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심풀이 삼아 메카에 발을 들여놓기도 했다.
몬스터를 처리하는 과정은 몹시 까다로웠지만,
손끝에 하나둘 쥐어지는 파편을 보며 마침내 B구역까지 진입했다.
하지만 내 안의 본능은 여전히 '골잡'을 원하고 있었고,
끌리듯 다시 굴을 향해 발걸음을 옮겼다.
물론 그 길에 시행착오가 없었던 것은 아니다.
실수로 세멜을 밟아 코마 상태에 빠지기도 했고,
뜻하지 않은 함정을 건드려 우왕좌왕하다 서늘한 죽음을 맞이하기도 했다.
그러나 빌린 소액결제와 생목의 빚을 털어내야 한다는 일념 하나로, 나는 묵묵히 그 고된 노가다를 견뎌냈다.
지독한 골잡이 질릴 때면, 정말 운 좋게 '집빵(죽음의 마을 빵팀)' 파티에 '빵'을 담당하는 포지션으로 얹혀 가기도 했다.
화·풍·토·수 4속성 빵을 완비하고 있었기에,
지팡이로 스왑하여 '로오의 빛'을 활용한 2초 빵을 넣으며 눈치껏 꼽사리로 끼어들었다.
하이드로 몸을 숨긴 채 보이지 않는 곳에서 저주를 걸고,
나르콜리로 상대를 무력화한 뒤 무자비하게 꽂아 넣는 기습까지.
이토록 다재다능한 법도를 왜 사람들이 안 키우는지 의문이 들 만큼, 내게 법도는 그야말로 만능이자 전천후 직업이었다.
탁월한 선택을 한 내 자신을 스스로 칭찬하며 그렇게 골잡을 이어가던 어느 날이었다.
반복되는 사냥에 지쳐 캐릭터를 구석진 안전지대에 세워두고,
구름과자 한 대를 태운 뒤 컴퓨터 앞에 돌아왔다.
화면 속에는 5직업으로 깔끔하게 조합을 맞춘 한 파티가 몬스터들을 무섭게 몰아치며 도륙하고 있었다.
넋을 놓고 그 압도적인 광경을 바라보던 중, 그들 중 무도가 하나가 내게 말을 건넸다.
"ㅎㅇ요"
"안녕하세요?"
"님 골잡 중?"
"아닙니다. 하고 있었는데 잡으셔도 괜찮습니다."
내가 목숨을 걸고 겨우 한 마리씩 끌어와 잡던 그 위협적인 몬스터들이,
그들 앞에서는 그저 추풍낙엽처럼 녹아내리고 있었다.
폭풍이 쓸고 간 자리에는 적막과 고독만이 감돌았고, 동시에 내 마음 깊은 곳에는 알 수 없는 허탈감이 묵직하게 밀려왔다.
잠시 후 다시 젠이 되는 몬스터에게 겨우 양념을 치고,
기습을 날리며 고군분투하는 내 캐릭터의 뒷모습이 어쩐지 눈물겹고 미워지기 시작했다.
'나도 저들처럼 빠르고, 압도적으로 강해지고 싶다.'
당시 어빌리티 레벨 25를 달성하면 도적 계열은 '저격'이라는 강력한 스킬을 배울 수 있었다.
하지만 어빌 올리기가 하늘의 별 따기였던 그 시절, 법도가 설 자리는 그리 넓지 않았다.
그렇다면 당장 내 법도를 한 단계 끌어올려 줄 수 있는 방법은 무엇일까.
사냥을 멈추고 쉴 새 없이 머리를 굴리던 내 뇌리에, 문득 하나의 아이템이 강렬한 잔상을 남기며 스쳤다.
영롱한 초록빛을 내뿜는, 그 시절 모든 법도들의 끝판왕이자 우상이었던 그 무기.
바로 '커스프람'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