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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의 마을 세오
「秘」붉은 진흙의 강을 건너 - 15
130 2026.07.04. 23:49

秘, 루어스의 비밀 문서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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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험가 케일런의 서쪽 대륙 견문록]

제5장: 신들의 성소, 타바리 - 4
















: 잘려 나간 사람들


도시 외곽으로 밀려나는 길목은 상업 지구의 번잡함이 걷히는 속도보다
훨씬 가파르게 좁아지고 어두워진다. 잘 닦인 황동빛 자갈길은 이내 푸석한 흙바닥으로 주저앉았고
이어서 제멋대로 굴러다니는 거친 돌무더기 사이로 바뀌었다.

선문명이 남긴 거대한 기단의 끝자락. 지상으로 위엄 있게 솟아올라 가옥의 주춧돌로 쓰이던 육중한 돌기둥들은,
이곳에 이르러서는 더 이상 아무런 쓸모가 없는 듯 깨어지고 쓰러진 형태로 사방에 나뒹굴었다.

이 잔해의 틈새마다 삼베 천과 누더기 가죽을 조잡하게 얽어 만든 거처들이 곰팡이처럼 다닥다닥 들어차 있다.
마른 나뭇가지를 태우는 매캐한 연기가 바람에 흩어지지 못하고 바닥으로 낮게 깔려 눈을 아리게 한다.

척박한 흙바닥에 주저앉아 조그만 모닥불에 두 손을 쬐던 늙은 여인이
방랑자의 무거운 발소리에 천천히 고개를 들었다.

그녀의 혼탁한 눈동자는 넘실거리는 불빛을 받아 옅게 빛났는데,
그것은 아만 정글의 지독한 녹색 안개에 아주 오랜 세월 노출된 자들만이 지니는 특유의 눈빛이다.

"아만 쪽 말투가 섞여 있군."

여인의 목소리는 말라비틀어진 가죽처럼 둔탁하다. 이름은 묻지 않아도 좋다고 했다.
어차피 이 외딴 그늘의 사람들은 그녀를 그저 ‘므나’라는 짧은 음절로 불렀다.

"정글에 밀려 들어온지 얼마 되지 않았습니다."

방랑자는 그녀의 맞은편 바위에 배낭을 내려놓으며 나직하게 답했다.
므나는 손에 쥐고 있던 짧은 나뭇가지로 타오르는 불 속을 한 번 깊숙이 휘저었다.

불꽃이 탁탁 튀며 누런 재와 매연이 허공으로 흩어진다.

"이년 전부터 도시가 자고 일어날때마다 한 뼘씩 무섭게 자라나더군.
마을 어귀까지 상인들의 돈을 받은 채석꾼들이 밀고 들어왔어.

정글의 오래된 나무를 베어내고, 아래 파묻힌 돌을 캐기 시작했지. 우리는 그냥 난폭한 길에서 비켜선 거고.
그렇게 밀리다 보니 이 돌무더기 뒤편까지 오게 된 게야."

"이 마을 상인들이 채석장에서 캐내는 게 정확히 무엇입니까.
온 가옥에 발라놓은 안료 말입니다."

방랑자의 질문에 므나의 주름진 얼굴 위로 불길이 흔들리며 더 깊은 그늘이 드리운다.
그녀는 한동안 불꽃만 바라보았다.

"정확히는 몰라. 그걸 캐러 들어간 자들 외에는 아무도 모르지.
다만 짐작은 가네만, 저 기이하게 빛나는 안료 말이네. 그건 흙이나 바위에서 나는 게 아니야.

대지 깊은 곳에서 무언가를 강제로 짜내는 거지.
우리 같은 유랑민들은 그곳을 ‘배부른 무덤’이라 부른다네.

백 년쯤은 어둠 속에 갇혀 굶주린 무언가가 거기 있고, 지상의 저 눈먼 자들이
그걸 기계로 쥐어짜 내서 부정한 빛을 만드는 거라고 들었어. 땅이 허락한 부가 아니야."

그때 모닥불 곁에 묵묵히 주저앉아 있던 젊은 사내가 거친 숨을 내쉬며 대화에 끼어들었다.
어깨에 짐승의 힘줄로 묶은 짧은 사냥용 활을 멘 채였다. 그의 이름은 사야.
사야는 므나의 말을 받으며 마른 입술을 깨물었다.

