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3.20
고속도로를 벗어나자 가로등이 하나둘 사라진다.
내비게이션은 몇 번 망설이다가, 아무래도 길을 잃은 것 같은지 더는 말을 붙이지 않았다.
괜찮지 뭐, 우리도 앞으로 가야 한다는 정도는 알아서.
네가 창문을 내리자 밤공기가 쏟아진다.
차 안에 남아 있던 낮의 열기가 한순간에 빠져나간다.
주파수를 잘못 맞춘 라디오에서는 낡은 록 음악이 흘러나오고,
우리는 그 어정쩡한 박자에 맞춰 고개를 끄덕인다.
옆자리에 네가 있다는 사실 하나로,
이미 몇 번은 지나온 길처럼 느껴진다.
돌아가자는 말은 하지 않았다. 여기까지 와버렸는데, 여기서 멈추는 게 더 어색하다.
사소한 실수 하나쯤으로 멈출 우리는 아니라서.
속도계 바늘이 조금 더 오른다.
헤드라이트가 비추는 만큼만 보이는 길 위에서
우리는 그 이상은 상상하지 않기로 한다.
앞은 어둡지만,
뒤는 이미 멀어졌다.
아침이 오면 어딘가엔 닿아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