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 주기 전에는
그는 다만 하나의 몸짓에 지나지 않앗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 주었을 때
그는 나에게로 와서 꽃이 되었다.
(중략)
우리들은 모두 무엇이 되고 싶다.
너는 나에게, 나는 너에게
잊혀지지 않는 하나의 눈짓이 되고 싶다.
- 김춘수의 '꽃'
우리가 그것들에 "힘"이라는 이름을 지어주고 부르기 전까지는
그저 물질간에 서로 엮이고 있는 어떠한 것에 지나지 않았습니다.
세상은 아무것도 변하지 않았지만 우리가 무언가에 이름을 지어주고 정의하기 시작하면서
그저 끊임없이 굴러가던 우주는 우리로 하여금 특별해졌고 우리 또한 특별해졌습니다.
태양를 등지면 어두워지고, 태양를 바라보면 밝아지는.
태양과 가까워지면 더워지고, 태양과 멀어지면 추워지는.
이 단순한 우주의 몸짓조차 우리에게는 특별한 무언가로 다가왔고
우리는 그것을 낮, 밤, 계절 등의 이름으로 부르기 시작하며 시간은 시작되었습니다.
인류 역사상 명실상부 가장 위대한 발명인 시간이 발명된 것입니다.
인간은 삼라만상의 변화와 만물의 양태변화에 눈금을 부여하기 시작하였고
하루를 낮과 밤으로 나누고 그것을 24개로 나누어 시라 부르며
그것을 다시 60개로 나누어 분, 더 나누어 초라는 관념으로 부르기 시작하였습니다.
이후 수많은 시간이 흘러 지구와 태양, 달의 관계가 밝혀지면서
낮과 밤의 길이도 변하고 시간이라 부르던 것들이 유동성이 존재한다는 사실이 증명되자
편의를 위해 원자를 기준으로 다시한번 '초'의 정의를 내리고 시간의 단위를 고정했습니다.
그렇게 언젠가부터 사람들은 시간에 대한 오해를 품고 살아가게 되었습니다.
시간은 흘러가는 것이라는 오해를 말이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