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망의 불씨는 사그라진 채, 어떠한 성찰의 시간조차 가지지 않고 그저 나보다
뛰어난 이들의 뒷모습을 쫒는다. 뼈를 깎아본 적도 없으면서 몇 마디의 미혹으로
뼈를 깎는 고통이 얼마나 아픈지를 토로한다. 세상과의 타협을 시도하는 약아빠진 녀석이
되었는데도 다른 이들 앞에서는 순수의 가면을 쓰고 자신을 포장한다.
수없이 저지른 과오들은 시간이 지나면서 내 속에서 합리화하려는 비겁한 생각들이
싹텄다. 그 싹들이 자라 나무가 되고 숲이 되자 내가 저지른 일들은 그늘에 덮여
쉬이 눈에 띄지 않게 되었다. 나의 잘못을 뻔히 아는 나도 이제는 일부러 찾지 않으면
발견하기 힘들 지경이니 다른 이들은 더 할 것이다. 근본적인 치유를 거부하고 정신의
모르핀을 찾는 나의 꼴이 우습고 어리석게 느껴졌다. 조금이나마 남아 있던 양심은
백색의 쇳소리를 내며 정신을 두들기고 헛된 공이질을 반복한다.
사람들의 웃음 속에는 아직 봄의 햇볕 냄새가 남아 있었다. 목련이 피었다 지고
이윽고 철쭉과 찔레꽃이 피었다. 꽃향기를 실은 바람은 여전하다. 허나 목련이 진 자리에는
앙상한 가지만이 남았고, 한번 진 목련꽃은 다시 피어나지 못했다. 나의 내면 역시 텅 빈 자리가
채워지질 않았다.
탐욕의 불협화음은 극단으로 치닫고, 상황은 인간이 상상도 못할 기묘한 방식으로
운명의 날실과 씨실을 얽어놓았다. 그럴수록 더디게 흘러가는 시간은 고문의 도구가 되어버렸다.
저 밖은 여전히 태양이 길고 붉은 빛살을 쏘아대며 지고 있으나, 스스로가 너무나도 창피하여
온전한 시선으로 주황색의 노을을 감상할 수 없었다.
설득과 강요에 못 이겨 정말 먹기 싫은 감기약을 억지로 삼켜야 하는 아이의 체념과도 같이,
이제는 진실을 포기해 버리고 싶은 마음도 가슴속에 조그맣게 둥지를 틀었다.
마치 아름답던 유년시절의 한 조각이 베어져 나가는 고통을 느끼곤 한다. 그럼에도 여전히
희망의 끈을 놓지 않는 것은 아직 완전히 더럽혀지지 않은 나의 정신과 늘 물 위를 미끄러지듯
살고 싶은 나의 소박하다면 소박한 바람 때문은 아닐까.