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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들께 보내는 편지 세오
서신 -destroyer- 5
178 2014.08.29. 17:07



전쟁이라는 거대한 토네이도가 휩쓸고 지나간 탓일까?

예전의 모습을 잃어버린 도시는 하나의 공동묘지 같았다. 빠져나올 수 없는 미궁처럼 복잡하리만치 엉키고 설킨 도시의 안으로 들어서자 얼굴에 한 줄기 희망마저 빨아들일 것 같은 어두운 그림자가 깊게 드리워져 있는 많은 사람이 있었다.

몇 차례나 불어대는 날카로운 바람이 그들의 얼굴을 더욱 어둡게 만들며 삶의 의욕조차
잃어버리게 하였다. 사람들을 지나쳐 주위를 둘러보았다. 무너져 내린 건물에 훼손되어
널브러져 있는 시체들과 곳곳에 산더미처럼 쌓여있는 비교적 온전한 시체들에 의해 온
도시는 악취로 가득했다. 멍하니 서서 복잡한 심경 속에 휘둘려 그것들을 바라보며 깊은
생각에 빠졌다.

아쉽고 안타까운 감정들과 함께 죄책감이 마음속에 한데 뒤엉켜 춤을 추자, 두 눈이 뿌옇게
흐려지기 시작했다. 맺혔던 눈물이 물줄기가 되어 천천히 흘러내렸지만 훔쳐내지는 않았다. 삶의 의욕조차 잃어버린 자들과 악취를 풍기며 썩어가는 시체뿐인 이 도시에 더 이상
볼일은 없었다.

이슬처럼 잔잔하게 흘러내리던 눈물이 어느새 굵어져 발길을 돌리려는 나의 앞을 가로막았지만, 발걸음은 멈추지 않았다. 또다시 어두운 그림자가 얼굴에 드리워진 사람들이 눈에 들어온다. 이 많은 사람에게는 한반도에 핵이 터진 것이 단지 남북이 전쟁을 하고 한반도에 중국이 핵을 터트렸기 때문이라고 밖에 생각을 못 할 것이다.

단지 강 건너에 불이 난 남의 집을 구경하는 소소한 재밋거리와 마찬가지일 테니 말이다. 혹시 스쳐 지나가는 기억의 파편에서야 잠시나마 떠올릴 수나 있을까, 마치 기억하지 못하는 것을 바라는 양 빠르게 도시를 빠져나왔다.

발걸음을 재촉하려 했지만, 가치도 알 수 없는 한낱 볼품없는 미련이 나의 발목을 잡고 놓아주지 않는다. 떨쳐내지 못한 미련에 의해 뒤돌아 바라본 도시는 나의 마음 한구석에 공허함이라는 감정을 쓸쓸하게 자리 잡게 하였다. 어차피 악취를 풍기며 썩어가는 시체들과 가치도 없는 패배자들의 은신처나 다름없는 곳이다.

애써 그렇게 내 마음을 달래며 다시금 발걸음을 재촉하려 했다.

“꺄악”

순간 도시의 어디선가 내 귀 고막을 울리고 나의 마음을 움직일 만큼 계집의 다급한 비명이 들려왔다. 보나 마나 흔하디흔한 먹이 사슬의 우위에 있는 존재들과 그렇지 못한 약자들 사이에 벌어진 분쟁일 것이 뻔했다.

하지만 계집의 비명에 의하여 흔들린 감정 탓일까? 발걸음이 투정을 부리며 떨어지지 않았다. 몇 번이고 투정을 부리는 발걸음을 달래며 갈 길을 재촉했지만 허사였다.
무엇보다 또 다른 알 수 없는 힘이 나의 발목을 휘감고 놓아주지 않았다. 몇 번이고 떨쳐 내려 할수록 그 힘은 비명이 들려온 곳으로 나를 이끌었다. 불나방이 이유 없이 불길 속으로 뛰어드는 것 마냥 또다시 알 수 없는 힘에 이끌렸다. 결코, 하찮고 보잘것없는 영웅 심리에 의한 이끌림은 아니었다.

