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인들의 활자가 밤새 북적거리던 시인의 마을,
작은 화두 하나로도 삼삼오오 모여
온기를 나누던 소란한 골목들이 있었다.
선을 타고 흐르던 온정은 비현실적이어서
더욱 눈부셨던 유대.
세월의 풍화 앞에 예외인 성벽은 없어
이 가상의 세계도 낡아가고 또 변해간다만,
추억을 앓던 자들의 날 선 원망마저
이제는 적막 속으로 침전한다.
그것은 관조나 용서가 아니다.
뜨겁게 아파하며 비난하던 이들이
기어이 소멸해 버렸다는 뜻이다.
인간이 고통스러운 건 지우지 못하는 잔상이 있어서,
인간이 겨우 살아지는 건 되감아 볼 잔상이 있어서.
땀방울이 노을처럼 흐르던 소년의 여름,
동네 어귀를 채우던 디지몬과 포켓몬의 이름들,
작은 액정 속의 생명과 손때 묻은 종이딱지.
기억이 선명해 나는 잠시 행복하지만,
그 기억의 낙차가 완고한 현실을 자꾸만 무너뜨린다.
이 유영의 끝자락에는
어떤 허무가 나를 기다리고 있을까.
여전히 찬란한 기억의 잔해를 등진 채,
어떤 작별의 인사도 없이,
그렇게 무거워진 스위치를 내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