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일으켜 세우고 부축하는 녀석의 모습이 병 주고 약 주는 사람처럼 보였다. 녀석은 나를 부착한 뒤 적당한 곳에 앉혔다.
우리는 서로 아무 말 없이 침묵을 지켰고 눈앞에 보이는 고기조각들과 이미 굳어 버린 검붉은 피만을 바라보며 시간을 보내게 되었다. 단지 녀석의 입에 물려 있는 담배와 나의 손에 쥐어진 사진들이 무료하고 따분한 시간을 달래 주고 있었다.
녀석에게 손에 쥐고 있던 사진들을 내밀었다.
“세상에 개입하려 했어.”
밑도 끝도 없는 주어가 빠진 나의 첫 마디에 승환이는 입에 물고 있던 담배를 한 모금 빨아들이며 한 손으로 내가 내민 사진들을 받아들었다.
“다행히 형수님을 많이 닮았네? 형을 안 닮아서 다행이야.”
진심일지 모르는 녀석의 덕담에 옅은 미소를 지었다. 녀석은 딸아이가 함박웃음을 짓고 있는 사진에서 시선을 떼어내지 못했다. 연이어 담배를 피워대는 녀석에게 한층 더 무거운 마음으로 말을 이어갔다.
“므아가 한마디의 말조차도 남기지 않고 갑자기 자취를 감춘 뒤로 죽을 날만을 기다리며 5년을 방황했어. 그리고 어느 날 대기업의 하청에 파견직으로 일했지.”
승환이가 담배 연기를 내뱉으며 말했다.
“거기서 형수님을 만나게 된 거구나”
“그렇지”
어느새 나는 되찾을 수 없는 추억 속에 젖어 있었다.
“첫눈에 반했다고 해야 할까? 첫눈에 이 여자다 싶었다고 해야 할까? 뭐 그런 거 있잖아. 느낌”
녀석이 알 것 같으면서도 모르겠다는 표정으로 나를 바라본다.
“느낌?”
녀석을 향해 옆은 미소를 지어주고는 또다시 추억을 되새기며 말을 이어갔다.
“이 여자와 함께라면 대운을 짊어진 자로서 짊어지게 된 세상의 모든 원한을 잊고 남은 시간을 평범한 인간으로서 살아갈 수 있을 것 같았어. 그런 확신을 하게 된 나는 끊임없이 구애했지”
그 당시에만 해도 나는 대운을 짊어진 자로서의 삶을 이어 가던 중이었고 심신이 망가질 대로 망가져 꽤 지쳐 있던 상태였다. 그런 탓에 정신적으로 정착하고 의지할 곳이 필요했다. 그러한 이유로 인하여 나에게는 세상의 무엇보다 그녀가 절실했다. 그녀와 함께라면 내 존재조차도 잊고 살아갈 수 있을 것 같았으니 말이다.
하루하루가 행복하고 즐거웠다. 그리고 그런 소중한 시간을 이어 가던 중 딸아이가 태어난 것이다.
“그래서 세상에 개입하려 했던 거군 세상에 미련이 생겨서 어차피 멸망할 것을 알면서도 자신이 어떤 존재인지조차 망각하게 되어버린 건가?”
녀석이 새로 문 담배에 불을 붙이며 매서운 눈빛으로 나를 노려봤다. 녀석에게 나는 변명 아닌 변명을 늘어놓기 위하여 또다시 말을 이어 나갔다.
“딸아이가 성장하면서 살아가는 모습을 보고 싶었을 뿐이야 설령 당장 세상이 멸망한다더라도 멸망을 하게 되는 순간까지는 딸아이가 밝은 세상에서 살게 되기를 바랐어.”
녀석이 자신의 입속에 가득 차 있던 니코틴 덩어리들을 내뱉었다. 그리고 더 이상 볼 필요도 없는 것인지 나에게 사진을 돌려주며 양쪽 어깨를 들썩인다.
“부모의 마음이라는 건가? 나에게는 꽤 어려운 문제군”
승환이의 말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나는 사진 속에 환하게 웃는 딸아이의 모습에 시선을 고정한 채 말을 이어 나갔다.
“그래서 세상에 개입하려 했다. 부모 된 마음으로 내 자식이 분쟁 없는 밝은 세상에서 조금 더 밝게 살아갈 수 있도록 세상을 바꾸어 주려고 했던 거야 단 한 순간만 살아가야 하는 운명일지라도 기득권자들의 이익을 위하여 희생당하는 삶을 살지 않도록 해주고 싶었어.”
되돌릴 수 없는 추억에 빠진 채 환이 녀석에게 변명을 늘어놓으며 말을 이어 가던 나는 마음속 깊은 곳에서 끓어 오르는 감정을 주체하지 못했다.
나의 두 눈에 맺히기 시작한 눈물을 훔쳐내며 멈추지 않고 말을 이어나갔다.
“왜 그렇게도 앙증맞았을까? 손도 발도 눈도 입도 코도 귀도 무엇 하나 앙증맞지 않은 게 없었어. 그런 그 아이가 커가며 어떤 삶을 살게 되고 누구와 결혼을 해서 어떤 아이를 낳고 어떻게 살아가게 될지 궁금해진 거야 이미 나는 세상이 이렇게 될 걸 알고 있었으면서도”
녀석은 아무 말 없이 내가 늘어놓는 변명에 관심을 가지며 듣기만 했다.
“세상에 개입하고 나서 전쟁을 막으려 했지. 그리고 세상을 바꾸려 했다. 그 누구도 상처받지도 않아도 되는 세상 그 누구도 기득권세력의 이익을 위하여 서로 희생 시키지 않아도 되는 세상 누구라도 세상을 도우려는 자라면 항상 아픔과 희생 없이 살 수 있는 세상으로 바꾸어 주려고 했어. 이번 인류가 진정 자신들이 무엇을 위하여 누구와 싸워야 하는지 일깨워주고 새 천 년을 열어주려고 했지!”
내가 늘어놓은 변명 같지 않은 변명을 듣던 녀석이 나에게 모든 의문점을 함축시킨 단 두 마디만을 던졌다.
“근데 왜?”
뺨을 타고 흐르기 시작하는 눈물을 훔쳐내며 승환이의 궁금증을 풀어 주었다.
“세상에 개입할 수 있는 명분을 만들기 위하여 천천히 힘을 길렀다. 마침내 결실을 맺을 기회가 왔고 움직이기만 하면 댔지 하지만 그 순간 스승님이 나에게 해주었던 뼈 있는 한마디가 떠오르더군”
“스승님?”
녀석이 의아한 눈빛으로 나를 바라본다. 여전히 녀석의 입에는 연기를 내며 타들어 가는 담배가 물려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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