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
그렇게 사단의무대에 외진을 갔는데.. 일단 처음왔으니 CT를찍고 군의관에게 갔더니
헐~ 이거 디스크가 좀 있는거같은데? 진단서 처리해줄테니까 춘천병원 가봐라.
헐~
통증이 심하다 했더니 이젠 춘천병원을 가란다. 춘천국군병원은 조금더 커서 MRI를 찍을수있는
그런곳이었다. 한마디로 증상이 심한친구들만 진단서를 처리해서 춘천병원으로 보내는건데
나는 사단의무대를 한번 가자마자 춘천병원에 가게되었다.
으미~~
부대에 복귀해서 소대사람들과 소대장등에게 보고하니
그렇게 심한데도 그동안 여태껏 아무말도 안했단말야? 해서 이상하게 내 평가가 올라갔다 ㅡㅡ;;
그이후론 행보관까지 알게되어 심한일은 시키지마라. 허리아플만한 행동은 시키지마라. 해서
제설도 엄청 쉬운구간만 하고 작업같은것도 곡괭이질같은건 안하게 되었다.
그리고 다시 외진을 가게되었고.. 춘천에서는 MRI 촬영이 비싸서 그런건지
계속 진통제만 대충주고 다음에 또 와라~ 다음에 또 와라~ 이런식으로만 얘기하는거다.
소대장이랑 행보관은 계속 MRI 찍어서 결과를 보자고 하고.. 그래서 외진을 계속 잡아주는데
막상 병원에 가면 앵간하면 MRI를 잘 안찍어줄려고 한다. 진통제만 주고 보낸다.
그래서 다시 부대에 복귀하면 왜 MRI 안찍어왔냐고 뭐라고 한소리를 듣는다.
나만 중간에 끼여서 스트레스 만땅받고 ㅡㅡ;; 계속해서 외진을 가니 소대원들에게 눈치가
슬슬 보이기 시작했다. 작업이나 제설을 빠지는것도 한두번이지 계속해서 빠지니
내 스스로가 너무 불편했고..
더 중요한건 앞으로 4.2인치 박격포를 배우면서 포도 옮겨야하고 날씨가 풀리면 진지공사라든지
힘들고 빡신일이 많을텐데 지금 허리가 아파버리면 뭣도 못하는 상황이 와버린다.
아 너무 골치아프다..
이때 경계근무(탄약고근무)도 빠지게 되었고 불침번근무로 전환이 되었다.
와 탄약고근무를 나가다가 불침번을 서니 신세계다. 불침번은 새벽에 서도 1시간밖에 안되고
그마저도 막사 내에서 돌아다니는거라 전혀 춥다는 생각을 못한다.
그리고 하는일도 인원체크, 온도체크정도 밖에 안되고..
새벽 3,4시 이런시간에 근무가 걸리면 당직사관도 보통 자고있거나 졸고있어서
그냥 맘편히 앉아있어도 잘 모른다. 이렇게 꿀이라니.
지지부진 계속 MRI는 찍지못했고 결과가 안나오니 어지간히 답답했다.
그래서 그 결과를 부모님에게도 말씀드리고, 주위 친구들한테도 답답한 심정을 전화로 얘기하곤
했었는데.. 부모님이 소대장에게 전화를 해서 4월에 GOP도 가는데 외진을 가도 MRI는 잘 안찍어줄려고 하고 부모의 마음으로 너무 답답하다. 무슨 차도가 없겠느냐. 이런식으로 말씀을 하셨나보다.
우리 소대장님은 짬이 쫌 찬 상사였는데 (행보관은 원사) 그당시 부대내에서 짬이 좀 되서
영향력이 엄청 있는 사람이었다.
그래서 바로 중대장에게 청원휴가 신청을 했고 그걸 ok받아 계획에도 없던 휴가를 나가게 되었다.
원래 내 신병위로휴가는 3월말에 계획이었는데.. 2월말에 갑자기 휴가를 나가게 된것이다.
1차정기 9박10일에서 내휴가 3박4일을 짤라서 나가란다. 그리고 병원예약을해서 MRI만 찍고
부모님한테 얼굴도 비추고 안심좀 시켜드리고 오란다.
ㅋ ㅑ~
동기들은 신병위로도 못나갔는데 나는 막상 밖에 나간다고 생각하니 얼마나 좋던지.
허리에대한 아픔보다 오히려 밖에나가서 친구들 얼굴. 가족들 얼굴을 볼수있다는 사실이 너무좋았다.
그렇게 나는 2월말에 청원휴가(3박4일)을 나오게 되었다.
평소 동네로 돌아오니..
나는 진짜 강원도에가서 눈을쓸고 근무를서고 진짜 별에별 악 환경에서 살다 돌아왔는데
내 주변사람들은 주변환경들은.. 우리 동네는.. 정말 너무 평화로웠고
전~혀 변한게 없었다.
첫휴가를 나와서 느낀건 내가 생각했던것보다 내 주위의 모든것이 변하지 않았다는거였다.
그안에서의 3개월은 나에게 너무나 긴 시간이었는데..
밖에선 보잘것없는 3개월이 흐른것 뿐이었다.
