秘, 루어스의 비밀 문서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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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송이 성직자들을 위한 생존법
대주교 몰래 보는 신성 마법 주석 ㅡ
前 아벨 대성당 수석사제 바르둔의 낙서 노트
: 디데프레카
3단계 무장 약화 저주인 ‘데프레카’를 도려내는 정화술이라네.
하위 주문들이 금속의 결을 상하게 하는 수준이라면,
이 데프레카는 무구가 지닌 수호의 본질을 오염시키지.
저주에 직격 당한 갑옷은 썩은 가죽처럼 비릿한 악취를 풍기며 늘어지고,
주인의 몸을 지키기는커녕 오히려 그 무게로 숨통을 조여오는 무덤이 되어버린다네.
이 주문의 진짜 잔인함은 굉음이 울리는 전장보다, 침묵이 흐르는 일상의 암투에서 보다 분명히 드러나더군.
과거, 한 기사가 결투 재판을 단 하루 앞두고 나를 찾아온 적이 있었네.
누군가의 사주를 받은 하인이 그의 갑옷에 은밀히 데프레카를 심어두었더군.
겉보기엔 눈부신 은빛 갑옷이었지만, 내가 손을 대자마자 철판이 늪처럼 출렁이며 내 손가락을 집어삼켰네.
명예를 증명하기 위해 목숨을 걸어야 하는 사내에게, 그의 유일한 신뢰였던 장비가 비겁한 독으로 변해버린 셈이지.
나는 밤을 새워 디데프레카를 읊조렸네.
마디마디 서린 저주의 독기를 씻어내며, 뭉개진 철의 질서를 다시 세웠지.
다음 날, 기사는 무사히 결투에서 승리해 자신의 결백을 증명했네.
훗날 그가 감사의 표시로 값비싼 보석을 가져왔을 때,
나는 그 화려한 돌멩이를 마을 고아원 아이들의 빵값으로 돌려보냈네.
그의 명예를 구한 것은 내 주문이 아니라, 기사의 진실함이었네.
나는 그저 진실이 비겁한 수작에 가려지지 않게 잠시 먼지를 털어냈을 뿐이지.
알고 있는가? 무구를 물리적으로 수리하는 건 대장장이의 몫이지만,
무구에 스며든 부정한 의도를 도려내는 건 우리의 소명이네.
디데프레카를 시전 할 때 기억하게나. 우리는 단순히 철을 단단하게 만드는 게 아니야.
세상의 불의가 누군가의 정당한 노력을 비웃지 못하도록,
그 방패 뒤에 숨은 정의를 다시 일으켜 세우는 것이라네.
가끔은 기도의 무게가 지고 있는 강철보다 무겁게 느껴질 때가 있을 것이네.
하지만 이 무게를 기꺼이 견디는 것 또한 그대가 선택한 사제의 길임을 잊지 말게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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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쿠라누스
그룹 치유 2단계 마법이라네.
전 단계인 쿠러스가 가벼운 생채기를 씻어내는 산들바람이라면,
이 쿠라누스는 폭풍우에 꺾인 가지들을 한꺼번에 일으켜 세우는 ‘생명의 범람’이라 부를 만하지.
파티원 전체의 중증 부상을 동시에 갈무리하니,
전선이 무너지기 직전의 아수라장에서 전세를 뒤집는 결정타가 되곤 하네.
드라코의 숨결이 대기를 태우고 지나간 자리,
혹은 오크 무리의 투석에 방패 벽이 으깨진 순간을 상상해 보게나.
파티원 모두가 비명을 지를 새도 없이 바닥을 구를 때,
자네의 영창 한 번으로 그들이 다시 무기를 쥐고 일어나는 광경은 그 자체로 전율이지.
하지만 명심하게. 이 마법의 위력에 취해 ‘평균의 함정’을 잊어서는 안 되네.
쿠라누스 또한 마찬가지로 모두의 고통을 고르게 깎아낼 뿐,
한 사람의 가슴에 박힌 치명적인 화살촉을 뽑아주지는 못하니까.
수십 년 전, 핏덩이 같던 레드오피온 한 마리를 쫓던 사냥이 떠오르는구먼.
드래곤은 설사 갓 허물을 벗은 놈이라 해도 인간에겐 재앙 그 자체라네.
놈의 브레스 한 방에 강철 갑옷은 달궈진 석쇠가 됐고, 동료들은 타 들어가는 살점의 비명을 질렀지.
나는 그 아비규환의 중심에서 쿠라누스를 토해냈네.
