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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들께 보내는 편지 세오
서신 -destroyer- 8
134 2014.09.01. 22:25

“세상에 개입하기 위하여 힘을 기르는 도중 가장 힘든 시기가 찾아왔다. 마음 둘 곳이 없어 정처 없이 떠돌아야만 했던 시기가 있었다. 그런 와중에 어느 무속인을 찾아가게 댔지 나를 알아보더군. 대운을 짊어 진자라는 것을 알아본 것인지 아니면 다른 무언가를 본 것인지 내가 이번 생이 마지막이라는 것을 알아봤어 그 뒤로 종종 찾아가 가르침을 받았지 많은 가르침을 받았다.”

스승님에게 받은 많은 가르침 중 내 마음을 가장 아프게 했던 가르침이 하나 있었다. 세상은 순리대로 흘러가야 한다는 것이 그 가르침이었다.

“세상에 개입하기 위하여 힘을 기르고 난 이후에 한바탕 놀아날 만반의 준비가 다 된 상태에서 스승님의 그 한마디는 긴 시간 동안 나를 고민에 빠지게 하였다”

결국 세상에 개입하는 것을 포기를 해버렸다. 개입해도 되느냐 마느냐 하는 문제가 아니었다. 다른 근본적인 문제에 부딪히게 된 것이 그 이유였다.

“뒤늦게 주제를 파악했군?”

여전히 사진에서 시선을 떼어내지 못한 채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대운을 짊어진 자 그리고 그 대운을 짊어진 자 중 가장 강한 운명을 쥐고 있는 자 이 세상을 이렇게 어지러운 혼돈에 빠뜨린 원흉인 내가 딸아이 하나 때문에 멸망을 앞둔 세상을 위해서 개입을 한다는 것 자체가 스스로 우습고 천해 보였다.

“세상에 개입하는 것을 포기한 이유는 그것 외에도 다른 이유가 있었어.”

어차피 내가 세상에 개입하든 하지 않든 그것은 중요한 것은 아니었다. 세상은 어떻게든 정해진 대로 흐르게 돼 있는 법이니까 말이다. 스승님은 나에게 그렇게 말씀해주셨다

“그냥 두려웠어.”

흑이냐 백이냐 두 가지 중 어느 한 가지조차 자신의 의지로 선택할 수 없는 이 조국의 혼란스러운 정세가 나의 개입을 포기하게 하여 버렸다. 당장 눈앞에 다가오는 거대한 대재앙조차 알아** 못하고 진보냐 보수냐 좌익이냐 우익이냐를 놓고 서로 이념과 사상 싸움을 해대는 조국의 정세를 바라보며 무엇이 옳고 무엇이 그른지 판단을 내리지 못했다.

일그러지고 왜곡된 성향과 민족의식에 사로잡힌 자들에 의해서 나의 조국은 내가 개입을 할 수조차 없을 만큼 혼란스러움 그 자체로 만들어진 뒤였다. 이런 혼란스러운 정세 속에 내가 개입을 하게 된다면 어느 기득권 세력에게나 이용 가치가 높은 먹잇감이었을 테니 말이다

“듣던 중 다행스러운 말이군”

내가 개입을 포기하게 된 계기를 듣던 녀석이 손뼉을 치며 환호 아닌 환호를 했다. 나는 그런 녀석의 마음을 잘 이해했기에 화를 내거나 따지거나 하는 행동은 하지 않았다. 아쉬움이 가득할지도 모르는 나의 얼굴을 바라보던 승환이가 자신의 입안에 가득 차 있던 니코틴 덩어리들을 내뱉으며 말했다.

“아마 형이 개입하고 난 이후 새천년을 열어주었다면 인류는 더 큰 재앙을 맞이하게 되었을 거야 근본적으로 기득권을 확립한 세력들이 바뀌지 않으면 이 세상은 절대 적으로 바뀔 수 없으니까”

녀석의 말을 듣고 난 이후 사진을 바라보며 말문을 열었다.

“죽어 가는 쥐** 한 마리가 있었어.”

녀석이 갑작스러운 나의 주어가 빠진 말 한마디에 놀라서 주위를 둘러본다.

“어디? 없는데? 주위에 쥐** 한 마리 안 보이는구먼”

녀석은 내가 말하는 그 쥐**가 무엇인지 알면서도 수준 떨어지는 몸 드립을 치며 장난을 친 것이다. 그냥 그런 녀석이 어이가 없어 멍하니 바라만 봤다.

“미안”

깨끗하게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고 사과를 하는 녀석을 보며 한숨을 푹 쉬며 나는 다시 말을 이었다.

“하늘은 기나긴 역사를 흘러내려 오며 깊은 원한을 입게 된 한민족을 이용하여 세상을 멸망시키겠다고 정해 버렸다. 그것을 실현하기 위해서라도 하늘은 한민족을 위한 지도자다운
지도자를 내리지 않았어.”

예부터는 지도자는 하늘이 내린다고 했다. 폭군과 선군 어느 쪽을 내리든 그것은 하늘의 뜻이라는 거지.

기나긴 일제 강점기를 거치며 잃어버린 민족성을 되찾고 식민사학에 물들어 일그러지고 왜곡된 민족의식과 성향에 물들어 사상과 이념 싸움을 이어가는 자들을 바로잡고 조국과 민족의 부흥을 위하여 민족을 움직일 힘과 또한 그것을 실현할 수 있는 명분을 가진 자가
있었다면 이렇게는 되지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하늘은 한민족을 이용하여 이번 세상을 멸망시키겠다고 결정한 이상 한국에 그런 지도자를 절대 내리지 않았다.

세 번째 담배를 입에 문 녀석이 담배에 불을 붙였다.

