으로 작품이 완성됐다는 의견도 많으니까요.



첫 만남이 잊혀지지 않듯

아름다운 마무리도 그만큼 중요한 것 같습니다.

박수칠 때 떠날 기회가 있었는데 저는 그러지 못했어요.


이제와 게임에 무슨 명예가 있겠으며, 제 닉네임에 무슨 가치가 있겠냐만은..


조금 더 현명한 결정을 하지 못한 것에 대한 후회는 남는 것 같습니다.

부끄럽네요.



-



다시 돌아와 타이틀도 얻고, 칭호 의상도 받았지만

그것에 만족했던 순간은 단 한번도 없었습니다.


시인이라는 이름으로

제가 자부심을 갖고 활동할 수 있었던 이유는

유저분들의 인정이 있었기 때문이란 걸 다시 한 번 느낍니다.


하지만 저에겐 더 이상 에너지가 없고, 그게 글에서도 고스란히 드러나는 것 같아요.

저번에도 말씀드렸듯 이젠 시인으로 돌아오지 않을 것 같습니다.

따뜻하게 반겨주셨던 많은 분들께 죄송한 마음입니다.


저도 오랜기간 해온 일인만큼 누구보다 잘할 수 있을거란 기대가 있었기에

스스로에게 실망스러운 결과이기도 해요.

이런 결과를 예상했다면 당연히 돌아오지 않았겠죠.


하지만 세상 일이 자신의 생각대로 다 풀릴 수 없을뿐더러

이런 실패로 배우는 부분도 있을거라 생각합니다.

마지막인만큼 조금 너그럽게 생각해주시길 부탁 드리고 싶네요.




끝으로



시인의 마을은 제가 어둠의전설이란 게임을 좋아하는데 정말 큰 역할을 한 공간입니다.

가장 많이 본 글을 떠올리면 외울 수 있을만큼..

이 공간을 말 그대로 동경했습니다.


게임내의 정보를 공유하는 현자와 달리 시인은 역할이 뚜렷하게 정해져 있지 않습니다.

막연하게 글을 쓰는 사람 정도로 치부할 뿐이죠.


제가 생각하는 시인은..

글로써 공감대를 형성하고, 유저분들과 소통하는 사람이라 생각합니다.

앞으로도 이 공간에서 활동하시는 분들 모두가 이 점을 잊지 않으셨으면 좋겠어요.


자신이 쓰고 싶은 글, 멋진 글도 중요하지만

결국 읽어주는 사람이 없으면 아무 의미가 없듯

많은 사람들이 보다 쉽게 접근할 수 있는 글이 쓰여졌으면 좋겠습니다.


글솜씨가 부족한 제가 이 공간에서 누구보다 오래 활동할 수 있었던 것도

결국 [소통]이라는 가치를 우선시했던 이유가 크다고 생각하거든요.


그 본질을 잃지 않길 바라는 마음을 남깁니다.






그동안 제 글을 사랑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착한제국 올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