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뮤니티

게임실행 및 홈페이지 이용을 위해 로그인 해주세요.

시인의 마을 세오
「秘」붉은 진흙의 강을 건너 - 3
842 2026.04.09. 18:27

秘, 루어스의 비밀 문서고


-


[모험가 케일런의 서쪽 대륙 견문록]

제2장: 타오르는 모래의 요람, 노엠 - 1













: 모래 알갱이들이 맺히는 오후


가슴이 들이켜는 것은 숨이 아니라 가루가 된 돌덩이였다.
목구멍 안쪽에 미세한 유리 파편이 할퀴고 지나갔고, 혀끝에는 광물의 텁텁한 맛이 떠나지 않았다.

한때 마이소시아의 시인들은 공기를 두고 ‘무형의 신성’이라 칭송했다지만,
이곳 노엠 사막에서 공기는 보이지 않는 맷돌에 갈려 나가는 건조한 형벌임이 분명하다.

숨을 들이켤 때마다 나는 몸속의 수분이
희박하고 날카로운 대기 속으로 한 방울씩 증발해나가는 소리를 들었다.

아슬론의 눅눅하게 질척이던 흙내음이 이토록 사무치게 그리울 줄이야.

불과 이틀 전, 부츠 끝에 매달려 나를 괴롭히던 끈적한 진흙의 무게가 이제는 세상 그 무엇보다
고귀한 생명의 감촉으로 기억 속을 파고들었다.

노에스 남부의 강인하던 초록빛은 생기를 잃고 누렇게 들뜨더니, 단 48시간 만에 바스러져 잿빛 먼지가 됐다.
한때 풀잎들이 파도치던 자리에 죽은 흙의 잔해들이 바람을 타고 유령처럼 떠돌았다.

대지는 더 이상 식물을 길러내는 요람이 아니라 거대한 아궁이의 밑바닥이었다.
눈을 가늘게 뜨고 앞을 보아도 지평선은 땅과 하늘을 나누는 경계가 아니었다.

작열하는 태양이 대지의 등허리를 가르기 위해 벼려낸 아지랑이의 칼날이 수평선 전체를
기괴하게 일렁이게 하며 공간을 뒤틀어놓았고, 하늘은 푸른빛을 잃은 채 화염에 데인 납색으로 내려앉았다.

칼날은 시야를 가차 없이 난도질하며 나를 사막이라는 이름의 거대한 아가리 속으로 밀어 넣었다.
사막은 배부른 법이 없다. 내 발자국을 집어삼키고, 내가 흘린 땀방울을 증발시키고, 나를 지워나간다.

이 지옥 같은 행로에서 나를 유일하게 붙들어준 이정표는 아슬론의 투박한 사내가 건네준 붉은 진흙 물병이었다.

배낭 옆에 꽂혔을 때만 해도 그저 무거운 흙덩이에 불과했던 물병은
태양이 내 정수리를 망치로 짓이길 때마다 보다 서늘하고 묵직한 기운을 내뿜었다.

자연의 냉기를 넘어선 어떤 의지 같은 것.

수천 도의 가마 속에서 화염을 정면으로 받아내며 제 몸을 굽고 또 구웠던 아슬론의 흙이,
하늘에서 쏟아지는 태양의 화염을 완강하게 밀어내며 안의 생명수를 지키고 있었다.

갈증이 영혼의 밑바닥까지 갉아먹을 때마다 나는 그 차가운 병 입술에 입을 맞췄다.
구워진 진흙의 질감은 거칠었지만, 그 안에서 흘러나오는 물은 태초의 동굴에서 길어 올린 것처럼 서늘했다.

그때 직감했다. 아슬론에서 겪었던 눅눅한 습기와 가마터의 숨 막히는 열기,
온몸을 적셨던 붉은 강줄기는 우연히 만난 풍경이 아니었다는 것을.

이 가혹한 노엠 사막을 건너기 위해 내 영혼에 미리 새겨두어야 했던 거대한 각인.

아슬론의 불꽃을 먼저 본 자만이 사막의 불꽃을 견딜 수 있고,
아슬론의 진흙을 밟아본 자만이 모래의 공허를 딛고 나아갈 수 있다는 것을.

나는 물병을 도구가 아니라 나를 살려 보내겠다는 아슬론 사람들의 끈질긴 배웅으로 여기며
다시금 모래의 아가리 속으로 발을 내디뎠다.


