秘, 루어스의 비밀 문서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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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이소시아 전승록]
잔영집 - 아인델
아인델의 초상 :
본 유물은 제국 창건 이전, 이른바 '기치의 시대'에 루딘왕의 산하에서
제1군 기사단을 이끌던 아인델의 생전 마지막 모습을 담은 초상이다.
살라만티아 규격의 이 작은 삼베 캔버스는 전장에 내걸리던 거창한 군기나 영주실의 벽화와 달리ㅡ
순전히 한 개인의 절박했던 순간을 기록하기 위해 제작되었다.
작자 미상의 화가는 당대 궁정의 격식을 갖추지 않은 채
거친 붓터치와 어두운 채도의 물감만을 사용해 인물의 인상을 추적했다.
그림 속 아인델은 판금 갑옷의 가슴싸개를 미처 채우지 못한 상태이며,
투구를 벗어 던진 머리칼은 서리라도 맞은 듯 백백하다.
정면을 차마 바라** 못하고 약간 비껴난 그의 시선에는 주군을 향한 맹세와
혈육의 안위를 향한 애원 사이에서 찢겨 나간 흔적이 묻어난다.
그의 오른손은 은으로 장미를 새겨 넣은 자루의 장검을 쥐고 있으나,
마디마다 피가 빠져 있어 그것이 무기를 잡은 손인지, 혹은 무너지는 자신을 지탱하는 손인지 가늠하기 어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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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인델이라는 인물의 생애는 본래 수오미 변방의 작은 가신 가문에서 시작되었다.
그가 태어나 자란 고향 일대는 사악한 주술과 수탈로 민중을 도륙하던 어둠의전설 연합의 영향권 아래에 있던 곳이었다.
그곳에서 청년기를 보낸 아인델은 세상을 유랑하던 중 테네즈의 폭정에 맞서
민중을 일으키던 루딘을 만났고, 그의 이상과 고결함에 감복해 그 자리에서 기사로서의 평생을 바칠 것을 맹세했다.
아인델은 루딘 진영의 핵심 장군으로 거듭나 수많은 전공을 세웠다.
특유의 대담한 병법과 치밀함은 어둠의전설 연합의 선봉을 연이어 격파했고,
그는 정복왕이 가장 깊이 신뢰하는 오른팔이자 칼날로서 입지를 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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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전황이 루딘 측에 절대적으로 유리하게 기울어지자,
수세에 몰린 테네즈는 전면전 대신 비열하고 치밀한 음모를 가동했다.
아인델이 전선을 누비는 동안, 그의 늙은 어머니와 아내, 어린 두 자녀는
여전히 테네즈의 강한 통제력 아래 있던 수오미 영지에 남아 있었다.
아인델은 비밀리에 사람을 보내 가족을 루딘의 점령지로 탈출시키려 시도했으나,
테네즈의 첩보망은 이를 미리 감지하고 가족들을 급습해 수오미 성탑의 감옥으로 이송했다.
테네즈는 이 사실을 철저히 은폐하고는, 비밀리에 아인델의 막사로
한 통의 밀서와 함께 어린 딸의 때 묻은 헝겊 인형, 그리고 가문의 인장 반지를 전달했다.
밀서의 요구는 명확했다.
루딘의 핵심 병력 배치도를 테네즈 측에 넘기거나,
전선에서 의문사를 가장해 루딘의 목을 바치라는 것이었다.
이에 응하지 않거나 단 한 마디라도 제3자에게 발설할 경우
그의 가족들은 매일 한 명씩 사지가 뜯겨 죽어 나갈 것이라 적혀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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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지를 전달받은 그날 밤, 아인델은 막사 안에서 홀로 극심한 혼란에 빠졌다.
이제 루딘은 그에게 충성을 다해야할 군주라기보다 도탄에 빠진 세상을 구원할 유일한 신념의 결집체였으며,
그를 배신하는 것은 자신의 영혼을 스스로 파멸시키는 일임이 자명했다.
하지만 포로가 된 이들은 자신이 목숨보다 사랑하는 혈육들이었다.
주군을 향한 기사로서의 절개와 가족을 향한 애정이라는 두 개의 거대한 신의가 그의 마음에 연옥을 만들어냈다.
그날 밤 막사 밖을 지키던 호위병들은 안에서 아무런 비명이나 소리도 들리지 않았으며,
촛불이 단 한 순간도 꺼지지 않았다고 전한다. 날이 밝고 막사 문을 열고 나온 아인델을 본 병사들은 충격에 휩싸였다.
불과 하룻밤 사이에 서른을 겨우 넘긴 혈기 왕성한 장군의 머리칼 전체가 눈처럼 새하얗게 탈색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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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발이 된 아인델은 그날 오전 루딘왕 주재의 작전 회의에 석상처럼 침묵을 지키며 참석했다.
당시 사관들의 묵서 기록에 따르면, 그는 회의 내내 주군을 차마 직시하지 못하고 고개를 숙이고 있었으나
가끔 주군을 향하는 그의 눈빛에는 말로 다할 수 없는 슬픔과 사죄가 얽혀 있었다고 한다.
그리고 그날 밤,
아인델은 자신의 모든 무기와 관직을 상징하는 인장을 막사 정중앙에 올려둔 채 홀연히 자취를 감추었다.
그의 갑작스러운 실종으로 루딘 진영은 거대한 혼란에 빠졌고 즉시 수색대가 파견되었으나,
이미 어둠의전설 연합 깊숙이 들어간 그의 행방을 찾을 수는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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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주 뒤, 루딘의 군세가 테네즈의 수오미를 함락하고 아인델의 고향 마을에 도달했을 때ㅡ
수색대는 폐허가 된 아인델의 옛 저택 지하에서 그의 마지막 흔적을 발견했다.
아인델은 테네즈의 협박에 굴복해 주군을 배신할 수도 없었고
그렇다고 가족이 죽어가는 것을 외면한 채 주군의 곁에 남을 수도 없었기에,
단신으로 수오미의 성탑에 침투해 가족들을 구출하려 시도했던 것으로 밝혀졌다.
그러나 홀로 삼엄한 경비를 뚫는 것은 불가능에 가까웠다.
저택 지하에 방치된 아인델과 그의 가족들은 이미 서늘한 시신으로 방치되어 있었다.
아인델은 온몸에 수십 개의 검상과 화살을 맞은 채,
피 투성이가 된 몸으로 가족들의 시신을 끌어안은 형태 그대로 숨을 거둔 상태였다.
테네즈는 그를 끝내 굴복시키지 못하자 결국 온 가족을 처형하고 시신을 방치하는 잔혹함을 보였던 것이다.
아인델의 참혹한 소식을 접한 루딘왕은 사흘 동안 식음을 전폐하고 매우 슬퍼했다고 전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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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딘왕은 아인델의 시신을 제국 영웅의 예우로 거두어 장례를 치렀으며,
수오미의 화가를 불러 그가 하룻밤 사이에 백발이 되어버렸던 당시의 모습을 작게나마 화폭에 남기도록 명했다.
이는 한 고결한 기사가 짊어져야 했던 비극적인 갈등과 그의 꺾이지 않은 지조를 영원히 증언하기 위함이었다.
이 초상화는 거대한 역사의 수레바퀴 아래에서
개인의 삶과 애정이 어떻게 바스러졌는지를 여실히 보여주는 사료이며,
오늘날 용자의 박물관을 찾는 이들에게 하얗게 새어버린 머리칼에 담긴 참담한 궤적을 전하고 있다.
Fi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