기화하던 핏물이 멎고 탄내가 신성한 마력의 향취로 덮이던 그 찰나,
동료들은 다시금 사지의 감각을 되찾았지.
전투가 끝난 후,
피칠갑이 된 파티 리더가 내 어깨를 짚으며 말하더군.
“사제님, 당신이 아니었다면 우린 아마도 이 굴속의 그을린 시체가 되었을 겁니다.”
나는 놈의 피가 묻은 지팡이를 털어내며 대답했네.
“착각하지 마십시오. 제가 한 건 그대들이 한 번 더 휘두를 칼날에 시간을 빌려준 것뿐입니다.
그 빌려온 시간 동안 드래곤의 심장을 찌른 건 여러분의 의지였죠.”
잊지 말게나. 성직자는 전장의 주인공이 아니네.
우리는 싸우는 자들의 발밑이 꺼지지 않게 받쳐주는 ‘보이지 않는 지반’ 일뿐이지.
우리가 부리는 기적이 아무리 화려해도,
빛을 받아 적의 목을 베는 것은 결국 자네 곁에서 피를 흘리는 동료들의 몫이라네.
주연들이 빛날 수 있게 우리 스스로 그림자가 되는 것.
그것이 스태프를 쥔 자의 진정한 품격이라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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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홀리볼트
성직자의 손에서 뿜어져 나오는 매우 드문 공격 마법이라네.
우리에겐 화려한 검술도, 심장을 꿰뚫는 화살도 없지만,
때로는 자비보다 서슬 퍼런 ‘신의 분노’를 빌려와야 할 때가 있지.
홀리볼트는 그 분노를 한 줄기 백색 번개에 응축해 내던지는 기술이라네.
이 주문은 언데드와 악마의 가죽을 뚫고 그들의 부정한 존재 기저를 태워버린다네.
언데드 기사 놈들에게 한 방 제대로 꽂아 넣으면,
낡은 갑옷과 썩은 뼈마디가 신성한 불꽃 속에서 하얗게 바스러지는 광경을 보게 될 게야. 꽤 장관이지.
다만, 그 대가는 지독한 후각적 고통이라네.
타버린 시독의 비릿함과 골수가 지지는 냄새는 반세기가 지나도 폐부 깊숙이 들러붙어 떨어지질 않거든.
아마 영원의 안식에 든 뒤에도 그 냄새만큼은 잊지 못할 게야.
물론, 생명력이 질긴 일반 마물들에게는 효율이 썩 좋지 않다네.
젊은 시절, 의욕만 앞서 늑대인간에게 홀리볼트를 날렸던 적이 있지.
놈은 몸에 불꽃이 붙은 채로 비명을 지르며 오히려 더 미친 듯이 나에게 돌진하더군.
성직자는 근접전에 약하네, 그것도 아주 처참할 정도로 말이지.
그날 이후로 나는 적과의 거리를 가늠할 줄 모르는 상태에서는 절대 스태프를 휘두르지 않네.
‘분노는 거리를 두었을 때만 권위가 서는 법.’ 이라는 게 오십 년 경험이 가르쳐준 첫 번째 생존 수칙이니까.
재미있는 건, 이 파괴적인 빛이 때로는 가장 따뜻한 길잡이가 된다는 점일세.
칠흑 같은 어둠 속에서 길을 잃었을 때,
홀리볼트 하나를 허공에 쏘아 올리면 순간적으로 사방이 정오의 태양 아래처럼 선명해지지.
마법사 놈들은 효율을 따지며 “마나 낭비”라고 혀를 차겠지만, 그건 탁상공론일 뿐이라네.
상처 입은 몸으로 괴물들의 숨소리에 포위된 채 길을 잃어본 이에게,
이 찰나의 빛은 등불 열 개보다 훨씬 묵직한 구원이거든.
그건 단순한 조명이 아니라, “아직 신께서 나를 포기하지 않으셨다.”
는 강렬한 응답이자 신호이니까 말이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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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루메나
시력을 앗아가는 온갖 암막을 걷어내는 해안의 기적이라네.
눈을 멀게 하는 저주부터 마법사의 섬광, 지독한 연막에 이르기까지ㅡ
시야를 가두는 모든 부정한 것들을 씻어내지. 흔한 정화법이라 생각할지 모르지만,
전장의 한복판에서 ‘본다는 것’의 무게를 아는 자라면 결코 이 주문을 가벼이 여길 수 없을 게야.
자네는 세계가 통째로 지워지는 공포를 겪어본 적이 있는가? 나는 있네.
