秘, 루어스의 비밀 문서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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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송이 성직자들을 위한 생존법
대주교 몰래 보는 신성 마법 주석 ㅡ
前 아벨 대성당 수석사제 바르둔의 낙서 노트
[4써클]
: 로카메아
자신과 같은 국적을 지닌, 서열이 낮은 동료를
찰나의 순간에 제 곁으로 끌어당기는 소환 마법이라네.
거리의 멀고 가까움은 상관없고, 앞길을 가로막는 무거운 철문이나 지독한 마력 장벽조차
이 주문의 인과율을 멈춰 세우지 못하지. 그저 부르면, 오게 되어 있네.
하지만 이 기적의 이면에는 '서열'이라는 지독하게 세속적인 감각이 마력의 뼈대를 이루고 있다네.
왕족이나 고위 귀족, 혹은 자네보다 품계가 높은 성직자들에게는 이 주문이 털끝 하나 건드리지 못하지.
마법이 그들의 지위를 '인식'하고 거부하기 때문일세.
왕자를 강제로 내 발치에 꿇리는 행위가 신성법뿐만 아니라 마나의 흐름에서도 반역으로 간주된다는 점은,
사제로서 골치 아픈 일을 줄여주니 솔직히 고마운 일이지.
한 번은 철없는 왕자 놈이 던전 깊숙한 곳에서 실종된 적이 있었네.
급한 마음에 로카메아를 읊조렸지만, 마법은 마치 벽에 부딪힌 듯 무미건조하게 내 의지를 밀어내더군.
결국 나는 지팡이를 짚고 이틀을 꼬박 헤맨 끝에야 눅눅한 구석에서 떨고 있던 그를 찾아낼 수 있었지.
그 고귀하신 분이 나를 보자마자 체면도 잊고 내 품에 안겨 눈물을 쏟아내더군.
기적은 신분을 가리지만, 공포 앞에 쏟아내는 눈물은 신성법에 위배되지 않는다는 것을 그때 배웠네.
또한 로카메아를 쓸 때는 소환될 자가 처한 '현재의 궤적'을 반드시 고려해야 하네.
이 주문은 정중한 초대장이 아니라, 멱살을 잡아채는 난폭한 손길에 가깝거든.
준비할 시간도, 경고도 없이 공간이 뒤틀리며 대상자를 옮겨버리지.
그자가 순간 무엇을 쥐고 있었든, 어떤 세밀한 작업을 하고 있었든
마법은 알 바 아니라는 듯 강제로 중단시켜 버린다네.
예전에 함정을 해제하던 도적 놈을 이 주문으로 불러들인 적이 있었지.
놈은 순식간에 내 눈앞에 나타났지만, 놈의 손끝에서 막 해제되려던 함정은 주인을 잃고 그대로 폭발해 버렸네.
쏟아져 나온 독침에 애먼 파티원이 대신 구멍이 숭숭 뚫리는 꼴을 본 뒤로, 나는 절대 신호 없이 로카메아를 쓰지 않네.
"지금 당장 자네의 시공간을 비틀어도 되겠나?"라는 짧은 전음 하나가,
동료의 목숨을 구하는 가장 확실한 예법임을 명심하게. 성직자는 신중해야 하네.
강력한 마법으로 타인의 위치를 결정한다는 건,
그자의 생존 방식까지 통째로 책임지겠다는 뜻이나 다름없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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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수페라쿠라노
4단계 사제의 반열에 오른 자들이
전장의 흙먼지 속에서 가장 끈질기게 붙들게 될 치유술이라네.
파괴된 사지를 강제로 이어 붙이는 '쿠라노소'가 단 한 번의 기적으로
저승사자의 낫을 쳐내는 일격이라면, 이 수페라쿠라노는 마력이 바닥난 사제에게
마지막까지 허락된 '가장 정교한 타협'이라 할 수 있지.
위력은 쿠라노소에 비할 바 못 되네만,
영혼의 밑바닥까지 긁어 써야 하는 실전에서 이만한 '경제적 자비'는 드물다네.
반세기를 전장에서 굴러보니 알겠더군.
사제의 진정한 공포는 적의 칼날이 아니라, 치유가 필요한 동료의 눈동자 앞에서
말라비틀어진 신성력을 확인하는 찰나에 찾아온다는 것을 말이네.
