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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의 마을 세오
어둠 그리고 그녀 (중)
236 2026.09.11. 13:35

친구를 보니 자신감이 뿜어져 나옵니다.



친구보단 내가 더 나은 거 같은데? 캐릭도 내가 더 세고 아이템도 내가 더 많은데?
질풍노도의 학생은 앞뒤 안 가리고 어앤(어둠 애인)을 구해봅니다.



참... 다 담기에는 창피해서 간략하게만 써보면,
성급한 마음이 너무 앞섰던 나머지 넷카마한테 농락당하고 아이템까지 뜯겼습니다.



마음 고쳐먹고 공부나 하자 싶어서 그냥 말아버렸습니다.



근데 세상에 끝이라는 건 있나 봅니다.

여름에서 겨울로 계절이 바뀐 어느 날,


그 친구가 등교를 하는데 눈이 퉁퉁 부었어요.


처음엔 매서운 겨울바람에 시린 눈을 부여잡아서 그런 건가 싶었는데 누가 봐도 밤새 울었나 봐요.

왜 그럴까 걱정돼서 다가가 물었습니다.



"나 깨졌어."



친구에겐 미안하지만 걱정 보단 호기심이 더 컸습니다.



"에? 왜?"



물론 바로 이야기를 듣진 못했습니다.
침묵하는 친구에게 쪽지에 WHY?라고 적어서 수업 시간에 몰래 찔러넣었다가 맞을 뻔했거든요.



조금 진정이 된 건지 친구는 급식을 먹고 학교 내 벤치에 앉아서 차분하게 이야기를 해줬습니다.



이야기인즉슨, 어린 나이에 첫 스킨십도 하고 그러다 보니 얼마나 설렙니까.
맨날 똑같은 얘기만 하고 그러다가 이 친구가 조금씩 자신의 욕구에 대해서 이야기를 꺼냈답니다.



야화라고 하나요?


그런 걸 하니까 여자 측에서도 불쾌해서 그런 얘기는 하지 말자 하고, 뭐 그랬나 봅니다.



하지만 문제는, 그 내용을 여자 측 아버지가 알게 됐나 봅니다.

처음에는 어머니가 보셨다가 어째야 하나 싶어 아버지에게 전달했고 결국 그 아버지가 전화가 와서는 난리도 아니었답니다.



다신 만나지 마라, 더러운 욕정 난 자식이 감히 등등 어마어마한 이야기를 전해 듣고,
그 후로 여자친구 전화번호도 바뀌었다는 이야기였습니다.



"어둠에서 귓해봐."



말해 보니 '그 생각을 왜 못 했지?'라는 식으로 희망을 찾았다는 듯, 제 손을 부여잡고 고맙다고 말합니다.



안쓰럽더군요.


그렇게 또 며칠이 지났습니다.


어둠에 접속이 안 되고, 친구의 편지에도 답이 없답니다.

아마 컴퓨터를 금지당했거나 어떠한 조치가 이루어졌겠지요.



실낱같은 희망조차 사라져 버린 친구는 그날부터 더 이상 사소한 농담에도 웃지 않았습니다.



한 친구는 "고작 게임에서 만난 걸로 무슨..."이라고 핀잔을 주었지만, 전 알 수 있었어요.
이 녀석에게 그 여잔 첫사랑이자, 앞으로 살아가면서도 마음 한켠에 계속 쥐고 갈 못이 되었다는 걸요.



물론 사람이 적응의 동물이라고나 할까요.


흐르는 시간 속에 친구는 웃음을 되찾고, 현실에서 여자친구도 만나고 그렇게 어른이 됐습니다.



대학을 마치고, 군대를 마치고 험난한 사회생활에 소주 한 잔 털어넣으며 이젠 청년에서 아저씨가 돼버린 날.

시인에 당선이 되고, 같이 사냥할 친구가 필요해서 간만에 친구에게 연락을 해봅니다.



시인 됐다고 자랑하니까, 어둠 수명이 얼마 안 남은 거 아니냐고 네가 무슨 시인이냐고 히죽거립니다 -_-



이 녀석은 어릴 때 하던 어둠이 마지막입니다.


아직도 어둠이 서비스되는 것에 놀라고, 제가 시인이 된 것에 놀라고, 그리고 접속해서 바뀐 UI나 사냥 방식에 놀랍니다.



"이거저거 눌러봐, 적응해야지."



"ㅇㅇ"



답을 하고 요리조리 캐릭을 움직이던 친구가 갑자기 움직임이 멈춥니다.



그리고 전화기가 울립니다.



친구 녀석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