"제 형이 그 채석장 일에 인부로 끌려갔다가 석 달이 지나도록 돌아오지 못했어요.
처음 상인들은 그저 돌을 깨고 나르는 단순한 노역이라 했죠.

나중엔 경비들을 채우고 통제하더니 ‘안료 작업’이라고 다르게 불렀고.
누구도 그 지하 깊은 곳에서 정확히 무슨 일이 벌어지는지는 말해 주지 않았어요.
다만 함께 끌려갔던 사람 중 단 한 명이 한 달 전에 도망쳐 나왔는데..."

사야는 격앙되는 감정을 추스르려는 듯 잠시 말을 멈추고 제 무릎을 세게 쥐었다.

"더는 말을 못 했어요. 혀가 잘려나간 것도 아닌데 목소리가 나오지 않았죠.
누가 그의 어딘가에서 기억과 소리를 한꺼번에 도려낸 것처럼... 미친 사람마냥 허공만 바라볼 뿐이었습니다.
분명 채석장 안에는 돌 말고 다른 게 있어요."

"그 채석장이라는 곳의 정확한 위치가 어디입니까."

방랑자가 다시 물었다. 이번에는 사야의 등 뒤,
어두운 돌벽에 기대어 서 있던 다른 사내가 목소리를 내며 걸어 나왔다.

한쪽 팔에 검붉은 가죽 흉터가 길게 남은 사내, 로한이다.
그는 한때 타바리 중심부에 세워진 신전ㅡ아직 신전이라 부르긴 이르지만,
곧 그렇게 불릴 탐욕스러운 관청ㅡ의 경비였다고 했다.

"북동쪽, 상인들이 모이는 장터가 아니라 이 도시의 가장 안쪽 깊숙한 금역이오.
경비병들이 삼엄하게 조를 짜서 밤낮으로 지키는 거대한 석조 건물이 하나 있지.

나도 한때 그 건물 바깥쪽 대문을 지켰는데, 안쪽에서 들려오는 기이한 울림에 대해 의구심을 품고
너무 자주 캐물었다는 이유로 그날 밤 바로 쫓겨났다네.
그곳에서 나오는 건 안료가 아니라, 핏물 섞인 은붙이들이었어."

"채석장이 아니라 고대의 무덤이라는 뜻이군요."

방랑자는 이스카의 이야기를 떠올리며 중얼거렸다.
므나는 타들어 가는 장작을 다시 휘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무덤이든 채석장이든, 같은 말일지도 모르지. 산 사람이 죽은 것에서
무언가를 억지로 짜내려 한다는 점에서는 본질이 같으니 말이네. 죽은 자의 살점을 깎아 지상의 황금을 만드는 게지."

늙은 여인은 잠시 침묵하다가, 가라앉은 목소리로 오래된 전설을 가만히 읊조렸다.

"옛날부터 이 메데니아 정글 사람들 사이에서, 할머니의 할머니 때부터 귓속말로 전해진 이야기가 있어.
아주 오래전에 이 무너진 기단 위로, 혼자 걸어 들어온 정체 모를 여인이 있었다고 했지.

왕족의 화려한 갑옷도 아니고 평민의 조잡한 옷도 아닌, 이쪽 사람들은 본 적 없는 기묘한 옷을 입은 여인이었대.

그녀는 며칠 동안 아무런 목적도 없는 것처럼
거대한 돌더미 사이를 조용히 헤매고 다니다가, 어느 날 밤 갑자기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더군.
사람들은 그녀가 죽은 자들의 지하 도시로 들어가서 다시는 지상으로 나오지 않았다고 믿어.

누군가는 그녀가 길을 잃고 떠돌다 굶어 죽은 이방의 왕족이었다고 하고,
누군가는 거기 묻힌 무언가를 찾으러 온 정복자였다고도 해. 또 누군가는,"

므나의 목소리가 장작이 타들어 가는 소리보다 더 낮아졌다.

"그녀가 애초에 거기 묻힌 자들의 깊은 핏줄이었기 때문에,
죽은 자들이 그녀의 발소리를 알아보고 안으로 조용히 끌어들인 것이라고도 하지."

