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상사는 본대로 돌아와 숨진 김철진 상병에 관한 자료를 열람하였다.
가족관계, 훈련소 기록...그 어떤 것도 김철진 상병을 죽음으로 몰고 갈 이유가 없었다.
단순한 강도 소행일까? 그 어떤 강도가 돈도 없는 사람, 그것도 신체 건장한 군인에게 흉기도 아니고 독극물로 살해할까?
원한 관계일까? 아니 예상과 달리 김철진은 정말로 자살한 걸까?
아무런 단서도 없이 추리에 의존해야 했던 강상사는 김철진 상병이 근무했던 강원도에 소재한 부대로 급히 차를 몰았다.
오후 5시가 되어서야 부대 근처에 이를 수 있었다.
김철진 상병이 근무하던 곳은 넓은 저수지를 끼고 있는 한적한 부대로 너무나 평화롭고 조용했다.
저수지는 대단히 넓었지만 여름이라는 계절에 맞지 않게 지나칠 정도로 물이 말라 있었다.
"충성!!"
마중 나온 당직사관인 선임하사의 인솔을 받으며 강상사는 부대 지휘관실로 향했다.
지휘관실에는 부대 대대장이 퇴근하지 않고 강상사를 기다리고 있었다.
"충성!! 군 수사관 상사 강하경입니다."
"어서 오게. 상부를 통해 김철진 상병 얘기는 들었네. 요즘 지휘관으로서 면목이 없네.
탈영에다가 그리고 그 탈영병이 죽기까지 하다니....사단장님에게 얼마나 많은 호통을 들어야 할지..참.."
"대대장님. 김철진 상병이 생활하던 내무반을 둘러보고 싶습니다."
"그러게. 이봐 선임하사 강상사를 인솔해주게."
"네. 대대장님."
강상사는 선임하사의 길 안내로 내무반으로 들어섰다.
하루 일과를 끝낸 병사들이 분주하게 내무반 정리를 하고 있었다.
이 때 강상사의 눈에 한 병사가 눈에 들어왔다.
담요를 온 몸에 두르고 부들부들 떨며 초첨없는 눈으로 정면을 주시하고 있는 병사.
"저 병사는 왜 저러고 있지?"
강상사는 선임하사에게 물었다.
"어제밤 부대 옆 저수지에 빠졌었는데 그 뒤로 저러고 있습니다. 큰 몸살을 앓고 있는 것 같습니다."
강상사는 김철진 상병의 관물대로 접근하여 이것 저것 물품을 확인하였다.
관물대 깊은 곳에서 강상사는 작은 일기장을 하나 발견하였다.
일기장을 펼쳐 보려는 순간 갑자기 담요를 두르고 부들부들 떨고 있던 박인배 병장이 소리를 쳤다.
"내 발이 썩어가고 있어!!! 아악!! 내 발이 썩어가고 있어!!!"
박병장은 자신의 발을 이곳저곳 살피며 미친 사람처럼 울부짖었다.
"내 발이 썩어가고 있어!!!"
"야! 저 ** 왜 저래? 진정시켜!!"
선임하사의 명령이 떨어지자 몇몇 병사들이 박병장에게 달려들어 그를 진정시켰다.
걱정스런 마음에 강상사는 입을 열었다.
"저 병사 상태가 아주 심각한 것 같은데..."
이에 선임하사가 대답하였다.
"아닙니다. 어젯 밤 저수지에서 귀신 소동이 좀 있었나 봅니다."
"귀신 소동?"
"그냥 물에 빠져 죽다 살아난 사람들이 흔히 하는 얘기들 말입니다. 뭐 물귀신 말입니다."
"치료는 받고 있나?"
"네. 지금 의무대 통원 치료 중입니다. 오늘 아침에 소동이 좀 있어서 의무대를 다녀왔습니다."
"통원 치료로 완치될 사안이 아닌 것 같은데.....입원해야 되는 것 아냐?"
"확실한 병명이 나오기 전까지는 입원이 어렵습니다."
"그래? 총기류에는 가까이 가지 않도록 주의해야 할텐데..."
"항상 감시하고 있습니다."
강상사가 걱정스런 눈빛으로 박병장을 바라보고 있던 이 때 대위 계급장을 달고 있는 한 남자가 내무반으로 들어왔다.
