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벅저벅]
뼛속 깊이 파고드는 매서운 추위가 몇 번이고 나를 괴롭혔지만 당장 내가 할 수 있는 것이라고는 사시나무처럼 떨어대는 몸뚱어리에 의지한 채 쉬지 않고 걷는 것이 전부였다. 얼마나 오랜 시간 동안을 어디로 향하고 있는지도 모른 채 걷고 또 걸었다. 왠지 이런 나 자신이 버림받은 강아지 같았다. 나 자신에게 지금 어디로 가고 있으며 얼마나 더 걸어가야 하는지를 수도 없이 물었지만 내가 얻을 수 있는 대답은 없었다.
“후우”
시린 손을 녹이기 위하여 모은 양손에 입김을 불어넣었다. 혹시나 추위를 피할 수 있는 곳을 발견하지 않을까 하는 기대감에 주위를 둘러보았지만, 보이는 것이라고는 끝없이 펼쳐진 평야 위에 수북하게 쌓여 있는 흰 눈과 땅에 묻히지도 못하고 썩어가는 고깃덩어리들이 전부였다.
[꼬르륵]
뱃가죽이 등에 달라붙은 것을 알려 왔지만 내가 가진 식량이고는 아무것도 없었다. 그래도 굶주린 배를 달래야 했기에 행여나 방사능에 오염되어 있을지 모르는 흰 눈을 한 움큼 쥐어 멈추지 않고 배가 부를 때까지 흰 눈을 집어삼켰다. 배가 부른 것인지 추위에 배고픔을 잊은 것인지, 먹는 것을 포기한 나는 다시 걸음을 재촉하려 했다. 하지만 체력이 고갈되어 버린 탓일까? 어린아이가 어머니에게 떼를 쓰며 투정을 부리듯 나의 몸과 다리가 더 이상 걷는 것을 거부했다. 몇 번이고 투정을 부리는 나의 몸과 다리를 달래며 걸음을 재촉해보려 했지만, 결과는 마찬가지였다.
결국, 나는 더 이상 걷는 것을 거부하는 몸과 다리를 달래는 것을 포기하고 동상에 걸린 것이 아닐까 착각이 들 정도로 통제되지 않는 손으로 전투복 상위의 주머니 안에 있는 몇 장의 사진들을 꺼내었다. 많은 전투를 겪은 이후 훼손되어버린 사진 속에는 소중한 내 가족들이 있었다. 평생 일어날 것 같지 않던 전쟁이 일어나기 한참 오래전에 한 여자를 만나게 되었다. 하루하루가 행복한 나날을 보냈고 그런 소중한 시간을 함께 하는 중에 그녀와의 사이에서 소중한 딸아이가 태어났다. 이 사진은 그녀와 함께 결혼식을 올리며 찍은 사진들이다.
그리고 오랜 시간이 지나서야 전쟁이 일어났다. 해가 넘어갈수록 엎치락뒤치락하며 멈출 기미가 보이지 않던 전쟁은 급기야 예비군을 제대한 지 10년이나 지난 민방위들까지도 강제로 징집하게 만드는 상황까지 놓이게 되었다. 나 역시 강제로 징집되었고 이 사진들은 그때 아내가 죽게 되는 순간까지도 가족을 잊지 말라며 준 사진들이다
어느새 나의 두 눈에서는 멈추지 않고 눈물이 흘러내렸다. 핵이 터져 버린 지금 생사조차 알 수 없었기에 가족들을 그리워하는 나의 마음은 더욱 깊었다. 한참을 젖은 눈으로 사진을 바라보던 나는 가야 할 곳을 알게 되었다.
지금 나에게 가장 소중한 사람들을 떠올리며 이미 지칠 대로 지친 몸을 일으켰다. 비록 체력은 고갈되어 움직일 수조차 없는 몸뚱어리였지만 가족에 대한 그리움이 나의 몸을 움직이게 만들었다. 소중한 사람들에 대한 그리움만을 끌어 않은 채 추위를 견뎌 내며 또다시 쉬지 않고 걸었다.
