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3.21
윤회라는 시스템이 공정하게 돌아가고 있다는 전제하에, 요즘 들어 부쩍 고개가 갸웃거려지는 지점이 있다.
전 세계 인구는 징그럽게 늘어났고, 지금 이 순간에도 지구 어딘가에선 새로운 인간들이 쏟아져 나온다.
여기서 한 가지 의문이 생긴다. ‘인간’이라는 꽤 괜찮은 당첨권을 거머쥘 만한
고결한 ‘업’을 지닌 영혼들이 대체 어디서 그렇게 계속 복사되어 나오는가 하는 점이다.
우주의 영혼 총량이 일정하다면 이건 명백한 초인플레이션이다.
바람난 와이프를 세 번쯤 정갈하게 용서하거나, 횟집 수족관에서 횟감을 구매한 뒤 굳이 먼 바다까지 나가
방류해 주는 정도의 공덕을 쌓지 않고서야 인간으로 태어나는 건 불가능에 가까운 일이었을 텐데 ㅡ
그 정도의 '수양'은 통과해야지 않나 ㅡ 하지만 지금 내 주변을 돌아보면 상황은 영 미심쩍다.
횡단보도를 건너는 타인을 향해 경적을 울려대는 사내나, 식당에서 종업원에게 이유 없는 짜증을 배설하는 자들을
보고 있으면 이런 생각이 든다. “음, 그간 너무 기준이 과했지요?” 혹은 “흐음 흐음, 아무래도 지금 기준으로는
인간 되기 영 글렀지요.” 하는 내세 관리자들의 긴급 합의가 있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 말이다.
아마도 내세의 인사과는 현재 심각한 인력난에 시달리고 있을 것이다.
인간으로 태어날 '괜찮은' 영혼의 수급이 달리자,
관리자들은 책상 앞에 앉아 돋보기를 고쳐 쓰며 기준치를 대폭 완화했을 게 뻔하다.
원래대로라면 동물이거나 곤충이거나 그보다 못한 미물이어야 마땅할 영혼들에게도
일단 ‘인간 가죽’이라는 신형 장비를 지급하기 시작한 것이다. 일종의 영혼 하향 평준화다.
서울 지하철 2호선 같은 마경을 경험하면 이런 가설은 확신이 된다.
문이 열리기도 전에 어깨를 앞세워 밀고 들어오는 사내는, 전생에 아마도 껍데기를 지키려 혈안이 된
소라게였을지도 모른다. 빈자리를 향해 몸을 날리는 직선적인 기백은 영락없이 먹이를 발견한 갈매기의 그것이다.
그들은 지금 자기에게 맞지 않는 과분한 지능과 신체를 부여받고 몹시 당황하며 적응 중이다.
“인간인 척하기 참 힘드네”라고 속으로 뇌까리며 젓가락질을 배운 고릴라의 심정으로 살아가고 있을 것이다.
그러니 우리 주변의 ‘녀석’ 들을 너무 깊게 미워하지는 말도록 하자.
그들이 악마라서 그런 게 아니다. 사실 그들은 인간이 되려고 인간이 된 게 아니라,
분명 면제받아야 마땅할 심신미약 청년이 징병률 99%로 억지로 끌려온 것과 다름없을 테니.
자질이 턱없이 부족함에도 불구하고 무시무시한 정책 때문에 어쩌다 보니
이 복잡한 인간 사회로 투입된 ‘영혼의 미숙아’ 들일뿐이다.
그들에게 인간다운 예의나 고도의 윤리적 판단을 바라는 건 가혹한 일이다.
머리로 뭘 따져보기도 전에 일단 거슬리면 짖고 배고프면 달려드는 본능이 훨씬 익숙한 영혼들이니까.
대단한 악의가 있어서라기보다, 그냥 지급받은 '인간 1.0' 버전의 하드웨어를 다루는 법을 아직 익히지 못한 탓이다.
대화보다는 물어뜯기가, 사과보다는 들이받기가 훨씬 자연스러운 전생의 습성을 억누르며 사느라
그들 나름대로는 꽤나 고생 중일지도 모른다.
우리가 가끔 느끼는 원인 모를 피로감 역시,
실은 '인간인 척'하며 보내야 하는 이 보직의 고단함에서 기인한다.
정해진 시간에 씻고, 옷을 챙겨 입고, 타인과 눈을 맞추며 의미 없는 안부를 묻는 행위들.
이 모든 사회적 프로토콜은 전생에 숲 속을 뛰어다니거나 물속을 유영하던 이들에게는 가혹한 군기 교육이나 다름없다.
가끔은 나조차도 누군가의 발목을 물어뜯고 싶거나 그저 멍하니 먼 산을 바라보며 짖고 싶어지는 걸 보면,
나 역시 꽤나 아슬아슬하게 징집된 부류일지 모른다는 의심이 든다.
어쩌면 나도 전생에 꽤나 말 안 듣는 길고양이였거나,
아니면 그냥 햇볕 잘 드는 바위 위에 누워 있던 이끼였을지도 모를 일이다.
기록한다는 행위도 어쩌면 이 거대한 혼란 속에서 내가 정말 인간이 맞는지 확인하는 절차일지도?
스마트폰 메모장을 열고 엄지손가락으로 매끄러운 액정을 꾹꾹 눌러 타자를 칠 때,
손끝에 전해지는 미세한 진동을 느끼며 그제야 비로소
나는 내가 곤충이 아니라 사유하는 인간의 자리에 앉아 있음을 어렴풋이 느낀다.
젤리처럼 흐물거리는 자아를 하얀 화면 위에 텍스트로 박아 넣으며ㅡ
나는 분명 징집된 미물이 아니라는 방어선을 치는 것이다.
뭐 여하튼. 내 옆의 그 인간이 오늘 유난히 짐승처럼 굴었다면, 그냥 넓은 마음으로 이해하자.
그는 지금 전생의 뻘밭을 그리워하며 인간이라는 낯선 보직을 수행 중인 가련한 훈련병일 뿐이다.
누군가는 기약 없는 이 군생활을 일평생 견뎌야 한다. 그 막막함을 생각하면
신도림에서 내 발등을 밟고 지나간 무지한 영혼에게도 약간의 연민을 품을 수 있게 되리라.
아무래도 우리는 이름 모를 내세 관리자가 대폭 완화된 기준에 맞춰 대충 도장을 찍어 보낸 징집병들이다.
관측되지 않는 '업'을 따지기보다, 지금 얼굴을 두들기는 봄기운의 바람이나
그간 시시하게만 여겼던 창밖 풍경에 집중하는게 어떨까.
eoin aka 임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