쿠라노소는 단 한 번으로 죽어가는 자를 살려내지만, 그 대가로 사제의 생명력을 낱낱이 태워버리지.
반면 수페라쿠라노는 한두 번의 영창으로 웬만한 중상을 걷어내면서도 사제의 호흡을 가쁘게 만들지 않네.
낭비도, 과시도 없는 이 서늘한 균형이야말로
내가 오십 년간 익혀온 수많은 주문 중에서도 가장 깊이 신뢰하게 된 힘의 실체라네.
재미있는 건, 이 주문이 보여주는 '무취(無臭)의 치유' 라네.
하급 주문인 쿠라노를 시전 하면 환자들은 상처 부위가 화끈거리거나
수천 마리 벌레가 혈관을 타고 기어가는 듯한 지독한 가려움을 호소하지.
육신이 마법적 자극에 저항하며 억지로 아물 때 생기는 일종의 '거부 반응'일세.
하지만 수페라쿠라노는 그런 잡음이 없네. 비명 소리가 잦아들고,
벌어졌던 살점이 찢어진 과거가 없었던 것처럼 조용히 제 자리를 찾아갈 뿐이지.
왜 그런지는 나도 정확히는 모르겠네.
아마 마법의 단계가 올라간다는 건, 단순히 쏟아붓는 힘이 커지는 게 아니라
인간의 조잡한 손길을 지우고 신이 설계한 태초의 결에 얼마나 더 부드럽게 스며드느냐의 문제 아니겠나?
거친 바느질 자국을 남기지 않고 생명의 원형을 복구하는 것,
그것이 수페라쿠라노가 지닌 진정한 깊이라네.
화려하고 거대한 기적에 눈을 팔지 말게.
전설 속의 성자가 아닌 이상, 우리는 결국 수페라쿠라노처럼 자신의 한계를 명확히 긋고
동료의 고통을 가장 담백하게 덜어줄 줄 아는 투박한 손길로 기억될 테니까 말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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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디프라바
4단계 무장 약화 저주인 ‘프라바’의 마디마디를 끊어내는 정화술이라네.
앞서 말한 렌토가 강철을 눅눅하게 만들고, 바르도가 결을 삭게 하며, 데프레카가 무구를 종잇장으로 전락시킨다면,
이 프라바는 훨씬 더 근원적이고 지독한 '존재의 부정'을 일삼지. 무구가 지닌 방어의 본질을 통째로 지워버려,
수천 겹의 비늘 갑옷조차 그저 숨 가쁜 육신을 짓누르는 차가운 납덩어리로 변질시켜 버린다네
프라바에 직격 당한 전사는 전장에서 가장 비참한 모순에 빠지게 되네.
몸을 지켜야 할 갑옷은 이미 허울뿐인 껍데기가 되었는데,
무게만큼은 고스란히 남아 전신을 압박하고 체력을 갉아먹거든.
아주 무겁고 거추장스러운 '강철 수의'를 입고 춤을 추는 꼴이지.
이때 가장 현명한 판단은 미련 없이 갑옷을 벗어던지는 것이네.
무의미한 무게를 짊어지고 둔하게 죽느니, 차라리 가벼운 몸으로 칼날을 피하는 게 생존율이 높으니까.
하지만 평생을 금속의 보호 아래 살아온 무인들에게, 살갗을 드러낸 채 사지로 나서는 건
자신의 영혼을 발가벗기는 것만큼이나 극심한 공포를 불러일으키지.
결국 그 공포가 발목을 잡아 으깨지는 걸 나는 수없이 보았네.
작은 영주의 일 년 세수와 맞먹는다는 드워프 장인의 룬 갑옷을 입은 기사를 만난 적이 있네.
프라보의 붉은 기운이 갑옷의 문양 사이사이를 썩게 만들고 있었지.
나는 그에게 당장 투구와 흉갑을 벗으라 호통쳤지만, 그는 창백한 안색으로 고개를 저었네.
"사제님, 이 갑옷은 가문의 선조들이 수백 년간 피로 지켜온 유산입니다. 이 쇳조각이 무용해졌을지언정,
가문의 긍지를 전장에 내팽개치고 살아남느니 차라리 이 무게에 눌려 죽는 길을 택하겠습니다."
