秘, 루어스의 비밀 문서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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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이소시아 전승록]
초를 든 자들
인물 기록 제 204호 : 모르칸 바일
모르칸 바일은 백년전쟁 직전,
피에트 일대를 중심으로 20년에 걸쳐 강도와 살인을 저지른 무리의 우두머리다.
루어스의 공문서는 이 무리를 "바일 일당"이라 불렀고, 아벨 교구의 명부는 "초를 든 자들"이라 적었다.
피에트 사람들은 어느 쪽 이름도 쓰지 않았다.
그들은 그저 "그 사람들"이라고 했다.
루딘의 승리 이후 마이소시아가 겪은 단일 범죄 가운데 이만큼 많은 목숨을 앗아 간 예는 없다.
이 인물에 관한 문서들은 같은 사람을 두고 저마다 다른 말을 한다.
이 점을 먼저 유념해 두어야 한다.
경비대 일지와 교구 명부, 뤼케시온 항구 환전상의 장부, 왕립 재판소 심문 기록,
그리고 시장에서 불리던 노래까지. 어느 하나도 다른 하나와 꼭 맞아떨어지지 않는다.
경비대는 그를 흔한 강도로 보았고, 교회는 악령에 홀린 자로 보았으며,
시장의 노래는 그를 몸을 바꾸는 괴물로 만들었다. 재판소 서기들만은 그를, 20년 동안
저지른 일을 날짜 하나 틀리지 않고 장부 읽듯 막힘없이 늘어놓는 사내로 적었다.
나는 이 문서들을 될 수 있는 한 원문 그대로 옮기고,
서로 어긋나는 곳은 어긋나는 대로 남겨 두었다. 판단이 필요한 대목에서는 그 근거를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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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바일은 세오력 63년 무렵 메하디 늪 동쪽 기슭의 웩스모어에서 태어났다.
웩스모어는 늪가 벌집에서 거둔 밀랍과 늪 기름으로
양초를 빚어 팔던 마을로, 집집마다 마당에 밀랍 솥이 걸려 있었다.
봄이면 남자들이 배를 몰고 늪 안쪽 갈대숲까지 들어가 벌집을 따 왔고,
여름 내내 여자와 아이들이 그것을 솥에 녹여 걸렀다.
밀랍을 거르는 동안 마을 사람들이 함께 부르던 노래가 있었다고 하나
노래를 기록한 이는 없어 지금은 전하지 않는다.
마을에 들른 피에트 상인 하나는 자신의 수첩에
"웩스모어에서는 바람이 어느 쪽에서 불어도 꿀 냄새가 난다"고 적었다.
이 마을의 초는 불꽃이 낮고 그을음이 적어 값이 꽤 나갔다.
인근 교회들과 밀레스의 여관들이 단골이었고, 피에트 교구의 물품 장부에는
"웩스모어 초 두 상자, 심지 굵은 것"이라는 항목이 해마다 같은 글씨로 되풀이된다.
루어스 대성당도 한동안 제단의 초를 웩스모어에서 들였다.
교회의 회계 장부를 보면 세오력 60년대 내내 봄과 가을,
해마다 두 차례씩 웩스모어 길드와 거래가 오갔다.
마을의 일은 웩스모어 공방 길드가 맡아 다스렸다.
길드는 가을마다 마을의 모든 공방에서 초를 한 자루씩 걷어 품질을 가렸다.
검사는 바람 한 점 들지 않도록 문과 창을 모두 막은 밀랍 창고 안에서 치렀다.
초에 불을 붙여 한 시진 동안 태우면서 불꽃의 높이와
그을음의 양, 녹아 흐르는 밀랍의 모양을 살폈다.
기준에 못 미친 공방은 벌금을 물었고,
몇 년 내리 못 미치면 웩스모어의 이름을 달고 초를 팔 수 없었다.
길드 장부는 이 검사의 결과를 빠짐없이 적어 두었고, 그 덕에 오늘날까지 장인 여럿의 이름이 전한다.
아버지 아단 바일은 그 장부에 가장 자주 오르내리는 초장이 가운데 하나다.
3년 연속 으뜸을 받은 때가 있었고, 심지에 삼 대신 값싼 갈대 속을 섞었다가 벌금을 문 해도 있었다.
벌금 기록 옆에는 아단의 해명이 한 줄 붙어 있다. "올해 삼값이 너무 올라서..."