이십여 년 전, 철수하는 아군들의 뒤를 지키다 적 술사가 던진 섬광 마법에 정면으로 직격 당했지.
이미 아군을 치유하느라 마나는 바닥을 드러냈고, 정신력은 한계에 다다라 손가락 하나 까딱할 힘조차 없었네.
그 찰나, 세계는 비릿한 백색으로 뒤덮였고 내 눈앞엔 오직 허무만이 남았네.
주변에서 들려오는 칼의 마찰음, 몬스터의 굶주린 포효.
동료들의 비명은 선명한데 정작 내가 어디를 향해 스태프를 휘둘러야 할지,
어디로 도망쳐야 할지 모를 때의 그 절망감이란…. 마력이 마른 성직자가 눈까지 멀어버린다는 건,
살아있으나 이미 어둠 속에 유기된 것과 다름없는 무력함이었지.
내가 바닥을 더듬으며 신음을 내뱉을 때,
뒤늦게 달려온 밀레스 교회의 사제께서 내 머리에 손을 얹고 일루메나를 쏟아부어 주셨네.
닫혔던 세계가 다시 열리고, 피와 흙먼지로 뒤섞인 전장의 비참한 풍경이 다시 시야에 들어올 때….
내 뺨을 타고 흐른 건 안도감인지, 아니면 다시 사지로 돌아왔다는 가느다란 슬픔인지 아직도 분간이 안 가네.
그날 나는 깨달았지. 성직자 역시 누군가를 치유하기 전에,
누군가의 기적이 간절히 필요한 나약한 인간일 뿐이라는 사실을 말이네.
의외로 이 주문이 가장 뜨겁게 환영받는 곳은 빛 한 점 들지 않는 지하 광산이라네.
평생을 어둠 속에서 살아가는 광부들은 침침한 시력 감퇴나
갑작스러운 발광석 폭발로 눈이 타버리는 사고를 달고 살거든.
그래서 광산촌에 부임한 사제는 왕실 고문 마법사보다 더 극진한 대접을 받기도 하지.
그들에게 일루메나는 단순한 마법이 아니라, 다시 가족의 얼굴을 마주하며
빵을 나눌 수 있게 해주는 유일한 통로이니까 말이네.
하지만 명심하게. 일루메나는 눈의 모든 근심을 씻어주는 만병통치약이 아니네.
세월이 흘러 혼탁해진 눈이나, 타고난 장님을 고치는 데 신의 마력을 낭비하지 말게나.
늙어가는 육신의 쇠락은 마법이 아니라 잘 닦인 안경이나,
제법 솜씨 좋은 의사의 칼끝에 맡겨야 할 영역이지.
신께서 우리에게 주신 건 ‘기적’이지, ‘시간의 흐름’을 거스르는 오만이 아니라는 사실을 잊지 말게나.
나 역시 이 기록을 남기며 자네 몰래 돋보기를 꺼내 드는 처지니까 말이야.
눈을 뜬다는 건 빛을 보는 게 아니라,
내가 지켜야 할 이들이 어디에 있는지 다시 확인하는 일이라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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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쿠랄툼
자가 재생의 속도를 극적으로 끌어올리는, 이른바 ‘생명력의 가속’이라 불리는 마법이라네.
찢어진 살점을 억지로 기워 붙이는 ‘쿠로’나 ‘쿠라노’와는 근본부터가 다르지.
저들이 외부에서 신의 힘을 빌려 상처를 직접 봉합한다면,
쿠랄툼은 육신 깊숙이 잠들어 있는 치유의 본능을 깨워 몸뚱이 스스로가 상처를 밀어내게 만드는 방식이라네.
이 기적은 단발적인 치유로는 도저히 답이 안 나오는 장기적인 중상에서 진가를 발휘하네.
으스러진 뼈마디, 장기 깊숙이 박힌 둔탁한 타박상,
혹은 독기 가득한 칼날에 상해버린 속살 같은 것들 말이야.
이런 상처들은 겉면만 번지르르하게 붙여놓는다고 해결될 문제가 아니거든.
속에서부터 새살이 차오르고 뼈가 붙어야 비로소 ‘살았다’고 할 수 있는 법이지.
보통 열흘은 꼬박 누워있어야 할 부상도
쿠랄툼을 얹어주면 이틀 만에 자리를 털고 일어날 정도로 회복이 빨라진다네.
오래전, 비룡의 둥지를 털려다 깎아지른 절벽에서 떨어져 양다리가 박살 난 무도가를 치료한 적이 있었네.
