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
13년 3월. 결국 나는 한달간의 인사계원부사수를 마치고 다시 박격포소대로 복귀를 하게되었다.
역시나 나랑 잘맞았던 천사분대장이 가장먼저 나를 반겨줬고
내가 뭐 크게 사고를 치거나 그런것이 아니라 항상 눈치껏 자신의일은 해왔던터라
어떻게 이미지가 나쁘게 되진않아서 소대원들 모두가 내가 원복하는데 있어서 크게 부정적으로
보진 않았다. 참 다행이었다. 군생활이 되게 꼬였다면 꼬인건데..
다시 돌아오니 역시 애증의 맞선임과도 다시 지내게 되었다.
ㅎ ㅏ. 이사람과 잘 지낼수있을까.
걱정이 되면서 앞으로 잘해야겠다는 생각만 들었다.
그리고 소대에 복귀하자마자.. 3월말이 되어.. 나는 신병위로휴가를 나가게 되었다.
동기들은 GOP에 올라가 있었는데, 신병위로휴가를 나가게 되어 잠시 중대로 내려왔다.
약 두달만의? 만남이었다. 동기들은 GOP에서 내가 인사계원이 됐다는 소식을 들었다고 하는데
다시 박격포소대에 있으니 무슨일 있는건 아닌지 날 걱정해줬다. 뭐 별일없다고 하하호호 웃어넘기고.
동기들은 군대에 입대한 후 첫 휴가를 나가는거라 엄청 기대를 했지만
나는 한달전에 이미 허리때문에 3박4일 청원휴가를 다녀온터라 물론 좋긴했지만
동기들만큼은 아니었다. 덤덤했다고 할까.
휴가중에는 역시 친한친구들과 술자리, 못했던 게임들도 하고 지인들도 보고
가족들과 외식을 하며 하루 같이 보내기도 하고.. 남들 하는만큼 평범하게 보냈던거 같다.
12년 8월군번까지는 신병위로휴가가 4박5일이었는데..
12년 9월군번부터는 신병위로휴가가 3박4일로 줄어 정말 너무너무 짧았다.
뭐 해볼틈도 없이 복귀시간은 다가왔고...
복귀하면서 역시 너무너 걱정이 됐다.
4월에는 연대전술훈련이 있었다. 무엇을 하는지 정확히 언제 했는지 이런것은 군대기밀상
세세하게 적을순 없지만, 나는 주특기에 대한 걱정이 너무 컸다.
일병이지만 내밑으로 그당시 한 5,6명의 후임이 있었는데
주특기훈련을 했던 2월 한달동안 내가 인사계원의 일을 배웠던터라 주특기에 대해 아예
알지를 못했다. 오히려 나보다 늦게 들어온 후임들보다 주특기를 못하게 된것이다.
결국 주특기를 잘하면 인정받고, 주특기를 못하면 은연중에 무시를 당한다.
근데 나는 주특기에 대해 막 전입온 신병보다 모르는 상황이다..
1,2월은 눈만쓸었고 주특기가 시작될때쯤엔 계원일을 했으니.. 4월의 훈련도 문제였고..
휴가 복귀하면서 이런 앞으로의 군생활이 너무 걱정이 됐다. 허리가 그당시엔 꽤 아팠으므로
훈련하거나 행군을 할 생각하니 걱정이 너무 됐고..
그렇게 시간은 흘러 어느덧 4월이 되어 훈련을 하게 되었다.
처음하는 준비태세(FTX) 상황조치훈련은..
진짜 사이렌이 울리면 진짜 누구보다 빠르게 자기군장을 결속하고 완전군장을 한채로
각 분대에 맞는 고지를 점령하고 임무를 하는 그런거였는데.. 처음이라 당연히 속도가 느리고
정신없어서 이것저것 까먹더니 엄청 혼났다.
그리고 실제 훈련에서는..
4.2박격포는 무게가 엄청 나가기때문에 무조건 차에 실어 기동을 한다.
한마디로 4.2박격포가 주특기인 병사는 행군을 하지않는다. 무조건 차를 같이타서 기동한다.
선임들의 말을 들어보니 다른 작은 박격포를 주특기로 하는 전우들은 박격포를 들고
행군을 한다던데..ㅜㅜ 참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밖에서 먹는 전투식량, 4월이지만 이상하게 날씨가 추웠다(도중에 비가와서그랬다)
추웠다 따뜻했다 변덕이 심했던 날씨.. 여러가지 힘든부분도 많았다. 주특기를 잘 모르는것도 컸고.
그나마 그때 전역을 앞둔 천사분대장은 날 엄청 신경써주고 커버쳐주려 노력했다.
최대한 쉬운것만 시키고, 자기도 마지막 훈련이니 잘 마무리 하고싶다며..
힘든일을 오히려 병장인 분대장이 다 도맡아 하고.. 우리를 진짜 배려해주는것을 느낄수 있었다.
전역을한지 시간이 꽤 지난 지금 생각해도 굉장히 고마운 친구다.
어쨌든 천사분대장의 배려덕에 몸도 크게 힘들지 않았고, 주특기역시 천천히 배워가며
나는 훈련을 끝낼수 있었다.
그리고 훈련을 마치고.. 4월말이 되었다.
