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찰서로 돌아오는 동안 나는 넋나간 사람처럼 눈의 초점을 맞추지 못하고 멍하니 앉아 있었다.
사건현장에서 쏟아낸 토사물 때문인지 시큼하고 역겨운 냄새가 아직 코 주변을 맴돌고 있었다.
"너 음주운전한 거 없던 걸로 할테니까, 집에 돌아가면 항상 핸드폰 켜 놓고 기다리고 있어."
그 중저음의 형사가 나에게 제안을 했다.
"저 보내주시는 건가요?"
"그래. 그런데 필요하면 다시 부를거야."
그제서야 나는 정신이 번뜩 들었다.
나도 모르게 미소가 지어졌다.
안도감이 밀려오면서 동시에 몇 가지 궁금증이 떠올랐다.
"그런데 아저씨. 그 시체 뭐예요? 살해당한 거예요?"
"아직 몰라. 김나연이라는 여자인데 실종 신고 후 3개월 만에 찾은거야."
"딱 봐도 이건 살인사건이잖아요."
"국과수 조사가 끝나봐야 돼."
갑자기 소름끼치는 생각이 뇌리를 스쳤다.
"아..아저씨... 그럼 제가 귀신을 본 거예요?"
".........."
"아저씨 말 좀 해봐요."
"귀신이든 아니든 이번 사건 해결에 니가 도움이 된 건 사실이야. 그건 고맙게 생각한다."
형사의 대답에서 그가 뭔가를 감추는 듯한 뉘앙스가 느껴졌지만 나는 더 이상 알고 싶지가 않았고,
물어본다 하여도 그가 대답해 줄 것 같지 않았다.
다시 한동안 나는 침묵 속에 빠져 들었다.
한 동안 이어지던 어색한 침묵을 깬 것은 나의 궁금증이었다.
"그런데 실종사건을 왜 강력계 형사가 조사해요? 살인 사건이라고 알고 있었나요?"
"넌 몰라도 돼"
나는 다시 한번 어색한 침묵에 빠져들었다.
"아저씨 그런 시체 많이 봐요?"
뒷좌석에 앉아있는 나의 질문에 형사가 고개를 잠시 돌려 피식 웃음을 보였다.
"그런 걸 왜 물어?"
"그냥 궁금해서요. 아까같은 시체보면 꿈에 안 나타나요?"
"아니라고는 말할 수 없지. 그런데 그건 그나마 양호한거야."
형사는 시선을 다시 앞으로 돌려 팔짱을 끼며 말을 이었다.
"목 매달아서 목이 1.5배나 늘어난 상태로 혓바닥을 턱 까지 길게 내밀고 나를 쳐다보는 시체 한 번 봐봐.
그건 진짜 꿈에 나타난다."
"에이...겨우 그 정도예요?"
나의 비아냥거림에 아랑곳하지 않고 그는 말을 이었다.
"아직도 잊을 수 없는 사건이 하나 있는데 순경 시절에 집에 누가 침입했다는 여자의 신고전화를 받고 출동한 적이 있었지.
조그만 벽돌식 단독주택이었는데....현장에 갔더니 불은 꺼져 있고, 문이 잠겨 있는거야.
원래 수색영장없이 함부로 들어가면 안되는데 그 날은 느낌이 안 좋더라구.
나는 방범창을 부수고 조심스럽게 창문을 통해 들어가려고 시도했어.
그런데 큰 장롱 하나가 창문을 반 쯤 막고 있는거야.
난 그것을 간신히 밀어내고 창문 안으로 발을 간신히 내딛었는데, 순간 윤활유같은 무언가에 미끄러져 방안으로 굴러떨어지듯 넘어졌지.
나동그라져서 뒤로 누운 상태가 된 나는 옆에 무엇인가를 감지하고 고개를 돌렸는데 난 그 때 심장이 터지는 줄 알았다.
처참하게 살해되어 누워있는 피범벅이 된 여자 시체와 눈이 마주친거야."
얘기를 듣고 있던 나는 마치 그 때 그 형사가 된 기분처럼 소름이 끼쳤다.
"눈을 동그랗게 부릅뜨고 죽었는데, 마지막 숨이 새어나오는건지 입에서 피거품이 부글거리는 소리가 나더라구."
형사는 잠시 입을 굳게 닫더니 다시 입을 열었다.
"1년 가까이 꿈 속에 그 여자가 그 얼굴, 그 모습으로 나타나 나를 괴롭혔지."
나는 으스스한 기운에 입을 열지 못했다.
"너 좀비 영화 봤냐?"
"네..."
"고통이 극도로 심해지거나 죽음에 임박하게 되면 엄청난 양의 엔돌핀이 뇌에서 분비되지.
