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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들께 보내는 편지 세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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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44 2016.01.24. 08:44




줄곧 바라봤지. 완전한 소통. 결코 이뤄질 수 없을 거라 생각은 했지만 말이야.
가물가물 하다만 침대를 침대라 부르지 않고 의자였는지 자명종이었는지 시계였는지,
하여간 제멋대로 바꿔 부르다가 결국 누구와도 대화가 불가능해져버린 머저리가 생각나서
비웃었는데 알고 보니 내가 그 치와 다를바 하나 없더라고.

간만에 아는 분이 연락을 해왔어. 마지막으로 연락했던게 한여름이었나.
그 이후로 가끔 생각만 하다가 오랫만에 통화하니까 반갑더라고. 오지랖이 넓었기에
나에 대해서 아직 신경 쓰고 있구나 하는 생각도 들어서 내심 기뻤지.
그래. 아직 그래도 날 잊어버리지 않은 사람이 있다는걸.

"약 많이 줄였다면서요?"

"네. 대신에 술로 대체하고 있죠. 요새는 거의 매일 마셔요."

** 같은 행동이 뭐 그리 자랑이라고 난 떳떳하게 떠들어댔을까.

"그게 더 위험하다는 것을 아시잖아요? 경험도 많으면서."

"그러게요."

"힘드시면 다시 복용량을 늘리세요. 약보다 술이 더 무서워요."

할말이 생각나지 않았어. 하도 반복되다보니 이제는 자책감 내지는
자괴감도 무뎌진 탓이었을 거야. 그냥 이렇게 살다 가겠구나. '프리터'였지 아마.
한심한 인간들을 위한 한심하기 짝이 없는 단어. 번역하면 한량이려나.
다시 한번 번역한다면 인간말종.

"종교에 관심 가져보시는 건 어때요?"

그 말 왜 안나오나 했어. 왜 다들 조금이라도 정신적 결함이 있는 이에게
지겹도록 종교를 권하는 지 도통 이유를 모르겠어.
오히려 그런 사고방식이 사람을 더 엇나가게 만든다는 걸 왜 모르지?

"그러면 계속 이렇게 술만 마시면서 지낼 건가요? 지금도 글도 쓰고 계시고,
일도 하시면서 잘 지내고 있잖아요. 자꾸 술에 의존하시면,
언젠가는 모든 것이 송두리째 날아가버릴 지도 모른다는 거 모르세요?"

"그러게요."

"성인 이후에 맺은 인간관계야 얼마든지 끊어버릴 수 있는게 요즘 세상이잖아요.
다들 이해득실 따져가면서 사람들 사귀는데, 새로운 사람들 만나면서 차근차근
쌓아올리면 되는거에요. 이렇게 알코올에 의존한 채로 몸도 버리면 어떻게 해요.
게다가 완전히 약을 끊으신 것도 아니잖아요. 약에다 술까지.
둘 모두 독인거 아시는 분이 이러시면 안돼요."

네 정답입니다요. 그 말씀 백번 천번 만번 옳지요. 다만, 이제 모든 것에 별다른 미련이 없다오.
바다에 떨어뜨린 납덩이마냥 허무하다오. 그 말씀 모두 정석이자 정답입니다만
내 뇌에서, 대뇌 피질에서, 전두엽에서 받아들이질 못한다오. 당신께서는
다른 사람들에게도 똑같은 말들을 하셨겠지요. 전능하신 카리스마의 오지랖에
매일 전화로 나의 음주유무를 체크하겠다고 불호령을 내리시곤 전화를 끊으셨지.

그런데 지금 난 또 다시 술을 마신다오. 알아 나도. 답도없는 녀석이라는 거.
또 나약하기 짝이 없다는 것. 그래도 예전처럼 지내진 않잖아. 나름 발전한게 이 정도라고.
아쉬운 건 늘 혼자 마신다는 거. 모니터에 두둥실 떠다니는 단어와 건배!
이런 낙이라도 있어야 살지. 올라오는 술기운이 반갑다. 으허 좋구나. 등신**.
뭐가 자랑이라고 이렇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