秘, 루어스의 비밀 문서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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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이소시아 전승록]
초를 든 자들
3. 바일이 다시 기록에 얼굴을 내미는 것은 세오력 81년,
엘드윈 로크라는 사내와 함께다.
로크는 루어스 교회의 애콜라이트였다.
애콜라이트는 사제를 도와 제단을 돌보는 자리로, 미사 전에 제단 초에 불을 붙이고
미사가 끝나면 그 불을 끄는 일이 가장 중요한 몫이었다.
헌금을 세어 장부에 올리는 일도 애콜라이트가 거들었다.
로크는 그 자리에서 6년을 지냈다.
교회 봉직 기록은 그가 멘트 문자와 옛 문서에 밝아 서고 정리를 자주 도왔다고 적고,
그 아래에 "말이 느리고, 설교하듯 함"이라는 평을 달아 두었다.
칭찬인지 흉인지는 분명하지 않다. 그러다 그는 공물로 들어온 은그릇을 빼돌린 죄로 쫓겨났다.
교회의 징계 기록에 그의 이름이 있다.
"애콜라이트 엘드윈 로크. 공물 은기 셋을 몰래 내다 판 죄로 파문함."
(루어스 교회 징계 기록, 세오력 81년)
그 아래에 다른 손으로 쓴 글씨가 한 줄 붙어 있다.
"그의 방에서 금지된 서책이 나왔음."
어떤 책이었는지, 그 책을 어떻게 처리했는지는 적혀 있지 않다.
나는 교회 서고에 문의했으나, 그해의 압수 목록은 백년전쟁 중기의 화재로 남아 있지 않다는 답이 돌아왔다.
다만 같은 해 교회 서고 대출 장부에는 로크가 서고 정리를 돕던 무렵
"늪지의 옛 제례에 관한 필사본" 한 권이 행방불명으로 처리된 항목이 있다.
그 항목을 적은 손은 로크 자신이다.
두 일이 같은 책을 가리키는지는 알 수 없으나, 나는 그 가능성을 버리지 않는다.
은그릇 세 개 값으로 파문까지 당하는 일은 드물다.
그 무렵 교단의 다른 징계 기록을 보면, 그만한 공물을 빼돌린 자들은 대개 매를 맞고 봉직을 잃는 데서 그쳤다.
로크의 파문에는 금지된 서책이 더 큰 몫을 했다고 보는 편이 자연스럽다.
징계 기록이 은그릇을 앞세우고 서책을 뒤에 다른 손으로 덧붙인 것을 보면,
교회는 서책에 관한 일을 기록의 겉면에 드러내고 싶지 않았던 듯하다.
쫓겨난 로크는 메하디 늪 남쪽을 떠도는 무리에 섞여 들었고, 거기서 바일을 만났다.
두 사람이 어떻게 손을 잡게 되었는지는 훗날 재판소에서 바일 자신이 짧게 말했다.
문: 로크를 어디서 만났는가.
답: 늪에서. 그가 내 초를 샀다.
문: 무슨 초였는가.
답: 물론 내가 만든 초였지. 별것 아니었다.
문: 그는 왜 초를 샀는가.
답: 모른다. 냄새를 맡아 보더니 값을 두 배로 쳐 주겠다더군.
(루어스 왕립 재판소 심문 기록, 제3일)
같은 날 기록의 조금 뒤에는 이런 문답도 있다.
문: 로크가 너에게 무엇을 가르쳤는가.
답: 가르친 건 없다. 읽어 줬지.
문: 무엇을 읽어 주었는가
답: …책. (같은 기록, 제3일)
심문관은 그 책이 무엇이었는지 거듭 물었으나 바일은 더 답하지 않았다.
서기는 그 옆에 "웃음"이라고만 적었다.
재판소는 이 무렵 바일이 멘트 문자는 물론
공용 문자도 겨우 제 이름 정도만 쓸 줄 안다는 것을 확인해 두었다.
바일과 로크가 함께 움직인 흔적은 세오력 81년 늦가을부터 피에트 경비대 일지에 나타난다.
처음에는 늪가 외딴 집들에서 가축과 곡식이 사라지는 정도였고, 일지는 이를 도둑의 짓으로 적었다.
그러다 세오력 82년 봄, 피에트 남쪽 갈대밭 끝의 한 집에서 일가족 넷이 잠자리에 누운 채 숨진 것이 발견되었다.
"갈대밭 끝 크레인가의 넷 모두 자리에 누운 채 죽음. 다툰 흔적은 없음. 빗장은 안에서 열려 있었음.