뼈가 가루가 되어 가죽만 겨우 붙어있던 처참한 상태였지.
나는 그에게 쿠랄툼을 걸어주고 이틀 뒤 다시 찾아갔네.
그런데 그 친구가 땀을 뻘뻘 흘리며 벽을 짚고 서 있더군. 내가 놀라 쳐다보자 그는 환하게 웃으며 말했지.
“뼈마디 속에서 수천 마리 개미가 행진하는 것처럼 근질거려 견딜 수가 없더군요. 사제님,
아직 통증은 여전하지만… 제 다리가 다시 땅을 딛고 싶어 안달이 났습니다.”
완전히 낫지 않았음에도 근육이 꿈틀대며 지탱할 힘을 찾아가는 광경,
그것이 바로 쿠랄툼이 보여주는 생명의 의지라 할 수 있지.
이 주문은 전장에 들어서기 전, 예방적인 축복으로도 아주 훌륭하다네.
험한 임무를 앞둔 이들에게 미리 걸어주면, 전투 중에 입은 잔상처들이
채 피가 굳기도 전에 아물어가는 기적을 경험하게 되지.
출혈이 순식간에 멎고 피로가 쌓이지 않으니 장기적인 소모전에서는 이만한 든든한 보험이 없네.
하지만 명심하게나. 쿠랄툼은 재생을 ‘돕는’ 것이지, 무에서 유를 ‘창조’하는 요술이 아니네.
이미 잘려 나간 팔이 도마뱀 꼬리처럼 다시 자라나길 기대하지는 말게.
그런 건 신의 고유한 권능이자 섭리의 영역이지, 우리 같은 사제들이 감히 흉내 낼 수 있는 게 아니니까.
우리는 그저 자연이 정해놓은 시간을 조금 앞당겨, 죽음의 신이 다가올 틈을 주지 않을 뿐이라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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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실드
자신 주변으로 보이지 않는 공방의 경계를 세우는 마법이라네.
일종의 물리적인 거부권을 행사하는 장벽이지. 눈에는 보이지 않지만,
몬스터들이 선을 넘으려 들면 거대한 거인의 손바닥에 밀려나듯 강제로 튕겨 나가게 된다네.
실드의 진짜 가치는 이 투명한 원 안에서만 허락되는 ‘잔혹할 정도로 고요한 침묵’에 있네.
전멸이 코앞까지 닥쳐온 아수라장에서 사방이 괴물들의 아가리로 가득 찼을 때,
이 주문을 펼치고 그 안에서 단 몇 분간 숨을 고르는 거지.
박살 난 동료의 뼈마디를 맞추고, 바닥난 마나를 쥐어짜며, 죽음의 포위망을 뚫고 나갈
마지막 탈출로를 설계하는 것. 이것이 바로 실드가 우리에게 부여하는 유일한 자비라네.
하지만 이 장벽은 아주 지독한 편식쟁이일세.
물리적인 발톱과 칼날은 완강하게 밀어내면서도,
공기를 타고 흐르는 마력의 격류 앞에서는 물뿌리개처럼 무력해지거든.
적 주술사가 실드 안으로 파이어볼을 던지면,
자네는 보이지 않는 벽 안에서 아주 정중히 에이징된 통구이가 될 걸세.
실드는 물리적 접근을 거부하는 벽이지, 마법의 인과를 차단하는 성역이 아니니까.
게다가 벽은 안팎을 가리지 않네. 밖에서 못 들어오듯, 안에서도 밖을 공격할 수 없지.
스스로를 투명한 감옥에 가둔 셈이나 다름없어.
좁은 지하 복도에서 거대한 오우거 한 마리를 실드로 막아 세우고 회심의 미소를 지었던 적이 있네.
놈이 벽을 두드리며 분통을 터뜨리는 동안 나는 안심하고 마나를 회복하고 있었지.
그런데 저 뒤에서 오크 주술사 놈이 비릿하게 웃으며 파이어볼을 날리더군.
실드의 벽은 금 하나 가지 않았는데, 나만 안에서 머리카락을 다 태워 먹으며 굴러야 했지.
명심하게. 실드의 지속 시간은 기껏해야 몇 분 남짓이라네.
그 시간은 신이 주신 ‘정답’이 아니라, 자네가 ‘정답을 찾아야 할 기한’ 일뿐이지.
장벽의 지속력이 다해 투명한 껍질이 깨지는 순간,
자네가 여전히 계획 없이 앉아 있다면 그곳은 곧바로 자네의 관짝이 될 걸세.
