秘, 루어스의 비밀 문서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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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이소시아 전승록]
잔영집 - 타고르의 전서구
타고르의 전서구 :
마이소시아 대륙 북동부,
제국의 세속적인 개발과 무분별한 토목의 손길이 닿지 않은 고요의 땅 타고르는
수백 년 전 혼돈의 시대가 남긴 서정적인 시어를 고스란히 품고 있는 전설의 도시이다.
이곳은 고목의 결을 살려 지은 목조 가옥들과
초록빛 이끼가 단단히 박힌 기와지붕들이 무성한 산림의 그늘 아래 오붓하게 모여 있다.
오랜 세월 대륙을 누비며 몸과 마음이 피폐해진 모험가들과, 숲의 길을 따라 살아가는 우직한 나무꾼들이
한데 어우러져 전장의 피로를 씻어내는 휴양지이자 안식처로 자리 잡은 마을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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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마을은 테네즈와의 통일전쟁에서 위대한 승리를 거둔 루딘이
전승기념으로 세운 '홀리루딘성'이 그리 멀지 않은 인근 산자락에 굳건히 자리 잡고 있으며,
대륙의 향방을 갈랐던 '백년전쟁' 당시 참혹한 도륙을 이겨내고
끝내 정의를 지켜냈던 영광의 전적지로서 고결한 자부심을 간직하고 있다.
이처럼 영광과 안식이 공존하는 타고르 마을의 가장 높은 숲 어귀, 울창한 참나무와 삼나무들이
호위하듯 둘러싸인 언덕배기에는 모자이크 유리창과 정갈한 오크나무 들보가 인상적인 '전서구 관사'가 자리하고 있다.
마을의 다른 풍경들과 마찬가지로 고풍스러운 원형을 그대로 유지하고 있는 이 건물은
한때 마이소시아 전역의 염원을 잇던 경이로운 역사의 현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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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곳이 전성기를 맞이했던 것은 선문명의 멸망 이후, 혼돈의 시대였다.
당시 마이소시아 전역은 길목마다 출몰하는 마물들과 제어를 잃은 타락한 영주들의
무자비한 수탈로 인해 영지 간의 물자 수송과 연락망이 단절되어 있었다.
수많은 모험가가 깊은 던전과 격전지에서 목숨을 잃거나 고립되었고,
고향에 남겨진 이들은 유품이나 소식조차 전해 듣지 못한 채 기약 없는 슬픔 속에 나날을 보내야 했다.
육로를 통한 이동이 곧 목숨을 거는 위험을 의미하던 그 절박한 시기, 타고르의 전서구 관사 지붕 위에서
푸른 하늘을 향해 날아오르기 시작한 수백 마리의 전서구들은 마이소시아에 내려진 구원의 기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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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고르 전서구들의 능력은 작은 양피지 편지를 다리에 묶어 날라주는 수준에 머물지 않았다.
이 기이한 새들은 사람의 손바닥만 한 자그마한 체구임에도 불구하고,
자신보다 수십 배는 더 무게가 나가는 모험가들의 무거운 검과 판금 갑옷, 희귀한 보석 상자,
심지어 수천 닢의 금전이 담긴 비단 주머니까지 두 발톱에 거침없이 쥐고 먼 거리를 가로질렀다.
험준한 산맥을 넘고 사악한 마물들이 들끓는 늪지대를 지나,
모험가가 깊은 지하 던전 수십 층에 들어서 있더라도 조금의 실수 없이 그 위치를 찾아내 물품을 전달하고 돌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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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많은 백마법사와 연금술사들은 타고르 전서구들의 이 상식 밖의 비행 능력에 의문을 품고 연구를 거듭했다.
마나의 비약이 사용되었다거나, 공간을 왜곡하는 환영 마법이 적용되었다는 온가지 학설이 분분했으나,
그 어떤 공식으로도 작은 새가 금화 상자를 들고 폭풍우를 뚫고 날아가는 현상을 완벽히 설명해 내지 못했다.
