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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의 마을 세오
아트만-다르파나
4438 2026.06.06. 12:08

[알림] 오랜 시간 <어둠의전설>을 사랑해 주신 유저 여러분께 감사드립니다.
본 서버는 오는 6월 1일을 기해 모든 서비스가 종료될 예정입니다.



한 달 전에 떴던 공지였다.


남들은 평생 모은 템을 바닥에 던지네,
캐시를 환불받네 하며 난리를 쳤다는데, 나는 그저 무덤덤했다.


먹고살기 바빠 접속 안 한 지는 이미 몇 년째였고,
급하게 처분할 고가 아이템도, 연락이 닿는 인맥도 이젠 남아있지 않았으니까.


내 청춘의 한 페이지가 이렇게 접히는구나, 정도의 감상이 다였다.



정말 서비스 종료를 이틀 앞둔 저녁,
문득 기묘한 호기심이 일어 컴퓨터를 켜고 클라이언트를 실행했다.



화면에 뜬 캐릭터 선택창.


빛바랜 아이디 위에 마우스를 올리자 익숙한 도트 캐릭터가 게임 세상 속으로 툭 떨어졌다.


"와…… 사람 진짜 없네."


마을은 조용하다 못해 기괴할 정도였다.


간간이 보이는 유저들은 죄다 마우스 커서만 깜빡이는 잠수 유저들뿐.
흡사 유저들이 다 빠져나가 유령 도시 같았던 '셔스 서버'의 한복판에 서 있는 기분이었다.



수오미 마을,
피에트 마을…… 추억이 서린 곳들을 느릿느릿 걸어 다녔다.


그러다 다시 밀레스 마을 지역으로 돌아왔을 때, 멍하니 서 있는 한 유저의 머리 위로 시선이 꽂혔다.

[아트만다르파나]
'어라? 어둠 글자 제한이 6글자 아니었나? 7글자 아이디가 생겼나?'



신기한 마음에 그 캐릭터 앞에 멈춰 서서 한참을 구경했다.

버그인가, 아니면 내가 모르는 패치가 있었나 싶어 고개를 갸웃거리는데, 느닷없이 그가 먼저 말을 걸어왔다.


아트만다르파나: "보잘것없는 장비인데, 뭘 그렇게 열심히 보십니까? ㅎㅎ"


그것이 그 정체불명의 유저와의 첫 만남이었다.





섭종 하루 전,
종료까지 남은 시간은 단 하루. 퇴근하자마자 홀린 듯이 다시 접속했더니, 어제 그 자리에 [아트만다르파나]가 그대로 서 있었다.

우리는 약속이라도 한 것처럼 밀레스 콜존에서 나란히 이야기를 나누기 시작했다.

알고 보니 이 친구, 생각하는 게 나랑 판박이였다.


연배도 비슷했는지 옛날 어둠 이야기가 나오자마자 포텐이 터졌다.



아트만다르파나: "그때 기억나세요? '집털'이랑 '집빵' 하던 시절?"

온타임: "아, 알죠 알죠!"



도가의 '다라밀공' 이펙트가 최고였느니,
전사의 '매드소울' 데미지가 어땠느니 하며 밤새도록 추억을 주고받았다.


그렇게 한참을 낄낄거리며 웃던 중, 그가 갑자기 한숨을 푹 쉬더니 어둠의 운영진을 무섭게 까내리기 시작했다.



아트만다르파나: "솔직히 정령 나오고부터 밸런스 산으로 간 거 인정하십니까? 에테르 시스템은 또 어떻고요. 결정타는 퀵던전(퀵던)이었죠. 마을에서 소통하던 감성은 다 죽여놓고 하루 종일 무한 사냥만 돌리게 만들어놓으니 게임이 이 꼴이 난 겁니다!"


어찌나 열변을 토하는지 모니터 너머로 그의 분노가 고스란히 느껴질 정도였다.

사실 다 맞는 말이었다.

나 역시 그놈의 정령과 퀵던 때문에 정이 떨어져 게임을 접었었으니까. 폭주하는 그의 말에 격하게 동조하면서도, 이틀 뒤면 사라질 게임을 붙잡고 이렇게까지 화를 내는 모습이 조금 안쓰럽기도 했다.