방바닥에 밀랍 녹은 자국. 늪지의 가스에 질식한 것으로 봄." (피에트 경비대 일지, 세오력 82년 4월)
이것이 바일 일당의 첫 살인이었다는 사실은 18년 뒤 재판소에서 바일의 입으로 밝혀졌다.
그때까지 크레인가의 죽음은 가스 탓으로 처리되어 있었다
크레인이라는 이름은 그보다 앞서 한 번 피에트 경비대 일지에 나온다.
웩스모어가 불탄 그 주, 일지 끝에 다른 일들과 섞여 이런 줄이 있다.
"갈대밭 끝 크레인, 늪을 건너던 뮤레칸의 잔병 몇을 배로 건네주고 삯을 받았다는 말이 돎.
확인되지 않음." (피에트 경비대 일지, 세오력 78년 10월)
경비대는 이 말을 확인하지 않았고, 크레인을 불러 묻지도 않았다.
일지의 같은 날 항목 바로 아래에는 술에 취해 다리에서 떨어진 짐꾼 이야기가 이어진다.
18년 뒤 재판소가 왜 살육의 시작이 크레인가였느냐고 물었을 때, 바일은 가까워서라고 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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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바일 일당의 수법은 한결같았다.
밤에 외딴 집이나 작은 마을로 숨어들어 문틈과 창틈에 초를 대고 그 연기를 안으로 들인다.
연기를 들이마신 사람들은 아주 깊이 잠들어 어떤 충격과 소리에도 깨지 않는다.
그동안 일당은 집 안을 털고, 잠든 사람들을 해쳤다.
이 초가 무엇으로 만들어졌는지는 문서마다 말이 다르다.
경비대 일지는 늪에서 나는 독풀을 섞은 것으로 짐작했고, 교회들은 악령의 힘이 깃든 것이라 했다.
피에트 시장의 약초상과 흑마법사들 사이에서는 늪 바닥에서 캐는 검은 뿌리를 달여
밀랍에 섞으면 잠이 깊어진다는 말이 돌았고, 한동안 피에트 시장에서 검은 뿌리를 사고파는 일이 금지되기도 했다.
재판소 기록에는 압수된 초의 재료가 자세히 적혀 있으나,
문서고는 왕명에 따라 그 부분을 열람 제한으로 묶어 두고 있다.
초의 생김새에 관해서는 기록이 비교적 고르게 남아 있다.
압수품 목록에 따르면 바일의 초는 손가락 두 마디 남짓한 짧은 초로,
웩스모어 초보다 짙은 갈색을 띠었고 심지가 유난히 굵었다.
한 자루가 다 타는 데 반 시진이 채 걸리지 않았다.
일당은 한 집에 대개 두세 자루를 썼다. 다 쓴 토막은 남기지 않고 거두어 갔기 때문에,
현장에는 방바닥에 녹아 흐른 밀랍 자국만 남았다.
재판 기록의 다른 부분에서 분명하게 확인되는 사실이 하나 있다.
때로 바일은 초를 만드는 데 필요하다며 아이를 가진 여인들을 노렸다.
판결문에 따르면 그렇게 목숨을 잃은 여인은 열아홉이다.
그들의 이름은 판결문 끝에 따로 적혀 있는데, 그 가운데 다섯은 이름 대신 "운디네의 젊은 아낙",
"밀레스 숲지기의 처"처럼 사는 곳과 처지로만 남았다. 그들을 찾아 묻어 줄 가족이 아무도 남지 않았기 때문이다.
아벨 교구 명부에는 그 다섯 가운데 하나로 보이는 여인의 장례가 적혀 있다.
교구가 비용을 대어 묻었고, 묘비에는 이름 대신 "늪가에서 온 여인"이라 새겼다.
이 열아홉의 죽음은 바일의 범행 가운데서도 가장 늦게 드러났다.
피해자들이 사는 곳이 서로 멀리 떨어져 있었고,
대부분 일가족이 함께 숨진 사건 속에 섞여 따로 눈에 띄지 않았다.
재판소가 그 공통점을 찾아낸 것은 바일이 붙잡힌 뒤, 그가 진술한 날짜와 장소를
교구 명부와 하나하나 맞대어 본 다음이었다.
바일은 이 초의 힘이 늪 깊은 곳에 사는 오래된 무언가와의 약속에서 나온다고 진술했다.
문: 그 무언가의 이름이 무엇인가.
답: 말하면 약속이 깨진다.
문: 약속이 깨지면 어떻게 되는가.
답: …마법을 잃지.
문: 그 마법으로 그대는 무엇을 얻었는가.
답: 잠.
문: 누구의 잠인가.
