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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의 마을 세오
얄궂은 환송
64 2026.08.16. 17:39

1993.22















내 여행은 기상청과의 기싸움에서 패배하는 것으로 시작된다.

공항 검색대를 통과할 때까지만 해도 분명 푸르던 하늘은,
내가 목적지의 활주로에 발을 내딛는 순간 기다렸다는 듯 납빛으로 돌변한다.

혹은 여행을 앞둔 설렘이 채 가시기도 전에 몸이 먼저 반란을 일으킨다.

전날 밤 테티스 강의 거친 물살을 거슬러 홀로 밤새 노를 저어온 사람마냥
온몸의 마디마디가 비명을 지르며 천근만근 가라앉는 식이다.


예보상으로는 기가 막히게 맑았어야 할 날들이었다.
그러나 비행기 바퀴가 지면에 닿음과 동시에 하늘은 구멍이 뚫린 듯 빗줄기를 쏟아붓는다.

이 축축한 습기는 옷가지만 적시는 게 아니라 여행자의 들뜬 마음속까지 속절없이 스며든다.

행여 하늘이 자비로운 마음으로 맑은 얼굴을 보여줄라치면, 이번에는 몸이 앞장서서 판을 깨버린다.
온몸의 뼈마디가 욱신거리고 열기에 뜬 눈앞에는 현실과 환상의 경계가 흐릿해진다.


한 번은 일주일 일정으로 일본 여행을 떠난 적이 있었다.

교토의 아라시야마 근처 어느 낡은 맨션에 에어비앤비를 예약했는데,
도착하자마자 시작된 몸살이 나를 방으로 유배시켰다.

7일 중 무려 5일을 앓아누워 보낸 그 시간은 여행이라기보다 차라리 고독한 투병기에 가까웠다.

창밖으로는 내가 그토록 걷고 싶었던 정취 어린 거리들이 비에 젖어 반짝이고 있었지만,
내게 허락된 풍경은 오직 낯선 천장의 희미한 얼룩과 창문에 부딪히는 빗물 소리뿐이었다.

닷새째 되던 날, 나는 정말이지 이대로는 죽겠다 싶어 스마트폰을 쥐었다.
라인 채팅방의 번역 기능을 켜고, 내 상태가 얼마나 처참한지를 일본어 문장으로 다듬었다.

마음으로는 ‘카라다가... 맛탱이가 이떼마스’라고 수백 번도 더 외치고 있었지만
화면 위로 띄운 것은 번역기가 정중하게 다듬어낸 ‘고열이 심하고 온몸이 아픕니다’라는 정제된 문장이다.

나는 덜덜 떨리는 몸을 이끌고 밖으로 나섰다.
맛집의 대기 줄이나 유서 깊은 사찰의 정취를 느끼기 위해서가 아니다.

... 생존을 위해, 약국의 QR코드를 찍고 스마트폰 너머의 디지털 문장들에 기댄 채
약사와 기묘한 대화를 이어가야만 하는 필사의 행군.


약국의 형광등 불빛 아래에서 나는 번역기 화면을 내밀었다.
약사는 내 초점 풀린 눈동자와 땀에 절은 몰골을 보더니 이내 깊은 안쓰러움을 내비쳤다.

그는 말없이 안쪽 선반에서 알약 몇 봉지를 꺼내 건네주었다.
그 약봉투를 손에 쥐었을 때, 나는 그제야 비로소 살았다 싶었다.

내 생애 가장 치열하고도 처절했던 관광. 약사의 연민 어린 눈빛과 건네받은 알약 봉투가
여행에서 얻은 유일한 기념품이었다는 사실은 지금 생각해도 어이가 없다.


이 징크스에는 정말이지 반전이 숨어 있다.
돌아오는 날이 되면, 세상은 언제 그랬냐는 듯 눈부신 광채를 뿜어내기 시작한다는 점이다.

‘비 온 뒤 맑음’이라는 격언을 증명이라도 하려는 듯,
내가 공항으로 향하는 길 위의 하늘은 청명하기 그지없다.

구름 한 점 없는 그 푸르름은 야속할 정도로 투명해서,
마치 나를 비웃는 것 같기도 하고 한편으로는 다정한 작별 인사를 건네는 것 같기도 하다.


신기하게도 몸의 컨디션 역시 이 타이밍에 맞춰 극적인 회복을 맞이한다.
며칠간 나를 괴롭히던 열기는 썰물처럼 빠져나가고, 무거웠던 사지는 깃털처럼 가벼워진다.

이제 막 여행을 시작해도 좋을 만큼 몸 상태가 ‘끝장나게’ 돌아오는 것이다.

공항으로 향하는 열차 창가에 앉아, 햇살에 반사되어 반짝이는 이국의 풍경을 바라볼 때 느끼는 감정.
억울함에 실소가 터져 나오면서도, 동시에 가슴 한구석이 뻥 뚫린 듯 시원해지는 그 기분을 나는 사랑한다.


친구들은 이를 두고 운이 지독히도 없다며 안쓰러워한다.
틀린 말은 아니다. 하지만 나는 이 얄궂은 징크스가 꽤 맘에 든다.

여행의 시작이 화창하고 끝이 우중충한 것보다는,
비록 비바람과 열병으로 고달팠을지언정 떠나는 길에 온 세상이 나를 배웅해 주는 쪽이 훨씬 낭만적이지 않은가.

목적지에 도착했을 때 세상이 무너지는 것보다야
내가 떠나갈 때 세상이 가장 아름다운 빛으로 나를 환송하는 것이 내게는 훨씬 큰 위안이 된다.


비에 젖은 운동화와 열기에 취했던 몽롱한 기억들은 시간이 지나면 흐릿해진다.
하지만 공항으로 향하던 아침의 청명함은 오래 남는다.

빛 속에 서 있으면, 닷새간의 고단했던 시간조차
오늘의 이 맑음을 만끽하기 위해 치러야 했던 정당한 대가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언젠가 맞이하게 될 나의 마지막 날 역시 이와 같기를 바란다.

비바람 치던 생의 골목을 지나 마침내 당도한 출국 게이트 앞에서,
뒤돌아본 풍경이 얄미울 정도로 화창했으면 좋겠다.


오늘, 나는 다음 여행을 꿈꾼다.
아마 이번에도 비는 내릴 것이고, 나는 또다시 원인 모를 열병에 시달릴 것이다.

하지만 두렵지는 않다.

빗줄기 너머에 어떤 햇살이 숨어 있는지 이미 알고 있으니까.
나는 기꺼이 젖은 운동화 끈을 조여 매고 다시 길을 나서기로 한다.


떠나는 자에게만 허락되는 찬란한 환송을 위하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