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각사각, 침묵 속에 연필 끝이 길을 낸다.
"음…"
슥삭슥삭, 다시 지워지는 미문의 흔적들. 멈춰 선 숨 고르기 끝에 흑연은 다시 구른다.
사각사각,
"음……"
슥삭슥삭.
여러 번 덧칠하고 지워낸 자리마다 백지 위엔 지우지 못한 번짐이 남았다.
그것은 차마 뱉지 못한 말들의 멍 자국 같다.
[ㅊ ㅇ]
[ㄱ ㅇ]
[ㄴ ㅇ ㅁ ㄷ ㄱ]
견디지 못하고 덮어버린 책을 던져두었다가 일어서려던 발길이 못내 무거워 멈춰 선다.
'탁'
다시금 고쳐 앉아 펼쳐 든 여백. 이제야 막힘없이 흘러가는 슥삭슥삭, 연필의 노래.
비로소 선명해진 문장들 위로 옅은 미소가 번진다.
[추억]
[그리움]
[나의 모든 것]
마침내 점을 찍어 완성한 이 책의 이름은, 다섯 글자의 무게.
어둠의 전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