그건 아둔한 고집이었지만, 동시에 한 인간이 지탱해 온 '삶의 궤적' 이기도 했네.
나는 혀를 차며 디프라바의 영창을 쏟아부었지. 끈적하게 달라붙어 있던 저주의 잔재들이 흐릿한 연기가 되어 흩어지고,
죽어있던 룬 문자들이 다시 푸른 마력을 머금으며 강철의 질서를 되찾는 광경을 우리는 함께 목격했네.
그가 다시 단단해진 흉갑을 어루만지며 내뱉은 짧은 감사는, 단순히 목숨을 구했다는 인사가 아니었네.
그건 자신의 가문과 조상, 그리고 그 갑옷의 틈새마다 박힌 역사를 지켜내 준 것에 대한 영혼의 안도였지.
명심하게나. 디프라바를 시전 하며 자네가 어루만지는 건 단순히 일그러진 금속의 결이 아닐세.
그것은 무구의 이음매마다 켜켜이 쌓인 가문의 연대기이며,
저주로 인해 강제로 부정당했던 한 인간의 존재 증명을 현세의 질서 위에 다시 고정하는 일이라는 점을 말이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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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리치마나
동료의 혈관 속에 흐르는 마력의 갈래를 억지로 비틀어,
시전자 자신의 메마른 마나 심지로 끌어오는 '기생적 치유' 라네. 듣기만 해도 불쾌감이 엄습하겠지?
실제로 시전 하는 자나 당하는 자 모두에게 지독하게 씁쓸한 뒷맛을 남기는 주문이라네.
자네의 마력이 완전히 바닥나 지팡이가 그저 낡은 막대기처럼 느껴질 때,
하지만 동료의 상처를 봉합할 단 한 줄기의 기적이 절실할 때 이 금기 같은 술법을 꺼내 들게 되지.
파티원 한 명을 산송장으로 만드는 게 아니라, 그들의 마력을 조금씩 갉아내어 균등하게 분담시키는 방식이라네.
말하자면 '모두의 수명을 조금씩 깎아 만든 구원의 불꽃'인 셈이지.
하지만 마력을 내어주는 이들에게 마나는 단순한 힘이 아니라 생명선 그 자체라네.
특히 섬세하게 마력을 다루는 마법사들에게 리치마나는
자신의 영혼을 갈고리로 긁어내는 듯한 서늘한 위화감을 선사하지.
마나가 빠져나가는 순간 주문의 위력은 눈에 띄게 시들해지고,
평소라면 손쉽게 다루던 고위 주문들조차 혀끝에서 맴돌다 흩어지고 마네.
그러니 이 주문을 쓰기 전에는 반드시 양해를 구하는 것이 사제로서의 최소한의 예의일세.
마력이 바닥난 내 손끝에서 검은 빛줄기가 동료 마법사의 가슴으로 이어질 때,
나는 그 친구의 눈동자에 서린 '발가벗겨진 자의 불안'을 보았네. 화를 내는 게 아니었어.
자신의 존재를 지탱하던 근원적인 힘이 타인의 손에 의해 강제로 인출될 때 느끼는 원초적인 공포였지.
마법사가 지팡이를 쥐는 손을 파들파들 떨던 그 광경은 수십 년이 지난 지금도 내 손끝에 불쾌한 감각으로 남아 있다네.
리치마나는 자네가 게을러서 마력을 낭비했을 때 쓰는 편의책이 아니네.
모든 수단을 소진하고도 죽음의 신을 마주했을 때 꺼내 드는 최후의 도구이지.
하지만 동료가 피를 쏟고 있고, 자네의 마나가 비어 있다면? 그때는 주저하지 말고 갈고리를 던지게.
동료의 불쾌함은 다음 날 아침 따뜻한 수프 한 그릇에 씻겨 내려가겠지만,
그대의 망설임으로 인한 죽음은 영원히 그대의 등 뒤를 따라다닐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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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디소루마
이 주문은 자애로운 신의 손길이라기보다, 멎어버린 심장에 박아 넣는 날카로운 정(釘)에 가깝네.
소루마 저주를 그저 잠드는 마법이라 치부하는 자들은 전장에서 시체를 치우는 일조차 맡겨선 안 돼.
