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여든 사람들의 외침 속에 사내들이 계집을 향해 무자비한 폭력을 행사하기 시작한 것이다. 계집은 자포자기한 상태로 비명 한번 내지르지 못하고 몸과 마음으로 폭력을 받아냈고 사람들은 더더욱 자신들의 목청이 찢어져라. 계집을 죽이라고 외쳐댔다.
“죽여!”
“죽여!”
사내들을 죽이기로 마음을 먹었다.
결코, 계집을 위한 것은 아니었다.
나의 의식이 이성의 끈을 끊어 버리는 것을 느껴짐과 동시에 언제든 대검을 휘두를 수 있도록 말초 신경을 자극하며 사내들에게 다가갔다. 일그러지고 왜곡된 민족의식에 사로잡혀 정세와는 아무 상관도 없는 힘 없고 나약해 빠진 계집을 이용해 자신들의 욕구를 푸는 쓰레기들일 뿐이다.
쓰레기들을 처리하기 위해 발걸음을 옮길수록 상처에서 전해지는 통증이 나의 뇌를 자극하며 괴롭혀 왔지만 입을 악물고 어금니를 깨물며 견뎌냈다. 사내 중 한 명이 계집의 머리채를 휘어잡으며 그녀의 머리를 약간 비틀었고 바람몰이를 하던 사내의 죽창의 끝이 그녀의 목덜미 앞에 멈추어 섰다.
“죽여!!”
“죽여!!”
외침은 더욱 크고 거대해졌고 계집은 눈망울조차 맺히지 않은 두 눈을 살며시 감는다. 대검을 뽑아내기 위하여 손잡이를 움켜쥐려는 순간 나의 직감이 위험을 알려오며 사내들과 한바탕 하려던 나의 앙상한 나뭇가지 같은 의지를 꺾어 버린 것이다.
신경질을 부리며 주위를 두리번거리다 맞은편에서 중공군 병사들이 인파 속을 비집고 나오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중공군 병사들은 돌격 소총으로 무장하고 있었고 지도자로 보이는 자의 입에는 담배 한 개비가 물려 있었다. 불청객들의 갑작스러운 등장 탓인지 조금 전까지 자신들의 목청이 찢어지라 짖어대던 자들은 꼬리를 내린 광견처럼 잠잠해졌다.
안전한 곳에 몸을 숨긴 나는 일말의 희망을 품고 앞으로 벌어지게 될 일들을 지켜보기로 했다. 중공군 병사들은 주위를 두리번거리며 사내들에게 다가갔다. 사내들은 자신들을 향해 다가오는 병사들을 두려운 눈빛으로 바라보며 뒷걸음질을 쳤고 조금 전 목숨을 잃을 뻔한 계집은 땅바닥을 기며 슬그머니 자리를 피했다.
중공군 병사들과 사내들이 간발의 차이를 놓고 대치했다. 그들 사이에는 언제 터질지 모르는 시한폭탄 같은 긴장감이 고요하게 흘렀다. 꼬리를 내린 광견들이 숨을 죽인 채로 지켜보는 가운데 중공군 병사 중 한 명이 자리를 피하려던 계집의 머리채를 붙잡았다.
병사에 의해 질질 끌려온 계집은 사내들의 발아래 힘없이 내동댕이쳐졌다. 사내들은 자신들의 발아래 쓰러진 계집을 아무 말 없이 내려다봤다. 중공군 지도자가 사시나무처럼 추위와 두려움에 떨어대는 계집을 자신의 군홧발로 지그시 눌러 밟으며 물고 있던 담배를 거칠게 내뱉는다.
맞은편에 서 있는 사내를 좋을 대로 비웃어 대며 도발을 하기 시작했다. 사내는 중공군 지도자를 매서운 눈빛으로 바라보며 그에게 달려들지 못하는 현실이 억울한 듯 두 주먹을 굳게 쥐고 온몸을 바르르 떨어댔다. 또다시 한 개비의 담배를 입에 문 그는 담배에 불이 붙은 성냥을 가져갔고 담배는 연기를 내며 타들어 갔다.
