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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의 마을 세오
「秘」성수상인
593 2026.08.31. 20:31

秘, 루어스의 비밀 문서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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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이소시아 전승록]

잔영집 - 성수상인














: 운디네의 성수상인


운디네 마을 북쪽, 사계절 내내 차가운 물안개가 지면을 기어 다니는
연꽃 호숫가 이끼 낀 돌의자에는 성명도, 출신도, 가문도 밝혀지지 않은 수수께끼의 인물이 자리를 지키고 있다.

마을 사람들과 이곳을 거쳐 가는 외지 모험가들은
그를 그저 '성수상인'이라는 단편적인 명칭으로 부를 뿐이다.

그의 존재를 증언하는 기록은 수백 년 전의 사료에서도 발견되지만,
그 누구도 그의 본명을 들은 적이 없으며, 그 자신 역시 타인에게 입을 열어 정체를 밝힌 적이 단 한 번도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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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의 외형은 세오력이 수백 번이나 교체되는 동안 한 번의 변화도 없이 동일하게 묘사된다.

온몸을 빈틈없이 감싸는 두꺼운 검은색 로브를 걸치고 있으며,
얼굴은 붉은 헝겊 두건으로 깊게 가려져 있어 눈동자나 피부의 색, 입술의 주름조차 확인할 수 없다.

로브 아래로 드러나는 것은 성수병을 오갈 때 잠깐씩 비치는
굳은살 하나 없이 희고 비정상적으로 마른 손가락뿐이다.

그의 목소리에 대해서도 사료마다 증언이 엇갈린다.

혹자는 메마른 노인의 음성이라 하고, 혹자는 앳된 소년의 울림이라 하며,
또 혹자는 물밑에서 울려 나오는 듯한 기묘한 여성의 목소리라고도 한다.

이러한 외형적 불명확함 때문에 그가 단일한 인물로서 불사의 삶을 살아가고 있는 것인지,
혹은 대를 이어 동일한 의복과 명칭을 계승하는 밀교적 집단인지는
여전히 마이소시아 주점의 해묵은 논쟁거리 중 하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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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수상인의 존재가 공식적인 역사 문헌의 행간에 처음으로 등장하는 것은
대륙의 향방을 가렀던 운명적 사건들의 구전 사록이다.

가장 대표적인 기록은 현자 멀린을 만나기 위해
운디네 호수 인근을 지나던 청년 시절의 루딘과 관련된 일화이다.

당시 격변하는 마이소시아 정세에 깊은 고뇌에 빠져 있던 루딘은
연꽃 호숫가에서 이 성수상인을 마주쳤다고 전해진다.

상인은 루딘에게 왜인지 조건 없이 조그만 유리병에 담긴 성수를 건넸고,
루딘은 이를 마신 뒤 마음속의 거친 번민을 덜어내고 멀린과의 접선에 성공할 수 있었다는 문중 묵서가 남아 있다.

반면, 훗날 대륙을 도륙했던 폭군 테네즈와 관련된 전승은 전혀 다른 양상을 띤다.

세력을 확장하던 어둠의전설 연합의 토벌대가 운디네 마을을 짓밟았을 당시,
테네즈는 호숫가에 홀로 앉아 있던 성수상인을 발견하고
그를 미신을 파는 약장수라 치부하며 성수병을 구둣발로 짓밟고 모욕했다.

그러자 상인은 아무런 기색도 하지 않은 채 붉은 두건 너머로 조용히 어떤 혼잣말을 중얼거렸다고 한다.

그날 밤, 테네즈의 선봉 기대가 보유하고 있던 군마들이 원인을 알 수 없는 발작을 일으켜 서로를 물어뜯었고,
테네즈 본인 역시 수일 동안 피를 토하는 원인 불명의 환각에 시달렸다.

사람들은 이를 가리켜 '성수상인의 저주'라 불렀으나,
상인 본인은 이 사건에 대해 단 한 번도 인정하거나 부정하지 않았다.

이 두 사건 사이에 존재하는 시간의 격차만 하더라도 수십 년에 달하며, 이 외에도
필멸의 인간이 누릴 수 있는 수명을 훌쩍 넘어서는 이 연대기적 불일치는
그가 단순한 인간이 아니거나 혹은 신성한 책무를 지닌 고대의 존재임을 시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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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수상인은 일주일 중 6일을 항상 같은 장소,
즉 운디네 연꽃 호수 옆의 이끼 낀 돌의자에 앉아 지나가는 모험가들을 맞이한다.

그가 판매하는 물품은 오직 하나, 주먹만 한 푸른빛 유리병에 담긴 정체불명의 성수뿐이다.
그러나 그의 거래 방식은 대륙 전체를 통틀어도 유례가 없을 만큼 기괴하다.

그는 결코 물건의 정가를 먼저 제시하지 않는다.

