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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의 마을 세오
딜레마 - [흑요석]
577 2026.03.09. 15:37

"살려... 줘."

나지막한 신음이 공동을 메운 뒤,
무거운 고독이 내려앉았다.

마치 미리 약속이라도 한 것처럼, 지독한 고요가 너와 나 사이를 유리 파편처럼 덮어버렸다.



[2시간 전]

비승 백작의 성채로 향하는 길은 험난했다.
나는 동료의 생명력과 축복을 책임지는 '직-전',
그는 몬스터의 방어력을 무력화하는 '법-전'


우리에겐 공통된 숙원이 있었다.

각자 단 한 짝뿐인 흑요석 장갑을 완벽한 한 쌍으로 완성하는 것.

우리는 그 일념 하나로 밤을 지새우며 으스스한 별장의 어둠을 헤집고 다녔다.



'샤샤샷'

'샤샤샷'

단조롭지만 묵직한 타격음이 이어졌다.
효율적이라곤 할 수 없었지만, 두 개의 '크래셔'가 몬스터들을 하나둘씩 찢어낼 때마다 느껴지는 성취감은 달콤했다.

하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흥분은 잦아들고 지루함이 독처럼 퍼졌다.
10분, 20분이 지나자 우리의 대화는 끊겼다.

침묵 속에는 오직 크래셔의 기괴한 굉음과 법전의 딜레이 섞인 프라보 저주 소리만이 유령처럼 떠돌았다.
잠시 휴식을 취해보았지만, 다시 시작된 사냥은 몸과 마음을 더욱 짓눌렀다.



그리고 마침내, 2시간의 혈투 끝에 그것이 모습을 드러냈다.

'전사의 흑요석 장갑'.

영롱한 빛깔이었다.

수개월간 이 찰나를 위해 체력의 고무장갑으로 버텨왔던 내 눈앞에, 그토록 갈구하던 전설이 놓여 있었다.



'꿀꺽.'



동시에 삼킨 마른침.
우리는 같은 생각을 하고 있었다.


'누가 먹을 것인가. 저걸 양보하면 난 또 얼마나 기다려야 하는가. 만약 내가 갖는다면?'


양보를 입에 담기엔 지난 세월의 고생이 파노라마처럼 스쳐 지나갔다.
흑요석 장갑 주위를 맴도는 우리 사이로 팽팽한 긴장감이 흐르던 그때, 갑작스러운 난관이 우리를 덮쳤다.


찰나의 방심이었다.

새로 생성된 몬스터들이 순식간에 법전 친구를 에워쌌다.
미처 대응할 틈도 없이 그의 머리 위로 죽음의 낙인인 '해골'이 떠올랐다.

코마 상태.



"허, 닐닐구!"



절규 섞인 외침에 몸이 먼저 반응하려 했으나, 발걸음은 점점 무거워졌다.
그리고 내 안에서 거대한 악마가 속삭였다.

'너만 사라진다면... 저 장갑은 온전히 내 것이 될 텐데.'


"야, 뭐 해! 빨리 닐!!!"


다급한 외침이 들려왔지만, 이성을 잃은 내 눈동자는 이미 초점을 잃었다.
나는 일부러 몬스터들을 끌어안으며 벽 뒤로 돌아갔다.

막다른 길에 가로막혀 발이 묶인 척 연기하며.


"기다려, 텔레포트 깃털이 없어!"

"야! 야! 빨리... 제발!"



비명이 잦아들고, 마지막 힘을 쥐어짜 뱉어낸 그의 유언이 귓가를 때렸다.


"살려... 줘."


한순간의 정적이 흐르고 그룹이 해제되었다.
친구의 형체는 허공으로 흩어져 사라졌다.

됐다.

미안한 마음보다 우선한 것은 승리감이었다.

저 장갑의 주인은 결국 나라는 사실을, 이 잔인한 행운이 증명해주고 있었다.



'뚜벅, 뚜벅.'


무적 '이모탈'을 두른 채, 앞을 가로막는 잔챙이들에게 크래셔를 날렸다.
완성의 꿈을 실어줄 흑요석 장갑이 코앞이었다.


그때였다.


등 뒤에서 서늘한 마법의 외침이 들려왔다.
보이지 않는 암살자, 혹은 하이에나의 목소리.



"리베라토!"



정신이 아득해졌다.

나를 보호하던 이모탈의 기운이 무력하게 해제되었고, 독이 바짝 오른 몬스터들의 발톱이 내 육신을 난도질하기 시작했다.


죽어가는 시야 끝에, 잔혹한 시스템 메시지 한 줄이 박혔다.


[방해꾼도직]님 pick up '흑요석 워리어 장갑'.



아아.


이것은 탐욕에 눈이 멀어 신의를 져버린,


어느 전사가 맞이한 가장 통쾌하고도 비참한 결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