그는 곳 자신의 입에 문 담배를 두 손가락 사이에 집은 뒤에 모여 있는 한국인들을 바라보며 큰소리로 몇 번이고 호탕하게 웃었다. 그의 웃음이 멈추는 순간까지 누구도 그에게 항의하거나 달려드는 한국인들은 없었다.
침묵 속에 이어가던 김장감은 더욱 고조되어갔다. 중공군의 지도자는 온갖 비웃음이 가득한 표정으로 맞은편에서 자신을 노려보는 한국인 사내를 향해 입에 머금고 있던 니코틴
덩어리들을 내뿜었다. 도발을 참지 못하고 이성을 잃은 사내가 괴성을 지르며 중공군
지도자에게 주먹을 휘둘렀다.
그가 휘두른 주먹은 중국인의 얼굴을 향해 전광석화처럼 날아갔다. 중공군 지도자는 어떤 행동도 취하지 않고 자신을 향해 날아오는 주먹을 말없이 지켜보기만 했다.
“탕!탕!탕!”
사내의 주먹이 중공군 지도자의 얼굴에 닿으려는 순간 몇 번의 총성이 울려 퍼졌다.
“큭”
외마디 비명도 간신히 내뱉은 사내가 넝마가 된 채 차가운 땅바닥에 쓰러져 죽어 갔고 긴장감 속에 고조되어 갔던 침묵이 순식간에 벌어진 일로 인하여 시간이 멈춘 듯이 고요하게 흘렀다.
중공군 지도자가 한 손에 권총을 움켜쥐었다.
그는 음흉한 미소를 지으며 군홧발에 짓밟혀 두려움에 떨고 있는 계집의 머리채를 휘어잡았고 그녀의 얼굴을 들어 올렸다.
“탕!”
계집이 한국인들을 바라보게 한 중공군 지도자가 하늘을 향해 방아쇠를 당기자 병사들은 빠르게 소총의 안전장치를 해제했고 한국인들을 향해 방아쇠를 당겼다.
“탕!탕!탕!”
“꺄악”
“으악!”
총성이 도시를 가득 메우며 울려 퍼졌고 계집은 절규에 가까운 처절한 비명을 내질렀다.
말없이 지켜보기만 하던 한국인들은 꽁지가 빠진 도마뱀처럼 괴성을 지르며 도망을 치기 시작했다. 총성들이 비명에 묻혀 가기 시작했고 한국인들은 하나둘씩 고기 조각이 되어 쓰러져갔다.
클라이맥스에 다다른 액션 영화의 한 장면을 관람하듯 흥미롭게 지켜보던 중공군 지도자가 계집의 관자놀이에 총구를 갔다가 대며 간을 보듯 천천히 방아쇠를 당겨 나갔다.
결국, 내가 가졌던 일말의 희망은 이루어지지 않았고 이렇게 끝이 났다.
지켜보기만 했던 나 자신에게 일말의 죄책감이라거나 양심에 가책 역시 느껴지지 않는다. 여운이 남는 영화가 끝난 극장을 나서듯 무거운 발걸음을 옮기려는 순간 등 뒤 너머로 한 번의 총성이 울려 퍼졌고 나는 나의 귀를 의심했다.
조금 전까지 도시를 울렸던 중공군들의 총성과는 전혀 다른 총성이 울려 퍼졌기 때문이다.
다급하게 계집 쪽을 바라봤다.
중공군 지도자가 땅바닥에 쓰러져 미동도 하지 않았다.
계집은 넋이 나간 상태로 쓰러진 중공군을 바라보기만 했고 혼이 빠져나간 중공군 병사들은 엄폐하고 서로 눈치만 보고 있었다. 자취를 감추었던 녀석의 기운이 극대화되어 나의 이성을 자극해왔다.
모든 신경을 날카롭게 세우고 주위를 두리번거리다 마침내 중공군들을 향해 방아쇠를 당기려는 녀석을 찾을 수 있었다.
녀석이 방아쇠를 당기자 총성이 도시에 울려 퍼지며 중공군 병사 하나가 쓰러졌다. 그리고 나는 계집에게 큰소리로 피하라고 외치며 그녀에게 다가갔다. 그녀는 자신의 곁에 내가 다가온 순간까지도 생기를 잃은 두 눈으로 자신의 앞에 쓰러진 중공군을 바라만 보고 있을 뿐 미동도 하지 않았다.