방랑자는 그 자리에서 한참을 더 머물렀다. 시장의 그늘에서 이스카가 펼쳐 보였던 낡은 지도와ㅡ
이 변두리의 늙은 여인이 들려주는 불가 이야기가 머릿속에서 정밀하게 겹쳐온다.

정복왕 루딘, 고대의 핏줄, 그리고 지하의 무덤. 셋 모두 같은 한 점을 가리키고 있었으나,
문턱 너머에 도사린 진실이 정확히 무엇인지는 누구도 명확히 손으로 짚어주지 않았다.

다인이라는 이름의 늙은 석공이 그날 저녁 늦게 가죽 자루를 멘 채 불가에 합류했다.

그의 손가락 마디는 오랜 노역으로 부풀어 오르고 거칠었으며, 손등의 갈라진 살갗마다 마른 회색 돌가루가
하얗게 묻어 있었다. 그는 도시 안쪽 신전의 거대한 외벽을 쌓는 일에 강제로 동원되었다가,
일을 마치고 돌아오는 길마다 알 수 없는 한기에 잠을 이루지 못한다고 했다.

"내가 내 손으로 쌓아 올린 저 육중한 석벽들이,
과연 지하의 무엇을 그토록 필사적으로 가리고 있는지 이제는 알아야겠소."

다인은 모닥불을 향해 거친 손을 뻗으며 읊조렸다.

"강물에 손을 씻고 돌가루를 아무리 씻어내도, 머릿속에서
음울한 고동 소리만큼은 도무지 안 씻겨나가니... 벽 너머에서 무언가 내내 울고 있단 말이오."

다인, 사야, 로한, 그리고 방랑자 케일런. 모닥불의 남은 불씨 주위로 네 사람의 시선이 마침내 얽혔다.
므나는 결의를 다지는 그들의 얼굴을 가만히 올려다보더니, 나뭇가지를 내려놓으며 짧게 단언했다.

"넷이면, 적어도 그 파수꾼들이 지키고 있는 무덤의 첫 번째 문턱은 넘을 수 있다고 들었어.
선문명의 시험이 가해오는 영혼의 무게를, 넷이서 기단 위에 나눠 짊어질 수 있다고 하더군.

다만, 그 성소의 문턱을 완전히 넘은 다음엔 어떻게 되는지 나도 몰라.
그것은 오직 신만이 알고 있겠지."


-


: 케라수


다음 날, 네 사람은 이른 새벽의 흙먼지를 뚫고 도시의 중심부로 향했다.

광장 북쪽, 타바리의 모든 돈줄과 이주민들의 시선이 수렴하는 지점에 가장 먼저,
그리고 가장 견고하게 세워지고 있는 거대한 건물이 있다.

상인들은 그곳을 신전이라 불렀지만
석공 다인의 말로는 본래 선문명의 궁전이자 법을 집행하던 엄정한 통치의 중추였던 자리라고 했다.

수천 년의 세월을 버텨낸 거대한 석조 서까래가 여전히 날카로운 선을 유지한 채 웅장한 지붕을 받치고 있었고,
이 차가운 돌기둥들 아래로 아만 정글에서 공수해 온
화맥수 통나무를 통째로 깎아 만든 거대하고 투박한 의자가 놓여 있었다.

그리고 그 의자 위에 타바리의 절대적인 지배자, 케라수가 군림하듯 앉아 있었다.

가까이서 본 그는 사방을 누르는 묵직한 기색을 온몸으로 풍겼다.
사내의 어깨는 바위 절벽처럼 넓었고, 자세는 자로 잰 듯 곧아 외려 비현실적인 긴장감을 자아냈다.

그가 입을 열 때마다 터져 나오는 목소리는
건물 내부의 석조 벽면들을 수없이 되받아치며 공간 전체를 빽빽하게 채웠다.

그러나 방랑자가 그의 발치에 한쪽 무릎을 꿇고 고개를 숙였을 때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온 것은 그의 손이었다.
화맥수 의자의 단단한 팔걸이를 움켜진 손가락 끝이, 마치 땅속의 미세한 지동에 반응하듯
가늘고 지속적으로 반응하고 있었다. 그것은 제왕의 권위와는 전혀 어울리지 않는, 무언가에 쫓기는 듯한 날 선 떨림이었다.