실드의 견고함을 믿지 말고, 자네가 그 시간 동안 짜낸 전략의 견고함을 믿게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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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콜라마
무장의 밀도를 일시적으로 압축하여 강철의 한계를 시험하게 하는 중급 축복 마법이라네.
전 단계의 저주들이 강철을 눅눅한 종잇장으로 만든다면,
이 콜라마는 평범한 철갑옷을 드워프의 전설적인 미스릴처럼 단단하게,
평범한 마물의 가죽을 드래곤의 가죽처럼 질기게 탈바꿈시키지.
단단해지는 것을 넘어,
금속의 결 하나하나가 서로를 더욱 단단히 움켜쥐게 만든다고 보면 이해가 빠를 게야.
이 기적의 진가는 ‘선제적 대응’에 있네.
렌토나 바르도 같은 고약한 저주들이 날아오기 전에 미리 콜라마를 얹어주면,
저주가 무구의 결을 파고들려 할 때 신성한 마력이 방파제 역할을 해주거든.
저주를 완전히 무효화하지는 못해도, 무구가 맥없이 주저앉는 일은 막아주는 셈이지.
그래서 노련한 공성전 지휘관들은 병사들을 성벽 위로 올리기 전, 반드시 사제들에게 콜라마의 영창을 부탁하곤 한다네.
특히 이 축복은 고귀한 혈통의 무구들과 만났을 때 기괴할 정도로 높은 효율을 보여주지.
드워프 명장이 룬을 새겨 넣은 갑옷에 콜라마가 깃들면,
그 내구력은 이론적인 한계를 넘어 두 배 이상 치솟는다네. 말 그대로 ‘걸어 다니는 요새’가 되는 것이지.
이름조차 남기지 못한 어느 고독한 기사가 용의 둥지로 떠나기 전,
내게 콜라마를 청했던 일이 기억나는구먼. 그는 제정신이 아닌 것처럼 보일 만큼 차분했지.
“사제님, 용의 발톱은 고귀한 기사의 명예도, 잘 벼려진 강철 갑옷도 젖은 종잇장처럼 발라냅니다.
부디 단 한 번, 단 한 번의 휘두름만 버텨낼 수 있다면 그걸로 족합니다.”
나는 그의 간절함에 응답해 가장 정교한 콜라마를 시전 해주었네.
일주일 뒤, 그는 피와 먼지에 절어 돌아왔지. 그의 갑옷은 누더기처럼 갈기갈기 찢겨 있었고,
한쪽 다리의 각반은 형체도 없이 으깨져 있었네.
하지만 놀랍게도 으스러진 강철 아래의 다리는 상처 하나 없이 멀쩡했지.
바로 콜라마의 기운이 마지막 순간까지 강철의 뼈대를 붙잡아준 덕분이었네.
다만 콜라마는, 자네의 동료를 불사신으로 만들어주는 마법이 아니네.
그저 ‘치명적인 순간에 한 번 더 기회를 주는’ 자비일 뿐이지. 한 번의 기회를 승리로 바꿀지,
아니면 헛되이 날릴지는 오로지 무장을 갖춘 자의 심장에 달려 있다는 사실을 명심하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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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수페라벨라르모
벨라르모가 흐릿한 유리창을 닦아주는 수준이라면,
이 수페라벨라르모는 아예 감각의 회로를 태워 단 하나의 목적에만 모든 신경을 몰아넣는 기적이라네.
이 축복이 깃드는 순간, 대상자의 맥박은 서늘할 정도로 가라앉고 눈동자는 깜빡임조차 잊은 채 고정되지.
곁에서 지켜보는 이들은 그가 마치 숨을 멈춘 정교한 강철 인형처럼 느껴질 게야.
세상이 변하는 게 아니라, 세상을 받아들이는 인간의 틀이 비틀리는 것이네.
천 보 밖에서 흔들리는 나뭇잎의 결이 손바닥 안처럼 가깝게 읽히고,
날아오는 화살의 궤적이 빗방울 떨어지듯 느리게 보이며,
머리는 손가락 끝 근육의 미세한 떨림까지 완벽하게 통제하게 되지.
이 가혹한 집중력을 감당할 수 있는 자들은 극소수라네.
- 축제 인파 속에서 단 하나의 살의를 찾아내야 하는 왕의 방패.
- 거센 바람 속에서도 적장의 투구 틈새를 꿰뚫어야 하는 궁수.