엔돌핀 때문에 고통을 못느끼는거야.
전쟁 영화보면 폭탄 맞아서 자기 팔이 떨어져 나간 줄도 모르고 남은 한 손으로 총 들고 진격하고 있잖아.
교통사고도 마찬가지야.
트럭에 치어서 하반신이 짓이겨져서 떨어져 나갔는데도, 그것도 모른 채 숨이 멎을 때까지 도로 위를 두 팔로 기어다니는 사람도 있어.
좀비처럼 말야."
나는 잠시 할 말을 잊고 침을 한 번 꼴깍 삼켰다.
"워, 워, 워...형사도 할 짓 못 되네요."
나의 장난끼 어린 말투가 내 스스로를 진정시키기 위한 수단이었다는 것을 알아챘음에도, 그는 더 잔인하게 나를 압박했다.
"그나마 형사는 좀 낫지. 현장 정리가 어느 정도 된 다음에 출동하니까.
신고 받고 처음으로 출동하는 순경들은 뭘 보겠냐?
투신해서 머리가 으깨진 시체, 불에 타서 검게 그을린 피부가 벗겨져 나가 속살을 드러낸 시체....
나도 그런 끔찍한 광경은 대부분 순경 시절에 본거지."
몇 마디의 대화가 끝나자 경찰서에 가까워지는 듯 했다.
경찰서에 정문에 도착하자 그 형사는 나에게 조금 전의 약속을 재확인한 후 나에게 항상 대기하고 있기를 부탁했다.
나는 안부인사를 한 후 차문을 열고 내렸다.
문을 닫으려는 순간 나는 중요한 질문거리가 하나 떠올랐다.
"아저씨. 제 차 어디서 찾아가야 되요? 그거 비싼건데.."
"기다려 임마. 조사가 끝나면 교통계에서 연락이 갈거야. 다음에 다시 보자."
경찰 지프차가 멀어지는 것을 보자, 나는 상의 주머니에 집어넣은 오른손의 중지를 치켜올렸다.
"** **..내가 다시 오나 보자."
나는 발걸음을 돌려 집으로 향했다.
"그런데 진짜로 내 차 어디 있는거야?"
내 차량의 소재가 궁금하긴 했지만, 이 순간 나를 더 궁금하게 만드는 것은 그것이 아니었다.
지금 웃옷 주머니 속에서 매만져지는 작은 쪽지의 내용이었다.
-사일런트 엔젤 010-9453-xxxx -
"그런데 **, 도대체 이게 뭐지?"
몇 초동안의 망설임이 있었지만, 호기심을 참지 못한 나는 이내 휴대폰을 꺼내 쪽지에 적인 숫자대로 버튼을 눌렀다.
'뚜루루루....뚜루루루루....뚜루루루루.....'
발신음이 반복되면서 왠지 모를 긴장감이 감돌았다.
"여보세요."
한 낯선 남자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저...거기가 어디죠?"
나는 조심스레 그에게 물었다.
"너 누구야?"
"그냥 사일런트 엔젤을 찾고 있어요."
갑자기 내 고막을 찢는 듯한 그의 폭언이 들려왔다.
"너 누구야!! ***야!!!"
"헐..."
나는 얼른 휴대폰의 폴더를 닫아버렸다.
"헐..** 놈. ** 까칠하네."
그런데 나의 독백이 끝나기가 무섭게 휴대폰이 요란한 벨소리를 울려댔다.
조금 전 그 번호였다.
받아야 되나 말아야 되나....그런데 왠지 모르게 받아야 되겠다는 생각이 머리를 맴돌기 시작했다.
"여...여보세요?"
"너 이 번호 누구한테 얻은거야?"
그 까칠한 남자였다.
"아니 그냥 제 호주머니에 매모 쪽지가 있어서...뭔가하고 연락한건데요?"
"사일런트 엔젤은 어떻게 알아?"
"그냥 누가 알려주고 간 거예요. 저도 잘 몰라요."
".........."
휴대폰 송화기를 손으로 막고 누군가와 대화를 나누는지, 아니면 그냥 말을 하지 않는건지 그는 잠시 동안 아무런 반응이 없었다.
"여..여보세요?"
나는 그를 불렀다.
그제서야 그의 목소리가 들렸다.
"오늘 저녁 6시에 ㅇㅇ역 3번 출구로 나와 있어."
"제가 거길 왜 가요?"
"죽고 싶지 않으면 나와 있어."
"뭐..뭐라구요?"
내 대답을 무시한 채 통화는 종료되어 버렸다.
"여보세요!! 여보세요!!!"
