秘, 루어스의 비밀 문서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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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이소시아 전승록]
잔영집 - 그랜드 헬 피닉스 크로어
: 그랜드 헬 피닉스 크로어
마법사와 장인들이 벼려낸 수많은 명검 가운데
검이 스스로의 의지와 혼을 품게 되는 무구는 드물지 않다.
이카루스 대장장이의 집착과 광기가 붉은 아마만티움에 그대로 녹아들어 굳은 ‘에델바인’이나,
자신을 쥔 기사의 성스러운 맹세를 기억하여 주인이 죽기 전까지는 결코 검집을 떠나지 않던 ‘르메르의 장검’,
그리고 전장의 원한을 빨아들여 밤마다 주인의 귓가에 끊임없는 군가를 읊조리던 ‘메르카바의 은도’처럼
혼이 깃든 검들은 저마다 고유한 기이함과 비화를 품기 마련이었다.
그러나 무구에 깃든 영혼이 주인의 의지를 높이고 충성을 완성하는 것을 넘어,
자신을 쥔 주인의 생명과 자아, 영혼의 정수를 갉아먹어 스스로를 완성해 가는 무구는
세계수 이래 역사를 통틀어도 극히 드물며 지극히 위험하다.
이러한 전승과 비극의 정점에 서 있는 악명 높은 무구가 바로
제국 유물관 제1보존실 특수 격리 구역에 안치된 ‘그랜드 헬 피닉스 크로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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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검의 본래 모습은 고대 엔다이론 양식으로 정밀하게 제련되었던 명검 '그레이트 헬 피닉스 크로어'였다.
붉은 화염을 형상화한 듯한 날카롭고 유연한 검신,
그리고 불새의 날개를 모티브로 양끝이 거칠게 꺾여 올라간 막이는
본래 지옥의 불길을 벼려 만든 강철이라 불리며 용맹한 검투사들의 과시용 무구이자 상징으로 통했다.
당대까지만 하더라도 이 검은 강한 마나 친화성을 지닌 훌륭한 무기에 불과했으며,
여러 귀족 가문과 대장장이들의 손을 거치며 전장의 병기로 소비되었다.
그러나 이 무구가 일정한 계기를 통하여 검의 아티팩트적 자아ㅡ
즉 영혼을 품게 되면서부터 비극의 수레바퀴가 구르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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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혼을 품기 시작한 '그레이트 헬 피닉스 크로어'는
자신을 쥔 주인의 정신과 체내 마력을 좀먹어 들어가기 시작했다.
검은 주인의 지혜와 집착, 실의와 절망,
그리고 전장에서 흘리는 핏물을 흡수하여 동력으로 삼아 검신의 형상을 비틀고 확장했다.
검은 주인의 마력을 소비하는 데 그치지 않고 주인의 자아를 파먹으며 그 자리에 악의를 채워 넣었다.
그리고 마침내 주인의 영혼을 완전히 잠식하여 껍데기만 남긴 채 삼켜 버리는 순간
이 무구는 마침내 '그랜드 헬 피닉스 크로어'로 전이하는 특성을 지니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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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상 수많은 명검이 주인을 선택하여 승리로 이끌었다고 전해지지만
이 검은 오직 주인을 먹어 치움으로써만 자신의 존재를 완성했다.
당대 대륙을 핏빛 공포로 몰아넣었던 폭군 테네즈 역시 토벌전 도중 이 악명 높은 검을 손에 넣게 되었다.
테네즈는 강력한 주술과 사악한 마술에 능통했던 자였으나
검을 쥐는 순간 느껴지는 지독한 식탐, 영혼을 끌어당기는 떨림을 감지해 냈다.
이 검을 계속 쥐고 있다가는 자신의 절대한 권력과 영혼마저
검의 먹이로 전락할 것임을 깨달은 테네즈는 검을 사용하기를 한사코 거부했다.
하지만 이 가공할 파괴력을 버리기 아까워했던 테네즈는, 자신의 충직한 신하이자
최정예 4군단의 장군이였던 '샤베스'에게 거창한 치하를 가장하여 이 검을 하사하는 비열함을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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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군의 음모를 알지 못한 채 검을 하사받은 샤베스는
검이 내뿜는 압도적인 불의 권능과 붉은 마력의 궤적에 도취하여 수많은 전투에서 승리를 거머쥐었다.