180이 넘는 키에 90킬로그램은 족히 넘을 것 같은 우람한 체격, 두툼한 얼굴에 위로 가늘게 찢어져 올라간 두 눈,
그다지 호감을 주지 않는 인상이었다.
"어? 중대장님. 휴가에서 벌써 돌아오셨습니까?"
"부대원이 죽었는데 한가하게 휴가나 즐길 순 없지. 김철진이 때문에 군 수사관이 왔다던데.."
"충성, 군 수사관 강하경 상사입니다."
강상사는 가벼운 경례로 중대장에게 인사를 하였다.
"김철진이 어떻게 죽은 거요? 자살한거요?"
"아직, 증거가 충분치 않습니다. 며칠 뒤에나 자세한 결과가 나올 것 같습니다."
"그 자식은 멀쩡하게 부대생활하다가 왜 밖에 나가서 사고나 치고 다니는 거야?"
부대원의 사망 소식에 반응하는 그의 말에 강상사는 뭔지 모를 찬 기운을 느낄 수 있었다.
밤 늦게야 본대로 돌아온 강상사는 집으로 돌아가지 않고 집무실에 앉아 김철진 상병의 일기장을 하나씩 읽어가기 시작했다.
'7월 3일. 그 자식이 밤마다 나타난다. 잠을 이룰 수 없다. 죽어버리고 싶다. 이 부대가 무섭다."
"7월 5일. 오늘은 비가 왔다. 저수 옆 3초소 근무가 끝났다. 그런데 내 부사수는 내 말을 안 믿어 준다.
그 자식이 저수지에서 상체만 떠서 내게 다가오는 것을 분명히 봤는데 부사수는 아무것도 못 봤다고 한다.
언젠가 나도 이성재처럼 될 것이다. 아니 죽어 나갈 것이다..."
'상체만 떠서 내게 다가와?.......이성재? 이게 도대체 무슨 말이지?'
강상사는 알 수 없는 서늘함에 일기장을 넘기기가 두려워졌다.
무슨 일이 벌어졌었는지는 모르지만, 확실한 것은 김철진의 죽음이 단순한 자살로 보기에는 다소 많은 사연이 얽히고설켜
있는 것처럼 보인다는 것이다.
이 때 갑자기 집무실의 전화기가 요란한 소리를 냈다.
"따르르르릉"
"네. 군수사관 강하경 상사입니다."
전화기에서 낯익은 목소리가 들렸다.
"여기 김철진 상병 사건 담당 형사입니다. 아침에 뵈었었죠?"
"네. 조형사님. 말씀하십시요."
"1차 조사 결과가 나왔는데 김상병은 청산가리 중독으로 죽었고 살해된 것 같습니다."
"살해요? 역시 그랬었군요. 그런데 용의자는 파악됐습니까?"
"살해 추정시각이 대략 새벽 2시 경인데 그 때 모텔 복도와 정문의 CCTV를 확인해 보니까 그 시각에 낯선 남자가 모텔 프론트를
몰래 지나 객실로 향하는게 찍혔어요. 운동모자를 쓰고 여름인데 긴 외투를 걸치고 있어서 현재 신원을 파악하는데 많은 시간이
걸릴 듯 싶네요."
"그래요?"
강상사는 불현듯 이 사건이 한 사람만의 죽음으로 끝날 것 같지 않은 불길한 예감이 들었다.
그 날 새벽 1시 한 병사가 저수지 둑에 나와 작은 톱을 들고 물끄러미 저수지를 내려다 보고 있었다.
아무런 표정없이 터벅터벅 저수지 둑을 내려와 물 가까이에 접근했다.
"미안해..내 발이라도 원한거야?"
그 병사의 다리는 발목부터 검붉은 색채의 피멍이 번져나가며 썩어가는 것 같았다.
병사는 조용히 물가에 앉아 준비해 온 톱으로 오른쪽 발목부터 썰기 시작했다.
"그래, 이거라도 가지고 나 이제 좀 놔주라."
고통을 느끼는지 못 느끼는지 그 병사는 오른쪽 발목의 중간부분까지 톱날이 들어갔음에도 멍하니 저수지를 바라보며
톱질을 계속하였다. 심장이 펌프질을 할 때마다 파열된 수도관처럼, 잘려져 나가는 발목 틈 사이에서 피가 분수처럼 솟구치기
시작했다.
"야!! 박인배 못봤어?"
선임하사의 쩌렁쩌렁한 목소리가 부대 전체를 뒤 흔드는 것 같았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