-


: 아인 오아시스


사흘을 꼬박 모래의 파도 속에서 허우적거리자, 망막이 서서히 이성을 배반했다.
신기루는 굶주린 짐승처럼 정신의 빈틈을 집요하게 비집고 들어와 조롱을 퍼부었다.

저 멀리 모래 언덕 너머로 일렁이는 야자수의 그림자, 서늘한 그늘의 유혹이 뇌수를 자극할 때마다
나는 그것이 갈증이 파놓은 함정임을 상기하며 성난 입술을 꾸짖었다.

피맛이 감도는 감각만이 내가 아직 현실의 지옥에 발을 붙이고 있음을 증명했다.

절망적인 확신. 환각에 속지 않겠다는 처절한 다짐을 비웃기라도 하듯 나타난
‘아인 오아시스’는 불의 대지가 내뱉은 단 한 번의 자비마냥 그곳에 박혀 있었다.

시인들이 읊조리던 에메랄드빛 낙원을 기대했다면 확실히 틀렸다.
아인 오아시스는 에메랄드빛 낙원이 아니라 신이 가래침을 뱉는 자리에 가까웠다.

지열에 비틀려 생기를 잃은 몇 그루의 야자수가 노인의 팔처럼 앙상하게 하늘을 휘젓고,
중앙의 웅덩이는 짐승의 배설물과 모래 먼지가 뒤섞인 걸쭉한 회색빛 수프처럼 끓었다.
코를 찌르는 악취는 땀에 젖은 낙타의 겨드랑이에 젖은 먼지를 문지른 듯한 불쾌감을 선사했다.

눈을 의심케 한 것은 비루한 물가만이 아니다.
이 황무지의 법칙을 거스르는, 기괴하고도 화려한 광경이 웅덩이 곁을 메우고 있었다.

모래폭풍을 견뎌내기 위해 태어난 듯한ㅡ육중한 사막 마물의 굽은 등에서 내린
거대한 목재 궤짝들을 활짝 열어젖힌 사내가 거기 서 있었다.

사위가 작열하는 태양 아래 녹아내리는 와중에도 그는 먼지 한 톨 앉지 않은 창백한 청색 비단 코트를 걸치고 있었다.
모래바람이 그를 비껴가기라도 하는 것처럼, 어쩌면 모래조차 그의 오만한 옷깃에 닿기를 두려워하는 것처럼.

그가 가판대에 늘어놓은 것들은 이 죽음의 땅과는 어울리지 않는 사치품들이었다.

오렌의 칠흑 같은 심해에서 건져 올려 달빛 아래 수천 번의 연마를 거쳤다는 진주들이
외투의 옷깃을 따라 별자리처럼 박혀 있었다. 옆으로는 우드랜드의 고대 수림,
태양빛조차 닿지 않는 깊은 그늘에서만 자생하는 전설적인 맹수의 가죽을 무두질해 만든 부츠가 자리를 잡고 있었다.

‘승급자’라 불리는 자들, 대륙의 보이지 않는 위계와 질서를 제 손으로 뒤엎으려는 강자들이나 두른다는
고가의 의복들이 모래바람을 타고 오만한 깃발처럼 펄럭였다.

금실로 수놓인 망토의 끝단이 썩은 물웅덩이 옆 모래 바닥을 스칠 때마다,
주머니 속의 금화들이 비명을 지르는 환청이 들렸다.

도대체 이 육중한 옷짐들을 어떻게 모래의 바다를 가로질러 여기까지 끌고 왔는지,
무엇을 위해 이 뜨거운 모래밭 한가운데서 손님을 기다리는지, 상식의 범주로는 가늠할 길이 없었다.

상인에게 슬쩍 다가가 "이 사막에서 이런 옷을 팔면 장사가 됩니까?" 라고 묻자,
그는 내 초라한 가죽 배낭을 훑어보며 미소를 지었다.

"이봐, 이방인. 자네는 아직 인간을 모르나 보군. 사막에서 가장 먼저 말라죽는 건 목구멍이 아니라 그놈의 자존심이야.
갈증은 물로 채우지만, 짓밟힌 명예는 이 화려한 비단으로만 덮을 수 있는 법이지."

실제로 그 옷가지들을 사기 위해 노엠에서부터, 혹은 저 멀리 셀라임에서부터
발가락이 짓물러 터지도록 사막을 건너온 여행자들의 일그러진 얼굴이 상인의 호언장담이 틀린 것이 아님을 대변했다.