소루마는 육신의 모든 구멍을 서리로 메우고, 혈액을 날카로운 결정으로 바꾸며,
영혼을 영원히 녹지 않는 빙벽 속에 유폐하는 '생명의 정지' 그 자체라네.
소루마가 나르콜리 보다 훨씬 더 교활한 이유는 이 기만적인 정적 때문일세.
나르콜리는 근육이 비틀리고 뼈가 굳는 통증 속에서 의식만은 깨어 있어 어떻게든 살기 위해 발버둥 치게 만들지.
하지만 소루마는 대상자의 인지 능력을 가장 먼저 마비시키네.
사지의 끝부터 감각이 사그라들고, 폐부에 박히는 공기가 차가운 박하 향처럼 느껴지는 순간,
인간은 자신이 무너지고 있다는 사실조차 잊고 침전된 세계 속으로 기꺼이 몸을 던지게 되지.
가장 끔찍한 건 그를 지켜보는 자들의 오판일세. 저주에 잠긴 동료의 얼굴을 보게나.
핏기는 가셨을지언정, 입가에는 기괴할 정도로 평온한 미소가 걸려 있지.
그 허울뿐인 평화에 속아 "치열한 사투 끝에 깊은 잠에 든 것이겠지." 라며 시간을 허비하는 그 짧은 찰나,
동료의 골수까지 서리가 차오르고 육신은 영구히 회복 불가능한 동토(凍土)가 되어버리네.
망설임이 길어질수록 자네는 구원이 아닌 장례를 준비해야 할 게야.
디소루마를 시전 할 때는 자네의 마력을 따뜻한 온기가 아니라, 빙벽을 타격하는 육중한 둔기처럼 벼려야 하네.
주문이 직격 하는 순간, 멈췄던 혈관이 팽창하며 정지된 혈액이 좁아진 혈관을 강제로 뚫어내고,
대상자는 단번에 상체를 일으키며 비명을 지를 걸세. 그건 기상이 아니야.
멎었던 심장이 다시 요동치기 시작할 때 터져 나오는, 육신이 부르짖는 처절한 생존의 선언이지.
오래전, 맹추위가 몰아치던 북부 전선에서 소루마에 걸린 어린 성기사를 깨웠던 적이 있네.
디소루마의 광휘가 그의 가슴을 때리자, 그는 가슴에 고여있던 서늘한 냉기를 토해내며 내 옷자락을 붙잡고 울부짖었지.
그 눈동자에는 안락한 정지의 유혹에서 굳이 고통스러운 삶으로 자신을 끌어올린 나에 대한 원망과,
다시 숨을 쉴 수 있다는 지독한 안도감이 뒤섞여 있었네.
명심하게.
소루마에서 깨어난 자의 눈에 서린 그 서늘한 공허함까지도 자네의 기도로 메워주어야 하네.
디소루마는 단순히 눈을 뜨게 하는 요술이 아니라, 가라앉던 영혼의 덜미를 낚아채
다시 거칠고 고통스러운 현실의 흙바닥에 내팽개치는 잔인한 자비니까 말이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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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쿠라네라
3단계 그룹 회복술이라네.
하위 주문인 쿠라누스가 쏟아지는 빗줄기처럼 겉면의 상처를 씻어낸다면,
이 쿠라네라는 무너져가는 성벽의 틈새마다 마력의 쐐기를 박아 넣어 대오 전체를 억지로 지탱하게 만드는 힘이지.
드래곤의 발구름이나 고대 리치의 저주 섞인 광역 술법에 파티 전체가 낱낱이 허물어질 때,
이 주문은 흩어지던 동료들의 생명력을 다시 하나의 견고한 흐름 위에 묶어준다네.
이 기적은 주로 거대 괴수와의 지루한 소모전에서 진가를 발휘하지.
전투가 길어질수록 전사들의 어깨는 무거워지고 가죽 갑옷 틈새로는 잔상처들이 독처럼 쌓여가기 마련이라네.
그때 쿠라네라 한 번이면 그 누적된 피로와 부상을 일시에 갈무리할 수 있네. 하지만 명심하게나.
이 거대한 술법은 자네의 마나를 뿌리째 긁어가는 혹독한 대가를 요구한다네.
주문을 갈무리하는 그 찰나, 자네는 모든 마력이 휘발되어 손끝 하나 까딱하기 힘든 극심한 공백을 경험할 걸세.