그의 검이 한번 휘둘러질 때마다 전장은 불바다가 되었고, 적들은 그 모습에 공포를 느꼈다.
그러나 승리의 영광도 잠시, 날이 갈수록 샤베스의 이성은 마모되고 안면은 핏기를 잃어 잿빛으로 변해 갔다.
밤마다 검신 깊은 곳에서 울려 나오는 비명과 애원에 시달린 그는 한 순간도 편히 눈을 감지 못했다.
샤베스는 점차 자신의 인간적인 의지를 완전히 잃어버렸고,
검이 이끄는 대로 무차별적인 도륙을 일삼는 광기사로 전락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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훗날 루딘의 사관들이 샤베스의 동선을 추적하여 작성한 기록에 따르면,
샤베스가 완전히 영혼을 먹혀 파멸하기까지 이 검이 삼킨 영혼은 이전 주인들
그리고 피비린내 나는 전장의 희생자들과 샤베스 본인을 포함해 총 132인에 달했다고 한다.
132명의 죽음과 절망, 그리고 원한이 겹겹이 봉인된 검신은 비로소 검붉은 빛을 내뿜는 하나뿐인
'그랜드 헬 피닉스 크로어'로 완결되었다. 샤베스의 몸이 마침내 재가 되어 무너져 내렸을 때,
검은 만족스러운 듯 붉은 핏기를 뿜어내며 전장 한가운데 홀로 꽂혀 있었다고 전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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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네즈의 어둠의전설이 루딘의 결단과 기사들의 피로써 마침내 꺾이고,
루딘의 군세가 마이소시아 전역을 정벌했을 때 이 악마의 검은 루딘의 손에 입수되었다.
검의 비극적인 내력과 위험성을 일찍이 간파한 루딘은 이 무구를 자신의 무기로 사용하지 않았으며,
휘하의 가장 뛰어난 마법사인 '라쿠스'에게 명하여 검에 깃든 132인의 영혼과 영혼의 식탐을 영원히 봉인할 것을 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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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법사 라쿠스는 제국의 온갖 고대 마법진과 정화의 결계를 동원하여 검을 파괴하거나 식탐을 억누르려 시도했다.
그러나 검을 망치로 내리치면 강철은 파괴되지 않고 오히려 기괴한 비명을 질렀으며,
정화의 신성 마법을 쏟아부어도 132인의 영혼이 얽혀 만들어 낸 증오는 그의 염원을 가볍게 튕겨냈다.
마땅한 봉인 방법을 찾지 못하고 결계가 산산조각 파쇄되어
검의 악의가 다시 온 세상으로 뿜어져 나오기 직전의 위기에 몰리자, 라쿠스는 마침내 비극적인 결단을 내렸다.
그는 검의 끝없는 식탐을 멈추기 위해
자신의 고결한 마력과 영혼을 던져 검의 불꽃을 막아버리는 제물 봉인을 감행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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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쿠스의 영혼이 검의 핵에 박혀 들면서, '그랜드 헬 피닉스 크로어'는
그제야 파괴의 화염을 멈추고 억겁의 잠에 빠져들었다.
마법사의 숭고한 희생으로 검은 굳어버렸으나, 이 검에 얽힌 전승은 여기서 끝나지 않는다.
오늘날 격리 유리관 속에 안치된 이 검은 평소에는 마른 핏자국 같은 검붉은 강철의 질감을 유지하고 있다.
그러나 루딘이 생전에 사용했던 투구나 장신구, 혹은 그가 내린 은장도 따위의 유물이 유리관 곁으로 다가오면,
굳어 있던 검신의 미세한 흠집 사이에서 검붉은 피가 서서히 배어나오는 기이한 현상이 지금도 목격되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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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어스의 학자들은 이를 두고 자신의 영혼을 바치게 될 봉인을 명했던 주군 루딘을 향한
마법사 라쿠스의 억울한 원망이 피어오르는 것이라 해석하기도 하고,
혹은 132인의 갇힌 영혼들이 홀리루딘의 기운에 반응하여 일으키는 어떠한 발작이라 추측하기도 한다.
Fi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