모험가가 성수의 가격을 물으면, 그는 가려진 두건 속에서 나지막히
"네가 가진 것 중, 그 가치에 합당하다고 생각하는 것을 제시하라"는 한 문장만을 반복한다.

구매를 원하는 이는 금전 몇 닢을 내밀 수도 있고, 전장에서 얻은 귀한 보석이나 자신이 아끼는 검,
혹은 주머니 속에 들어 있던 빵 한 조각을 건넬 수도 있다.

상인은 손님이 내밀어 놓은 물건을 가만히 내려다본 뒤,
그것이 금전 수백만 닢에 달하는 보물인지 보잘것없는 돌멩이인지에 상관없이 군말 없이 성수병 하나를 넘겨준다.

더욱 기이한 점은 그가 제시된 가격을 거절하거나, 더 많은 액수를 요구하는 법이 없다는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내민 물건의 가치에 따라 성수의 양이나 질을 달리하는 것도 아니다.

거래는 언제나 순식간에, 아무런 흥정 없이 끝난다.

이로 인해 모험가들 사이에서는 '부르는 게 가격이지만,
정작 얼마를 내야 하는지는 아무도 모르는 거래'라는 말이 나돌게 되었다.

거금을 내고 성수를 산 이들은 자신이 손해를 본 것이 아닌가 하는 찜찜함을 느끼고,
동전 몇 닢을 내고 성수를 얻은 이들은 언젠가 상인이 자신의 영혼이나
운을 댓가로 앗아가지 않을까 하는 거북한 불길함에 시달리게 된다.

그가 파는 성수가 실제로 신묘한 신성력을 지니고 있는지, 아니면 한낱
호숫물을 담아 파는 저질 약장수의 상술에 불과한지 역시 밝혀지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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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디네 마을 전승과 모험가들의 입소문에 따르면, 이 성수는 전장에서 수많은 피를 묻히거나
비열한 행위로 인해 성향이 악화된 모험가들의 마음을 정화하고 원래의 깨끗한 상태로 돌려놓는 효험이 있다고 한다.

실제로 심각한 죄책감이나 광기에 시달리던 몇몇 검투사들이
그의 성수를 마신 뒤 한결 평온해진 모습으로 돌아왔다는 증언이 존재한다.

하지만 성수를 연구하기 위해 루어스 연금술 학회와 아벨 대성당 사제들이
가져간 시료들은 한결같이 상식 밖의 결과를 내놓았다.

마법적인 감정을 시도하면 어떤 때에는 평범한 맹물로 측정되고,
어떤 때에는 그 어떤 신성 마법으로도 구현할 수 없는 초월적인 정화 기운이 감지되기도 했다.

일부 사제들은 그의 성수가 마시는 자의 믿음과 죄의식의 무게에 따라 반응하는 환각 물질에 불과하다고 비하하는 반면,
연금술사들은 인간의 성향과 영혼의 균형을 비틀어버리는 고대의 위험한 비약일 가능성을 제기한다.

사는 이나 무시하는 이나 찜찜함을 감출 수 없는 이유는 바로 이 불투명한 진위 여부 때문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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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편, 성수상인은 매주 수요일이 되면 거짓말처럼 호숫가 자리에서 자취를 감춘다.
그가 어디로 가는지, 무엇을 하는지 추적하려 했던 수많은 모험가와 첩보원들은 예외 없이 실패했다.

수요일 새벽이 되면 호숫가에는 옅은 물안개만 자욱할 뿐 그의 모습은 온데간데없이 사라지며,
목요일 아침이 되면 언제 그랬냐는 듯 새로운 성수병들을 곁에 쌓아둔 채 원래의 돌의자에 앉아 있다.

운디네 마을 사람들은 그가 수요일마다 인적 없는 호수 깊은 곳이나
이계의 샘으로 들어가 새로운 성수를 조제해 오는 것이라고 추측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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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디네의 성수상인은 마이소시아라는 거대한 세력의 역사 속에서 전면에 나선 적이 없으면서도,
언제나 이 배경의 한구석을 차지해 온 수수께끼의 이방인이다.

그는 정사의 거창한 서사시보다는 모험가들의 입에서 입으로 전해지는
야사와 전승록의 한쪽 구석을 채우기에 적합한 존재이다.

그가 세상을 구원하려는 선의의 사도인지,
아니면 인간들의 죄의식과 욕망을 관조하며 유희를 즐기는 오래된 존재인지는 알 수 없다.

확실한 것은, 지금 이 순간에도 운디네의 연꽃 호숫가에는 붉은 두건을 쓴 검은 로브의 상인이 앉아 있으며,
자신의 성향과 영혼을 시험해보고 싶어 하는 모험가들에게 가치를 알 수 없는 유리병을 내밀고 있다는 사실뿐이다.



















Fi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