그들은 모래 섞인 침을 뱉고, 누더기 사이로 고름이 흐르는 상처를 드러내면서도ㅡ
상인이 내놓은 화려한 비단 앞에서 종교적인 경외감을 느끼는 사제들처럼 무릎을 꿇었다.

며칠을 굶어 눈이 푹 꺼진 무도가 하나는 손목의 금팔찌를 팔아 치우고는, 금실 자수가 박힌 소매를 피
딱지 앉은 팔에 끼워 넣으며 황홀한 표정을 지었다. 도살장에 끌려가기 전에 비단 보자기를 덮어씌운 제물 같았다.

누군가에게 이 옷은 살을 가리는 천 조각이 아니다.

죽음의 문턱을 수십 번 넘나들며 이 사막을 횡단한 끝에, 노엠의 성문으로 들어서기 전
자신이 더 이상 평범한 떠돌이 방랑자가 아님을 증명하려는 허영이자 집념의 표식이리라.

[나는 이 옷을 입을 자격을 얻기 위해 사막을 건넜다] 는 무거운 문장을 몸에 두르기 위해,
그들은 비릿한 냄새가 진동하는 물웅덩이 옆에서 수년을 모은 금전 보따리를 통째로 건넸다.

갓 구워낸 빵 한 조각이나 깨끗한 물 한 모금이 금값보다 비싸야 할 이 황무지에서,
그들은 제 목숨보다 소중한 자산을 바쳐 허울뿐인 장식을 샀다.

사막의 지열보다 더 뜨겁게 달아오른 명예욕이, 물보다 귀한 탐욕으로 거래되는 기괴한 경매장이었다.
옆에 있던 낙타 한 마리가 이 광경을 쳐다보며 커다란 거품 섞인 트림을 내뱉었다.

나는 기괴한 거래를 뒤로하고 배낭 속의 아슬론 물병을 더 강하게 움켜쥐었다.
저들이 두른 번쩍이는 금실보다, 손바닥에 닿는 이 투박하고 차가운 진흙의 온기가 훨씬 더 고결하게 느껴지는 순간이었다.

인간의 욕망이란 어쩌면 이 거대한 사막보다 더 깊고 메마른 구덩이일지도 모른다.


-


: 엔도르의 성전


오아시스의 허영을 뒤로하고 지평선을 향해 이틀을 더 나아갔을 때ㅡ
사막은 비로소 제 깊숙한 곳에 숨겨두었던 속살을 드러냈다.

모래 언덕의 일렁임이 잦아들고 대지가 딱딱한 암반으로 굳을 무렵, 지면 위로 솟아오른
거대한 석조 건축물들이 나를 가로막았다. 사람들은 이곳을 ‘엔도르 개미들의 왕국’이라 부르지만,
내 눈앞의 광경은 야생의 둥지라기보다 잊혀진 신들의 장례를 위해 세워진 거대한 신전에 가까웠다.

지표면 위로 드러난 유적의 외양은 압도적이었다.

수천 년의 세월 동안 모래바람에 깎여나갔음에도 거대한 화강암 기둥들은 하늘을 찌를 듯한 기세를 잃지 않았다.
신전의 벽면마다 빈틈없이 새겨진 고대 엔도르 문명의 벽화들이 이 유적의 진짜 주인이 누구였는지를 웅변했다.

나는 먼지 쌓인 벽면 앞에 멈춰 서서 조각들을 손끝으로 더듬었다.

한때 이곳을 지배했던 인간들이 대지의 여신 앞에 무릎을 꿇고 헌사하는 모습,
그리고 그들보다 더 거대하게 묘사된 기묘한 형상의 곤충들이 성전을 호위하는 그림들이 퇴색된 채로 남아 있었다.

벽화 속의 개미들은 벌레가 아니라, 엔도르의 운명을 짊어진 수호자이자 대지의 정령으로 숭배받고 있었다.
기묘한 것은 이 거대한 신전의 표면 어디에서도 살아있는 생명체의 흔적을 찾을 수 없다는 점이었다.

전설로 듣던 웨어울프보다 큰 개미 군단도, 그들을 거느린다는 공포의 엔도르 여왕의 그림자도 없었다.
지상은 오직 죽은 돌과 마른 바람의 통곡소리뿐, 정적만이 감돌았다.

나는 신전 중앙의 주랑을 지나며 발밑에서 전해오는 진동에 집중했다.
지상은 이토록 고요한데, 내 부츠 끝을 타고 올라오는 감각은 이곳이 살아 숨 쉬고 있음을 말했다.