- 눈곱만 한 배합 실수로도 마탑 전체를 잿더미로 만들 수 있는 연금술사.
이들에게 수페라벨라르모는 평범한 보조 마법이 아니네.
자신의 한계를 강제로 끌어올려 실패라는 변수를 지워버리는 생존의 벼랑 끝 전술이지.
하지만 명심하게나. 억지로 당겨진 활시위는 결국 그 탄성을 잃는 법일세.
주문의 기운이 빠져나가는 순간, 대상자는 영혼의 기름을 낱낱이 짜낸 등잔처럼 주저앉게 되지.
억지로 가속했던 사고의 속도만큼 지독한 이명과 구역질이 밀려오고,
심할 경우 며칠 동안은 빛조차 고통스러워 암실에 갇혀 지내야 하네.
‘오늘의 생명력을 쥐어짜 내일의 시간을 가불하는 행위’이니,
장시간 지속되는 임무에는 절대 써서는 안 될 금기나 다름없지.
오래전, 칠흑 같은 망토를 두른 사내가 내밀한 방으로 찾아와 내게 이 축복을 청했던 적이 있네.
그의 손에 밴 옅은 핏기 어린 철내음을 맡은 나는 조용히 고개를 저었지.
그는 원망의 기색 없이 그저 이해한다는 듯 짧게 묵례하고 사라졌지만,
며칠 뒤 그가 임지 근처에서 싸늘한 시신으로 발견되었다는 소식을 들었네.
자네는 내가 그를 죽였다고 생각하는가?
아니, 나는 그저 신의 권능으로 누군가의 목숨을 앗아갈 정밀함을 벼려주지 않았을 뿐이라네.
비록 내 거절이 그의 죽음으로 이어졌을지언정, 살의를 축복으로 감싸는 것은 사제의 소명이 아니니까.
하지만 그대, 자네가 나중에 이 길을 걷다 보면 알게 될 게야.
소생받지 못한 이의 눈망울은 기적을 베풀어 살려낸 이의 미소보다
훨씬 더 오랫동안 자네의 밤을 괴롭힐 것이라는 사실을 말이네.
성직자는 망각을 허락받지 못한 채,
자신이 구하지 못한 모든 얼굴을 등에 지고 가야 하는 존재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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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시 잉크를 말리며
어떠한가?
이 낡고 무뎌진 사제의 지도편달이 그대에게 실질적인 피와 살이 되고 있는지 모르겠군.
부디 딱딱한 경전 암송보다는 흥미 위주의 야담으로라도 읽히길 바라는 마음이라네.
요즘 젊은이들은 활자 속에 숨겨진 처연한 현장의 냄새를 맡기보다는,
그저 단기에 마력을 끌어올리는 영창 문구만 홀랑 외워버리는 걸 선호하니 내심 걱정이 되는 것도 사실이지.
글을 읽는다는 건 단순히 눈으로 문자를 훑는 행위가 아니네.
그건 앞서 걸어간 자가 겪었던 절망과 그 절망 끝에서 길어 올린 찰나의 기적을 통째로 먹어 삼키는 과정이지.
요즘 친구들은 이 ‘먹는 맛’을 영 싫어하더군.
입안에 넣자마자 달콤한 성과만 남기고 녹아 없어지는 사탕 같은 지식만 찾으니,
정작 전장에서 예기치 못한 칼날이 목전까지 들이닥칠 때 온몸이 굳어버리는 게야.
자네와 나눈 기록도 벌써 절반쯤 왔구먼.
여기까지 포기하지 않고 따라온 걸 보니,
자네는 최소한 활자 뒤에 숨은 성직자의 고뇌를 견뎌낼 재간은 있는 모양일세.
사실 이 ‘절반’이라는 지점이 가장 위험할 때라네.
아는 것은 제법 생겨서 어깨에 힘은 들어가는데,
정작 지식이 불러올 업보의 무게는 아직 다 겪어내지 못한 시기니까 말이야.
여기서 멈추면 자네는 아마 ‘아는 것만 많은 치유사’로 남겠지만,
끝까지 가면 누군가의 운명을 짊어질 ‘진실된 사제’가 되겠지.
내 손목은 여전히 시큰거리고 깃펜은 닳아 없어질 지경이지만,
자네가 이 무거운 기록을 넘기는 소리가 멈추지 않는다면 나 또한 멈출 이유가 없네.
그대가 진정으로 이 험난한 길을 계속 이어가고자 한다면,
나는 언제든 기꺼이 남은 절반의 진실을 쏟아낼 준비가 되어 있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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