마음에 깊고 깊은 괴로운 상처가 자리를 잡은 탓일까?
추위조차 느끼지 못하는 그녀의 몸에 피 냄새가 진동하는 나의 전투복 상의를 걸쳐 주었다.
여전히 자신을 죽이려 했던 중공군의 시체에서 시선을 떼어내지 못하는 그녀의 모습은 마치 누군가 자신을 죽여주기를 간절히 바랬던 여자처럼 보였다. 나는 그녀가 죽게 되는 것을 원치 않았다.
물론 방금까지는 그녀의 생사의 여부는 내 알 바가 아니었지만, 동정심에 의해 생긴 영웅 심리가 그녀의 생사에 깊게 관여하게 하였다. 녀석의 엄호 사격을 받으며 자리를 떠나지 않으려는 그녀를 겨우 안전한 곳으로 대피시켰다.
“악착같이 살아남으세요”
. 그녀에게 그 한마디만을 전했다. 이제 내가 해야 할 일은 의미도 없는 익숙한 살인을 또다시 해야만 하는 것이다. 어느새 나는 궁지에 몰린 쥐에게 입맛을 다시며 다가가는 고양이처럼 중공군들을 향해 천천히 다가갔다.
“탕!탕!”
“악!”
“컥!”
여전히 상처에서는 당장에라도 땅바닥에 주저앉아 울고 싶을 만큼 견딜 수 없는 통증이 전해져 오고 있었다. 그나마 다행스러운 것은 이미 녀석 혼자서 절반이 넘는 중공군들을
처리했기에 힘겨운 싸움은 될 것 같지 않다는 것이었다. 양손에 대검을 움켜쥐고 중공군들을 향하는 도중 나는 확인해야만 하는 의문점을 가지게 되었다.
왜 이 세상에 인류가 태어난 것일까?
단지 비기득권 자와 기득권자로 나누어져 서로 죽이며 희생시키기 위해서 태어난 것일까?
아니면 이 모든 것이 스스로 먹이사슬의 최상위에 자리 잡고 있다고 착각하는 인류가 숭배하는 신들의 뜻일까?
그렇다면 나는 그 이유를 확인하고 싶었다.
과연 이 모든 것이 신들의 뜻인지를 말이다. 복잡한 심경 속에 마음이 흔들린 나는 녀석의 엄호 사격을 받으며 신중하고 신속하게 남은 중공군 병사들을 하나씩 처리해 나갔다.
“탕!탕!”
“으악!”
멈추어 섰던 톱니바퀴가 돌아가듯 도시는 또다시 비명으로 뒤덮였다. 끊임없이 들려오는 비명들은 나의 마음에 아물지 않을 죄책감이라는 상처를 만들기 시작했고 내 본능은 그것을 거부하기라도 하듯 더욱 날뛰며 대검을 휘둘렀다.
우리는 왜 비기득권 자가 된 것일까?
누가 그것을 허락한 것이고 왜 거부조차 하지 못한 것일까?
살인을 이어 갈수록 마음 한구석에는 괴로움이 쌓여 갔다. 무엇보다 같은 비 기득권자를 죽일 수밖에 없는 현실이 그렇게 만들었다. 경우가 무엇이든 어차피 우리 비기득권 자들은 기득권자들의 이익을 위하여 기나긴 역사를 거슬러 내려오며 서로 희생시켜야만 했다.
이것은 부정할 수 없는 현실이다. 나는 언젠가는 반드시 풀어내야만 하는 의문점을 끝없이 되풀이하며 보잘것없는 앙상한 나뭇가지보다 꺾어버리기 쉽고 지루한 살인을 이어갔다.
“합!”
“으악!”
“탕!탕!
“악!”
나의 귀 고막을 울리는 비명에 의해 어느새 나는 자아를 잃어버렸다. 본능에만 의지한 채 내가 휘두른 칼을 붙드는 살에서 칼을 빼는 느낌을 느껴 갈수록 나는 살인에 굶주린 악귀가 되어 갔으며 조금씩 피로 얼룩져 가던 나의 몸에서는 진하고 역겨운 피비린내를 풍기게 되었다.