그래서 타이밍이 전부라네. 적이 다음 공세를 위해 숨을 고르거나, 놈의 시선이 잠시 다른 곳을 향하는
그 짧은 유예를 낚아채야 하지. 그렇지 못하면 자네는 가장 무방비한 상태로 적의 사정권 안에 노출될 테니까.
오래전, 레드 드래곤과 대치하던 중 내가 바로 그 실책을 범했었네.
파티원들이 전멸하기 직전이라 판단한 나는 앞뒤 재지 않고 쿠라네라를 영창 했지.
주문은 완벽하게 완성되어 동료들을 일으켜 세웠지만, 정작 내 앞에는 드래곤의 거대한 꼬리가 들이닥치고 있었네.
마력이 마른 나는 그 육중한 강철 같은 비늘 뭉치를 정면으로 얻어맞고 저 멀리 나동그라졌지.
웃기는 건 그다음 일세. 기운을 차린 동료들은 날아간 나를 찾기는커녕,
제 몸이 가벼워지자마자 드래곤의 목을 베러 달려들더군. 한참 뒤에야 피투성이가 된 나를 찾아온 그들이 묻더군.
"사제님, 왜 본인 몸은 지키지 않고 그 정직한 매를 다 맞고 계셨습니까?"
나는 욱신거리는 옆구리를 부여잡고 대답했네.
"쿠라네라는 우리 전체의 생명을 묶는 줄이지, 나 혼자 살겠다고 움켜쥐는 밧줄이 아니니까."
그들은 내 대답에 실소를 참더군. 아마 제정신이 아닌 성직자라고 생각했을 게야.
하지만 사제라는 존재는 원래 그런 법이라네. 자신을 제단 위에 먼저 올려놓지 않고서는,
타인의 생명을 구걸하는 기도를 완성할 수 없으니 말이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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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소모니아
이 주문은 전장에 존재하는 마물을
억지로 굴복시키는 ‘베누스티’와는 그 결이 다르네.
이미 존재하는 의지를 꺾는 것이 아니라, 아예 다른 공간에 머물던
생명체를 자네의 좌표로 끌어당기는 ‘공간적 등가교환’에 가깝지.
다만 신의 권능이라 해서 만물을 마음대로 부릴 수 있는 건 아니네.
소모니아에는 세 가지의 서슬 퍼런 제약이 따르지.
첫째, 마력의 간섭이 없는 무속성(無屬性)의 존재일 것.
둘째, 자네의 통제를 벗어나지 않을 수준인 98 레벨 이하일 것.
셋째, 스스로 마법을 부리지 않는 순수한 육체적 생명체일 것.
이 조건의 교집합에 드는 생물은 그리 많지 않네.
하지만 이 까다로운 제약 덕분에 소환된 존재는 자네와 복종 관계가 아닌, 정교한 일시적 계약의 상태에 머물게 되지.
임무가 끝나면 놈들은 자신이 살던 곳으로 돌아가며, 그저 잠시 길을 잃었다 돌아온 듯한 감각만을 남긴다네.
배신감 같은 구차한 감정은 섞이지 않는, 아주 담백한 술법이지.
오래전, 작열하는 노엠 사막의 한복판에서 길을 잃었을 때 이 주문이 내 목숨줄을 잡았었네.
사방은 모래뿐이고 지평선조차 일렁이는 그 지옥에서,
나는 무속성의 독수리 한 마리를 허공에 세웠지.
놈은 자네가 억지로 조종하지 않아도 자신의 본능에 따라 가장 높은 곳으로 솟구쳐 올랐네.
지팡이를 쥐고 놈의 시선을 따라가니, 이틀 거리에 숨어있던 오아시스의 서늘한 물줄기가 보이더군.
안내를 마친 독수리는 주문의 실이 끊기자마자 모래바람 너머 본래의 둥지로 흩어졌네.
찌꺼기가 남지 않는 깔끔한 작별이었지.
하지만 명심하게나. 소환된 마물의 ‘야생성’까지 자네의 통제 아래 있는 건 아니야.
한 번은 어떤 얼치기 신참 사제가 보급품이 쌓인 주둔지에서 소모니아를 연습하더군.