[저벅저벅]
희미하게 꺼져가는 의식에 의지한 채 많은 거리를 걸어서야 작은 산골짜기에 다다르게 되었다. 가족을 향한 나의 의지조차 꺾어 버릴 만큼 골짜기는 음침하고 어두웠지만 이대로 포기 할 수는 없었기에 골짜기 안으로 들어섰고 겁먹은 강아지처럼 주위를 몇 번이고 살피며 걸었다.
얼마나 걸었을까? 등 뒤에서 노골적으로 소리를 내며 나를 따라오는 자들이 있었다. 처음에는 모른 척하고 갈 길을 가려고 했지만, 등 뒤로 그들에게서 느껴지는 살의가 무시무시할 정도로 날카로웠다. 따라오던 자 중 두 명이 나란히 나의 양옆에 따라붙었고 나는 걷는 것을 포기하고 그들의 움직임을 살폈다. 두 사람 모두 중공군들이었으며 각자 죽창을 움켜쥐고 있었다.
“낄낄낄”
“낄낄낄”
듣고 싶지 않은 소리로 비웃는 그들의 입을 뭉개 버리기로 마음먹었다. 중공군들이 나를 향해 공격하려는 순간 왼손에 움켜쥔 대검을 그들에게 휘둘렀다.
“컥”
“크악”
순식간에 두 명의 중공군을 해치운 나는 뒤를 돌아봤다. 그곳에는 또 한 명의 중공군이 죽창을 움켜쥐고 서 있었다.
마지막으로 남은 그를 해치우기 위하여 천천히 그를 향해 다가갔지만, 그는 오히려 뒷걸음질을 쳤다. 길어지는 것을 원하지 않았던 나였기에 단숨에 달려들어 그에게 대검을 휘둘렀다. 그의 목덜미에 나의 대검이 닿으려는 찰나 지칠 대로 지쳐있던 나의 심신이 희미하게 꺼져 가던 의식의 끈을 끊어버렸다. 시원하게 돌아가던 선풍기가 코드가 뽑혀 멈추어지듯 나의 몸은 땅바닥으로 곤두박질을 쳤다.
다시 정신 차렸을 때는 나의 목숨은 이미 그의 손바닥 위에서 놀아나고 있었다. 그가 나의 손에 쥐어져 있던 대검으로 나를 희롱하는가 싶더니 나의 다리에 힘껏 찔러 넣었다.
“크악!!”
잠잠하던 골짜기에 나의 비명이 울려 퍼지는 가운데 중공군이 나의 다리에 찔러 넣은 대검의 손잡이를 움켜지고 흔들어댔다.
“으아아아악!!”
골짜기는 더욱 큰 비명으로 울려 퍼졌다. 나의 다리에서 칼을 빼낸 그가 나의 목덜미에 칼끝을 들이미는 찰나 순식간에 또 한 자루의 대검을 움켜쥐고 그에게 휘둘렀다.
“컥!!”
그의 목에 찔러 넣은 대검을 두 손으로 움켜쥐고 힘껏 비틀어 버리자 중공군은 힘없이 쓰러져 죽어갔다.
"으득"
다리에서 전해져 오는 통증을 견디기 위하여 이를 악물었다. 힘겹게 자리에서 일어나 바닥에 뒹구는 죽창 하나를 지팡이 삼아 집어 들었다. 생사조차 알 수 없는 가족만을 회상하며 두 손으로 움켜쥔 죽창에 몸을 의지한 채 산골짜기를 벗어나기 위해 걷고 또 걸었다. 나의 발아래에 꼬리를 흔들며 나를 올려다보는 강아지가 나타나기 전까지는 말이다. 어디서 온 것인지 알 수 없는 강아지는 작고 앙증맞았다.
“갈 곳을 잃었니? 나랑 같이 갈까?”
죽창에 의지한 채 똘똘한 눈빛으로 나를 올려다보는 강아지와 눈을 마주쳤다. 그리고 나는 순식간에 모든 신경을 날카롭게 곤두세우며 주위를 둘러보았다. 하지만 이미 때는 늦은 뒤였다.
어디서 나타난 것인지 들개 무리가 나타나 이미 죽어버린 사내들의 시체를 물어뜯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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