길드는 해명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어머니의 이름은 전하지 않는다. 모르칸 아래로 누이가 둘 있었다.
모르칸의 어린 시절에 관해서는 길드 장부에 한 줄이 남아 있다.
"아단의 아들 모르칸, 제 손등에 녹인 밀랍을 붓고 굳을 때까지 들여다봄.
까닭을 물으니 굳는 모양을 보고 싶었다 함. 아단에게 벌금 10만 전." (웩스모어 공방 길드 장부, 세오력 70년)
웩스모어에는 밀랍 솥 곁에서 아이가 다치면 그 부모에게 벌금을 물리는 관례가 있었다.
같은 장부의 다른 해에도 솥에 데인 아이 때문에 부모가 벌금을 낸 기록이 여럿 보인다.
다만 그 아이들은 모두 실수로 데었다.
제 손으로 밀랍을 부은, 정신이 좀 이상한 아이는 장부 어디에도 모르칸 말고는 없다.
이때 생긴 화상 자국은 평생 그의 왼손등에 남았고, 훗날 그를 쫓는 문서마다 맨 앞줄에 오른다.
열두 살 무렵부터 모르칸은 아버지의 공방에서 심지를 꼬았다.
세오력 75년 가을의 길드 심사에서 바일 공방의 초가 다시 으뜸을 받았는데,
검사관은 그 옆에 "이번 초는 아들이 빚었다 함. 불꽃이 유난히 오래 흔들리지 않음"이라고 적었다.
웩스모어는 세오력 78년 가을에 불탔다.
밀레스 경비대 일지는 이 일을
"뮤레칸의 잔병이 늪을 건너 물러나며 마을에 불을 놓음"이라고 짧게 적었다.
그해 여름 뮤레칸의 부활을 꿈꾸던 어둠의전설 연합의 잔당은
밀레스 동쪽 고개에서 루어스 기사단에 쫓겨 메하디 늪 쪽으로 흩어졌다.
그 가운데 한 무리가 늪을 건너며 웩스모어를 지나갔다.
피에트 교구의 사망 명부는 조금 더 자세하다.
그 한 주에만 웩스모어 사람 마흔한 명의 이름이 올라 있고, 그 가운데 아단 바일과 그 아내, 두 딸이 있다.
사망 원인 항목에는 마흔한 명 모두 "불"이라고만 적혀 있다. 명부를 쓴 사제는 아래 여백에 몇 마디를 덧붙였다.
"창고의 밀랍이 모두 녹아 사방으로 흘렀다 한다.
불이 꺼진 뒤에도 사흘 동안 대지가 식지 않았다." (피에트 교구 사망 명부, 세오력 78년 10월)
웩스모어는 다시 세워지지 않았다.
살아남은 몇몇은 피에트와 밀레스로 흩어졌고, 길드 장부는 그해 가을 검사 항목을 반쯤 채운 채 끊겼다.
마지막 쪽은 밀랍이 묻어 다음 쪽과 들러붙은 채로 문서고에 들어왔다.
모르칸의 이름은 사망 명부에 없다.
그때 그는 열다섯 안팎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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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마을이 불탄 뒤 한동안 바일의 행적은 어떤 문서에도 나타나지 않는다.
이 시기에 관해 내가 찾아낸 것은
그와 이어져 있을지도 모르는 기록 두 줄이 전부다.
하나는 세오력 79년 겨울, 피에트 교구 묘지기의 일지다.
"웩스모어의 무덤 자리에 밤마다 누가 와서 초를 켜 놓고 감. 아침까지 안 꺼짐.
봉분 위에 밀랍이 둥글게 굳어 있음. 누가 켜는지 모름. 당분간 지켜볼 것."
(피에트 교구 묘지기 일지, 세오력 79년 12월)
다른 하나는 세오력 80년 봄, 피에트 시장 감독관의 기록이다.
감독관은 허가 없이 초를 팔던 소년 하나를 시장에서 내쫓았다고 적고,
그 초에서 꿀이 쉰 듯한 냄새가 났다고 덧붙였다. 소년의 이름은 전해지지 않는다.
같은 쪽에는 상한 생선을 판 어물전 둘과 저울을 속인 곡물상 하나의 이름이 나란히 적혀 있다.
감독관에게 그날의 소년은 그들과 다를 바 없는 골칫거리 가운데 하나였다.
두 기록이 모르칸을 가리키는지는 확인할 길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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