답: …모두의. (같은 기록, 제5일)
로크가 지녔다는 금지된 서책과 이 약속 사이에 무슨 관계가 있는지는 재판에서 끝내 다뤄지지 않았다.
심문관들은 이 대목을 몇 차례 되물었으나, 기록에는 바일의 대답 대신 "침묵"이라는 말만 거듭 적혀 있다.
그날 심문은 해가 지기 전에 끝났다. 서기는 기록 끝에, 심문실의 초가 평소보다 빨리 닳아 두 번 갈아 끼웠다고 적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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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바일 일당의 수법을 들여다볼 수 있게 된 것은 세오력 88년 피에트에서 붙잡힌 조직원 하나 덕분이다.
이름은 톰 그레이, 밀레스 근처 선술집에서 술통을 나르다 빚을 지고 일당에 들어간 사내다.
그해 늦봄 그는 피에트 시장에서 은 술잔 두 개를 팔려다 붙잡혔다.
삯으로 받은 것이 아니라, 손님이 분실한 물건을 장물 자루에 넣지 않고 제 품에 숨겨 나온 것이었다.
술잔 바닥에는 피에트 남쪽 지주 집안의 문장이 새겨져 있었고,
그 집은 석 달 전 일가족 일곱이 잠든 채 숨진 집이었다.
피에트 경비대는 그가 밀레스 사람이라는 이유로 그를 밀레스 경비대에 넘겼다.
그레이는 밀레스 감옥에서 이레 동안 신문을 받았고, 서기는 그의 말을 들리는 대로 받아 적었다.
"초를 든 놈이 먼저 집을 한 바퀴 돌지. 문틈이고 창틈이고 불을 대고는 밖에서 기다리고.
연기가 다 들어갈 때까지. 그동안 우리는 망을 보다가, 무슨 일인가 기척이 있으면 짐승 소리를 내오.
숲이면 소쩍새, 바닷가면 갈매기. 나는 소쩍새를 잘 못 해서 늘 혼났소.
초를 든 놈은 절대 문을 안 열지. 문 여는 놈이 따로 있소.
대장이 그렇게 정했다는데, 대장이 누구인지 물어본 놈은 누구도 없소." (밀레스 경비대 신문 기록, 세오력 88년 5월)
그레이의 진술에서 그나마 쓸모 있었던 것은 그가 일당에 관해 아는 것이 놀랄 만큼 적었다는 사실이다.
그는 함께 일ㅡ강도살인ㅡ을 나간 이들 가운데 셋의 얼굴과 둘의 이름만 알았다.
정해진 날 정해진 곳에 가 있으면 누군가 나타났고, 누가 올지는 그날 가 봐야 알았다.
자신의 몫은 일이 끝나고 며칠 뒤 선술집 뒷마당 장작더미 밑에 놓여 있었다.
초를 어디서 만드느냐는 물음에 그는 "그곳에 가 본 놈은 없소.
너무 궁금해서 가 보겠다던 놈이 하나 있었는데, 그 뒤로 다시는 안 보이더군" 하고 답했다.
그레이가 기억하는 사람이 하나 더 있었다.
일당 안에서 '책 든 양반'이라 불리던 사내로, 몫을 나누는 일은 대장이 아니라 그가 맡았다.
그레이는 그 사람의 얼굴을 늘 등잔 너머로만 보았다.
일을 나가기 전날 밤이면 책 든 양반이 초를 든 양반과 단둘이 등잔 하나를 사이에 두고 앉아 무언가를 읽어 주었는데,
그레이는 한 마디도 알아듣지 못했다고 했다. 나는 그것이 멘트어 였으리라 짐작한다.
일당의 인원을 묻자 그레이는 "그때그때 다르다"고만 했다.
재판 과정에서 이름이 확인된 조직원은 모두 서른넷이지만, 피해 현장의 흔적으로 미루어
한 번에 움직인 인원은 대개 다섯을 넘지 않았다. 혼자 움직인 흔적도 여럿 있다.
그레이가 댄 두 이름의ㅡ초를 들고, 책을 든 놈ㅡ주인은
경비대가 찾아갔을 때 이미 마을을 떠나고 없었다.
그레이는 진술을 마친 이튿날 아침 옥에서 목을 맨 채 발견되었다.
"흐림. 새벽에 비. 죄수 그레이 목매어 죽음. 자살. 허리끈. 시신은 교구로."
(밀레스 경비대 일지, 세오력 88년 5월)
'자살' 옆에 누군가 다른 잉크로 물음표를 하나 그려 넣었다.
허리끈은 신문 첫날 이미 압수 목록에 올라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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