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지가 명동했다.
차원의 벽이 유리파편처럼 비산하며 현실의 좌표가 뒤틀렸다.
그 아득한 균열 사이로 현현한 죽음의 신 뮤레칸.
그는 비릿한 미소와 함께 발갛게 박동하는 아티팩트 하나를 내밀었다.
[아이템: 리턴 스피릿(Return Spirit) - 금단 등급]
효과: 시공간의 로그를 역행하여 지정한 과거의 좌표로 전이.
제약: 지속 시간 60분. 오로지 '어둠의전설' 접속 상태 유지.
"허무를 노래하는 시인이여, 네 지독한 고독의 잔향을 따라 강림했다. 단 한 시간, 네가 잃어버린 '죽은 자리'로 돌아가겠느냐?"
망설임은 사치였다.
나는 14년 전, 2012년의 오늘을 입력했다.
2012 , 02 , 02
PM 08:32
눈을 뜨자 60Hz 모니터의 푸른 광원이 망막을 찔렀다.
스피커에선 정겹지만 긴장감 있는 BGM이 흘러나왔고, 열린 문틈으로 어머니의 콧노래가 저해상도 현실감을 메웠다.
화면 속 내 캐릭터는 '호러캐슬' 한복판에 서 있었다.
격수들의 각종 팟이 혜성처럼 스쳤고,
프라보로 깎인 몬스터들의 방어구 위로
샷의 궤적이 정교하게 꽂힌다.
1분 1초가 마력 소모량처럼 깎여 나가는 기적 속에서 나는 마우스를 고쳐 쥐었다.
그것이 당시를 함께한 동료들에 대한 최고 예의,
"자기야, 코마 좀 그만 띄워. ㅡ_ㅡ;;"
그녀였다.
내 체력이 바닥을 칠 때마다 정확한 타이밍에 꽂히는 수페라쿠라노의 힐 세례.
14년 전의 그녀는 여전히 다정하게 나의 배후를 지키고 있었다.
약속된 시간이 다가오자 나는 가쁜 숨을 몰아쉬며 전체 채팅창을 열었다.
"형님들, 잠시 담탐 가지시죠. 딱 5분만."
나는 14년 동안 데이터/**스/에 적체해둔 감정들을 하나씩 인챈트하듯 쏟아냈다.
공장 일에 지친 형님들을 향한 응원,
내일 점심을 꼭 사겠다던 친구에게 전하는 진심.
그리고 종료 60초 전, 그녀의 아이디를 타이핑했다.
[귓속말] 온타임 : 사실... 나 너한테 꼭 하고 싶었던 말이 있었어. 사실 나는 너를 아직ㄷ...
[시스템: '리턴 스피릿'의 효력이 만료되었습니다. 현재 시점으로 강제 리콜됩니다.]
잔혹한 시스템 메시지와 함께 세상이 암전(Blackout)되었다.
전송되지 못한 종성 'ㄷ' 만이 망막에 번인현상처럼 남았다.
다시 눈을 뜬 2026년. 어머니의 콧노래는 사라지고,
낡은 냉장고의 팬 도는 소리만이 공허한 노이즈를 만들었다.
그때였다. 적막을 찢는 날카로운 시스템 효과음.
띵!
[귓속말] ??? : 축하해, 시인 온타임!
선명한 파란색 텍스트. 그러나 로그 기록 어디에도 그 흔적은 없었다.
환청이었을까,
아니면 서버 오류가 빚어낸 지독한 환영이었을까.
나는 떨리는 손끝으로 전송되지 못한 문장의 끝을 더듬으며 읊조렸다.
"리턴 스피릿... 본래 죽은 위치로 돌아가게 해주는 아이템이었지."
나는 답장이 올 리 없는 텅 빈 클라이언트를 향해, 혹은 차원을 넘어 듣고 있을 누군가를 향해 마지막 독백을 동기화했다.
"언젠가 다시 그 아이템이 내 인벤토리에 들어온다면... 그날, 그 던전, 그 좌표로 돌아갈게. 아직 내 세션에 남겨진 진심을 마저 전하기 위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