유적의 바닥 곳곳에 뚫린, 어두컴컴하고 깊이를 가늠할 수 없는 구멍들 때문이었다.
지하 깊숙한 곳으로 이어진 거대한 개미굴의 숨구멍.

구멍 안쪽에서 들려오는 소리는 매우 정교했다.

아마도 수백만 마리의 다리가 딱딱한 암반을 긁어대는 서걱거림, 군단 전체가
하나의 폐로 호흡하듯 내뱉는 무겁고 축축한 공기의 흐름. 겉으로 드러난 신전이 엔도르의 박제된 과거라면,
지층 아래는 엔도르 퀸이 지배하는 살아있는 군단의 요람이자 거대한 자궁이었다.

왕과 여왕, 그리고 이름 없는 수만 마리의 개미 병사들은 이 신전의 화려한 벽화 뒤편,
빛조차 닿지 않는 어둠의 심부에서 자신들만의 제국을 다지고 있으리라.

어쩌면 고대 엔도르인들은 알고 있었을지도 모른다. 성벽을 아무리 높게 쌓아도 하늘의 노여움은 피할 수 없지만,
대지의 가장 깊은 곳으로 침잠하면 영원한 생존을 보장받을 수 있다는 것을.

그래서 그들은 지상에 화려한 신전을 남겨두고
스스로 개미들의 왕국 안으로 스며들어 그들의 일부가 되기를 선택했을지도 모른다.

이곳을 탐험하러 온다는 모험가들의 소문이 떠올랐다.

그들은 지상의 벽화에 매료되어 안쪽으로 발을 들였다가, 결국 자신이 밟고 있는 신전이
거대한 벌레집의 뚜껑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깨닫게 될 터였다.

한 발자국만 잘못 디디면, 벽화 속의 성스러운 수호자들은 현실의 포식자가 되어
침입자의 살점을 대지의 양분으로 삼으려 달려들 것이다.

나는 더 깊은 곳으로 들어가고 싶은 이방인의 호기심을 눌렀다.
이곳은 평범한 인간이 기록할 수 있는 영역의 끝자락임이 틀림없다.

지하에서 올라오는 곤충의 체취가 코끝을 스칠 때, 비로소 유적이 왜 여전히 완벽한 형태를 유지하는지 이해했다.

그 어떤 도굴꾼도, 그 어떤 왕의 군대도 이 고요한 신전 아래에서
꿈틀대는 수만 마리의 보이지 않는 파수꾼들을 이겨낼 재간이 없었을 테니까.

나는 신전의 퇴색된 벽화를 마지막으로 한 번 더 쓰다듬으며 발길을 돌렸다.
지상은 여전히 평온했고, 태양은 신전의 기둥을 황금빛으로 물들였다.

엔도르의 왕국은 죽지 않았다.
그들은 단지 지상의 태양을 버리고, 대지의 심장 곁에서 영원히 잠들지 않는 밤을 선택했을 뿐이다.

모래바람에 묻혀가는 신전을 뒤로하고,
나는 다시는 이 고요한 뚜껑을 열 일이 없기를 빌며 노엠의 성벽을 향해 걸음을 재촉했다.

지평선 저 멀리ㅡ
이 모든 비밀을 품고서도 시치미를 뚝 떼고 서 있는 노엠의 흙벽들이 보이기 시작했다.


-


: 흙의 요새


지평선의 끝자락에서 아른거리던 아지랑이가 걷히고, 나는 마침내 사막의 종착지를 포착해냈다.

마이소시아의 도시들처럼 화려한 대리석으로 휘감은 성벽도,
루어스의 성채처럼 날카로운 마탑을 자랑하는 건축물도 아니다.

앞을 가로막은 것은 대지가 사막의 탐욕을 막아내기 위해 스스로를 겹겹이 쌓아 올린 듯한,
'벽' 이다. 아주 크고 육중하다고 밖에 설명할 수 없는.
노에스 지방의 심장이자 모든 이방인의 갈증이 집결하는 곳, 노엠.

노엠은 아슬론의 둥글고 개방적인 흙집들과는 전혀 다른 분위기를 내뿜었다.

아슬론의 건축이 대지의 품에 안기려는 아이의 웅크림이었다면,노엠을 감싸고 있는 거대한
흙벽 건물들은 사막의 무자비한 모래바람과 정면으로 맞서 싸우기 위해 세워진 무뚝뚝하고 고집 센 거인들의 군상이었다.