미친 듯이 살인 행위를 이어가던 나를 멈추게 한 것은 고요함 이였다. 더 이상 나의 귀 고막을 울리던 비명들이 들려오지 않았다. 주위를 둘러보자 고기 조각이 되어 널브러진 시체들과 검붉은 피로 물들어 버린 것들이 시야에 들어왔지만, 굳이 신경은 쓰지 않았다.
지금 나에게 있어서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단 한 자루의 돌격 소총만을 어깨에 메고 나를 향해 다가오는 녀석이었다. 긴 시간의 공백 기간을 두고 녀석과 재회를 하게 되었다.
“오랜만이네?”
기쁘고 반가운 마음에 마주 선 녀석에게 손을 내밀려는 순간 녀석은 나를 향해 순식간에 달려들었다. 갑작스러운 녀석의 돌발 행동으로 중심을 잃고 넘어지려는 몸을 가까스로 지탱했다.
“야! 무슨 짓이야?”
방어 자세를 취하고 바라본 녀석은 아무 말 없이 착검을 마침 상태였다.
“씨익”
녀석이 대검의 끝을 나를 향한 채 미소를 짓는다. 자세를 잡은 녀석은 금방이라도 자신의 앞을 가로막는 모든 것을 밀어 버릴 것 같은 불도저를 연상하게 하였다. 본능 적으로 대검의 손잡이를 움켜쥐려는 왼손을 진정시키며 녀석을 바라봤다.
녀석은 지금까지 겪어 왔던 그 어떤 참혹한 전장보다 힘겹고 버거운 상대처럼 느껴졌다.
이대로 녀석과 붙게 된다면 당하는 쪽은 당연히 이쪽이 될 것이다. 하지만 다행스러운 것은 녀석에게서 살의와 살기가 느껴지지 않는다는 점이다. 녀석이 살며시 나를 향해 옅은 미소를 짓는가 싶더니 순식간에 몸을 박차고 총검을 앞세워 공격을 해왔다.
“큭!”
“어이 상대를 착각하는 거 아냐?”
빠르게 몸을 움직이며 간발의 차이로 녀석의 공격을 방어했다. 확실히 그 어떤 것보다 힘겹고 버거운 상대다. 녀석 또한 대운을 짊어진 자라는 부분이 힘겨움을 몇 배로 만들었다. 녀석은 나의 움직임을 미리 읽고 도망칠 곳을 차단해버리면서 나에게 일방적으로 자신의 공격을 퍼부었다.
“망령이 고작 이 정도야? 실망인데?”
“합!”
빠르고 신속하게 탈 검과 착검을 병행하는 녀석의 공격은 때로는 잔잔하게 밀려오는 파도 같은가 하면 탈검한 상태로 각각 양손에 쥔 대검과 돌격소총을 휘두르며 공격해 오는 녀석의 모습은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것을 부숴버리는 힘을 가진 토네이도만큼이나 위협적이었다.
“괜한 헛소문은 아니었나 보네”
몇 번이고 위협적인 녀석의 공격이 대검의 손잡이에 왼손이 가게끔 할 정도로 녀석은 나를 향해 일방적으로 수도 없이 많은 공격을 퍼부어 댔고 나는 녀석의 공격을 힘겹게 막아 내며 서로 즐거운 놀음판을 이어갔다.
“재밌지?”
“아 그러네!”
“씨익”
“씨익”
또다시 옅은 미소를 지으며 나를 바라보는 녀석에게 나 역시 미소를 보이며 화답을 해주었고 그렇게 우리는 끝나지 않을 놀음판을 또다시 이어갔다. 즐거운 놀음판의 재미를 느껴가는 도중 상처에서 견딜 수 없는 통증이 전해졌다.
“합”
“컥!”
갑자기 찾아온 통증을 이겨내지 못한 나는 녀석의 발차기에 맞아 쓰러졌다. 피가 흥건한 땅바닥에 얼굴을 파묻고 상처를 견디는 나에게 녀석이 손을 내밀었다.
“괜찮아?”
녀석에게 웃으며 말했다.
“죽을 것 같아”
p.s 네이버 ㅡ> 문피아 ㅡ> 집필작 서신 (필명 사탕선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