놈은 운 좋게 거대한 곰 한 마리를 불러오는 데 성공했네만, 그다음이 가관이었지.
소환된 곰은 나타나자마자 주변 텐트를 가랑잎처럼 찢어발기고는 기사단의 식량을 죄다 먹어 삼켰네.
조건을 충족한 몬스터라 해서 자네의 뜻을 헤아려주는 성인군자는 아니라는 뜻일세.
소환되기 직전, 그 생물이 지독한 굶주림에 시달리고 있었는지, 혹은 짝짓기 철이라 잔뜩 날이 서 있었는지는
주문의 영역 밖이라네. 배고픈 포식자를 부르는 건 구원이 아니라 재앙을 초대하는 일임을 잊지 말게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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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호르라마
이것은 고착된 방어선을 긋는 정적인 술법이 아닐세.
자네의 피부 위로 칼날이 침잠하기 직전, 쇄도하던 타격의 관성을
강제로 분절하여 그 파괴적인 농도를 희석하는 개입이지.
콜라마가 무구의 밀도를 높여 견고한 외벽을 세우는 망치라면, 호르라마는 자네를 향해
쏟아지는 살의의 궤적을 무력하게 깎아내어 치명적인 파국을 절반의 신음으로 치환하는 무형의 규율이라네.
이 차이는 전장에서 생사를 가르는 결정적인 분기점이 되곤 하네.
콜라마는 갑옷을 입고 있을 때만 그 단단함을 보태주지만,
호르라마는 실갑 하나 걸치지 않은 맨몸이라 해도 이 권능이 꺾이지 않거든.
무장 약화 저주인 바르도나 데프레카가 쏟아져 내려 자네의 흉갑이 녹슨 깡통처럼 바스러진 순간에도,
이 호르라마의 기운이 남아있다면 적의 치명적인 일격은 둔탁한 밀치기 정도로 감쇄될 뿐이라네.
이십 년 전, 이름 없는 성벽을 지키던 공성전의 기억이 생생하구먼.
성벽 위는 그야말로 저주와 축복의 잉크가 뒤섞인 아수라장이었지.
적 술사들이 갑옷을 썩게 만드는 바르도를 소나기처럼 퍼부으면,
우리 쪽 사제들은 다급히 디바르도로 그 부식의 고리를 끊어내고 있었네.
그 아수라장의 한가운데서 내가 한 일은, 수비병들의 척추를 따라 호르라마의 인(印)을 짓눌러 새기는 것이었네.
저주의 잠식에 무구가 삭아 내린 병사들이 적의 도끼날을 허공으로 쳐내며 다시 발을 딛는 광경은,
내 안의 안일한 사제직을 통째로 뒤흔들었지. 사제의 기적은 이미 터져버린 혈맥을 수습하는 사후의 봉합에 그치지 않네.
그것은 전장을 뒤덮은 파괴의 질량을 임의로 재조정하고, 쇄도하는 사멸의 에너지를
생존 가능한 범위 내로 억지로 짓눌러 가두는 오만한 간섭이라는 사실을 그때 비로소 직시했네.
호르라마를 시전 하는 손길에 적을 향한 오만한 조소를 섞지 말게나.
이것은 타인의 육신으로 쇄도하는 타격의 질량을 강제로 가로채어,
그 파괴적인 농도를 시전자의 마력망 속으로 분산시키는 정교한 여과 과정이라네.
저주의 잠식과 축복의 반발이 서로의 법도를 밀어내는 삭막한 접점 위에서, 자네가 직조한
미세한 질서가 곧 산산이 바스러지려던 생존의 확률을 묶어두는 유일한 규율이 될 수 있음을 직시하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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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모탈
'불멸'이라는 이름은 신께서 필멸자에게 허락하신 가장 거대한 기만이라네.
이 주문은 자네의 육신을 강화하는 게 아니라, 자네를 둘러싼 세계의 '인과율'을 잠시 뒤틀어버리는 술법이지.
이모탈이 켜진 순간, 자네는 현세에 발을 딛고 있으면서도
동시에 세상의 모든 마력적, 기술적 법칙으로부터 소외된 존재가 된다네.