“하늘은 냉정하니까”

어느새 나의 뺨을 타고 내리던 눈물이 그쳤다.

“그래서 그 쥐**에게 살아남을 명분을 만들어 주려고 한 거야. 이미 타우린을 섭취하지 못해 금단 형상을 보이는 고양이들에게 잔인하리 만치 심한 공격을 받아 상처를 입을 대로 입어 죽어가는 그 쥐**에게 목숨을 부지할 수 있게 만들어 주고 동족을 지킬 수 있는 명분과 힘을 만들어 주려고 했지!”

나는 멈추지 않고 말을 이어나갔다.

“뭐 그 쥐**라면 패권을 쥐게 하여도 괜찮을 거 같았어. 어차피 대운을 짊어진 자인 나의 개인적인 판단일 뿐이지만 왠지 그자와 함께라면 좋은 세상으로 만들 수도 있을 것 같았으니까”

말을 끝낸 나는 어깨를 으쓱이며 승환이 녀석을 바라보았다. 녀석은 입에 문 세 번째 담배 한 개비를 깊게 빨아 마신 뒤 입을 열었다.

“결론은 어차피 세상은 한민족을 통해 멸망해야 하는 입장이었고 그리고 형은 세상에 개입하지 말아야 하는 중용을 지켜야 하는 입장이었고 어쩔 수 없잖아. 결국은 형의 개인적인 외로움이라는 하찮은 감정을 견디지 못해 가족을 만들었고 그 바람에 자칫 잘못했으면 이 세상이 더 큰 혼란에 빠지게 하는 또 다른 원흉을 만들 뻔했으니 뭐 잘했어. 칭찬해줄게”

나의 손에 쥐어졌던 사진을 전투복 상의에 고이 넣은 뒤 점점 빛을 발하기 시작하는 달이 떠 있는 하늘을 올려 다 보았다. 아쉬움이 가득한 마음에 또다시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무엇 때문에 이번 인류는 서로에게 유연하지 못했을까?

좋은 세상으로 만들어 갈 방법은 얼마든지 있었는데 모든 것이 아쉬울 뿐이다.

“네 말대로 다 문명의 발전이 거듭 될수록 하늘과 땅은 오염의 농도가 짙어 갔고 이번 인류 자체도 해결할 수 없는 질병들과 자연재해들 역시 정도가 짙어 갔지 세상을 바꾸어 주고 새천년을 열어 주었다 한들 더 큰 재앙을 맞이하게 되었을 게 뻔해”

녀석이 나의 축 처진 어깨 위로 손을 올렸다.

“이제 어떻게 할 거야? 이대로 고기조각들이나 구경만 하고 있을 수는 없잖아?”

한 손으로 나의 어깨에 올려진 승환이의 손을 잡았다. 여전히 나의 시선은 하늘에 떠 있는 달에 고정되어있었다.

“므아를 만나야겠어. 꼭 확인할 게 있어.”

“정확하게는 디므아가 아니라 므아에게 빙의되어있는 천족의 카레스지?”

“아…. 뭐 그렇지”

“어디 있는지는 아는 거야?”

“지금 군부에 있는 것 같더군”

승환이가 의아한 눈으로 나를 바라본다.

“군부?”

“평소에 내가 신경 쓰였는지 내가 마지막으로 배치된 군대의 상관이 상부에 부탁해서 내 뒷조사를 하는 과정에 22년 전 내가 므아와 접촉한 사실을 알아버렸어. 아마 이번 전쟁에서 한창 밀릴 때 개입을 하기 시작했나 봐”

녀석이 무엇인가 떠오른 듯한 손으로 자신의 무릎을 치며 입을 열었다.

“어쩐지 모든 면에서 밀리던 전쟁이 한순간에 역전이 되더라니? 역시 신은 대단하네”

무엇인가 곰곰이 생각하는 녀석의 어깨를 두드리며 걸음을 재촉했다.

“가자”

단 하나의 이유만을 가지고 지금까지 겪어왔던 그 어떤 풍파보다 더 크고 거대한 풍파가 나를 기다리고 있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지만 나는 꼭 카레스를 만나 확인을 해야만 했다.

“다리는?”

상처를 입은 나의 다리가 걱정된 것인지 녀석의 얼굴이 어두웠다

“신경 쓰지 마 쓸모없어지면 잘라 버리면 그만이니 지금 우리에게 중요한 것은 쓸모없어질 나의 다리가 아니잖아. 우리는 더 큰 것을 위하여 움직여야 한다고 서두르자”

나의 성화를 이기지 못한 승환이가 나를 부축했고 발을 맞추어 움직였다.

“많이 힘들 거야”

걱정스러운 마음에 꺼낸 나의 말이 별문제 없다는 듯 어깨를 으쓱였다.

“뭐 어차피 우린 대운을 짊어진 자들이잖아. 전생에 지은 죄로 인하여 하늘이 명줄을 끊지 않는 한 죽고 싶어도 죽을 수도 없을 텐데 뭐가 걱정이야 견디면 그만이지!”

녀석의 든든한 말 한마디가 앞으로 다가올 풍파들에 대하여 두려움을 가졌던 나 자신을 부끄럽게 만들었다.

“근데 뭐하나 물어봐도 돼? 형이 그랬지 세상에 개입하기 위하여 힘을 길렀다고 어떻게 준비한 거야? 아무리 생각을 해도 상상이 안 가서 비기득권 자가 세상에 개입할 힘을 기르는 게 쉬운 게 아닐 텐데?”

녀석의 부축을 받고 걸으며 대답해주었다.

“글을 썼어.”

그제야 이해가 된 승환이 녀석이 고개를 끄덕이며 발걸음을 재촉하는 나와 함께 발을 맞추어 걸어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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