어쨌든 병원가서 MRI를 촬영하는 시간말고는 최대한 놀았다. 친구들과 롤도 하고
고깃집에서 고기도 먹고.. 와.. 그냥 사소하게 집에서 과자까먹거나 치킨시켜먹으면서
누워서 TV를 보는것. 그게 이렇게 행복하고 귀중한걸 그때서야 처음 알았다.
진짜 집에서 치킨시켜놓고 편하게 누워서 새벽까지 티비를 보고 컴퓨터를 하는데..
진짜 눈물이날정도로 좋더라.. 와..
3박4일은 정말 눈깜짝할새 지나갔고. 복귀날이 다가왔다.
진짜발걸음이 안떨어진다. 와.. 내집..내방. 내컴퓨터. 우리가족들. 내 친구들
또다시 이별해서 근무들어가고 눈치보고 갈굼받을생각하니 진짜 답이없다.
안그래도 소대내에서 계속 외진다니고 혼자 휴가나와서 눈치 엄청보이는데.. 다시들어가면
또 어떤지옥이 날 기다릴까.. 진짜 발걸음이 안떨어지더라..
그 첫휴가복귀는 아직도 기억이 생생하다..
처음 휴가를 복귀해보니 시간이 얼마나걸릴지 몰라서 일찍 출발했다.
부대앞쪽에 도착하니 일찍온만큼 시간이 좀 남았다. 2시간정도.
그래서 PC방에 들어가서 롤을 하는데.. 내가 무슨생각으로 이걸 하는건지.. 진짜 재미가 하나도없다.
나와서 맛있는 햄버거를 사먹는데.. 진짜 이게 무슨맛으로 먹는건지.. 토를 안하면 다행이다.
진짜 돌아가는 버스안에서..
무슨 막 천재지변이 일어나서 이 버스가 뒤집어졌으면 좋겠고
막 교통사고가 나서 내가 입원을하면 얼마나 좋을까 이런 생각까지 하게된다.
와..
그때의 기분은 진짜 말로 표현할수가 없다.. 그때만 생각하면 지금도 내 모습이 되게 먹먹하다..
그렇게 죽을상을 하며 울며겨자먹기로 부대로 복귀를 하게 되었고.
MRI 결과를 제출했다.
진단결과 엄청 심한건 아니지만 허리디스크가 있는것으로 판명되었고,
무거운걸 들거나 허리에 무리가 가는행동은 피해야한다는 의사의 소견이 있었다.
그걸 내자..
간부들끼리 쑥덕쑥덕 거리는게 내 얘기를 하는거 같았다.
이제 4월말에 GOP를 투입하는데.. 그때부터 본격적으로 작업 및 박격포를 다뤄야하는데.
허리에 문제가 있다면 그게 힘들지 않느냐.
그렇다면 보직변경을 추진해야하는것 아니냐.
그렇게 얘기가 나돌았고, 간부들과 가까운 계원들 사이에서는 이미 내가 보직변경이 될거같다고
귀띔을 해줬다.
내가 너무 싫어했던 맞선임과도. 천사 분대장과도. 그리고 착했던 많은 소대원들과도
뭔가 보직변경이 되면 이 사람들과 떨어져 또 다른곳에 적응해서 생활해야된다는게 큰 압박으로
다가왔다.
그리고 3월이 되어..
날씨가 풀려서 처음으로 주특기를 하는날이 왔다. (4.2" 박격포)
주특기집합을 하는데.. 갑자기 간부가 내 이름을 부르더니 너는 행보관님실로 들어가란다.
그때 딱 뭔가 삘이 왔다. 죶됐구나..
들어가니 소대장과 행보관이 엄청 심각한 표정으로 앉아있고.
MRI 결과도 봤고 허리에 무리가 가는행동은 힘들듯하니 지금 소대에서 박격포를 다루는건
힘들것같다는 이야기였다. 보직변경을 해주겠다고 한다.
본부로 와서.. 지금 말년병장인 인사계원의 부사수로 들어오라고 한다.
그때 인사계원은.. 거의 신이었다.
병사들의 근무, 휴가를 직접적으로 관리하는만큼 인사계원의 파워가 엄청 쌨다.
짬이 되는사람들도 인사계원한텐 절대 싫은소리, 쓴소리 못했다.
그리고 내가 컴퓨터를 잘 다루고, 군대에서 나이가 좀 많은편이니 이렇게 성실하게 일처리하고
몸으로하는 힘든일보다는, 컴퓨터로 하는 이런 업무처리능력이 더 좋을거같다고 이야기를 했다.
그렇게 나는 소대를 옮기게 되었다.
그전소대에서는 내밑으로 후임들도 5,6명은 있었는데.. 계원들이 쓰는 생활관으로 소대를옮기니
다시 내가 막내가 되었고..
너무 어색했다. 본부쪽엔 친한사람도 없었고.. 아예 정말 새로운곳으로 전입을 온 느낌이랄까.
계원이 됐으니 이제 GOP에 올라갈일도 없고..
막 되게 복잡했다. 기존에 배웠던 환경 내가 해야할것들. 본부에 오니 다 다르고..
그 새로운환경에 다시 적응해야한다는것 자체가.. 너무 큰 부담이었다.
그렇게 3월에 인사계원 부사수가 되었고.. 정신없이 업무를 배우며 3월말이 될때쯤..
또하나의 사건이 터지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