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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의 마을 세오
두 번째 인사
8300 2026.01.28. 19:23











지난 마법의 계절, 제가 어떤 말로
시인의 마을에 인사를 건넸는지 복기해 봅니다.

기억이 희미해졌다는 핑계를 대기엔 아직 젊다고 우긴들,
모든 것이 빠르게 지나가는 시대 속에서 1년이란 시간은 보기보다 많은 것을 데려가 버립니다.

감정도, 열정도, 그리고 ‘그때는 분명 중요하다고 믿었던 문장들’까지 말이지요.

음유시인의 이름으로 이런 고백부터 꺼내는 일이 조금은 민망하나,
이곳에서만큼은 이 정도의 솔직함이 허락되리라 믿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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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은 바탕 위에 떠 있는 흰 글씨를 볼 때마다
저는 자연스럽게 PC통신 시절의 게시판들을 떠올립니다.

속도는 느렸고 접속음은 요란했으며,
스크롤을 내리는 손끝마다 인내심이 필요했던 그 시절 말입니다.

지금의 시인의 마을은 그때보다 훨씬 세련되었으나 본질은 꽤 닮아 있습니다.

빠른 대화보다는 남겨진 글이 더 오래 살아남고,
즉각적인 반응보다는 천천히 쌓이는 여운이 중요한 공간이라는 점에서 그렇지요.

저는 그 시대의 중심에 서 있던 사람은 아니었습니다.

다만 하이텔 게시판에 연재되던 소설들을 집요하게 읽어 내려가던,
조금 늦게 도착한 독자였을 뿐입니다.

그때 제게 각인된 이름들. 『드래곤 라자』, 그리고 『눈물을 마시는 새』.

지금 떠올려 보면 이 작품들은 그저 재미있는 판타지라기보다,
‘세계란 무엇으로 이루어지는가’라는 화두를 진지하게 던지던 철학이었습니다.

어렸던 저는 투박한 연재본 텍스트를 YEPP MP3에 담아 보곤 했습니다.

손가락 두 마디보다 작은 액정 위에서 글자를 한 줄씩 넘기며 밤새워 읽어가던 경험은
지금의 어떤 고해상도 스크린에서의 감상보다 또렷하게 기억에 남아 있습니다.

이후 도서관 서가에서 이영도 타자의 책들을 다시 만났을 때 저는 깨달았습니다.
아, 이건 단순히 이야기를 잘 쓰는 기술의 문제가 아니라,
내가 머무른 세계를 대하는 태도의 문제구나, 하고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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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새 우리의 첫 번째 모험은 전설이라 불릴 만큼의 시간이 흘렀습니다.

그동안 수많은 판타지가 태어나고 또 사라졌지요. 저는 가끔 묻게 됩니다.
왜 이 정도의 밀도를 가진 환상문학은 점점 보기 어려워졌을까. 이유는 분명합니다.

시대는 너무 빨라졌고, 긴 글은 부담이 되었으며,
도입부에 수백 페이지를 들여 세계를 쌓아가는 방식은 더 이상 환영받지 못하게 되었습니다.

세 줄 요약을 요구받고,
모든 것이 배속으로 소비되는 ‘실리의 시대’니까요.

... 물론 음유시인이 시대를 한탄하면
악사의 노래가 아니라 광대의 푸념이 된다는 것도 압니다만.

그럼에도 저는 어린 날 머릿속에 그려보던 장대한 세계의 감각을 조금이라도 흉내 내 보고 싶었습니다.

그렇게 시작된 것이 어둠의 전설 세계관을 바탕으로 한 옴니버스 노블,
「루어스의 비밀 문서고」였습니다.

잊힌 기록을 모으는 사서의 시선으로 이 세계의 신화와 파편들을 하나씩 꺼내놓는 일.
빠르게 소비되지 않아도 괜찮은 글, 읽다가 잠시 멈춰 서도 기억이 무너지지 않는 글을 쓰고 싶었습니다.

그리고 세상을 조금 다른 각도에서 환기하는 에세이 시리즈 「1993」을 함께 이어가고 있습니다.
판타지와 현실은 서로를 빚어준다고 믿기 때문입니다.

어떤 날은 신화가 현실보다 더 솔직하고,
어떤 날은 개인의 기억이 판타지보다 더 허구처럼 느껴질 때도 있으니까요.

음유시인이라는 직업(?)을 핑계 삼아,
사이를 오가는 글을 계속 써보고 싶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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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선발 때, 저는 이러한 욕심 많은 글을 연재하겠다고 지원서에 적었고
운 좋게도 신들의 선택을 받았습니다. 그리고 오늘, 같은 약속으로 다시 이 자리에 섰습니다.

두 번째라는 기회가 주는 무게를 모른 척하기엔
깃펜을 쥔 손에 많은 감정이 실립니다.

아직 풀지 못한 이야기가 많고, 문서고의 서가에는 여전히 빈칸이 많습니다.
기록되지 않은 전쟁과 이름만 남은 인물들, 아직 문장으로 태어나지 못한 세계의 그림자들이 여전히 남아 있습니다.

이번 사계에는 문서고 외전의 형식으로 조금 더 가볍게 읽히는 이야기들도 준비되어 있습니다.
가볍다고 얕은 건 아니며, 진중하다고 반드시 난해할 필요는 없다는 뜻으로 받아주시면 좋겠습니다.

음유시인은 결국 사람들 곁에서 노래를 불러야 하는 존재니까요.
때로는 진중하게, 때로는 웃음 한 번 섞어가며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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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제든, 언제라도
시인의 마을에 들러 주시기를 소망합니다.

이곳에는 늘 검은 바탕과 흰 글씨가 있고,
그 사이 어딘가에는 아직 쓰이지 않은 이야기들이 그대의 첫 번째 검과 함께 숨을 고르고 있을 테니까요.

저는 언제나처럼 영웅의 곁에서,
조금 느린 박자의 밤을 지새울 노래를 고르고 있겠습니다












세오 230년 4월,
마법의 눈이 내려온 타고르에서.

욘 드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