4월말이 되니 슬슬 앞소대와 우리소대의 GOP 교대 시간이 다가오고 있었다.
박격포소대는 한번 GOP에 올라가면 약 세달간의 대기포 임무수행을 하는 그런 근무를 하게된다.
어쨌든..
우리소대는 5개의 분대가 있었다.
하나포,둘포,삼포,넷포(포병숫자라 이렇게부름) 이렇게 4개의 분대. 각 박격포를 맡아서 하는 분대와
소대본부라고 하여 (관측병, 통신병, 야전가설병) 이 포함된 1개의 본부분대.
이중 관측병 2명은 특별하게 GOP가 아닌 GP로 투입해 관측병의 임무수행을 하곤 했었는데..
그때 GP를 가야하는 말년병장이 GP를 투입하게되면 중간에 전역을 하게되어
GP를 가지 못하는 상황이 왔다.
참고로 GP는 비무장지대로써 진짜 출입증이 있어야 들어갈수 있고 중간에 인원교체가
거의 불가능하고.. 진짜 말그대로 GOP보다 더 전방. 최전방.
북한군이 눈앞에 보이는 그런곳이라고 보면 된다.
어쨌든 말년병장 한명이 전역의 문제로 소대원중 GP에 갈 한명의 인원이 비게되었다.
그리고 그 자리에 누가 들어가느냐 말이 많았는데..
우리 소대원들은 대부분 내가 갈거라 예상을 했었다.
중간에 들어와 현재 4.2박격포 주특기가 굉장히 부족한 상황이기도 하고..
허리가 아픈 문제때문에 언제까지고 4.2박격포를 할수는 없지 않느냐..
아마 너가 갈수도 있다. 그럴가능성이 높을거같다. 그런이야기를 굉장히 많이 들었었고..
어느날 소대장이 불러 직접 나에게 GP로 갈 생각이 있냐고 물어봤다.
그래서 나는 그동안 여태까지 여기저기 다닌게 죄송하기도 하고, 이건 아닌거같아서
"제가 선택하는게 아니라 소대장님이 원하시는대로 따라 가겠습니다. 어디서든 열심히 하겠습니다."
대충 이런식으로 대답을 했다.
그당시 나와 같이 GP에 투입될 1명의 선임은 연세대생이었는데
공부만 많이하고 사회생활을 해본적이 없는지. 진짜 엄청 이기적인 사람이었다.
그래서 소대원들이 은연중에 다 무시하고 따돌리는 그런 약간의 왕따?같은 사람이었는데..
이런 약간의 성격에 문제가 있는 사람과 신병한명을 보내자니 소대장의 입장에선 너무 골치가
아픈거다.
그래서 계급은 낮지만 가장 어른스럽고(?) 소대에서 나이가 가장 많았던 나를 같이 보내서
잘 보필해주라고 그런식으로 이야기가 자연스럽게 흘러갔고
내가 허리가 아픈점. 그리고 GP에 가면 상황병과 같이 관측병은 상황을 보게되는데
그런부분에 있어 계원의 경험이 있어서 상황을 잘 볼거라는 점 등
여러가지 상황이 맞물리게 되어 나는 결국 GOP가 아닌 GP로 가는 소대의 2명중 한명이 되었다.
GP라니!
GOP를 갈 생각은 했지만 내가 정말 GP에 갈줄은 몰랐다.
보통의 사람들에게 GOP는 최전방. 정말 최전방이라는 인식이 있지만
GP는 그 GOP보다 더 최전방이라고 생각하면 된다. 그냥 바로 눈앞에서 북한군이 움직이는게 보인다.
말을 듣자하니..
내가 가게될 GP는 우리군단내에서도 적GP와의 이격거리가 최단거리라고 한다.
그리고 그 거리는 1km가 안된다고 했다.
와!
진짜 국경. 말그대로 북한군과 남한군이 대치하고 있는 그 사이를 내가 간다고 하니..
걱정이 앞서면서 한편으로는 기대도 됐다.
어차피 한번하는 군생활! 북한군을 육안으로 보고오면 얼마나 신기할까. 와. 와.
GP에 가려면 신원조회를 해야한다. 사회에서 전과가 있거나 조금이라도 정신상에 문제가 있으면
절대 GP를 갈수 없다. 왜냐하면 항상 실탄을 들고 근무를 서기때문에..
어쨌든 사회에서 별다른 물의를 일으킨적이 없는 나는, 신원조회를 가뿐히 통과했고
시간이 지나 GP출입증이 나에게 쥐어졌다. 그걸 받는순간 실감이 났다. 진짜 GP에 가긴 가는구나..
그렇게 GP이야기를 하며 나는 다시한번 분대가 바뀌게 되었다.
원래는 넷포 분대에 있다가, 이제는 소대본부(관측병)으로 분대가 바뀌게 된것이다.
보직역시 바뀌게 되었고, 맞선임도 바뀌게 되었다. 넷포분대에선 내밑으로 두명의 후임이있었는데
소대본부에서는 밑으로 후임이 없었다. 다시 분대막내가 된것이다.
어쨌든 여러번의 보직변경 끝에 결국 나는 GOP가 아닌 GP로의 투입이 확정이 됐고..
나는 5월초, 모든 소대원들이 GOP로 향할때 선임한명과 같이 GP로 투입하게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