훗날 밀레스 신전 깊은 곳에 봉인되어 있던 묵서 기록이 해독되면서 비로소 밝혀진 사실은,
이 새들이 평범한 조류가 아닌 '셔스'의 축복을 받은 특별한 생명체들이었다는 점이다.
혼돈의 시대, 세상의 모든 온기와 신뢰가 말라붙어가던 때에 셔스는 도탄에 빠진 필멸자들이
서로의 온기와 서약을 포기하지 않도록 자신의 깃털 하나를 깎아 타고르의 전서구들에게 내렸다.
셔스의 축복을 받은 전서구들은 영혼의 무게를 감지하는 눈을 가지게 되었고,
'물건을 보내는 이의 절박한 마음과 받는 이의 기도의 무게'만을 가슴에 품고 날아올라 공간을 뛰어넘을 수 있었다.
그렇기에 금화 천 닢이나 무거운 갑옷이라 할지라도,
그 안에 담긴 애정과 신의가 진실하다면 전서구들에게는 무엇보다 가볍게 느껴졌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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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시기 관사에는 매일 새벽마다 수백 마리의 비둘기들이
발톱에 무구와 금전을 쥐고 숲의 안개를 가르며 내려앉는 장관이 연출되었다.
전선에서 피를 흘리던 기사들은 타고르에서 날아온 전서구가 건넨 고향 가문의 반지를 쥐고 눈물을 흘렸으며,
지하 감옥에 갇혔던 모험가들은 새가 물어다 준 한 병의 시약으로 목숨을 건졌다.
전서구 관사는 물류의 거점을 넘어
절망에 빠진 대륙 사람들의 영혼과 신념을 이어주는 유일한 구원의 창구로 기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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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이 거룩한 기적은 혼돈의 시대 끝, 통일전쟁이 승리로 끝나고
대륙에 점차 안정이 찾아오며 모험가들의 마음속에 간절함이 희미해지기 시작하면서 전환점을 맞이했다.
세상이 평화로워지자 모험가들은 더 이상 생사를 넘나드는 신뢰나 숭고한 염원을 담아 물품을 보내지 않았다.
전서구들의 다리에 묶이는 것은 가벼운 욕망과 사사로운 계산,
그리고 서로를 속이려는 비열한 기만과 사기가 대부분을 차지하기 시작했다.
자비의 축복을 품었던 새들은 전달되는 물품에 스며든 인간들의 어두운 탐욕과 이기심의 무게를 견디지 못했다.
영혼의 무거움에 짓눌린 전서구들은 하나둘 하늘에서 날개를 접고 떨어졌으며,
그들의 깃털은 빛 대신 어둠에 마르고 부서져 내렸다.
셔스의 축복을 받았던 전서구들의 수는 날이 갈수록 급격히 줄어들었다.
새들이 더 이상 날아오르지 못하게 되자, 대륙의 가장 거룩한 창구였던
타고르의 전서구 건물 역시 문을 걸어 잠그고 공식적인 운영을 중단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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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날 숲의 정적에 싸여 있는 타고르 전서구 관사의 지붕과 나뭇가지 위에는,
길을 잃은 평범한 비둘기 몇 마리만이 찾아와 스산한 바람 속에 머물다 갈 뿐이다.
하지만 관사의 문은 닫혔으되 구조와 현판은 백년전쟁의 영광을 기억하듯 깨끗하게 보존되어 있으며,
숲을 찾는 휴양객들은 이 관사 앞을 지나며 마이소시아의 숭고했던 신의를 되새기고는 한다.
사관들은 이곳을 기록하며 다음과 같은 역주를 남겨 두고 있다.
"기적을 멈추게 한 것은 전장의 마물이 아니었다.
거룩한 날개를 추락시킨 것은 그 다리에 얹혀진 인간들의 욕망과 이기심이었다.
셔스의 새들은 날아오르기를 멈추었으나, 통일전쟁의 영광과 숲의 안식을 품은 타고르의 언덕 위에는
한때 사랑을 운반했던 온기 어린 기억이 잔영으로 남아 있다."
Fi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