하늘을 찌를 듯 직선으로 곧게 뻗은 벽면과, 지층이 쌓이듯 층층이 정교하게 올린 가옥의 구조는
이 도시가 거쳐온 위계와 생존의 질서를 대변했다.

두터운 흙벽들은 주거 공간만으로 기능하지 않았다.

대지의 세계수를 모시는 파수꾼으로서의 자존심이었고,
외부의 모든 침략과 사막의 잠식으로부터 스스로를 격리하기 위해 두른 거대한 갑옷이었다.

햇볕에 바짝 말라 강철보다 단단해진 흙의 질감은이들이 자연에 순응하는 단계를 넘어
자연을 재료 삼아 자신들만의 견고한 우주를 구축했음을 증명했다.

성문 안으로 한 발을 내딛는 순간, 귀를 강타한 것은 사막의 지독한 고요를 단숨에 찢어발기는 시장의 소음이었다.
노엠은 성문 밖의 정적을 비웃기라도 하듯, 살아있는 자들의 아우성으로 가득 차 있었다.

흥미로운 점은 이 거대한 도시의 진짜 주인은 번듯한 건물 안에 들어앉은 상점들이 아니라는 사실이었다.

길거리를 빈틈없이 메운 수백 개의 노점들. 그것이야말로 노엠을 타고 흐르는 진짜 피였다.
흙벽 가옥들이 만들어낸 좁고 깊은 골목마다, 상인들이 투박하게 세운 나무 기둥과
그 위를 덮은 때 묻은 천막들이 끝없이 이어졌다.

노점들은 흙벽 가옥의 거대한 그림자에 기대어 기생하듯, 혹은 공생하듯 다닥다닥 늘어서 있었다.

본래 이 노점 거리는 타지방에서 건너온 거상들이나 갈 곳 없는 떠돌이 보부상들이
하룻밤의 장사를 위해 임시로 가판을 펼치며 시작된 비천한 태생이었다.

그러나 세월이 흐르며 그 덧없는 가판들은 노엠의 지울 수 없는 피부색이 되었고,
이제는 이 조밀한 천막들의 행렬 없이는 노엠을 상상할 수 없게 됐다.

가죽을 덧대거나 거친 직물을 얽어 만든 천막 아래로ㅡ유목민들이 목숨 걸고 가져온 짐승의 가죽들이
산더미처럼 쌓여 있었고, 평원의 가축에게서 갓 얻어낸 고기 냄새는
사막의 건조한 대기를 뚫고 이방인의 허기를 잔인하게 자극했다.

출처를 알 수 없는 고대의 골동품들과 정체불명의 연금술 재료들이 뒤섞여 만들어내는 불협화음은,
노엠이 왜 ‘서쪽 대륙의 도가니’라 불리는지를 단번에 깨닫게 해주었다.

나는 시장 한복판에 서서는, 모래 가루가 섞인 공기를 깊게 들이마시며 잠시 숨을 골랐다.

발밑의 모래는 여전히 화상을 입힐 듯 뜨거웠지만, 흙벽 건물이 드리운 짙고 서늘한 그림자 속으로 들어서는 순간
나는 내가 죽음의 사막을 무사히 건너 살아있는 자들의 땅에 발을 붙였음을 실감했다.

고개를 들어 도시의 가장 높은 곳을 바라보았다.

시장의 소란과 천막의 물결 너머,
노엠의 꼭대기에는 대지의 세계수를 모신다는 사당이 엄숙하게 서 있었다.

사막의 먼지를 뒤집어쓴 채 한 푼이라도 더 깎으려 목소리를 높이는 유목민들의 거친 언어들 사이로,
저 높은 사당에서부터 흘러나오는 듯한 차갑고도 신비로운 숲의 향취가 코끝을 스쳤다.
시장의 비린내와 사당의 신성함이 공존하는 이 기묘한 조화야말로 노엠의 진면목이었다.

노엠에서의 첫날밤이 다가오고 있었다.

시장의 악다구니 같은 소음은 서서히 붉게 물든 노을 속으로 잦아들었지만,
두터운 흙벽 안쪽에서 느껴지는 사람들의 억척스럽고도 끈질긴 온기는
사막의 한기를 예고하는 밤바람보다 먼저 이방인의 지친 몸을 감싸 안았다.

이곳을 재화가 오가는 상업의 요충지라고 설명해서는 곤란하다.

사막이라는 거대한 절망에 저항하며,
대지의 자존심을 한 뼘씩 쌓아 올린 이들이 일궈낸 흙과 집념의 미로라고 해야 정확할 것이다.
















In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