나는 잔잔한 연못에 조금만 파문이 일 듯 소리없이 두려움이 몰려왔다.
작은 실밥을 잡아당겼더니 걷잡을 수 없이 옷감이 풀어 헤쳐지는 듯한 기분이었다.
휴대폰을 들고 한 동안 멍하니 자리를 지키던 나는 굳은 결심을 하고는 발걸음을 집으로 향했다.
"미쳤어? 내가 거길 왜 가? ** 놈들....내가 겁 먹을 줄 알고?"
내 스스로를 이렇게 다독거리며 나는 집으로 향했다.
택시 요금이 없어서 나는 버스를 타고 갔다.
얼마만에 타는 버스인지 모른다.
고등학교 졸업 후 아버지를 ** 자가용을 샀다.
여자를 유혹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차가 필요했기 때문이다.
그 이후로 버스를 탄 기억이 없다.
사실 학창시절에도 버스를 탄 기억이 거의 없다.
아버지가 늘 학교까지 자신의 차로 바래다 주었기 때문이다.
그런 것에 너무 익숙해진 나는 커다란 운송수단에 몸을 맡긴 채, 여러 사람들이 무표정한 얼굴로 앉아 각자의 목표지점으로 향하는
광경이 너무나도 어색하게 느껴졌다.
오른쪽 이마에 두툼한 반창고를 붙인 채 서 있는 내 모습을 주변 사람들이 힐끔힐끔 쳐다보는 시선이 느껴졌다.
"띵동! 문자가 도착했습니다."
버스 소리에 섞여 휴대폰 문자 알림음이 울렸다.
-오빠^^; 경찰서 가면 나 아빠한테 죽거든. 도망쳐서 미안^^ 연락줘 ^^-
"**년....."
나도 모르게 튀어나온 욕설에 주변 사람들이 긴장하는 눈치였다.
집 근처에 도착한 나는 절친한 친구인 준호를 실내 포장마차로 불러냈다.
그 놈도 나처럼 변변한 직업없이 집에 돈이 많다는 이유로 놀고 먹는 녀석이었다.
"야! 왠일로 포장마차냐? 돈 떨어졌냐?"
준호는 인사 대신 나를 비야냥거리며 원형의 간의의자에 앉았다.
"이마는 왜 그래?"
"헐..** 말도 마라. 새벽부터 지금까지 온갖 쇼를 다하고 다녔다."
"뭔 일이야?"
"우선 술 좀 시키고 진정 좀 하자."
"아니 다친 놈이 뭔 술이야?"
"아이..** 닥치고 그냥 조금만 하자. 맨 정신에 있을 수가 없어."
몇 시간전의 술을 끊어야겠다는 다짐은 온데간데 없었다.
나는 준호와 함께 소주를 들이키며 무용담처럼 내 얘기를 늘어놓았다.
준호는 기이한 미스테리라도 듣는 것처럼 어린 아이처럼 호기심 어린 눈으로 내 말을 듣고 있었다.
얼마가 지난 후 약간의 취기가 올라오자 나는 시계를 들여다 봤다.
7시가 조금 넘었다.
갑자기 술이 깨는 듯 했다.
"헐...7시가 넘었네."
"너 **...아까 니가 말한 **가 약속한 시간이 6시 아니었어?"
나는 애써 평온함을 유지하려 했으나 밀려오는 두려움을 막을 수가 없었다.
게다가 집으로 가는 길은 길고 어두운 좁은 도로변 길이었다.
"준호야. 우리 집까지 차 좀 태워주라."
"** 놈. 이젠 나까지 음주운전시키네. 알았어 임마."
나와 준호는 자리를 털고 일어나 실내 포장마차 밖으로 나섰다.
그러나 나는 우리를 따르는 몇 개의 검은 그림자를 미처 살피지 못했다.
우리의 차량이 어두운 도로변 길에 진입하자 갑자가 낯선 차량 한대가 우리 앞을 가로 막았다.
미처 그들이 누구인지 확인하기도 전에 서너명의 건장한 놈들이 준호의 차로 달려들었다.
갑자기 앞유리의 파열음이 들렸고, 파편처럼 유리조각이 내 얼굴을 향해 쏟아졌다.
차 문을 열고 뛰쳐나가려 하자 눈 앞에 솥뚜껑만한 손이 순식간에 다가와 내 얼굴을 강타했다.
"쿨럭...쿨럭"
간신히 기도를 열어젖히는 힘겨운 기침 소리와 함께 나는 의식이 돌아왔다.
얼마의 시간이 흘렀는지 지금이 몇 시인지 도저히 감을 잡을 수 없었다.