또다시 가치도 없는 패배자들과 악취를 풍기며 썩어가는 시체들을 지나쳐 비명이 들려온 곳에 도착했다. 많은 사람이 원형을 이루어 모여 있었고 필 시 원형의 가운데에 비명을 지른 계집이 있을 것이라는 확신이 들었다. 역시나 먹이사슬의 우위에 있는 자들과 그렇지 않은 약자들 간에 생긴 뺏고 뺏기는 분쟁일 뿐이었다.

나와는 상관도 없는 분쟁에 휘말리고 싶은 마음은 추어도 없었지만, 의미도 없는 호기심 탓일까, 비명을 지른 계집이 궁금했다. 많은 인파를 비집고 원형 안으로 들어섰고 나의 두 눈에 보이는 것을 대수롭지 않게 믿게 되었다.

칼바람이 불어대고 있는데도 불구하고 겁에 질린 계집이 속옷도 걸치지 못하고 날카로운 죽창을 든 같은 군복을 입은 한국인 사내들에게 위협을 받고 있었다.

거부할 수 없는 힘이 나를 이곳으로 이끈 이유가 이것 때문인 걸까?

어디선가 오랜 시간 동안 잊고 있었던 인연의 기운이 희미하게 느껴져 왔다. 확인할 수는 없었지만, 이 기운은 분명 그 아이의 것이 분명했다. 주위를 두리번거리며 느껴져 오는 익숙한 기운을 쫓았지만, 순식간에 자취를 감추어 버렸기에 포기할 수밖에 없었다.

아쉬운 마음에 계속 주위를 둘러보는 도중 사내 중 하나가 나섰고 자신의 죽창을 계집에게 향하며 모여든 사람들을 향해 입을 놀리기 시작했다. 그의 놀려대는 입에서 나온 말은 간단했다.

위협을 받고 있는 계집이 빨갱이고 그 이유로 인해 모여든 많은 사람 앞에서 공개 처형을 하겠다는 것이었다. 사내에 의해 놀아나던 세 치 혀가 멈추자 일순간 시간이 멈춘 듯이 정적이 고요하게 흘렀다. 앙상한 나뭇가지 같은 두 팔로 자신의 몸을 가리며 추위와 두려움에 떨고 있는 계집을 바라봤다.

그녀는 모든 것을 체념한 듯 자포자기에 빠져 있었고 그녀의 두 눈동자는 이미 죽어가는 사람처럼 생기를 잃어 가고 있었다.

쓸모없고 하찮은 영웅심 때문일까?

어째서인지 그녀가 결백하다는 확신이 섰고 또다시 나의 마음은 영원히 풀 수 없는 실타래처럼 복잡하게 얽히기 시작했다.

“죽여!!”

모여든 사람 중 한 명이 계집을 죽이라고 자신의 목청이 찢어져라. 외치며 정적을 깨자 서로 약속이라도 한 것처럼 다른 사람들 역시 연이어 계집을 죽이라고 목청을 울려 대기 시작했다.

“죽여!”

“죽여!”

누구 하나 저 여자가 빨갱이라는 것에 의문을 품고 이의를 제기 사람은 없었다. 결국, 여기 모인 모두는 약장수들의 바람몰이에 넘어가 가버린 것이다. 아니 어쩌면 긴 세월 동안 복잡한 아시아의 정세 속에서 같은 민족 간에 벌어진 이데올로기의 대립으로 생명에 위협을 당하며 살아온 우리 한국인들이 저지를 수 있는 당연한 모습일지도 모른다.

더군다나 주위 열강들의 한반도를 향한 지나친 내정 간섭을 통일을 통해 막겠다는 명분으로 또다시 자행된 북한의 남침 행위로 한반도에 핵까지 터졌으니 여기서 벌어지는 마녀 사냥은 당연한 결과일지도 모른다.

나는 또다시 두 가지 중 하나의 길을 선택 해야만 했다.

애당초 내가 이곳으로 이끌려 온 것은 여자의 신변과는 상관이 없었기에 모른 척 지나치려 했지만, 정세와 아무 상관도 없는 여자가 이데올로기 대립에 의한 피해자로 죽게 되는 것을 외면할 수는 없었다. 끈질기게 이어 가던 나의 고민은 눈앞에 갑작스럽게 벌어지기 시작한 일들로 일순간 정리가 되어버린다.

“꺄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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