온타임: "하하, 맞아요. 진짜 운영 레전드였죠. 그래도 아트만님, 어차피 내일이면 문 닫는 게임인데 너무 노여워 마세요. 우리 어린 시절을 채워준 고마운 녀석이잖아요. 좋게 보내줍시다."

내 말에 그는 한참 동안 말이 없더니, 이내 짧은 문장을 남겼다.



아트만다르파나: "……그러네요. 좋게 보내줘야죠."





섭종 당일,
드디어 운명의 날. 서비스 종료까지 남은 시간은 단 1시간.


마지막 순간을 장식하려는지, 평소엔 보이지 않던 올드 유저들이 하나둘 밀레스 광장으로 모여들고 있었다.

다들 아쉬운 마음에 마지막 인사를 건네며 "수고하셨습니다", "즐거웠습니다"라는 글자들이 화면을 가득 채웠다.


그런데 광장 풍경이 조금 이상했다.

자세히 보니 모여 있는 유저들 옆에, 마치 그림자처럼 이상한 아이디를 가진 캐릭터들이 하나씩 붙어 서 있는 게 아닌가.

[아트만다르파나a], [아트만다르파나b], [아트만다르파나c]……


'뭐지? 마지막 날이라 핵 프로그램이라도 터진 건가? 아니면 단체 매크로인가?'


눈을 비비고 다시 보려는데, 어느새 내 캐릭터 바로 옆에도 낯익은 7글자가 스르륵 다가와 멈춰 섰다.

어제까지 나와 밤새 수다를 떨던 바로 그 [아트만다르파나]였다.


마침 섭종 직전의 씁쓸하고 적적한 마음이 밀려오던 참이라, 버그인지 매크로인지 따지기보단 그에게 마지막 심경을 털어놓았다.



온타임: "막상 시계가 가니까 마음이 되게 이상하네요. 엄청 적적합니다. 초등학생 때부터 시작해서 인생의 절반 이상을 함께한 게임인데…… 내겐 정말 오랜 친구 같았거든요.


" 아트만다르파나: "……."


온타임: "만약에, 진짜 만약에 나중에라도 서버가 다시 열리면…… 그땐 정말 후회 없이 더 잘해보고 싶어요. 매일 접속해서 사람들과 이야기도 많이 나누고."



내 진심 어린 고백에 그는 그저 묵묵히 듣고만 있더니, 채팅창에 툭 한마디를 던졌다.



아트만다르파나: "ㅋㅋ"



평소와 다름없는 무덤덤한 웃음이었다.



[공지] 서비스 종료 5분 전입니다. 안전한 종료를 위해 유저 여러분께서는……
마지막 시스템 공지가 떴다.


화면 구석의 타이머가 사정없이 줄어들기 시작했다. 5, 4, 3……

두 캐릭터 위로 묘한 침묵이 흐를 때, 아트만이 조용히 말을 건넸다.



아트만다르파나: "그동안 고생 많으셨습니다. 앞으로도 잘 지내세요."



이제 정말 끝이구나 싶어 뭉클해지던 순간, 내내 가슴 한구석에 남아있던 의문이 떠올랐다.
마지막이 되어서야 나는 참지 못하고 그에게 물었다.



온타임: "저기, 가시기 전에 진짜 궁금해서 그러는데…… 그 7글자 아이디는 버그로 만드신 거예요? 그리고 '아트만다르파나'가 도대체 무슨 뜻입니까?"



카운트다운이 10초 안으로 접어들었다.

화면이 미세하게 흐려지는 듯한 착각이 들 때, 그의 마지막 대화창이 떠올랐다.



아트만다르파나: "산스크리트어로 아트만다르파나는…… '나 자신의 거울'이라는 뜻입니다."



"어……?"



그 문장의 의미를 미처 다 이해하기도 전, 웅장하던 밀레스 마을의 배경음악이 뚝 끊겼다.



그리고 화면 중앙에 커다란 안내창이 나타났다.

[서버와의 접속이 종료되었습니다.]

확인 버튼을 누르자 웅장했던 <어둠의전설> 클라이언트 창이 순식간에 툭 꺼지며 사라졌다.



빛이 사라진 컴컴한 모니터 화면 위로, 멍한 표정으로 마우스를 쥔 채 앉아 있는 내 얼굴이 투명하게 비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