눈의 초점이 서서히 맞추어지자 주변의 광경이 눈 앞에 들어왔다.
화사한 테라스처럼 고급스럽게 꾸며진 약간 어두운 실내 공간이었다.
누군가가 내 정면의 의자에 앉아 있었고, 주변에 건장한 서너명이 무게를 잡고 서 있었다.
나 또한 의자에 앉아 있었지만 두 팔이 위자 뒤로 포박당한 채 꼼짝을 할 수가 없었다.
내 주변만 할로겐등처럼 강렬하게 아래로 내리비치는 빛 때문에 의자에 앉아있는 그의 얼굴은 정확히 볼 수가 없었다.
확실한 건 두목으로 보이는 그가 담배 하나를 물고 있고, 의자에 앉아 다리를 꼰 채 최대한 거만한 자세를 유지하고 있다는 것이다.
"너 누구야?"
전화 속의 그 놈 목소리였다.
"쿨럭...준..준호...제 친구는요?"
"죽지 않았으니까 걱정마."
"준호 어딨어요...쿨럭"
"핸드폰에 내 번호 남긴 놈이 너 밖에 더 있어?"
"그...그럼 저만 이리로 끌고 온 거예요? 도대체 저 한테 왜 이러시는거예요?"
간신히 입을 열 때마다 상처난 오른쪽 이마와 손으로 가격당한 왼쪽 광대뼈가 아려왔다.
"난 니가 내 번호와 사일런트 엔젤을 어떻게 아는지 궁금할 뿐이다."
"전 정말 몰라요..쿨럭.... 누가 알려준 거예요."
"그게 누구야?"
"몰라요...메모 쪽지가 그냥 제 호주머니에 있었어요..."
"좋은 말로 할 때 말해.. 그 놈이 누구야?"
말이 통하지 않는 그와의 대화가 계속되자 순간 나도 모르게 분노 섞인 짜증이 밀려왔다.
"몰라!! **!! 모른다는데 왜 자꾸 **이야!!!!"
나의 괴성에 주변에 잠시 적막이 감돌았다.
그리고 잠시 후 그 남자의 손짓이 있자 건장한 청년 한 명이 나에게 서서히 다가왔다.
막장에 다다랐다는 생각이 들자 나는 두려움보다는 오기가 생겼다.
"쿨럭..쿨럭...차라리 죽여라..** 놈들아..."
그 건장한 청년은 나에게 주먹질 대신에 내 팔뚝에 주사기를 꽂아 알 수없는 주사액을 밀어넣었다.
"뭐...뭐하는 짓이야?"
나의 물음에 두목으로 보이는 그가 입을 열었다.
"넌 잠시 후 진실만을 말할 것이다."
"**고 있네...**끼들...."
무슨 이유 때문인지 모르지만 나의 말은 점점 더 거칠어지고 있었다.
조명등 너머의 그 남자는 회심의 미소를 지으며, 주사약의 효과를 기다리는 듯 했다.
잠시 후 주사액 때문인지 눈 앞의 초점이 다시 흐려지기 시작했다.
몸이 나른해지면서 편안함이 몰려왔다.
나도 모르게 히죽거리는 웃음이 입에서 새어나왔다.
기분이 좋아지고, 몸이 날아갈 듯 가벼워졌다.
동굴 속의 울림처럼 그 두목같은 남자의 음성이 들려왔다.
"너 누구야?"
"히히히...김..성..태..."
"너 뭐하는 놈이야?"
"놀고 먹는 백수지 뭐야...히히히.."
"너 사일런트 엔젤을 어떻게 알아?"
"음...뭐더라....."
"........?"
"그..그 놈이 주고 갔어.....내 차 가져 간 놈...."
"누..누구?"
갑자기 주변에 엷은 안개가 드리워지기 시작했다.
'히히히....안개다...안개...안개가 낀다.'
기분이 들뜨고, 정신이 몽롱한 상태에서도 나는 삭신이 오그라드는 듯한 공포가 밀려옴을 느낄 수 있었다.
내 뇌의 99%가 약물에 정복당했음에도, 나머지 1%의 정상적인 부분이 나를 일깨우려 애쓰는 것 같았다.
머리를 똑바로 들어올리려 했지만 목의 근육이 다 풀려버린 것처럼 내 머리는 이리저리 내팽개쳐졌다.
우스꽝스럽게 보일지는 모르지만 나는 지금 몸부림치고 있는 것이다.
"말 해....그 놈이 누구야?"
그의 질문에 나는 오직 진실만을 말했다.
지금 이 순간 내 눈앞에 보이는 그대로 말이다.
"누구긴 누구야.....바로 니 앞에 서 있는 놈이지......"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