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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의 마을 세오
아닌 것은 아닌대로
522 2026.08.31. 13:10

사람을 지치게 만드는 유형의 인간들이 있다.

그들의 가장 큰 문제점은 스스로가 그런 사람이라는 것조차 인지하지 못하는 ‘자기객관화의 부재’에 있다.
내 곁에도 한때 그런 부류의 사람들이 수없이 포진해 있었고, 그 여파로 나 역시 점차 괴팍하게 변해가던 시절이 있었다.


처음에는 이해하려 애썼다.


그러려니하는 것이 마음 편하고, 타인을 포용하는 것이 옳다고 믿었다.
내가 믿는 예수는 누군가 한쪽 뺨을 치거든 다른 쪽 뺨마저 돌려대라 하였기에,
미성숙한 자신을 다잡으며 그 무언의 가르침을 되뇌곤 했다.




그러나 시간이 흐를수록 그것이 잘못된 해답이었음을 깨닫게 되었다.
그런 부류의 사람들은 호의를 베풀면 더 큰 호의를 권리처럼 요구했고,
양쪽 뺨을 내어주면 홀벗은 몸에 채찍질마저 서슴지 않는 이들이었다.




결국 한 명씩, 차분히 인간관계를 정리해 나갔다.




그들은 매정하게 돌아서는 나의 뒷모습을 향해 손가락질을 퍼붓곤 했다.


"이게 뭐라고 이 정도 가지고 이래? 참 예민한 놈이네."


그 비수 같은 말들이 가슴을 후벼파고, ‘정말 내가 이상한 걸까’ 흔들리던 순간도 있었다.






하지만 두 다리에 힘을 주어 묵묵히 외면한 채, 홀로 그들 사이를 벗어나 새로운 인연들을 만들어갔다.
결과적으로 지금 내 곁에는 자기객관화를 하지 못하는 부류의 사람들은 단 한 명도 남아있지 않다.
적어도 인간관계에서 오는 피로감만큼은 깨끗이 털어냈기에, 매일 맞이하는 아침 햇살이 더욱 싱그럽고 눈부시게 느껴진다.













어둠의전설을 참 오래도 해왔다.

꼬꼬마 시절에 시작한 이 게임을, 이제는 내 자식이 그때의 내 나이만큼 자랐으니 더 말해 무엇하겠는가.

지금은 나이도 들었고 시인이라는 직책을 맡으며 혹여 누군가에게 상처를 줄까 싶어 사람을 피하는 게 습관이 되었지만,
나라고 왜 누군가와 의견 대립을 하지 않고 싸우지 않았겠는가.




박터지게 키보드를 두들기고, 샷건을 내리치며 분노의 샤우팅을 질러본 경험은 나 역시 숱하게 많다.




한번은 상대의 명백한 잘못을 지적했다는 이유만으로 특정 길드에게 침략을 당해 완전히 박살이 난 적도 있었고,
초원 사냥터에서 지속적인 방해를 받으며 매장 직전까지 몰렸던 적도 있었다.




또 한번은 서로 욕설을 주고받으며 싸웠는데,
상대가 내가 욕한 부분만을 악의적으로 편집해 제출하여 고소를 당하는 일까지 겪었다.




그 후로 타인과 다투는 것이 참으로 무의미하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어둠을 플레이하는 동안 웬만해선 지적도, 가벼운 장난도 자제하며 조용히 게임에 임하려 노력했다.






시인이 되기 전의 일이다.

사냥터에서 홀로 사냥을 하고 있는데, 특정 길드의 인원이 따라다니며 말없이 몬스터를 스틸하기 시작했다.

마음속 깊은 곳에서 분노가 끓어올랐지만 꾹꾹 눌러담았다.
괜히 말을 섞었다가 싸움으로 번질까 두려워 깃털을 타고 그 자리를 피했다.




하지만 아무런 대꾸가 없자, 그들은 도리어 불법 프로그램을 사용하는 것이 아니냐며 시비를 걸고 욕설을 퍼붓기 시작했다.




지금의 나라면 시인의 자리에서 변명이라도 하거나 설득을 시도했겠지만,
당시에는 그 어떤 키보드질조차 하고 싶지 않아 그저 조용히 접속을 종료했다.




세월이 흘러 나는 시인이 되었고, 아주 가끔 그때 그 유저 중 한 명이 구설수에 휘말리는 모습을 보게 된다.




군중 속에 섞여 내가 당했던 분노를 시원하게 풀어내고 싶은 마음이 왜 없겠는가.




하지만 같이 손가락질하고 욕을 해봐야 내게 남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는 사실을 너무나 잘 알고 있다.
그저 그 구설수를 보며 피식, 어이없는 웃음 한 번 지어주고 조용히 다른 글로 시선을 옮길 뿐이다.













어둠의전설에서는 지금 이 순간에도 수많은 싸움이 일어나고, 그로 인해 상처받거나 상처를 주는 이들이 늘어간다.


비단 어둠의전설뿐이겠는가.

당장 나랏일만 보더라도 의견은 늘 둘로 갈라지고, 서로 좌냐 우냐를 가르며 편을 나누는 것이 현실인 것을.




이제는 어디론가 들어가 의견을 대립하고 싸우는 행위 자체가 피곤하게 느껴진다.

지치기도 하거니와, 이 싸움이 내게 과연 어떤 의미를 남길 것인가를 먼저 고민하게 된다.






정말 예외적인 경우라면 목소리를 내어 싸워야겠지만,
그런 특별한 상황이 아니라면 서로의 이해관계가 맞지 않는 인연은 억지로 유지하지 않는 편이 낫지 않을까.






그것은 마치 초식동물에게 육식을 강요하고,

육식동물에게 초식을 강요하는, 결코 끝나지 않을 평행선일 테니까.






비가 무척 많이 내리는 8월의 마지막 날,




해탈한 척하지만 정작 해탈이 하고 싶을 뿐, 아직 해탈하지 못한 시인 온타임이 적어 내리는 끄적거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