이 장막은 정교하게 벼려진 검강이나 복잡한 영창으로 빚어낸 원소의 파괴력을
무의미한 잔상으로 바꾸어버리지. 적이 평생을 바쳐 연마한 비기가 자네의 가슴팍에서 허무하게 흩어질 때,
그들이 느끼는 것은 당혹감을 넘어선 세계의 붕괴일세.
하지만 이 절대적인 권능 뒤에는 아주 투박하고도 치명적인 허점이 도사리고 있네.
이모탈은 오로지 '가공된 힘'만을 거부할 뿐이라네.
마력이 섞이지 않은 무딘 강철 덩어리, 허공을 가르는 조잡한 화살, 혹은
머리 위로 쏟아지는 무거운 돌무더기 같은 순수한 물리적 실체 앞에서는 이 술법 또한 그저 얇은 허울에 불과하지.
신께서는 법칙을 다루는 자들의 오만은 꺾으셨으나, 생존을 위해 휘두르는
투박한 폭력의 무게까지는 차마 부정하지 못하신 모양이야.
자네는 이 장막 안에서도 여전히 기도를 올리고 기적을 자아낼 수 있네.
자신의 존재를 세상의 위협으로부터 격리한 채, 동료들에게 축복의 빛을 쏟아붓는 광경은
전장의 그 어떤 무용보다도 압도적이지. 하지만 기억하게나.
이 무적의 서사는 '리베라토'라는 단 한 마디의 파열음 앞에서 종이성처럼 무너질 수 있네.
자네의 존재를 강제로 현세의 인과 속에 다시 끌어내리는 그 서늘한 해제 마법이 자네를 겨냥하는 순간,
자네가 믿었던 불멸의 성벽은 곧바로 자네를 가두는 수의가 될 게야.
이모탈은 육신을 향해 쇄도하는 물리적 파국을 튕겨내는 투박한 차폐막이 아닐세.
그것은 자네라는 존재를 마법적 인과론의 좌표에서 강제로 누락시켜, 적이 직조한 파괴의 서사가
자네를 포착하지 못한 채 공허하게 흩어지도록 유도하는 고립된 위상(位相)이라네.
이 정적의 권능에 맹목적으로 기대지 말게나.
적의 술사가 마력의 뇌관을 터뜨리는 단 한 호흡의 매듭을 해부하여 세계를 격리하고,
사멸의 파동이 잦아들면 지체 없이 필멸의 무거운 질서 속으로 자네의 존재를 복귀시켜야 하네.
진정한 사제는 불멸의 그늘 아래 안주하는 도망자가 아니라, 그 절대적인 정지(靜止)를
가장 치명적인 순간에 박아 넣어 정해진 몰락의 결론을 보란 듯이 전복시키는 기적의 집행자여야 하니 말이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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잉크병 바닥에 가라앉은 4써클의 비정한 기적들을 갈무리하며, 자네의 깃펜 끝에 서린 묵직한 긴장을 보았네.
사선의 감각을 활자 속에 가두는 일은 필연적으로 영혼을 깎아내는 작업이지.
지금까지 우리가 논해온 기적들이 전장의 틈새를 기우고 파멸의 밀도를 조율하던 '조율사의 섭리'였다면,
이제 마주할 지평은 존재의 격이 전복되는 지점이라네.
세상에선 이를 두고 '지존'이라 칭송하지.
필멸의 육신이 쌓아 올린 인과론의 성벽을 비웃으며, 사제의 의지가 현세의 물리적 규율을 압도하여
독자적인 성역을 직조해 내는 고고한 투쟁의 영역일세.
5써클의 주문들은 구걸하는 기도의 형식을 버린 지 오래네.
신의 섭리를 지상으로 강제로 압착하여, 불가능이라는 물리적 한계를 소멸시키는 절대적인 선언이자
세계를 향한 오만한 재명명(再命名)이라네.
거대한 운명의 파동이 자네의 심신을 집어삼키려 할 것이네.
그대의 정신이 이 고압적인 권능의 무게를 감당해 낼지,
혹은 자네의 영혼이 찬란한 광휘 속에 증발해 버릴지 궁금하구먼.
아직 그대의 시선에 굴절이 섞이지 않았다면, 주저하지 말고 이 낡은 기록의 마지막 문턱을 넘어보게나.
인간이 신의 권능을 흉내 내는 그 위험하고도 숭고한 심연으로, 자네와 함께 발을 들여보고 싶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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