"바다 너머 마이소시아의 흙을 밟고, 이 변방까지 참으로 멀고도 험한 길을 걸어왔다고 들었다."

케라수의 목소리가 천장으로부터 둔탁하게 떨어졌다.

"아슬론의 뜨거운 옹기 가마에서부터 시작하여 노엠의 모래와 화론의 진흙을 지나,
아만의 잎그늘까지 돌파했다지. 이 가혹한 셀라임의 영토에 깊이 발을 붙이고 살 작정인가?"

"이 땅의 마땅한 백성으로 인정받고, 정당한 권리를 얻고 싶습니다."

방랑자가 바닥의 차가운 돌을 보며 나직하게 답했다. 케라수의 입가에 얇은 미소가 걸렸다.
상대를 저울질하며 밑바닥을 꿰뚫어 보려는 눈빛으로.

"법통과 국적이라는 것은, 단지 먼 길을 걸어왔다는 이유만으로 그리 가볍게 내어주는 것이 아니지."

그는 상체를 앞으로 가만히 기울였다. 그 순간 건물 틈새로 스며든 빛이 그의 안면을 비추었고,
방랑자는 그의 눈빛에서 권위 아래 숨은 신경질적인 번뜩임을 관찰했다.

"타바리 북동쪽 금역에, 우리 군사들이 밤낮으로 조를 짜서 삼엄하게 지키는 봉인된 건물이 있다.
그 안 깊은 곳, 산 자들의 발길이 닿지 않는 나락에 고대 문명의 인장이 묻혀 있지.

그것을 내 손 위에 온전히 가져오너라. 만약 그 금역의 압박을 견디고 인장을 쟁취해 온다면,
비로소 너를 이 땅의 백성으로, 그리고 내가 신뢰할 수 있는 자로 인정하겠다."

"그 인장이 무엇을 위한 물건입니까."

"이 도시에 온전한 법을 세우는 데 필요한 물건이다."

방랑자의 질문에 케라수의 말이 살짝 빨라졌고, 팔걸이를 쥔 손가락이 더 바짝 굳었다.

"외지인인 네가 그 이상을 더 알 필요는 없다. 멀쩡히 내 눈앞에 인장을 가져오기만 하면 된다."

방랑자는 그의 눈을 가만히 응시하다가
낮게 가라앉은 목소리로 묻어두었던 의구심을 꺼냈다.

"실례지만, 케라수라는 이름은 본래 이 셀라임 지방의 언어가 아닌 것 같습니다.
동방의 오래된 문법에 더 가깝게 들립니다."

의자를 움켜쥐고 있던 지배자의 얼굴이 흔들렸다. 아주 짧은 순간이었지만,
방랑자는 그의 눈꺼풀과 입술 가장자리가 뒤틀리는 기색을 놓치지 않았다.

"내 이름의 출처를 네가 알 필요가 있는지 의문이군. 내 요구가 너무 어려웠나?"

케라수는 시선을 옆벽으로 피하며 낮게 으르랑거렸다.

"다만 이것만은 똑똑히 알아 두어라. 이 이름을 가진 자가, 이 땅의 왕으로 불릴 자다.
케라수라는 호칭은 일개 개인의 이름이 아니다.

고대의 신성한 피를 이어받아 이 땅을 다스리는 자에게 주어지는 영광스러운 칭호지.

내가 이 서방의 기단 위에서 그 이름을 처음 가졌고, 내 뒤를 이을 후계자 케라시 또한 때가 되면
자신의 이름을 버리고 이 칭호를 고스란히 계승할 것이다. 이름이 곧 법통이며, 이 땅을 지배하는 왕조의 뼈대다."

방랑자는 더 묻지 않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문을 나서는 등 뒤로 화맥수 의자를 긁어대는 사내의 손톱 소리가 울렸다.

석문 밖 광장에는 여전히 누런 돌가루가 안개처럼 흩날렸고,
갓 칠한 안료에서 풍기는 익숙한 살갗 냄새가 자갈길을 따라 낮게 번져나갔다.

방랑자는 부츠 밑으로 전해지는 데워진 맨돌의 감각에 다시 집중하며 자갈길을 밟아 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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